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merican Bride in Kabul』를 3분의 2 정도 읽었다. 3분의 1이’나’ 남았다.
일부다처 가부장제의 식솔 중 하나, 정확히는 재산으로 편입된 필리스 체슬러는 남편의 친모이자 시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 집에서 생활했다. 체슬러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 Abdul-Kareem이 내내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정통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극심한 허기에 체중이 급감했는데도, 남편 Abdul-Kareem은 그녀의 이런 상황을 모른 척했다. 집에 남은 여성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바느질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함께.
Reading is my delight and my salvation. (98)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체슬러에게 독서는 그녀 자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였다. 그녀는 책을 읽고 싶었다. 방해받지 않고 『전쟁과 평화』를 읽는 게 소원이었다. 책을 읽으려고 방에 들어가면 시댁 식구들은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카드 놀이 같이 할까?” 체슬러는 모든 생활을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 곳에서는, 혼자 책을 읽거나 남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다.
1961년, 체슬러는 카불에서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간다. ‘naked faced and bare headed’의 모습으로. 터번을 쓴 남자, 배기 바지를 입은 남자, 젊은 남자, 늙은 남자가 그녀를 만지고 소리를 지르고 옆으로 다가와 속삭인다. 동전이 나뒹군다. 그녀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고 남편 A는 불같이 화를 낸다. 울기 직전이다. A는 이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아프칸 성직자의 아내가 납치되어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는데, 아내가 돌아오자 그는 자살하고 말았다. 아내가 혼자 외출한 일, 그 일과 함께 예상되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그로 인한 수치심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칸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체슬러는 공적인 장소에서 여성의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 친척과 동행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외출은 불가능했다. 남편이 그녀와 함께 외출해 주지 않으니 그녀는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아프칸에서 탈출한 이후 체슬러는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서구 여성들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는다. 『English Woman, Arab Man』은 그런 책 중의 하나로 인용되었다. 아프칸에서 여성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어떠해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 Alison Legh-Jones은 이렇게 쓴다.
체슬러는 억압적이었던 부모에게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감옥에서 감옥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새로 만난 감옥이 훨씬 더 위험한 건 확실했다. 일주일간 친절했던 시어머니는 공개적으로 체슬러를 무시하고 괴롭혔지만, 남편 A는 모른 척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녀와 함께 살아야 함을 말해주지 않았다.
세 명의 아내, 성인에서부터 유아에 이르는 30명이 넘는 자식들은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 체슬러의 표현을 따르자면, 시아버지의 아들들은 그와 ‘결혼했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형제들과 경쟁한다.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항상 의심한다. half-brother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은 어머니의 형제마저도 평생 서로를 질투하고 미워한다. 아프칸 왕실이 계속되는 암살과 왕위 찬탈로 오랫동안 왕권이 불안정했던 것도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이후 체슬러는 아프칸을 탈출하기 위해 애쓴다. 대사관을 찾았지만 이제 그녀는 아프칸 시민이며 아프칸 시민의 아내이기 때문에 그녀를 도울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아프칸인들의 외국인 아내 중 한 명인 Mutti와의 접촉에서 도움을 얻으려고 한다. 그녀를 통해 본국의 부모님과 연락하고, 비행기표값을 보내달라 부탁하려고 한다. 하지만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다.
