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정리, 바로바로 안 해두면 다 사라진다고 알라딘 내공 100단 친구가 알려주었다.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나를 몰아쳐서 겨우겨우 쓴다. 집 정리 해야하는데. 아, 모르겠다. 태풍 올라온다고 하니 일단 얌전 모드/집안 모드/책상 모드로 읽은 책 정리하기.
1. 왜 쓰는가
로스에 대해 쓴다는 건, 로스를 읽는 나에 대해 쓴다는 뜻이다. 김영하의 표현을 다시 빌려온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도덕하거나 사회적 통념과는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나는 왜 매력을 느끼는가? 나는 괴물인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혹시 나는 너무 어두운 심연을 지나치게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글쓰기의 최소원칙>, 김영하, 135쪽)
로스를 읽을 때, 이 질문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왜 로스가 그려낸 인물에 사로잡히는가.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왜, 나는 왜 로스를 읽는가.
나는 내 안의 심연을 로스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어두움, 내 안에 감추고 싶은 그 어떤 것을 로스가 그려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로스를 읽는다. 그건 섹스에 관한 것일 수도, 강박에 관한 것일 수도, 청결에 관한 것일 수도, 그리고 유대인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로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로잡혔을까, 생각하면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가 잘 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가 선택한 주제 뿐 아니라, 그의 글 쓰는 방식.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대화에 들어서는 속도’, 나는 그것에 사로잡힌다. 항상 그렇다.
질문자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알랭 핑켈크로. “…. 선생님이 로노프인가요? 아니면, 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선생님은 작가가 예술을 위해 인생으로부터 은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은자, 스스로 정한 수도자라는 이념을 공유합니까?”
예술은 인생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고독도 인생이고, 명상도 인생이고, 허세도 인생이고, 불평도 인생이고, 사색도 인생이고, 언어도 인생이지요. 문장을 더 낫게 고치는 일을 하는 것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못한 인생인가요? 『등대로』를 읽는 것은 소젖을 짜거나 수류탄을 던지는 것보다 못한 인생인가요? 문학적 소명에 따른 고립 - 단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 방에 혼자 앉아 있는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포함하는 고립 - 은 밖에 나가 야단법석 속에서 감각을 축적하거나 다국적 기업을 다니는 것만큼이나 인생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로노프냐고요? 내가 주커먼이냐고요? 내가 포트노이냐고요? 그럴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럴 수도 있지요. 현재로서는 내가 책 속의 인물만큼 선명하게 윤곽이 잡혀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만. 나는 여전히 무정형의 로스지요. (<왜 쓰는가>, 231쪽)
이런 사람을, 이렇게 말하는 이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이 지독한 프로이트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인 필립 로스를.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이름조차 낯선 소설가를 로스가 인터뷰한 글들은 몇 개 건너뛰었지만, 로스의 문장은 대부분 다 읽어서, ‘읽었어요’로 표시한다.
2. 현대사상입문
지금부터는 제 나름의 푸코 독해입니다만, 현대사회에서 대규모의 생명정치와 여전히 계속되는 심리적 규율 훈련이 모두 작용하고 있다면, 모종의 '새로운 고대인'이 되는 방식으로서 내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물질적으로material 관여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대규모의 생명정치에 대한 저항으로서 그렇게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요컨대, 이상하게 너무 깊이 반성하지 말고, 그래도 건강을 챙기려면 챙기고, 그 다음에 "따로 마시러 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 같은 것이 가장 푸코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세속성이야말로 푸코의 '고대적’인 존재 방식인 것입니다. (106쪽)
자그마치 세 개의 형광펜(제일 좋아하는 색 3가지)과 Black Wing연필까지 총동원해 읽었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많아, 약간의 절망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안겨준 책이다. 그래도 도의상 이 저자의 다른 책을 한 권은 더 읽어보겠다는 결심도 하게 됐다. 한 번 더 기회가 있다.
3. Flipped
And I don't know... I've been weirded out ever since. She doesn't look the same, she doesn't sound the same, she doesn't even seem like the same person to me!" I stared out the window at the Bakers'. "She's... she's just different."
My grandfather stood beside me and looked across 187the street, too. "No, Bryce," he said softly. "She's the same as she's always been, you're the one who's changed." He clapped his hand on my shoulder and whispered, "And, son, from here on out, you'll never be the same.”
(187p)
2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리저리 치이고, 나도 바쁜 시간이라 책을 잃어버렸…. 다가 다시 찾아서 마저 읽었다.
