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 오늘날의 문제들에 답하는 인류학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류재화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이 책은, 레비-스트로스가 1986년 봄 일본을 네 번째로 방문하여, 이시자카 재단의 초청으로 도쿄에서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 강연 내용을 엮은 것이다. 일본 재단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강의이기도 하고, 서구에서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독특한 환상 같은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으나, ‘일본이 독특한 방식으로 현대인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답을 제시해줌으로써 인류학에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주장 같은 경우 동의하기 어렵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엄중한 상황에도 무리한 올림픽 강행을 통해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재확산의 진원지가 될까 염려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역시 시의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비-스트로스에게 1986년의 일본은 그런 의미였나보다.
인류의 세 가지 현안 중 성, 경제발전, 신화적 사고 중, 성에 관련된 부분이 흥미롭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기를 낳는 경우가 점점 더 흔해지고 있고, 그런 경우 부모들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동시에 얻는 남녀 쌍둥이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녀와 동성 부부를 위한 인공 수정>이라는 글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그간의 연구를 소개한다. 브라질의 투피-카와히브 원주민의 남자는 동시에 혹은 연속에서 여러 누이들과 결혼할 수 있고, 어머니와도 결혼하며, 이 여자들은 그들의 자식을 공동으로 키운다고 한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오루바족에서는 부유한 여자들이 아내를 얻어 남자와 살림을 차리게 하고, 자식이 태어나면 그 부유한 여자가 법적 ‘남편’ 자격으로서 그 자식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72-3쪽)
제가 제시한 모든 예를 보면, 자식의 가족적, 사회적 위상은 법적 아버지(여성이라 하더라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아이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정체를 안다 하더라도, 이들은 정으로 맺어진 관계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바와는 달리, 투명성은 아이에게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사회적 아버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갈등을 야기하지 않습니다. (74쪽)
과학이 발달한 현시대보다 이전 시대 혹은 비서구 문화권에서 부모 자식간의 생물학적 연결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는 결론이다.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과정에서, 너는 정말 내 아이구나, 바로 내 아들이구나, 하는 순간이 참말로 많았다.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만의 장난 비법을 장착한 아이를 볼 때 특히 그랬다. 하지만, 아이와의 추억 대부분은 아이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얻어진다. 싸우고, 달래고, 사과하고, 안아주고. 생물학적 부모 못지않게, 어쩌면 더 많이, 키워준 부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를 키워본 사람으로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먼 나라 타국에서 다른 피부, 다른 눈동자 색, 다른 머리카락 색에 둘러싸인 경우가 아닌데도,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찾으려는 이들의 애절함을 볼 때마다, 자신의 근원,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부모로서는 키운 자식에게 정들 수 있지만, 자식으로서는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꼭,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나 싶다.
읽을 책을 쌓아두고 제일 얇은 책을 읽었다. 난, 더위를 탓한다. 더위와 온라인 수업과 점심 메뉴를 탓한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기술적·경제적 수준이 아무리 낮아도, 사회적 인습과 종교적 신앙이 아무리 달라도, 친자관계 명명법이나 결혼 규칙을 보유하지 않은 사회는 없습니다. 개별적인 개인들이 허용된 부부관계, 더 나아가 보호된 부부관계를 통해 서로 결연된 인척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사회를 구분하고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 있습니다. - P28
어쨌든 원시사회들 대개가 다수결이라는 발상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원시사회는 혁신에 유리하도록 집단 내의 사회적 응집과 융화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여기서 분쟁을 초래한 사안은 만장일치‘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필요한만큼의 회수를 거쳐 논의됩니다. 간혹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 - P85
까지 할 수 있는 한 여러 번에 걸친 모의 전투가 벌어지기도합니다. 이렇게 해묵은 분쟁이 해소되어야 비로소 투표가 이뤄지는데, 다시 신선해지고 새로워진 집단은 바야흐로 필요불가결한 만장일치를 구현해내는 것입니다. - P86
자연과 문화의 대립은 성별 간의 노동 분업을 기초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 다른 사회들을 비교하다 보면 다양한 규칙들이 나타나지만, 그중에는 다양하게 해석되고 다르게 적용되지만 결국 상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많은 사회가 자연과 문화의 대립과 여성과 남성의 대립은 서로 상응한다고 봅니다. 여성에게는 자연의 질서와 같다고 해석되는 활동형태가 부여됩니다. 가령 원예나 자연의 질료와 접촉하는 공예 같은 일, 손으로 그릇 만들기 등이 그것입니다. 반면 남성은 사회마다 각각 다르지만, 만들기 복잡해서 도구나 기계를사용해야 하는 일을 맡습니다. - P87
뗀석기의 여러 기술들 - 몸돌, 박편석기, 돌날격지 - 을 기준으로 각각을 전기 구석기시대,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역사적 진보를 투영하려고 했던 거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세 형태가 공존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즉 그것들이 한 방향으로만 가는 진보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현실의 측면들 혹은 이른바 ‘층상相’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석기시대의 산물은 수십만 년, 아니 아마 수백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인 호모에렉투스의 작품입니다. 한편 이 석기들은 나름 복잡하고 정교했지만, 신석기시대 말이 되면 더 뛰어난 것이 나오게 됩니다. - P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