1. Olive Kitteridge, 올리브 키터리지

<작은 기쁨>에 이어 <굶주림>까지 읽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 어머니가 우는 모습에 올리브는 왜 저러는가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예전만 해도 결혼식장에서 신부 어머니, 혹은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건 흔한 풍경이었다. 나는 신부 어머니가 아닌, 신랑 어머니가 우는 결혼식장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신랑 어머니의 카운터 파트인 신부 어머니가 무던한 표정이라 나 역시 그려런했던 기억이 난다. 내 결혼식이었다.

올리브의 기이한 행동과 아들의 결혼에 대한 억울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편 <작은 기쁨>에서 나는 영락없이 며느리 수잔의 위치다. 올리브는 이상하고 못된 시어머니다. 하지만, 성인 남자를 아들로 두고 있는 나로서는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겪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무엇이 무엇이다,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And she felt it, too, at the way the bride was smiling up at Christopher, as though she actually knew him. Because did she know what he looked like in first grade when he had a nosebleed in Miss Lampley's class? Did she see him when he was a pale, slightly pudgy child, his skin broken out in hives because he was afraid to take a spelling test? No, what Suzanne was mistaking for knowing someone was knowing sex with that person for a couple of weeks.(82p)

올리브는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신부가 크리스토퍼를 바라보며 정말 그를 안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바라볼 때, 그녀는 두려움을 느낀다. 내 것이었던 사람을 내 것이라 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올리브의 감정은 두려움이다. 질투와 원망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사람이란 자신과 예상과 다른 행동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판단은 긍정적인 방향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한다. 올리브의 행동, 며느리의 옷과 신발을 훼손하는 행동은 옳거나 바른 행동은 아니고 장려할 만한 행동도 아니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올리브의 생각과 행동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괜찮은 사람,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사람도 마음속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 '쿨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음을 작가는 올리브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각각 자신만의 결함이 있고, 그리고 구멍이 있다. 그걸 애써 미화할 필요도 없고,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는 것처럼 너도 그럴 수 있고, 너가 그럴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아는 건, 중요할 것 같다. 그러니깐, 가끔 나도 어떠어떠한 말과 행동을 통해 후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말이다.










2. 의자의 배신

인류사에 결정적인 순간을 꼽으라 하면, 정착을 불러온 농경의 시작과 자본주의의 등장인 산업 혁명을 꼽을 것이다. 이건 페미니즘 역사를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인데, 거다 러너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 사유 재산의 발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를 통해 시초 축적 과정에서 가장 극렬하게 반항하는 무리였던 가난한 여성들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마녀사냥이었음을 밝혀낸다.

유목 생활을 한 수렵인들이 농경 정착민이 되면서 골밀도는 떨어졌지만, 이 정착민들의 뼈는 여전히 현대 올림픽 대표 선수들보다 강했다. 수렵 채집인들은 인류세 인간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건강했던 것이다.(93쪽)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간의 뼈대, 턱, 치아 배열 상태, 얼굴 형태, 외모가 변형되기 시작한다. 정착자의 뼈는 얇아지고, 턱과 입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치아 밀집 현상이 흔해졌다. 구강 안쪽에서부터 치아가 작아지기 시작했고, 치아 매복이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덜 움직이게 된 것'. 초기 농경 정착민들은 수렵 채집인들 보다 골밀도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현대 올림픽 선수들보다 강했다. 가장 극렬한 비교는 수렵 채집인들과 운동 안 하는 현대인.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현대인도 날아다니는 수렵 채집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3.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나는 오해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이해하는 이 문장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듣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은 모두 각자의 공연(하고 싶은 말, 이상한 노래, 하소연, 넋두리, 일정 보고, 정보 공유, 뒷담화)을 한다' 였다.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란 불가능하고, 내 말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는 이 기적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우리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고 싶은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관중이 없는 그곳에서 나만의 공연을 한다. 그게 내가 이해한 바였다. 작품 소개 속 문장들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고닉의 글은 우리가 수많은 삶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준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거리는 문을 열면 닿을 수 있고,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나 ‘공연’을 할 수 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외로움을 벗어나 평온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거부당하고 미움받더라도 고닉은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에게 다가서려고 하는 사람이다." <책소개: 알라딘>

2023년의 빛나는 발견, 비비언 고닉. 아직 <멀리 오래 보기>가 남아 있다. 다행이다.











4. English for Everyday Activities, English for Everyday Activities(이디엄)

이 책 두 권은 영어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충동적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알라딘에 검색해 보니 한 권이 품절이라고 해 K문고에 들어가 검색해서 야무지게 2권에 대한 구매 버튼을 눌렀다. '활용도가 높은 영어 표현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함께 그림 사전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는 게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활용도가 높은 영어 표현을 실제로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데, 왜 이 책을 구입했는가. 아직 공부든 활용이든 무엇이든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제대로 활용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나 아무튼 사 두었던 『504 Words』를 1회독했으니 미리 구입해둔 이 책들도 곧 펼칠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작년, 아니군. 재작년에 사 두었던 『Word Power made easy』가 자기 차례가 먼저라며 기다리고 있단다.


