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후버의 『All your perfects』를 읽었다. 콜린 후버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Now와 Then의 두 개의 다른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려내는데, Then이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될 때의 알콩달콩 사랑의 모습이라면, Now는 몇 년의 결혼생활 뒤 부부간의 갈등과 실망이 쌓여가는 지점을 보여준다. 당연히 Then 파트가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난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두 사람, 어느 날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Have you always wanted to be a mom?"
"Yes. It's kind of embarrassing how excited I am to be a mother. Most girls grow up dreaming of a successful career. I was always too embarrassed to admit that I wanted to work from home and have a bunch of babies."
"That's not embarrassing."
"Yes it is. Women nowadays are supposed to want to amount to more than just being a mother. Feminism and all that."
… “A mom isn’t the only thing I want to be. I want to write a book someday.” (193)
이 부분은 작가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처럼 여겨진다. 텍사스에 사는 작가는 남자아이 셋을 낳아 기르던 전업주부였는데, 책을 쓰고 싶어 했다. 2012년 1월 아마존에서 자비출판으로 낸 책 『내가 너의 시를 노래할게(Slammed)』가 크게 히트 치며, 자비출판으로는 드물게 그해 아마존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후의 책들도 모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최근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서점 투어 증언에 의하면, 유럽 서점도 ‘콜린 후버 세상’이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콜린이 느꼈던 미국의 페미니즘은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의 일을 가진 여성만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인정받는 흐름, 경제적 자유를 가지지 못한 채 집안에서 육아와 가사에 매여있는 여성에 대한 폄하,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부끄러워하는 분위기. 그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페미니즘의 거센 물결이 요동친 후에, 다양한 직종으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진 이후,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그런 분위기가 압도적인 건 사실인 것 같다.
『당신 엄마 맞아?』의 앨리슨 벡델은 자신의 엄마가 『여성성의 신화』를 읽은 후에 짜증 내는 모습을 그려냈는데(역시 책은 구입해 읽어야 한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책이 없어 그 모습을 여기에 올릴 수 없어 아쉽다. 책책책! 책을 삽시다!), 재클린 로즈는 『숭배와 혐오』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쓰고 있다.
벡델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우울증을 앓았다. 정신분석은 그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정신분석은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ㅡ 벡델은 두 흐름에서 모두 영향을 받았다 ㅡ 한발 늦게 왔다고 할 수 있다. "1963년 『여성의 신비 The Feminine Mystique 가 출판되었을 때, 엄마는 어린 두 아이와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벡델의 어머니 세대에서는 - 나의 어머니도 같은 세대다 - 무엇보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파괴적인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여성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이에 만족할 것을 의무로 강요당했다. (158쪽)
나 역시 전업주부다 보니 주변에 가까운 사람 중에도 전업주부가 많은데, 이른바 ‘천생 여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내내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돌보는 친구가 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라고 말하고, 뒤 한 번 돌아볼 정도의 시간에(물론 과장법입니다) 따뜻한 밥, 두부김치찌게, 스팸 구이를 내놓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청소와 정리 정돈은 물론이요, 실내 인테리어 꾸미는 솜씨도 수준급에, 아이들 공부까지 착실히 챙기는 분들이 있다. 그런 삶을 사랑하고, 또 즐거워하는 분들이다. 나는 그런 삶을 응원한다. 내 삶은 없었다고, 나는 망했다고, 나는 화석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내가 바친 희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부모됨’의 절망과 회환 너머의 기쁨과 환희를 모른 척하고 싶지 않다. 그 삶 속의 어려움과 외로움 혹은 후회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그러한 삶을 선택했고, 그리고 만족한다면, 그 삶은 있는 그대로,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런 엄마/그런 housewife는 아니지만.
콜린 후버는 그런 삶을 살았다. 원하는 대로 엄마가 되었고 아들을 셋 낳았고 남편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틈틈이 써 두었던 소설을 용기 내어 출판했고, 그리고 문학적으로 ‘의미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상업적 성공이 전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멈추지 않고 도전했고, 그래서 자신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읽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점에서, 후버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고급 표현을 빌리자면, ‘살림에 취미가 없는’ 어떤 전업주부는 이렇게 생각한다. 노트북 고치러 나갔다가 전혀 멀쩡한 노트북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 최고의 핫플레이스 반찬 가게에 들러 계란찜, 청포묵, 새우튀김을 사고, 근처 커피숍에서 바닐라라떼 아이스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원래 콜린 후버 책은 지금 마시고 있는 바닐라라떼 아이스보다 훨씬, 훨씬 더 달콤한데 그 이야기는 하나도 못 썼다. 계란찜처럼 말캉말캉하고 달달하면서도 뜨거운 이야기를. 쓸까 말까. 쓸까말까 쓸까말까. 쓸쓸쓸. 말말말. 쓸쓸쓸말말말말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