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평생에 읽어야지, 읽어야겠지, 하고 결심하게 하는 책들이 있기는 하다. 이를테면 『안나 카레니나』 (반 읽고 자체 휴식),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서양 고전편), 사기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사기열전』 정도는 읽어봐야겠지(동양 고전편), 고미숙 선생님이 『열하일기』가 그렇게 재밌다고 하셨는데(우리나라 고전편), 쩜쩜쩜.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책은 아직 그 리스트에 없다. 『율리시스』도 『피네간의 경야』도, 그리고 『더블린 사람들』도. 학과 일에는 통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은 선배들이 살짝 꼬시고, 약간 반강제의 느낌을 더해 소모임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휑한 회의실, 친한 친구들과 뒤에 나란히 앉아 끝없이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그 때 다뤘던 작품이 『더블린 사람들』이었다. 뭐라니? 뭐라고 하는 거야? 라는 말을 표정으로 출력하며, 우리는 알았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구나. 다정하게,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딱 요 맘때였다. 긴 팔을 입었지만 두꺼운 외투를 입기 전이었고, 세미나 마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약간 쌀쌀했다. 그 때가 어제 같다,라고 하면 나는 너무 나이든 사람이 되어 버린다.

수전 손택, 하면 나는 항상 이 사진이 떠오른다. 예전에 더 깨끗한 화질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핸드폰에 없어서 이택광씨의 트위터에서 가져왔다. 수전이 공부했던 『피네간의 경야』.
타고난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데다 어마어마한 독서이력을 가진 어떤 천재가 이렇게 열정적이기까지 하다면, 그 사람을 이길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월반이 특기인 천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직도 버크의 가르침대로 글을 읽습니다.” 글자 하나, 장면 하나 건너뛰지 않고 꼼꼼하게. 꼼꼼히, 자세히, 열정적으로.
여타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그 천재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인데, 실제로는 아주 작은 차이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을 때, 막 열여덟 살이었다.
그(손택)도 도러시아처럼 나이 많고 보수적인 남편의 연구 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을 희생한다. 다른 한편에는 남편 필립이 있다. 그는 프로이트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쓰면서 손택과 나눈 수없는 대화, 그리고 심지어 손택이 조사하고 작성한 내용을 가져다 썼다. 실제로 당시 비평가와 학계의 동료들이 『프로이트: 도덕주의자의 정신』은 두 사람의 공동 저작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리프는 학계의 인정을 손택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83쪽)
필립 리프는 어리고 영리한 아내, 남편의 논문을 도와줄 정도로 똑똑한 아내와의 전통적인 가정 생활을 원했지만, 손택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어렸지만, 그 정도의 삶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천재였다. 파리, 로맨스(1958-1959)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