지난 토요일에는 집 앞에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광화문까지 가게 됐다. 표가 없어도 무대 앞 구역까지 입장이 가능하다는 걸 현장에 가서 알게 됐는데, 줄을 서서 가방 검색을 마치고 입장할 수는 있겠으나, 급하게 나간 터라 얇은 옷으로 계속 찬바람을 맞을 수 없어 차라리 집에 가서 넷플로 시청하자 했다. 그래도 거기까지 나간 김에 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광화문 단골 커피숍에 들렸고, 커피 1잔을 마시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봄이라고 하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고. 시간은 참, 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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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3-27 0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는 크리스의 엄마이고 그래서 아들인 크리스를 다 안다고 생각햇지만, 그러나 엄마인 올리브가 모르는 어떤 부분을 크리스의 아내가 알고 있잖아요. 크리스가 어릴 적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같은거 말예요. 올리브가 무너진 지점은, 바로 그것을 인지하게 됐을 때인데,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너, 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네가, 내가 모르는, 그런데 나 때문에 괴로운게 있었단 말이야? 저는 올리브의 며느리 물건 파괴하기에 대한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인상을 찌푸릴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걸 망치는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너에게 베스트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참 힘들잖아요. 어쩌면 내가, 나의 베스트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줄 수도 있었다, 라는 것...

저는 <겨울 콘서트> 읽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그건 글로 써볼까 합니다. <병속의 배> 까지 다 읽었어요. 휴.. 갈 길이 멉니다. 영어 어려워서 번역본하고 한 줄씩 번갈아 읽고 있어요. 영어 실력 진짜 쪼렙이에요 ㅠㅠ

단발머리 2026-03-27 18: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이 저는 참 신기하더라구요. 이런 느낌, 이런 감각을 어떻게 이렇게 쉬운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와 가장 가까웠던 너에게 내가 상처준 게 있단 말이야? 이런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 같은 거요. 요즘은 가끔... 가장 큰 배신은 연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충격받는 저 올리브를 보노라니 더 그런 생각이 들고요. 내가 낳았는데, 내가 키웠는데....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겨울 콘서트> 이야기도 얼른 서둘러 주시구요. 저는.... 한글로 주로 읽고 좋은 문단 영어로 찾아 읽어요. 한마디로 거꾸로 읽고 있단 이야기입니다 ㅠㅠㅠ

다락방 2026-03-27 22:28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겨울 콘서트 써야 되는데 굶주림.. 에 대해 썼습니다.. 흠흠.. 겨울 콘서트는 곧.....

독서괭 2026-03-27 04: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올리브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 게 재밌고 좋더라구요. 말끝마다 ‘올리’ 라고 붙이는 다정한 헨리에게 툭툭대며 구시렁거리는 것도 어쩐지 좋구요ㅋ 그건 어쩌면 케빈에게 오지랖부리는 올리브를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난 나중에 며느리한테 그러지 말아야지…

단발머리 2026-03-27 18:43   좋아요 1 | URL
올리브와 헨리가 참 ㅋㅋㅋㅋㅋ 찰떡같은 면이 없지 않아요. 그래서 보고 있으면 재미있고 더 빠져들고요.
저도 나중에 며느리한테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짜 그런지 어쩐지, 우리 서로를 감시하기로 해요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3-27 22:42   좋아요 1 | URL
🤣🤣🤣

건수하 2026-03-30 09:40   좋아요 2 | URL
전 며느리가 없을 예정이라... (왠지 두 발 뻗고) 제가 두 분을 감시해드리겠습니다 ㅎ

단발머리 2026-03-30 21:17   좋아요 2 | URL
올리브와 비슷하든 비슷하지 않든, 시어머니는 영원히(?) 불편한 그 누군가일거 같아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괭님께는 위로를, 건수하님에게는 축하를 : )

망고 2026-03-2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읽으면서 올리브 시점으로 며느리 얘기 하는 부분 보면 며느리가 남 가르치려하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만 한다고 흉보잖아요 근데 그거 다 올리브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부분 아닌가요?ㅋㅋㅋㅋㅋ 며느리가 딱 올리브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던데...자신 같은 사람을 보고 참을 수 없어 하는 올리브. 이런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아스라히 보여주는 소설이라 참 좋았어요

단발머리 2026-03-27 18:45   좋아요 1 | URL
자신 같은 사람을 보고 참을 수 없어 하는 올리브... 망고님의 이 말씀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하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은 영 거슬리는 거겠죠. 아들이 결혼하지 못할까 걱정하던 그 올리브, 대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저, 아직도 스트라우트 소설 많이 남아있어서, 그게 참 좋아요^^

수이 2026-03-27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멍이 있는데 미화하는 이들이 많아서 세상이 혼란스러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뉴스 안 미국 대통령 얼굴을 보면서 잠시 해보았습니다. 궁금해지는 소설 내용입니다. 망고님 댓글 읽고 또 선 넘는 발언을 하고 싶지만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야지. 비비언 고닉 먼저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6-03-28 09:2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가.... 그런 면을 포장하지 않고 보여줘서 좋았어요. 근사한 사람도 구멍이 있을 수 있고, 매력적인 사람도 그럴 수 있잖아요. 저는 좀 피곤할 거 같아도 올리브랑 친하게 지낼 거 같거든요ㅋㅋㅋㅋㅋㅋ(나는 수잔은 아니어야 함) 근데 이런 올리브에게도 이런 구멍, 이런 헛점이 있다는 걸, 이 소설이 잘 보여준 거 같아요.

미국 대통령은 사실 범죄자에 가깝죠. 미국의 비극이라 여겼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비극이 되어버렸어요. 전쟁이라니요..... 에구야...

2026-04-01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