어느 날 오후, 그녀는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열이 심하게 오른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밤이 깊어 가자 그녀는 ‘기어서’ 시아버지의 집으로 가서는,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간격으로 아프칸 의사와 미국인 의사가 도착하고 그녀에게 ‘간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계속해서 토할 것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와중에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 체슬러는 마지막 수단, royal card를 쓰기로 한다. 체슬러는 하인을 통해 시아버지에게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시아버지는 바로 도착했다. 두 사람이 체슬러의 침실에 같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시어머니와 그녀의 하인들이 그녀의 침실로 밀치고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남편 A를 부르러 갔다. 시아버지는 체슬러의 치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인들과 큰며느리,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방을 나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스푼으로 우유 커스터드를 떠서 체슬러에게 먹여주었다. “네가 독일 여성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준비해 둔 아프칸 여권을 가지고 내 승인하에 출국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거 같구나. 건강상의 이유로 6개월 비자를 받아 두었다.” 체슬러는 가장 위험한 상태(임신과 간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어진(시아버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도움으로 지옥을 탈출하게 되었다. 시아버지가 왜 체슬러의 탈출을 도와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보도록 하자.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가슴 아팠다. A가 집 안에만 갇혀 있는 그녀를 피하려고 밤늦게 들어오거나, 그녀가 음식을 먹지 못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모른 척하거나, 아프칸의 여권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고 할 때 그녀에게 ‘창녀’라고 욕하며 그녀를 때릴 때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더 맘이 아팠다. 내 감정은 분노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그의 행동은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가 말했던 ‘여성의 노예화’ 과정과 똑같이 닮아 있다. 자기 집단의 여성을 노예화하는 것. 여성 또는 여성청소년의 납치, 폭행과 강간, 임신. 출산과 양육 과정 초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약한 여성은 자신과 아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납치한, 자신을 강간한, 자신을 괴롭힌 그 남자에게 협조한다. 감정적으로 동화되고, 가까워진다. 가족이 된다. 자신의 집단의 여성을 이 방식으로 노예화하는 데 성공한 초기 인류 남성 집단은 이 방법 그대로 다른 부족을 ‘노예화’한다. 가장 먼저 다른 부족의 여성을 노예화하고, 그다음 다른 부족의 남성들을 노예화한다. 인간이 동종의 인간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규정해 그 지배를 정당화하는 지옥도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A는 바로 이 방법으로 자신의 아내를 붙잡아 두려 한다. 아프가니스탄 남자와 결혼한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시민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아프가니스탄 국적이다. 가끔 서방의 여성들이 무슬림 남편에게서 이혼당하거나 혹은 그에게서 탈출했다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반드시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이를 억류시키고 자신만 탈출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으므로, 이 곳에서 그의 아이를 가진다면, 아이를 낳는다면, 체슬러는 영원히 이 곳에 살아야만 한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A가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체슬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채. 자신이 계속 그녀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그대로 실행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그 특정한 방식을, 아내를 볼모로 잡기 위해 사용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환희와 즐거움이 미움, 환멸과 공존한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서는 그런 감정들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필요하지도 않다.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과 실망을 주는 사람은, 분명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어떤 면은 나를 힘들게 한다. 자식은 사랑스럽지만, 어느 순간 내게 실망을 준다. 친구를 너무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삼십년지기 동네 친구가 돈 삼천만 원에 연락을 끊고 사라졌을 때, 배신당한 사람은 돈 삼천만 원이 아니라 삼십 년의 우정을 안타까워한다. (저한테 일어난 일, 아닙니다) 배신만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없으리라. 하지만, 일생일대의 거짓말 또는 배신 같은 극적인 경험 말고도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하고 멀어지고 그리고 한동안은 그녀/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가부장제가 '발견'되기 어려운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이 ‘개인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A는 심각하게 못된 남자라기보다는 보통의 남자다. 미국에서 체슬러와 동거했을 때, 그는 체슬러에게 맛있는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멋진 외모의 신사적인 사람이었으며, 또래의 남자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 카뮈와 샤르트르, 도스토예프스키, 스트린드베리, 입센 그리고 프루스트에 대해 말할 줄 아는 남자였고, 재즈, 래그타임, 오페라를 같이 감상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녀를 사랑해 주던 남자였다. 그 남자가 자신의 집, 자신의 고향, 자신의 나라에서 그렇게 ‘돌변할’ 줄은 그도, 그녀도 몰랐다.
『살림 비용』의 데버라 리버는 이렇게 썼다.
다른 노트 두 권에 걸쳐서는 내가 이후 결혼하게 될 남자와 처음 만난 순간과, 우리가 서로 이어지고 말 운명이라는 내 확신이 기록돼 있었다. 당시 나는 그이 없는 삶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느꼈다. (47쪽)
나는 익숙하지 않았던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알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성애 중심주의’가 가부장제의 근간 중의 하나임을 알았다. 남녀의 구별, 성역할 강제가 필요한 이유가 이성애 중심주의 때문이며, 이를 통해서 남성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렇다면, 이성애 중심주의로 무장한 채 가부장제를 내면화한 이전의 나의 경험, 나의 지식, 나의 생각은 모두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선택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고 다층의 의미 속에서 살아간다. A를 떠나면서도 체슬러는 계속 묻는다. 나는 그를 아직도 사랑하나? 그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나? 이성애 중심주의가 옳다거나 이성애 중심주의를 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 없이 살 수 없다고 여겼던, 그 사람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인생의 짧은 시간도 삶의 한순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설사 그를 떠나더라도. 그와 영영 헤어지더라도. 그를 사랑했던 나를, 그를 사랑했던 과거의 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지울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