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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ㅣ 열다 페미니즘 총서 2
쉴라 제프리스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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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르셋』의 저자 쉴라 제프리스는 말한다. 미용 관습은 여자들의 개인적인 선택도, 여자들이 창조성을 표출할 수 있는 ‘담론 공간’도 아니며, 이전에 다른 래디컬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여성 억압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59쪽)
페미니즘적 미용 비평은 미용이란 문화적 관습이며 여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한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그의 책 『여성혐오 Women Hating』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남성 지상주의 문화 내에서 여성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분석했다(69쪽). 또한 드워킨은 미용이 “경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여자-남자 역할 구분의 주재료이자 여자로 살아감에 있어 가장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육체적, 심리적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미용 관습은 성별 구분에, 즉 성적 지배 계급인 남자와 피지배 계급인 여자를 쉽게 구별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또 단순히 성별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71쪽)
사람들은 미용 관습이 어디까지나 여성의 선택이고, 여성이 원해서 수행하는 미용 관습은 ‘억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성적 차이sexual difference라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서구 문화 속에서 성적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또한 성적 굴종의 표식으로 이루어지는 ‘미용 관습’을 조명함으로써 미용 관습의 억압적 힘이 작동하는 현실을 기술한다.
프랑스 페미니즘 학자 꼴레트 기요맹은 여자는 ‘다르다’는 말은 여자는 ‘무엇’과 다르다는 뜻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무엇’은 남자가 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즉, 무엇과도 다르지 않은 기준으로서의 ‘남자’가 있고, 다르다는 관점에서만 이해되는 ‘여자’가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프랑스 페미니스트인 모니크 비티크 역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말을 인용해 ‘여자’와 ‘남자’라는 개념은 정치적 분류이며, “모든 생각과 모든 사회에 앞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성별’(태어나는 사람을 양분하는 분류)이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건 바로 ‘남자’라는 정치적 계급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정치적 지배 계급인 남성들은 여성에게 ‘미용 관습’을 강요할까. 왜 성적 차이를 만들려고 할까.
왜 꼭 미용 관습을 통해 성적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가? 남자들이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는 동안 ‘여자’를 보고 고추를 부풀리며 성적 만족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97쪽)
저자는 성별에 따라 옷차림을 구분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성적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한다. 미용 관습을 통해 여자의 순종을 표시해야만 하고, 여기에서의 순종이란 성적으로 복무할 의지, 심지어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을 들일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저자는 성적 차이difference가 굴종deference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누가 지배 계급이고 누가 피지배 계급인지를 명확하게 표시함으로써 남성의 지배를 공고화하고, 구체적으로 서구에서는 그런 표식을 여자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을 통해 구체화시켰다고 지적한다. 남자를 흥분시킬 수 있도록 몸의 상당 부분을 노출한 옷, 치마, 몸에 달라붙는 옷차림, 메이크업, 머리스타일, 제모, 급기야 성형수술을 통해 여성성을 실천하고, 이를 여성의 신체 안에서 완성할 것을 강요받는다는 뜻이다(99쪽).
한쪽 끝의 립스틱, 다른 한쪽 끝에 위치한 외과적 성형 수술은 서구 미용 관습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저자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FGM(여성 성기 훼손)과 마찬가지로 서구의 미용 관습 역시 유해 전통/문화 관습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UN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도 관례적 관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저자는 관례적 관습으로서 미용 관습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용 관습은 성별 간 ‘차이’를 만들고 유지하는 주요한 도구이다. 미용 관습은 여자에게 성적/미적 대상이라는 고정관념적 역할을 부여하고, 화장, 머리 스타일, 제모, 로션, 미용 영양제, 패션, 보톡스, 성형 수술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소모하게 만든다. 남자들이 이 책에 설명된 대부분의 미용 관습에 참여한다면 그 목적은 오직 마조히즘적 크로스드레싱을 통해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이다. (110쪽)
UN이 정의한 유해 문화 관습은 여성 성기 훼손(FGM), 여자에 대한 강제 음식 주입, 조혼, 남아 선호, 여야 영아 살해, 미성년 임신, 지참금 등이 있다.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이고,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으로서 반드시 근절 되어야만 하는 유해 관습이다. 하지만 성인 여성과 여자 청소년에게 매우 유해한 미용 관습은 문화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되고, 본능적, 생물학적인 행동으로 정당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용 관습을 따르지 않는 여자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 자기관리가 안 되고,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며, 어설프다는 비난이 주는 무게를 간과한 판단이다.(115쪽)
제일 어려운 것은 ‘선택’이라는 문제다. 화장하지 않고, 다리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구의 여성은 여성 성기 훼손을 거부한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여성들과 같은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장하지 않고, 다리와 겨드랑이를 제모하지 않는 여성, 여성적인 용모를 꾸미는 노력을 하지 않는 여성은 일자리를 잡고 유지하는데 영향을 받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까지 도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 의회 여자 의원들의 경험을 다룬 너말 푸와의 2004년 논문에는 극도로 남성적인 의회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나타내는 외모 관습을 따라야 했던 여자 의원들의 분투가 그 중 하나의 예로서 서술되고 있다.(112쪽)
여성의 미용은 선택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명망 높은 미국 페미니스트 정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Martha Nussbaum마저도 다이어트와 같은 서구의 미용 관습을 비서구 관습과 구분 지으며 ‘선택’을 그 근거로 든다. 마사는 여성 성기 훼손(FGM) 같은 관습과 미국 문화의 다이어트나 몸매 관리 관습은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어 그런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면서, 강제로 이루어지는 FGM과 아무리 설득력과 매력을 지녔더라도 궁극적으로 선택의 문제인 다이어트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타국 유해 문화 관습 비판은 자국 문화에 존재하는 유해 관습에 대한 깊이 있는 비평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구의 다이어트도 건강에 영구적인 피해를 초래하며 극단적인 경우 죽음까지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소음순 성형의 경우 FGM을 당했을 때처럼 성적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선택’ 또는 ‘선택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페미니즘 지형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문제는 ‘사회적 압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여성의 선택’으로만 읽는 혹은 읽고 싶어하는 시선에 있다.
