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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 동화에 숨은 역사 찾기
박신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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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 스포일러 포함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서 안나 공주에게 손을 내미는 한스 왕자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서 한스 왕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항상 저의 자릴 찾아 헤맸었죠즐거운 파티에 갈 때나작은 모임에서.” 한스 왕자는 왜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을까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으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왕위를 계승하는 왕자가 아니라면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근대 이전 유럽에는 작은 나라들이 많았고작은 나라에 왕자가 많을 경우 영토를 분할해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겼다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왕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가장 좋은 방법은 여왕이 될 이웃나라의 외동 공주나 첫째 공주와 결혼해 그 나라의 왕위를 상속 받는 것이었다그래서 형이 열두 명이나 있던 한스 왕자는 안나 공주를 유혹해 아렌델의 왕위를 상속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동화 속의 왕자 공주들 또한 당시의 사회적역사적 맥락과 무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동화전설신화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이야기가 만들어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까저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빨간 머리 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나 문학 작품들의 역사적 배경들을 살펴본다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동화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지나쳤던 역사적 배경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위)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마법약을 만드는 마녀의 모습. 그러나 민간의학으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리는 것이 진실이었다. 

(아래)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 중 샤일록(알 파치노)과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의 재판 장면. 유대인 상인 샤일록은 악인으로 묘사되지만 그는 사실상 유럽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약자였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만 주는 책은 아니다이야기 속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야기 뒤에 가려진 소외된 존재들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앞에서 이야기했던 백마 탄 왕자들의 진실을 알면 동화 속 왕자 공주의 낭만적인 로맨스에 대한 환상은 무참히 깨진다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들에게 로맨스는 낭만이 아닌 생존 수단이었다숲속에서 혼자 사는 여인들은 민간 의학 지식으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지만환자들이 낫지 못하거나 사망했다는 이유로심지어 약값이나 치료비를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녀로 고발당했다그것이 동화 속 마녀들의 진실이었다한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겉보기에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퍼뜨리는 작품 같다그러나 원전 속에는 유대인 상인 샤일록의 재판 이야기 외에도외양과 내용물이 일치하지 않는 상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그럼으로써 사랑과 자비 같은 기독교인의 미덕을 이야기하면서 유대인 샤일록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 기독교인 주인공들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것이다이야기의 당의정을 벗기고 아름답기는커녕 불편한 진실들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꼭지 수를 줄이고 각각의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나 일본의 작가 키류 마사오의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면에 치우쳤던 것과 달리역사적 배경을 꼼꼼히 짚어보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는 것이 장점이다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 분량상 다루지 못했던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의 이야기들을 담은 후속편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세상에는 우리가 파헤쳐야 할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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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
강상중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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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이자 골칫거리일 것이다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예외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막을 수 없는 변화의 계기로 보고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다예외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이 책은 역사학정치학경제학법학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 아홉 명이 예외라는 화두로 각자 풀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소수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예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들을 지닐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들은 예외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과학의 입장에서 살펴보자면하나의 과학 법칙이 정립된 이후 그 법칙에 대한 예외가 어김없이 나타난다대부분의 예외는 기존의 법칙 안에 포섭되지만어떤 예외는 기존의 법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칙이 된다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과학은 발전해 간다또한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즉 예외가 되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예외적인 사람들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법과 예법제도가 옳지 못하면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주장했던 공자가 그런 예외적인 인물의 대표라고 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외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것이 공연한 것만은 아니다저자들은 예외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무시하지 않는다평범한 중학생이 이유 없이 어린아이를 죽인 사건처럼 예외로서의 극단적인 악도 존재한다도덕을 중시하는 성리학 사회였던 조선에서조차시신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도뢰(圖賴)’라는 예외적인 범죄가 성행했다박정희의 유신정권에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헌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예외 상태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이렇게 위험한 예외들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관념에 