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 동화에 숨은 역사 찾기
박신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 스포일러 포함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서 안나 공주에게 손을 내미는 한스 왕자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서 한스 왕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항상 저의 자릴 찾아 헤맸었죠즐거운 파티에 갈 때나작은 모임에서.” 한스 왕자는 왜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을까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으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왕위를 계승하는 왕자가 아니라면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근대 이전 유럽에는 작은 나라들이 많았고작은 나라에 왕자가 많을 경우 영토를 분할해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겼다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왕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가장 좋은 방법은 여왕이 될 이웃나라의 외동 공주나 첫째 공주와 결혼해 그 나라의 왕위를 상속 받는 것이었다그래서 형이 열두 명이나 있던 한스 왕자는 안나 공주를 유혹해 아렌델의 왕위를 상속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동화 속의 왕자 공주들 또한 당시의 사회적역사적 맥락과 무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동화전설신화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이야기가 만들어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까저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빨간 머리 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나 문학 작품들의 역사적 배경들을 살펴본다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동화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지나쳤던 역사적 배경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위)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마법약을 만드는 마녀의 모습. 그러나 민간의학으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리는 것이 진실이었다. 

(아래)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 중 샤일록(알 파치노)과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의 재판 장면. 유대인 상인 샤일록은 악인으로 묘사되지만 그는 사실상 유럽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약자였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만 주는 책은 아니다이야기 속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야기 뒤에 가려진 소외된 존재들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앞에서 이야기했던 백마 탄 왕자들의 진실을 알면 동화 속 왕자 공주의 낭만적인 로맨스에 대한 환상은 무참히 깨진다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들에게 로맨스는 낭만이 아닌 생존 수단이었다숲속에서 혼자 사는 여인들은 민간 의학 지식으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지만환자들이 낫지 못하거나 사망했다는 이유로심지어 약값이나 치료비를 내기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녀로 고발당했다그것이 동화 속 마녀들의 진실이었다한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겉보기에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퍼뜨리는 작품 같다그러나 원전 속에는 유대인 상인 샤일록의 재판 이야기 외에도외양과 내용물이 일치하지 않는 상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그럼으로써 사랑과 자비 같은 기독교인의 미덕을 이야기하면서 유대인 샤일록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 기독교인 주인공들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것이다이야기의 당의정을 벗기고 아름답기는커녕 불편한 진실들을 볼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꼭지 수를 줄이고 각각의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나 일본의 작가 키류 마사오의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면에 치우쳤던 것과 달리역사적 배경을 꼼꼼히 짚어보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는 것이 장점이다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 분량상 다루지 못했던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의 이야기들을 담은 후속편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세상에는 우리가 파헤쳐야 할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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