립스틱 바르기나 제모, 염색, 파마처럼 여자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미용 관습을 유해 문화 관습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여성 종속에서 기인해, 남자의 이득을 위해 행해지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내는 일상적 미용 관습이 유해 문화 관습의 기준을 충족시킨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성매매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립스틱 바르기(265쪽)와 흑인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백인 여성처럼 되기’의 미용 관습(270쪽), 이성애자처럼 보이기 위한 화장 압박(273쪽), 다리털, 겨드랑이 면도, 제모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귀찮은 일임에도 여성에게 강요된다. 남자의 발, 구두 페티시와 여자의 보행장애를 불러 일으키는 하이힐은 실제로는 여성의 위치를 한없이 낮추는데, 오래 서 있을 수도, 빨리 걸을 수도, 뛸 수도 없게 하며 심지어 괴사를 비롯한 심각한 발 손상 및 변형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중국의 전족 풍습이 어머니가 딸에게 수행되어 그것은 ‘여성들’의 일이었다며 여성을 탓했던 사람들은 ‘하이힐’을 선택한 여성들을 ‘탓한다’(324쪽).
<5. 패션과 여성혐오>에서는 이런 단락이 인상깊다.
역사학자들은 21세기 복장의 성별 구분은 18세기 말 찾아온 남성복의 중대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18세기 이전까지 상류층 남자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겉치장에 참여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이런 서구 문화를 변화시켰다. 남자는 빈부 간 사회적 차이를 명확하게 했던 풍부한 치장 문화를 버리고, 모든 남자가 비슷한 옷차림을 입어 형제애를 정립할 수 있는 민주적 모델을 선택했다. 이렇게 채택된 남성복은 수수하고 짙은 색으로, 이들이 합류한 자본주의 업무 세계의 가치관을 반영했다. 여성복의 역사는 남성복과는 달랐다. 여자는 여자임을 구분해주는 치마를 입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 이후로 여자와 남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는 복장 간에 극단적인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223쪽)
여자 청소년의 화장에 대해서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더욱 더 무겁게 다가온다. 또래의 걸그룹이 풀메이크업에,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교복 모양의 짧은 치마를 입고 화면 속에서 밝게 웃고 있을 때, 나도 저 아이처럼 예뻐질 수 있는 방법이 미샤, 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네이처 리퍼블릭, 스킨푸드, 올리브영에 있다면, 그리고 그 구체적인 도구를 5,900원에 살 수 있다면, 여자 청소년이 더 예뻐지기 위해 구입한 5,900원짜리 틴트의 사용을 ‘선택’이라고 볼 것인가.
하지만, 화장하는 중학생과 함께 사는 내가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틴트를 바르며 이건 선택이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위해 틴트를 바르는 거라고 말하는 여자 청소년을 볼 때가 아니다. 내가 제일 속상할 때는, 그 애가 교복을 입을 때다. 스타킹을 신고, 치마를 입고, 그리고 ‘엄마, 여자 상의 짧아서 불편해! 나도 남자 상의 사 줘! 다른 애들은 다 샀어!’라고 말할 때다.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화장을 하고, 선택하지 않은 치마를 입어야만 하는 여자 청소년이, 난 그렇게나 안쓰럽다.
매일 아침 그렇다. 매일 아침. 선택과 선택.
여자들이 칼을 들고 남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위를 들고 자기 머리를 자르고 치마를 찢고 브라를 불태우며 화장품들을 부수어 버리는 것만으로도 남자들을 공포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은 꾸미기 수행을 벗어버린 랟펨들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악의적인 공격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공격들을 대하고 있으면 성형이나 다이어트, 화장과 긴머리가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여성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라는 쉴라 제프리스의 분석이 얼마나 명쾌한지 실감하게 된다. (17쪽, 해설 국지혜)
포스트 페미니스트들은 성인 여자와 여아가 성애화된 자기표현을 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행위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자가 그런 식으로 행위 주체성을 표현하고 힘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 페미니즘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9쪽)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남자는 돈과 지위를 위해 밖에선 남성적으로 행동하다가, 집에 오면 마조히즘적 성적 판타지를 돕는 아내를 관객으로 둔 채 여성성을 선택할 수 있다. 남자의 여성성 행위는 젠더 이분법 체계를 유지하며, 이에 따라 남성 지배 체계를 위협하는 대신 더욱 굳건하게 한다. (170쪽)
여성성이란 이성애 남자의 지배적 특권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기본적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남성성에 성애적으로 결부되는 동시에, 남성성의 정반대를 나타내는 위치인 것이다. 따라서 게이 남자가 취하게 되는 ‘여성성’이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게이들이 개발해낸 복종적 행동 양태일 뿐이다. 남성 지배 아래 복종하는 길은 여성성 하나뿐이기에, 그 행동에 여성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232쪽)
영국 여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쇼핑하러 나갈 때 21분의 준비 시간을, 동성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을 때 54분의 준비 시간을, ‘로맨틱한 저녁 데이트’를 할 때 59분의 준비 시간을 들였다. 이런 절차를 집어 치운 여자들과 남자들에겐 다른 일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외국어라도 하나 배우기에 충분하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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