얽매이고 당장 눈앞의 도뢰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도뢰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그러나 우리는 예외 상태의 통치였던 독재를 통해통치 권력을 규제하는 절대적 규범의 존재 자체가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박정희라는 한 인격이 통치 권력을 규제하는 절대적 규범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계급민족이념 등 어떤 절대적인 규범이 통치 권력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절대적 규범이 권력을 작동시키게 하는 대신 여리고 나약한 존재들이 상위의 권위 없이 연대하는 것이것이 우리가 예외 상태에서 배우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한편 예외는 배제당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정치학자 박상훈은 한국의 지역주의를 통해예외와 배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던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그는 지역주의라는 해석의 틀을 악용해 사람들을 분열시켜 온 세력들에 맞서지역을 넘어 실업자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 더 많은 예외와 배제의 대상을 돌아보자고 이야기한다기획자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은 예외들의 희생 덕분이고우리 자신 또한 언제든지 예외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예외를 배제당하는 존재로 볼 때예외를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 등 최근 예외적인 사태들이 늘어나고 있다그리고 성소수자이민자 등 예외적인 존재들의 존재감도 전 세계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그러나 국가는 예외적인 사태에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고사람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낸다이렇게 계속해서 예외적인 것들에 대해 아무 고찰 없이 외면하거나 거부한다면우리는 예외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도 못하고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말한다우리는 예외를 막을 수 없고예외를 잊어서도 안 된다고그리고 묻는다예외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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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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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이제 '이상향'을 가리키는 흔한 말이 되었다하지만 과연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향을 뜻하는 말로 만들어낸 것일까유토피아라는 말을 탄생시킨 그의 소설 유토피아를 읽어보면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향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토머스 모어는 친구들과 함께 포르투갈인 선원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에게서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다유토피아에는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함께 노동해서 얻은 대가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모두가 재화를 풍족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화에 욕심을 내지 않고,보석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취급을 받는다죄인에게는 신체에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대신 노동을 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서로의 종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그런데 정작 모어 본인은 종교재판에서 개신교도들을 화형시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이다하지만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사리사욕이 없는 인간일 때에야 실현 가능한 사회이다하지만 사리사욕이 전혀 없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모어 자신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했기에 '어디에도 없는 곳(그리스어 ou(없는)와 topos(장소)를 합친 말)'이라는 뜻의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그리고 유토피아 내부의 제도들 중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다른 제도나 관습과 모순되는 것들도 있다. 심지어 유토피아조차도 노예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다.(16세기의 인물인 저자의 한계로 볼 수 있다.)유토피아도 결코 완벽한 이상향은 아닌 것이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저술했던 당시 유럽에서는 지배층들이 백성들을 착취했고지주들이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 농경지를 목장으로 바꾸고 소작농들을 내몰았다. (이런 현상을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한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빈부격차와 실업율 증가, 빈민 문제 등의 사회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이런 현실이 이 책에서는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을 잡아 먹는다."고 표현된다. 이런 영국의 현실에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는 가난으로 고통 받고 도둑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모두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주자는 혁신적인 주장까지 한다. 이 책이 나온 지 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기본소득제(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의 도입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당시 현실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었지만현실의 불합리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완벽한 이상향이라기보다는 당대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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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을 만나다 - 문학과 영화로 철학하기
장병희 지음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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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크 나이트> 스포일러 있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히스 레저)는 죄수들이 탄 배와 일반 시민들이 탄 배에 폭탄을 설치하고, 각각의 배에 상대쪽 배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도 함께 놓는다. 두 배는 운항 중 엔진 고장으로 멈추게 되고, 조커는 두 배에 탄 사람들에게 자정이 되기 전에 상대쪽 배를 폭발시키는 기폭장치를 누르면 그 배는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30분이고, 두 배에 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두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두 배에 탄 사람들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폭탄이 설치된 두 배에 탄 승객들. 상대쪽 배를 폭발시키는 기폭장치를 누르면 살려주겠다는 조커의 제안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갈등과 고민 끝에 두 배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는 것을 포기한다. 조커는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자 직접 기폭장치를 작동시키려 한다. 하지만 첨단 감청 장비로 조커의 위치를 파악한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조커를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자신들을 희생하려 한 양쪽의 결단이 결국 서로를 살린 것이다.

