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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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평점 :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다. 자신이 속했던 노동자 계급을 떠나고 가족을 떠났던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색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슨 말을 더할까. 에리봉의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은 후, 읽는 도중에도 100% 유용할 것이 분명한 쟝쟝님의 글을 링크해 둔다.
https://blog.aladin.co.kr/trackback/jyang0202/13492598
<먼댓글(트랙백) :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탈출.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 탈출이라면, 더 낮은, 더 열악한, 더 후진 상황에서 더 높은, 더 쾌적한, 더 고급의 상태로의 ‘이전’을 말할 것이다. 계급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결혼. 부의 축적. 교육. 계급을 초월한 결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가능성이 낮다. 왕자님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모두 다 신데렐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공주님과 온달의 경우도 마찬가지. 초단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축재’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 그나마 가장 쉽고 용이한 것이 교육을 통한 상층 계급으로의 진출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걸, 통계가 보여준다) 교육은, 그 어렵고도 고단한 계급 탈출을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가능’하게 한다.
이 세계들을 분리하는 경계선들은 각 세계의 내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또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상상하고 지각하도록 규정한다. 더욱이 우리는 일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것은 접근불가능한 저 멀리 있는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동떨어진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명백한 규칙을 구성하는 것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배제되었다거나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는 단지 사물의 질서일 따름이며,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그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에 대해 내려다보는 시각vue en surplomb³을 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로 그 지점, 그 시각 때문에라도 ‘되돌아가는 것’은 탈출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성, 그 관점이라는 건, 자신을 먹이고 키웠던 그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이고, 가난과 절망, 잔소리와 폭력을 서술할 도구를 이미 쥐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꼭 학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출간되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다는 건 다른 층위의 문제다. 그가 가난했고 노동자 계급에서 왔으며 성소수자로서 겪었던 고충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충분히 고통받고 그 고통 때문에 자신의 가족, 고향과의 단절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30년 이상을 살아왔다. 동시에 그는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가 모국어였으며, 브르디외, 푸코, 뒤메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문화적 특권을 누렸던 사람이었다. 교수가 되었고, ‘지식인’ 계급이라고 불릴 만한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탈출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가난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가난도, 가난의 유산조차도 자원이 될 수 있다.
커피, 빵, 과일, 과자에 더해 밥통에 가득한 밥까지. 필요한 게 다 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를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굳이 집을 나선다.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머리를 감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전원/시작 버튼을 누른다.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오래오래 혼자이고 싶은 나는, 혼자이기 싫어서 집을 나선다.
요즘은 중학교에도 사물함이 있어서 아이들 책가방이 무겁지 않은데 나는 사물함이 없으니까. 아이들 가방보다 무거울 게 분명한 검은 가방을 메고 걷는다. 반팔티(큰애꺼), 후드집업(작은애꺼)에 찢어진 청바지. 내 신발 중에 제일 비싼 운동화를 신고 도서관을 향해 걸어간다. 디디에 에리봉을 생각하면서 걷는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에게로 돌아온 사회학자.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불굴의 정직성과 비상한 통찰력(이상, 책소개)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난 탈출했는가. 난 이제 그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혹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가. 우리 집은 가난했다, 라고 쓸 때, 가슴 한 켠이 따끔거리는 이 느낌은 그렇지 않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쓸 수조차 없다면 (혹은 쓰고 싶지 않다면),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그 상태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3월과 4월, 이 세상 누구보다 시간 부자인 나는 계급 탈출에 성공한 것 아닌가. 시간, 복장, 장소를 내 마음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이전과 다른 계급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성공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탈출했는가. 탈출에 성공했는가. 되돌아갈 수 있는가. 랭스로, 나의 랭스로 돌아갈 수 있는가.
"지배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그렇게나 많은 글을 써댔던 내가, 사회적 지배에 관해서는 왜 쓰지 않았을까?" 혹은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에서경험하는 수치의 감정에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했으면서, 왜 사회적 수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글도 쓰지않았던 것일까?" 결국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야 했다. "파리에 정착한 뒤, 나는 나와는 다른 사회 계층 출신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종종 그들에게 내 출신 계급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진실을 고백하며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 출신 환경에 대한 수치, 사회적 수치를 경험했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이나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이것을 다음과 같이 진술해보자. 내게는 사회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보다 성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 P23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좌절감은 모두 이런 식의 분노의 폭발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내가 살짝 비판적인 의견을 내거나 가볍게 이견 표시만 해도 다음과 같은 대꾸가 튀어나왔다. "네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우리 위에 있는 건 아냐" 라든지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제우스신의 넓적다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하지만 어머니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것은, 내가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것을 그녀는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주는문장들이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었단다"라거나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었단다"라는 말, 아버지는 자신이 "가질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에게 끝없이 상기시켰다. - P93
어머니의 노동은 내가 고등학교에서 몽테뉴Michelde Montaigne나 발자크Honoré de Balzac에 관한 강의를 들을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가고나서는 내 방에 몇 시간씩 틀어박혀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Immanuel Kant를 해독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위해 밤에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동틀 녘까지 마르크스KarlHeinrich Marx와 트로츠키Leon Trotsky, 보부아르Simone deBeauvoir와 주네를 읽었다. 여기서 나는, 아니 에르노가 동네에서 작은 식품점을 운영하던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쓰면서, 이 난폭한 진실을 표현했던 단순한 방식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 "난 어머니의 사랑과 그 부당성을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플라톤 강의를 들으러 대강당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감자와 우유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 P95
내가 보기에는 계급 소속감의 부재가 부르주아의 유년기를 특징짓는다는 점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이는 백인이나 이성애자가 스스로 백인이나 이성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언급은 있는 그 자체 명백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면서 사회학을 하고 있다고 믿는 어떤 특권층 인사가 내놓은 순진한 고백인 것이다. - P112
어머니의 인종주의와 어머니(이민자의 딸!)가 이주 노동자들 일반과 특히 ‘아랍인들’에 대해 공공연히 드러내는 지독한 경멸은 혹시, 열등하다는낙인이 찍힌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어머니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타자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를 우회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에 대해 가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 그러니까 자기만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 P167
나는 보부아르가 『회고록』에서 묘사한 모든 것들에 매혹당한 나머지,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이 자주 다니던 장소들, 그녀가 말한 거리들, 그녀가 말한 구역들을 모두 가보려고 했다. 오늘날 나는 그것이 일종의 전설이며, 신화화된 시각으로 채색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 전설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지적인 삶의 시대,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삶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사유의 세계에 참여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다. 우리는 위대한 지식인들을 떠받들었고,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했으며, 그러한 창조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했다. - P215
우리는 지식인의 형상에 미래의 자기 모습을 투사했다. 책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아이디어를교환하고,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정치에 개입하는 사람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 - P216
그렇다,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바로 사르트르의 『성 주네Saint Genet다. 물론 두 책의 차이는 매우 크다. 푸코의 경우에, 그리고 정신의학적·정신분석학적 심문에 반대해 그가 관여한 투쟁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고 그의 경험이다. 또 그가 확인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목소리이고, 그가 방어하려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타자에 관해 글을 쓴다. 그는 감정이입을 통해 완전히 몰입한 채로 다른 이[장 주네]의 궤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배 메커니즘과 자기발명의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 P254
따라서 사르트르의 주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내겐 핵심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세 내 존재의 원칙을 구성했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으로서 수행의 원칙.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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