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철학을 만나다 - 문학과 영화로 철학하기
장병희 지음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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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크 나이트> 스포일러 있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히스 레저)는 죄수들이 탄 배와 일반 시민들이 탄 배에 폭탄을 설치하고, 각각의 배에 상대쪽 배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도 함께 놓는다. 두 배는 운항 중 엔진 고장으로 멈추게 되고, 조커는 두 배에 탄 사람들에게 자정이 되기 전에 상대쪽 배를 폭발시키는 기폭장치를 누르면 그 배는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30분이고, 두 배에 탄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두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두 배에 탄 사람들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폭탄이 설치된 두 배에 탄 승객들. 상대쪽 배를 폭발시키는 기폭장치를 누르면 살려주겠다는 조커의 제안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갈등과 고민 끝에 두 배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는 것을 포기한다. 조커는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자 직접 기폭장치를 작동시키려 한다. 하지만 첨단 감청 장비로 조커의 위치를 파악한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조커를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자신들을 희생하려 한 양쪽의 결단이 결국 서로를 살린 것이다.

  이 책 『예술, 철학을 말하다』에서는 '다크 나이트'의 이 장면으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론을 설명한다. 결정의 순간 직전까지 배에 탄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의 그들(das Man)이었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그들'은 일상에서 평균적인 기준에 의존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존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인간이 원하는 미래의 자신의 존재 방식)을 위해 매 순간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 실존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의 가치판단에 의존하고 평균적인 삶을 지향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귀속'이라고 하고 귀속하면서 살아가는 삶 '비본래적 삶'이라고 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양심을 따른 것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양심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반적 의미의 양심이 아니라, 남들을 모방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삶, 실존적인 삶, 본래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그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실존적 선택을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인도적 행위를 실천하는 진정한 세계-내-존재(세계 안의 다른 존재들과 다양하고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을 넣었다.)이자 고유한 자신이 된다. 배 안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세계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실존을 증명한 것이다.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이렇게 영화, 시, 소설, 희곡 같은 예술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에 적용하면서 풀어나간다. 이전의 철학이 인식, 진리, 본질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해 왔던 것과 달리 현대 철학은 개별적 존재, 즉 현실 세계 속의 개인과 구체적인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 속에 그려진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에 현대 철학의 개념과 이론들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철학은 결코 인간의 실제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삶의 현실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나 보편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살아가면서 내가 체험하는 고뇌는 살아 숨 쉬는 현실이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고, 철학적 사고는 그런 현실 자체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저자는 고뇌로 가득한 삶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민을 예술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철학자들의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 끝에 나온 개념과 이론들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고민과 고뇌도 끌어안으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의 만남뿐만 아니라 철학과 현실의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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