  이 책 『예술, 철학을 말하다』에서는 '다크 나이트'의 이 장면으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론을 설명한다. 결정의 순간 직전까지 배에 탄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의 그들(das Man)이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그들'은 일상에서 평균적인 기준에 의존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존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인간이 원하는 미래의 자신의 존재 방식)을 위해 매 순간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 실존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의 가치판단에 의존하고 평균적인 삶을 지향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귀속'이라고 하고 귀속하면서 살아가는 삶 '비본래적 삶'이라고 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양심을 따른 것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양심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반적 의미의 양심이 아니라, 남들을 모방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삶, 실존적인 삶, 본래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그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실존적 선택을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인도적 행위를 실천하는 진정한 세계-내-존재(세계 안의 다른 존재들과 다양하고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을 넣었다.)이자 고유한 자신이 된다. 배 안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세계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실존을 증명한 것이다.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이렇게 영화, 시, 소설, 희곡 같은 예술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에 적용하면서 풀어나간다. 이전의 철학이 인식, 진리, 본질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해 왔던 것과 달리 현대 철학은 개별적 존재, 즉 현실 세계 속의 개인과 구체적인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 속에 그려진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에 현대 철학의 개념과 이론들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철학은 결코 인간의 실제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삶의 현실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나 보편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살아가면서 내가 체험하는 고뇌는 살아 숨 쉬는 현실이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고, 철학적 사고는 그런 현실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저자는 고뇌로 가득한 삶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민을 예술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철학자들의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 끝에 나온 개념과 이론들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고민과 고뇌도 끌어안으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의 만남뿐만 아니라 철학과 현실의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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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역사 눈의 미학 임철규 저작집 1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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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시각이다. 본다는 것은 인식과 지식의 근원이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가장 가치 있는 감각으로 여겼었다. 서구는 그리스의 시각 중심적인 전통을 계승했고, 시각은 서구의 사유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감각이 되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서구 문화에서 눈과 시각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본다. 종교와 철학, 역사, 미술사, 신화, 문학까지 눈과 시각과 관련해 이 책이 다루는 문화적 요소들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이 책은 서론에서부터 "눈은 위험하다"고 선언한다. 눈은 대상의 부분밖에 파악하지 못하면서 그 부분을 전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은 배제하면서 눈이 본 부분만이 전체인 것처럼 절대화하는 것은 인식의 폭력이다. 또한 본 대상을 욕망이나 억압, 또는 지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타자화도 인식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이런 악한 눈이 있는 한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타자를 인식할 수 있을까? 눈이 있기에 타자에게 다가가고 손을 내밀고 교류할 수 있는데 너무 단정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세기 프랑스 트루아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알려주면서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눈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서론을 지나, 저자는 눈과 시각에 대한 장대한 문화사를 펼쳐나간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는 것을 인식과 지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감각으로 여겼다. 로마도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 신전 등의 웅장한 건축물, 검투사들의 피 튀기는 검투 경기 등 스펙터클(볼거리) 문화, 시각중심적인 문화를 지녔다.  시각에 적대적이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중세 기독교 문화도 눈과 시각을 적대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인간의 몸을 입은 것, 즉 예수의 육화가 기독교의 핵심 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와 성모,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프레스코 벽화가 널리 이용되었다. 원근법과 망원경, 현미경 등 시각적인 도구들이 발명되었던 르네상스도 시각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였다. 다 빈치에게 눈은 내적 자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 주는 영혼의 창이었고,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주체는 보는 주체, 보고 사유하는 주체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얀스 산레담의 <위트레흐트의 뷔르커르크>. 이 그림에서처럼 종교개혁 이후 신교도들의 교회에는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화려한 시각적 요소들이 배제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이성에도, 이성의 상징인 시각에도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신은 이성으로도, 시각으로도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상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파괴했고, 청각적인 설교 말씀만을 강조했다. 시각적인 요소들은 눈에 음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했다. 


