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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예산 삭감에 미국과학자들이 대거 망명한다.
중국계는 중국으로 돌아가고, 백인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캐나다가 차선책, 그 다음 호주와 영국.
연구자의 해외 망명은 제국패권 이동의 신호다
첫 번째, 15세기 비잔틴 제국몰락 후 16세기 엘 그레코가 베네치아로 이주한 후 스페인에서 활동한다
비잔틴 아이콘화를 배웠던 엘 그레코가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받은 후 톨레도로 넘어가 스페인 카톨릭 신비주의에 일조한다
엘그레코가 대표적이고 그리스계 비잔틴 학자가 이탈리아에 이주해 르네상스 부흥과 매너리즘 발달에 도움을 준다
두 번째, 17세기 황금시대에 암스테르담으로 상인, 과학자, 출판업자가 대거 몰린다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라는 사회경제적 혁신으로 해상패권, 식민지경영, 금융중심지 역할을 한 네덜란드에 스페인 가톨릭 탄압을 피해 유대인, 신교도, 프랑스 위그노, 플랑드르 인쇄업자등이 이주했고
이러한 다양한 기술인력의 유입에 힘입어 정물화, 지도 등 예술과학혁명이 일어난다
스피노자는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반도체기술이라할 수 있는 광학렌즈제작자였다
세 번째, 19세기 하우스만의 상하수도 정비, 위생개선, 넓은도로와 공원조성으로 근대적 대도시 프랑스 파리가 탄생한 이후 문인과 예술가가 파리로 몰려 벨에포크와 모더니즘을 탄생시켰다. 이미 루이14세,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때도 예술철학의 중심지였던 파리가 더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면서 유럽문화수도로 확립된다. 스웨덴, 미국, 폴란드 화가는 인상파화풍을 배우고 고국으로 돌아가 나름의 미학적 전통을 탄생시킨다
네 번째, 2차 대전시 유대인 과학자들이 미국 망명한다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오펜하이머, 시카고의 레오 스트라우스 등 전후 미국의 과학혁신과 리버럴아츠 중심 고등교육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섯 번째, 트럼프 2차 집권 후 연구 예산 대폭삭감으로 인해 과학자들이 캐나다, 중국, 유럽으로 이주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 패권이동의 조짐이 보이고 글로벌 연구 허브경쟁이 본격화된다.
과학자와 예술가의 이동은 패권의 변화의 조짐이다. 신호탄이다..
과학자, 예술가들의 이주는 단순히 개인적 선택일 뿐 아니라
지식권력과 인력자원의 이동, 제국의 흥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한다.
트럼프 시기의 과학자 유출, 중국과 유럽의 인재 유치경쟁은 현대판 두뇌 전쟁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봄직하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예술가와 과학자 중 누가 더 빨리 움직이는가? 를 생각해보자. 흥미로운 질문이다.
답은 모른다이다. 알 수 없고 둘 다 가능하다.
예술가의 경우
1) 빠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보듯 슬럼화된 옛 공장지대 (성수동, 을지로, 영국 테이트, 중국 798예술지구 등)의 낮은 임대료에 상대적으로 가난하여 도구가 많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이 빠르게 이동한다. 배낭 하나 캐리어 하나 메고 유학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빠른 이동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2) 느릴 수 있다.
중견 예술가는 큰 작업공간이 필요하고 후원자를 따라 이동한다. 납품 스케쥴, 미팅 등이 밀려있어 상대적으로 느릴 수 있다.
심지어 이동의 방향 또한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아니라, 전혀 관계 없는 나라로 이주할 수도 있다. 티벳, 히말라야, 인도에 많은 서양인들이 하안거 동안거를 지내고 불교수련을 하고 있고, 김윤신처럼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할 수도 있다.
또한 하나의 도시로 대거 이주가 아니라 여러 허브와 노드로의 개개인의 분산적 이동일 수도 있다.
과학자의 경우
1) 빠를 수 있다.
포르투갈의 디지털 노마드 비자와 대만의 디지털 유목민 비자는 IT기반의 디지털 노마드형 연구자의 이주를 촉진시킨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줌미팅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클라우드 기반의 가상 연구소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인프라만 활용할 수 있다면 개인의 물리적 이동은 쉬워졌기 때문이다.
2) 느릴 수 있다.
과학자는 펀딩뿐 아니라 연구 인프라와 장비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나 입자가속기처럼 몇 조원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라면 이동은 쉽지 않다.
부동산대출문제, 서버이전의 문제, 실험실/연구소/대학원생 방법론세팅의 문제도 결부되어있다.
아무리 중국의 천인계획, EU의 영입정책이 있어도 전자는 문화와 정치문제가 있고, 후자는 펀딩규모가 너무 적다.
아울러 이동하지 않는 선택지도 있다.
훌륭하고 뛰어난 인재가 반드시 더 좋은 조건의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교육, 기존 사회적 인맥, 혹은 정치적/윤리적 신념은 이동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 좋은 곳의 정의도 연구자마다 다르다. 연봉이나 펀딩이 아니라 소속감, 자율성, 정치적 안정성, 문화적 친연성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2차대전 후 미국으로 이동문제에 대해 이어말하자면
나치 치하에서도 독일에 남아 있었던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있다.
이주한 이들의 성공신화에 가려진 정주한 이들의 지성사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망명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이들은 태업, 적응, 타협, 저항, 은폐전략을 사용해 살아남아 후속세대를 보존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을 확장해보자
과연 연구자의 이동이 패권의 이동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처럼 국가단위의 경쟁구도로 파악할 필요가 없다.
이제 글로벌 통신망이 완비되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편지나 전보로 소통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자의 교환도 신속하다.
따라서 글로벌 연구 커뮤니티, 오픈소스 협업 등이 가능하고 이동한 지역에서 생필품 등 소비재 소모만 하고 실제로는 기존 연구망에 소속되어서 지식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왜냐? 한 비유럽 국가가 국가정책에 따라 인재를 많이 데려가도
이미 영어기반으로 견고하게 구축된 지식생태계에서는 서구 네트워크에 의존해야만하기 때문.
코딩과 과학, 경제용어는 국제적으로 영어로 세팅되어 있다. 학술용어도 영어로 호환되고 따라서 몸은 비영어권국가에 있어도 생각과 정신의 지향성은 영어권에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 이동과 권력 이동은 관계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재의 물리적 이주가 제국의 패권이동이라는 직선적 인과관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대안으로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
인재 이동은 = 디지털 네트워크 + 데이터 권력 + 문화 언어 자본을 합한 요소로 파악해야한다.
이러한 복합적 교차점에서 권력이동을 바라보는 다층적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 시야로 다시 문제를 분석하자면
단기적으로는 과학자의 물리적 이동이 눈에 잡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누가, 어떤 네트워크가, 무슨 기관이 지식공유의 플랫폼과 표준을 선점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