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책은 이렇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든 계속 써라’와 ‘이렇게 써라’의 소설가 지망생들을 위한 글쓰기 책과 ‘아무거나 써라’와 ‘누구든 쓸 수 있다’의 일반인들을 위한 글쓰기 책.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책 스타일이라면 스티븐 킹의 『유혹의 글쓰기』. 글쓰기 책이라기보다는 말썽쟁이 유년 시절과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서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책. 큭큭 따라웃다가 어느 순간 나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게 하는 책. 마지막 문단.
또 하나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책 뒷부분에 예의상 소설 구성과 캐릭터 설정에 대한 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일 주요한 충고는, 역시나 쓰는 일에 대한 것. 쓰면 된다. 쓰다 보면, 계속 쓰다 보면, 계속해서 계속 쓰다보면 소설을 쓰게 될 거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컴퓨터가 있다면 거기에 쓰고, 노트라면 노트에 쓰고, 냅킨밖에 없다면 냅킨에다 쓰고, 흙바닥뿐이라면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집어서 흙바닥에 쓰고, 우주공간 속을 유영하고 있다면, 머릿속에다 문장을 쓰자. (199쪽)
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읽게 된 이 책은 1938년에 씌어진 책이다. 십년 전 책도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1938년 된 책이, 그것도 번역된 책이 바다를 건너 아시아 한 쪽 어떤 나라의 작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책이다. 비결이 뭘까.
달리 말하자면,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현재에 살고 있을 때, 즉 당신이 몹시 좋아하는 일을 작업하고 생각하고 몰두하고 열중해 있을 때야말로, 당신은 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요점에 이르렀다. 당신이 글쓰기 작업을 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좋은 일이다. (84쪽)
글쓰기는 인간의 다른 활동과 비슷하다. 재미로 하는 일이고, 말하기와 비슷한 듯 다르고,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같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과 SNS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고, 글을 쓰는 일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만,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적고,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이 많은 활동이다. 나는 저자가 어디까지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테니까. 저자는 말한다. 젊고 살아 있는 당신 내면의 시인을 깨워라. 자고 있는 그를 깨워라. 당신 내면의 신성한 자아가 말하게 하라. 더 즐겁기 위해, 더 웃기 위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형편없고 감상적인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 말라. 그런 글은 자신의 많은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당신의 시각, 취향, 진실한 느낌, 진정한 관심사가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일기를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었다”는 식의 일기를 쓰라는 게 아니다. 매일 혹은 가능한 한 자주 일기를 쓰되, 되도록 가장 빨리, 부주의하게, 다시 읽지 말고서, 그 전날에 우연히 생각났거나 보았거나 느낀 것을 무엇이든 쓰라.(188쪽)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글씨체, 내용, 연관성, 논리에 상관없이 부주의하게 빨리 쓰라는, 일기를 쓰라는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그럼 어떤 일기장이 좋을까, 노트 찾기 혹은 노트 구입 예정에 여념이 없는 사이.
올해의 휴가책 후보 4번은 브렌다 유랜드의 『글을 쓰고 싶다면』이다.
"8백 달러에 팔 수 있는, 공작부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지만 여태까지 공작부인을 만난 적도 없고 상상으로도 잘 안 그려지는걸. 그런데 어쨌거나 그녀의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당신은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더 많은 이야기가 나타날 것이다. (62쪽)
아마 당신도 바느질, 목공, 조각, 골프, 상상에 잠겨 하는 설거지 등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작은 폭탄이 당신 안에서 조용히 터진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67쪽)
그러므로 혹사하려고 애쓰지 마라. 어떤 것을 그때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만일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라. 당신이 두 번째, 세 번째 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 첫 번째 것도 불현듯 이해될 터이니까. (69쪽)
나는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당신이 글을 쓸 때 느껴야 하는 감정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당신은 행복하고 정직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마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구슬을 꿸 때처럼 놀랍고도 흐뭇하게 몰두해야 한다. 완전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므로 오직 당신 속에 있는 것을 정직하게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것은 분명 흥미롭고 훌륭할 것이다. 잘 팔리겠느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한동안은 그런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 게 좋다. (76쪽)
하지만 이런 것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들려면 글은 개인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나’로부터, 즉 내가 알고 느낀 것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오로지 그런 글만 깊이와 재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오직 그런 글만 당신은 알고 있으나 타인은 모르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100쪽)
하지만 마음속으로 여성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노예나 유모처럼 늘 타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반면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타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성들은 느낌으로 알아챈다.
남편과 아이들과 친구들을 가르치고 격려하고 부추기고 위로하고 즐겁게 하고 자극하고 충고하려면, 당신 자신이 꽤 괜찮은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당신 자신이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당신이 사랑하고 관심을 갖거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을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139쪽)
그렇다. 글을 쓸 때 당신은 꼭 자유롭게 느껴야만 한다. 모든 의무조항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모든 족쇄, 부담, 책임감과 의무를 끊어 버려야 한다. 6막의 무운시든 상징적 비극이든 매우 짧은 통속적 단편이든 그게 무엇이든 상신이 원하는 것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정직하고 기쁘게 쓸 것이고 애써 타인들에게 실제의 자기보다 더 똑똑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실제의 자기보다 더 똑똑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누구나 유리를 들여다보듯 훤히 볼 수 있고 겉만 슬쩍 보고도 단번에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잘난 체 한다는 걸 알 것이다(하지만 이걸 기억하라. 당신의 글이 실제의 당신보다 더 총명하고 더 위대할 수 없기만 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빛나는 개성과 재능을 무미건조하고 소심한 글이라는 구름 뒤에 숨길 수도 있다). (160쪽)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더 좋은 작가가 되는 유일한 길은 더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좋은’ 이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더 착한 체하는’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사람들은 이른바 착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나쁘다고 여겨지는 그런 일들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178쪽)
매일 당신의 삶을 일기로 써라. 단 진실하게, 부주의하게, 되는 대로, 충동적으로, 정직하게 써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18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