일리노이 주에 있었던 원형교도소.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감방을 감시할 수 있다. 인간을 통제하는 시각적 장치 중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각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성상 등의 시각적 이미지가 성서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려한 종교 미술을 꽃피웠다. 이후 18세기, 계몽주의는 모든 감각 중 최고의 감각은 시각이고, 모든 지식은 감각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토대로 인식의 전제조건이 되는 시각을 중시했다. 그러나 18세기는 지배 세력이 시각 장치들을 피지배 세력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감옥의 모든 곳을 감시할 수 있게 고안된 판옵티콘(원형 교도소)이 그 예이다.


 19세기의 낭만주의는 눈의 독단적인 힘에 반발했다. 낭만주의자들은 눈이 지배하는 세계, 억압하고 틀 안에 가두는 이성의 세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낭만주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눈은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상상력이 눈이 빼앗은 살아 있는 사유, 틀 안에 갇히기 전에 사유를 복원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눈먼 예언자 테아레시아스에게 통찰력을 준 것은 물리적인 눈이 아니라 상상력의 눈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리얼리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채석장의 일꾼들(1849)> 그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한 번도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눈으로 본 현실만을 그대로 그려냈다.


  이에 반해 눈을 긍정하고 시각의 전통적인 권위를 회복시키려 한 것은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은 상상력과 예술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낭만주의의 주장을 현실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자기기만으로 보았다. 리얼리즘은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실체, 구체적인 사물들, 인간의 구체적인 삶, 눈에 보이는 세상을 포착했다.  19세기 초에 발명된 사진도 현실의 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정신을 대변했다. 


입체주의 회화의 시작이 된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들을 한 화면에 풀어놓아, 원근법으로 표현되는 사실주의적 공간을 해체하고, 현실은 관찰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이 관찰한 것을 토대로 한 재현을 강조하는 리얼리즘의 예술 원리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눈에 대한 회의를 품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을 재현하는 것을 거부한 모더니즘이었다. 상징주의는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대상이 상징하는 관념들을 묘사했다. 표현주의는 눈에 보이는 외면이 아닌 인간 내면을 표현하려 했다. 초현실주의는 물리적인 현실 아래에 잠들어 있는 무의식을 표현하려 했다. 무엇보다 혁명적인 것은 입체주의였다. 입체주의는 원근법이 재현한 사실주의적 공간을 해체하고,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에 풀어놓으며 현실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입체주의 회화는 절대적인 시간도 공간도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연결되며,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현실은 없고, 현실은 관찰자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눈과 시각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눈과 시각에 대한 긍정과 부정, 신뢰와 회의가 엇갈리며 발전해 온 서구의 시각 문화를 폭넓게 살펴본다. 눈과 시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천 년의 서구 문화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감탄스럽다.  하지만 저자는 갑자기 '보는 눈',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배제하고 보이는 대상을 욕망, 억압, 지배의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눈에 맞서는 '눈물 흘리는 눈', 예수를 닮아가려는 '선한 눈'이 인간의 종말, 역사의 파국을 유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눈이 인식의 틀 안에 대상을 가둔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저자는 기독교 윤리라는 틀 안에 인류의 운명을 가둔다. 눈은 상상력을 제약한다고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을까? 눈물 흘리는 눈도 고통 받는 대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폭넓은 본론에 비해 다소 근거가 빈약하고 기독교적 윤리에 갇힌 결론이 아쉽다. 


* p. s. 시각과 미학에 관련된 책인데 본문의 설명에 해당되는 도판이 본문 앞에 배치되어 있거나 아예 없어서 불편했다. 독자들이 일일이 도판 이미지를 검색하면서 보기에는 불편하다.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본문의 도판 설명 부분에 해당 도판을 배치하고, 없는 도판은 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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