나는 오랫동안 짝사랑을(이제 총 100번쯤 말했습니다) 했기 때문에 짝사랑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나 혼자) 생각한다. 응답받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의 그 좁은 간극에 대해서도 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한지 혹은 그것 자체가 형용모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인간에 대한 기대가 낮은 편이지만.
옆집 사는 소년(브라이스)을 짝사랑하던 소녀(줄리)는 브라이스가 화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소심하고 비겁한 아이임을 차차 알게 된다. 달걀 사건을 계기로 줄리는 브라이스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달걀 사건: 줄리는 농장에서 자신이 키운 닭이 낳은 유기농 신선 달걀을 매주 브라이스 가족에게 건넸는데, 농장 환경이 불결하다는 의심에 브라이스의 엄마가 달걀을 불편해하자 브라이스는 줄리가 건네주는 달걀을 받은 후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던 것이고, 그간의 일을 줄리에게 들켜버린 사건) 자신을 내내 쫓아다니던 줄리가 이제 자신을 본체만체하니 속이 후련할 만한데, 브라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줄리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대결전의 날. 기부 행사의 일환으로 남학생들이 모두 ‘바구니 소년’이 되어 소녀들의 선택을 기다리던 순간에, 브라이스는 줄리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학생을 선택한 것을 알게 되고,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유명한 여학생 두 명에게 선택받았음에도 뚜껑이 열려버린 브라이스는 그대로 줄리의 손목을 낚아채서는…
한 챕터는 줄리의 관점으로, 한 챕터는 브라이스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똑같은 상황에 대한 완벽하게 상반되는 기술을 통해 세상의 진실은 하나가 ‘아닌 것이 아닌가’ 되묻게 된다. 멍청한 브라이스가 마지막에라도 줄리를 다시 발견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얼빠진 브라이스, 진짜 사랑에 빠진 브라이스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She's the same as she's always been, you're the one who's changed."
4.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타인·사회·국가·종교·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128쪽)
내가 이 책에 그래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1) 유시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2) 유시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3) 적어도 유시민은 이 책에서 나름의 답을 내놓으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를 다룬 책들,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출현, 진화의 과정, 인간종의 문화와 뇌과학, 의식에 관해 다루었던 다른 책들은, 사실의 나열에 힘을 쏟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유시민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우주의 먼지이며 물질간의 결합체이며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삶으로서의 인간상을 가진 사람이 선택한 사인 문구(“그대라는 존재는 우주가 만든 기적입니다”)는 너무 감상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걸 쓰기도 좀 그렇기는 하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라거나 우주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라고 쓸 수는 없을 테니.
5. 재수사 1, 2
재수사 1권은 리뷰를 썼고, 2권은 안 썼지만, 두 권을 다 읽고 쓴 리뷰였으니, ‘읽었어요’에 의미를 둔다. 다만, 장강명 작가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2권 30% 지점에 내가 범인으로 찍은 사람, 온 동네방네 범인 찾았다고 말했던 그 사람이 왜 범인이 아니냐고 물어봐야겠다.
6. 동맹의 풍경
'몰두’의 이러한 두 가지 오래된 의미를 참조해, 여성들의 성애화된 노동에 투입되는 폭넓은 감정적 스펙트럼을 다뤄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주로 개인의 선택, 열망과 굳게 연결된 정서와 감정을 가리키는 한편, 내가 이해하기에 '몰두'는 정동과 훨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와 같거나 같지 않은 사람들과의 조우에서 사람들의 감정적 동요가 어떻게 깊이 체현된 경험이자 중요하게는 집단에 관여하는 현상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Mazzarella 2009, 2015). (158쪽)
<정희진의 공부>에서 선생님은 왜 이런 책을 우리나라 사람이 쓰지 못했나, 이런 말씀을 언뜻 하셨는데,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고, 한국 상황의 특이성과 전 세계 군사주의의 공통성을 추적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미군을, 국경 내에서 ‘모시고’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1독할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7.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 A Politically-Incorrect Feminist / 감시와 처벌
그래서 지금 읽는 책은 이렇게 3권. 세 권 다 묵직해서 얼른 해치우고 한 권이라도 좀 가벼운(?) 책으로 읽고 싶다.
아침부터 너무나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못 마시고 있다. 다행히 머리는 안 아픈데, 오늘 같은 날씨에… 아, 너무나 아쉽다. 의사쌤이 커피랑 에어컨 금지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저, 기침 많이 줄었는데(친구가 보내준 도라지즙 덕분입니다) 커피 마시면 안 되나요? 라고 혼잣말 시연 중이다.
연속되는 비문들과 주술 비호응과 기타등등. 카페인의 도움 없이 썼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