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역사 눈의 미학 임철규 저작집 1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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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각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시각이다. 본다는 것은 인식과 지식의 근원이고,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가장 가치 있는 감각으로 여겼었다. 서구는 그리스의 시각 중심적인 전통을 계승했고, 시각은 서구의 사유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감각이 되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서구 문화에서 눈과 시각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본다. 종교와 철학, 역사, 미술사, 신화, 문학까지 눈과 시각과 관련해 이 책이 다루는 문화적 요소들은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이 책은 서론에서부터 "눈은 위험하다"고 선언한다. 눈은 대상의 부분밖에 파악하지 못하면서 그 부분을 전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은 배제하면서 눈이 본 부분만이 전체인 것처럼 절대화하는 것은 인식의 폭력이다. 또한 본 대상을 욕망이나 억압, 또는 지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타자화도 인식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이런 악한 눈이 있는 한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타자를 인식할 수 있을까? 눈이 있기에 타자에게 다가가고 손을 내밀고 교류할 수 있는데 너무 단정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세기 프랑스 트루아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알려주면서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눈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서론을 지나, 저자는 눈과 시각에 대한 장대한 문화사를 펼쳐나간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는 것을 인식과 지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감각으로 여겼다. 로마도 그리스의 전통을 이어 신전 등의 웅장한 건축물, 검투사들의 피 튀기는 검투 경기 등 스펙터클(볼거리) 문화, 시각중심적인 문화를 지녔다.  시각에 적대적이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중세 기독교 문화도 눈과 시각을 적대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인간의 몸을 입은 것, 즉 예수의 육화가 기독교의 핵심 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와 성모,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프레스코 벽화가 널리 이용되었다. 원근법과 망원경, 현미경 등 시각적인 도구들이 발명되었던 르네상스도 시각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였다. 다 빈치에게 눈은 내적 자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 주는 영혼의 창이었고,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주체는 보는 주체, 보고 사유하는 주체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얀스 산레담의 <위트레흐트의 뷔르커르크>. 이 그림에서처럼 종교개혁 이후 신교도들의 교회에는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화려한 시각적 요소들이 배제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이성에도, 이성의 상징인 시각에도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신은 이성으로도, 시각으로도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성상을 우상으로 간주하고 파괴했고, 청각적인 설교 말씀만을 강조했다. 시각적인 요소들은 눈에 음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했다. 


일리노이 주에 있었던 원형교도소.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감방을 감시할 수 있다. 인간을 통제하는 시각적 장치 중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각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성상 등의 시각적 이미지가 성서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려한 종교 미술을 꽃피웠다. 이후 18세기, 계몽주의는 모든 감각 중 최고의 감각은 시각이고, 모든 지식은 감각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토대로 인식의 전제조건이 되는 시각을 중시했다. 그러나 18세기는 지배 세력이 시각 장치들을 피지배 세력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감옥의 모든 곳을 감시할 수 있게 고안된 판옵티콘(원형 교도소)이 그 예이다.


 19세기의 낭만주의는 눈의 독단적인 힘에 반발했다. 낭만주의자들은 눈이 지배하는 세계, 억압하고 틀 안에 가두는 이성의 세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낭만주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눈은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상상력이 눈이 빼앗은 살아 있는 사유, 틀 안에 갇히기 전에 사유를 복원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눈먼 예언자 테아레시아스에게 통찰력을 준 것은 물리적인 눈이 아니라 상상력의 눈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리얼리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채석장의 일꾼들(1849)> 그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한 번도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눈으로 본 현실만을 그대로 그려냈다.


  이에 반해 눈을 긍정하고 시각의 전통적인 권위를 회복시키려 한 것은 리얼리즘이었다. 리얼리즘은 상상력과 예술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낭만주의의 주장을 현실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 자기기만으로 보았다. 리얼리즘은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실체, 구체적인 사물들, 인간의 구체적인 삶, 눈에 보이는 세상을 포착했다.  19세기 초에 발명된 사진도 현실의 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정신을 대변했다. 


입체주의 회화의 시작이 된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들을 한 화면에 풀어놓아, 원근법으로 표현되는 사실주의적 공간을 해체하고, 현실은 관찰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이 관찰한 것을 토대로 한 재현을 강조하는 리얼리즘의 예술 원리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눈에 대한 회의를 품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을 재현하는 것을 거부한 모더니즘이었다. 상징주의는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대상이 상징하는 관념들을 묘사했다. 표현주의는 눈에 보이는 외면이 아닌 인간 내면을 표현하려 했다. 초현실주의는 물리적인 현실 아래에 잠들어 있는 무의식을 표현하려 했다. 무엇보다 혁명적인 것은 입체주의였다. 입체주의는 원근법이 재현한 사실주의적 공간을 해체하고, 여러 시점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에 풀어놓으며 현실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입체주의 회화는 절대적인 시간도 공간도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연결되며,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현실은 없고, 현실은 관찰자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눈과 시각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눈과 시각에 대한 긍정과 부정, 신뢰와 회의가 엇갈리며 발전해 온 서구의 시각 문화를 폭넓게 살펴본다. 눈과 시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천 년의 서구 문화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감탄스럽다.  하지만 저자는 갑자기 '보는 눈',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배제하고 보이는 대상을 욕망, 억압, 지배의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눈에 맞서는 '눈물 흘리는 눈', 예수를 닮아가려는 '선한 눈'이 인간의 종말, 역사의 파국을 유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눈이 인식의 틀 안에 대상을 가둔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저자는 기독교 윤리라는 틀 안에 인류의 운명을 가둔다. 눈은 상상력을 제약한다고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을까? 눈물 흘리는 눈도 고통 받는 대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대상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폭넓은 본론에 비해 다소 근거가 빈약하고 기독교적 윤리에 갇힌 결론이 아쉽다. 


* p. s. 시각과 미학에 관련된 책인데 본문의 설명에 해당되는 도판이 본문 앞에 배치되어 있거나 아예 없어서 불편했다. 독자들이 일일이 도판 이미지를 검색하면서 보기에는 불편하다.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본문의 도판 설명 부분에 해당 도판을 배치하고, 없는 도판은 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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