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읽을 때는 번역본이 있어도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않는 편, 이 아니라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유난한 영어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고(아니고 2, 아니고 3) 귀찮아서 그렇다. 나중에 번역본을 찾아 주르르 읽더라도 읽을 때는 그냥 원서만 읽는다. 하지만, 번역본과 함께 원서를 읽는 것은 굳이 영어 공부가 아니더라도 ‘깊이 읽기’의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그게 바로 오에 겐자부로의 읽기법/공부법이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간단하게 글을 써 둔 것이 여기(https://blog.aladin.co.kr/798187174/7834499)에 있다.
<Edible Economics>에는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고, 구조도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짬짬이 읽고 있었는데, 한글로 읽으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어 근처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교회에서 오는 길에 책을 대출했는데, 주일에는 오전에 나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기에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데, 그날따라 백화점에 볼일이 있어서 혼자 백화점으로 갔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방금 대출한 책을 꺼내 들었다. 주일 오후, 백화점 지하 1층 푸드코트.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커피 한 잔 없이 책을 펼쳐 들었다.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더니 40분이 흘러 있었다. 나의 집중력 무엇. 베즐리에 가서 ‘밤 많은 식빵’을 하나 사서 열어 놓고는 다시 읽기를 시작했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가 부제인 이 책은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재료가 쓰이는 방식,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래서 <1부>의 제목이 ‘편견 넘어서기’다. 챕터 2의 주제는 ‘오크라’인데, 오크라는 목화, 카카오, 히비스커스, 두리안 등이 함께 속한 아욱과 식물인데, 미끌미끌한 식감이 특징이다. 오크라는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다고 한다. (65쪽) 아이티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는 자유 시장에 논의를 불러온다. 자유 시장의 팬들이 자본주의를 옹호할 때 ‘자유’의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73쪽). 그 자유란, 누구의 자유인가, 라는 질문.
거기에 더해 프리드먼이나 헤리티지 재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 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 -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할 자유(예를 들어 파업), 실직한 노동자들이 새 직장을 구할 때 강력한 복지 국가의 보호를 받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자유 등 - 는 잘해야 그냥 무시되고, 많은 경우에 반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최악의 경우 노예화된 아프리카인처럼 누군가가 '자산'으로 정의되면 그들의 비자유는 폭력, 심지어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관철되어서 그들의 '소유주'의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를 보호해야 한다. (75쪽)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유가 ‘자본가’의 자유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안전한 일터에서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지 않으면서 즐겁게 일할 자유’, ‘귀여운 자녀와 충분한 여가 시간을 보낼 자유’ 같은 것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사의 대주주는 기업가이거나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약자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이런 발언이 나는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번역본이 손에 들어왔으니 다시 원서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17,800원을 안타까워하며, 원서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올려본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이론이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가 몸담은 세상 전체를 뒤집어엎고 주물럭거리는 것을 “절망 어린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방식에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원칙과 정부의 철학이나 정책이 일치하는가? 세계적인 거대 기업과 평범한 노동자가 공평하고 정당하게 세금 부담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어린이가 잠재력을 100퍼센트 발휘해 가장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의 가치가 공동체, 공동의 책임,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를 향상시키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믿는가? 독자들의 답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36쪽)
Tell me. 번역서는 이 부분을 다음 문장과 부드럽게 연결했던데, 나는 이 표현이 이대로 좋았다. Tell me.
내가 이런 자세를 좋아하는가 싶기는 하다. 그러니까 몸의 반 정도를 소파에 뉘고 한가하고 여유롭게 이 책을 읽어나가는 소극적인 독자가 아니라,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이 책을 같이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서의 독자. 읽기 과정에서 저자와 소통하는 주체로서의 적극적인 독자. 그런 독자에 대한 호명을, 나는 좋아하는 듯하다.
텔 미. 물론! 텔미, 하면....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에 익숙한 세대로서 춤은 안 되더라도 ‘나의 텔미’는 원더걸스의 그 텔미일테지만, 혹 모르는 일이다. 이제 ‘나의 텔미’는 장하준의 이 텔미일지도.
Tell me.
텔 미.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