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을 위한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베스트 컬렉션 100 - 출간 20주년 특별판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최승호 시,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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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평창동에 있는 <작은형제회 성 안토니오 수도원> 앞이다.




https://www.samseyoung.com/


얼마 전 평창 갤러리 삼세영에 다녀왔다


봄 밤에 사부작사부작, 별의 길을 따라 함께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떤 만남은 처음부터 결과를 품고 있다. 이 전시도 그랬다. 다를 異, 합할 合. 젊은 청년 작가와 나이든 여류 화가 서로 다른 둘이 우연히 알바하다 만나 서로 다름을 껴안고 함께 어우러진 마음을 엮어낸 전시였다.


문득 싱어게인이 생각났다. 음악하는 40대 이후 여가수가 없었는데 롤모델이 되어주셨다며 중년과 청년 여성이 듀엣을 이룬 장면. 이 전시 역시 그랬다. 앞서 걷는 이가 되어준 나이든 작가와 그 뒤를 따르다 이윽고 나란히 걷게 된 청년 작가. 두 여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품은 협업이 아닌 삶의 리듬을 맞춰가는 동행이었다. 그 동행은 큐레이터에 의해 기록이 되고 별자리가 되었다.


너와 나의 사이, 아주 느린 별의 움직임처럼


롤모델이라는 말이 참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존경의 형태이면서도 사실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해서. 누군가를 동경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고된 시절이 있고 그 숨막힌 시절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등을 보고 견딘다


그런 만남이 기록되지 않은 매일 밤의 전경처럼 휘발되어 사라질 수 있는 것을 큐레이터가 살포시 결과물로 빚어냈다. 그러나 그녀의 글끝에는 어떤 슬픔이 맺혀있다. 예술이 저 멀리 부자의 전유물이지 않냐 되묻는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고 자신의 예술을 만들지 못한 채 남의 예술을 팔고 있는 영업사원일 뿐이라는 회한과 대형화랑의 자본의 위세에 주눅들어 골목 끝에서 기획을 이어가는 고독은 어느 순간부터 존재를 분할하는 고행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울한 마음 앞에 평창동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참 무심하다. 벚꽃은 어쩌면 봄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피는지도... 찬란해지기까지는 그보다 먼저 견뎌야 할 계절이 있다는 뜻이다.


정채희, 돌아보다 배경 연잎, 종이 부조에 나전, 색분, 90x90cm, 2025

정채희, 돌아보다 동자, 세라믹, 20x20x45cm, 2018

감만지, Hi There!, mixed media on canvas, 30x30cm, 2025


작품들은 조용했다. 소리를 낼 듯 말 듯, 감정을 품은 듯 품지 않은 듯. 나는 그 중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색이 아니라 온도로 그려진 것 같았다. 그 온도는 손끝보다 미세하고 마음보다 먼저 스며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슬픔이 있었다. 그러나 또한 곧 위로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참지 못할 것 같던 지금도 나중에는 누군가의 발끝을 덮는 포근한 무늬가 될지 모르니.


어쩌면 우리는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끝내 닮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가보다. 밤하늘에서 마주 보고 있는 별 두 개, 혹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자리에 뜨는 계절 별자리가 있다. 누군가 이어주지 않았으면 별자리로 이름 붙여지지 못했을 만남이다. 빗방울처럼 톡톡, 물드는 붓질이 마치 속삭이는 듯하다. 뚝뚝, 사각사각. 말 없는 위로이자 보이는 시였다.


멀고 아득한 길을 앞에 두고 주저앉고 싶을 때 다른 누군가의 자취를 보면서 버틴다. 그러다 누군가의 손길 하나 미소 하나가 등을 떠민다. 혼자인 것 같지만 누군가는 너의 걸음을 보고 있다고. 그리고 그 걸음을 닮아 걷는 누군가도 있을 거라고


별은 멀리서 서로를 본다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만 한동안 서로를 몰랐다.

겉으로는 나란히 서 있지만

쌓아온 삶과 시간의 밀도는 전혀 달랐다


청년 작가는 갤러리 한켠에서 조용히 일을 했다.

중년 화가는 자신의 세계를 붙들고 있었다.

큐레이터는 매 시즌 다른 작가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 셋은 마치 계절이 달라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별자리처럼 긴 시간 같은 하늘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별들이 느리게 각을 바꾸듯

세 사람의 궤도가 교차했다

그래서 생긴 전시가 바로 이합이다.

다르기에 아름답고 다르기에 필요했던 만남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는 보통 별들을 한 덩이로 본다.

하지만 실은 그 별들 사이에는

빛이 닿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리는 거리가 있다.


거리를 품고도 별들이 하나의 별자리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큐레이터는가 그 별을 잇는 선을 그려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별자리란 별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그은 선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에 그림을 그려


그 그림 속에

의미를 입히고 모양이 된다.


이합은 그렇게 탄생한 별자리였다.

큐레이터는 만남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고 전시로 자기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cm OST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같은 시대에 살아도 서로 다른 궤도를 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전시는 말하고 있었다.

누구나 누구의 별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누구의 별자리를 그려줄 수 있다고

빛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그 별이 없는 게 아니며

보여질 때까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괜찮다.

속도가 느려도, 거리가 멀어도, 방향이 다소 틀려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지니

아마도 별의 언어는

지금의 반짝임이 아니라

훗날 도착할 과거의 빛으로 말하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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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5월에는 이태원한남동을 가자

전시 라인업이 좋다


동양화 좋아하면

1) 리움-호암 셔틀로 겸재정선

2) Bhak 한섭(-5.24) 한지

3) 뉴스프링(-4.13) 달항아리


서양화 좋아하면

1) 페이스 네벨슨, 쿡(-5.17)

2) 에스더쉬퍼 작품2개(-5.1)


현대미술 바이오, 환경 좋아하면

1) 파운드리 Cell Struggles(-5.31)

2) 아마도 포인트니모(-5.3)


현대미술 환상, 신화 좋아하면

1) 디스위켄드룸 루카스 카이저(4.25-5.24)

2) 리만머핀 헤르난 바스 (-5.31)


현대미술 조각, 물성 좋아하면

1) 에스더쉬퍼(-5.1) 조각3개

2) 조은 권용래(-5.10) 스텐리스 빛

3) 로팍 톰 삭스(4.29-5.31) 피카소 조각

4) 바톤 단체전(-5.10)



권역으로 나누자면

빨강: 녹사평 라인 하나,

보라: 이태원-한강진 하나

파랑: 한남 북부

노랑: 한남 남부

보라색 메인지역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게 좋다

빨강+노랑 동시 가는 것은 무리하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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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계절의 감성을 담은 봄여름 뜨개 - 가벼운 카디건과 숄, 포인트가 되는 예쁜 모자와 가방 18
박옥민 지음 / 책밥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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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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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ytimes.com/2025/04/03/arts/design/monstrous-beauty-porcelain-exhibit-met.html


1. ART REVIEW


The ‘Monstrous Beauty’ of Pretty Porcelains

A show at the Met offers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a decorative style that swept through Europe in the age of empires and seeded stereotypes of Asian women.


By Aruna D’Souza

April 3, 2025


뉴욕 미국국내판은 4월 3일, 한국 국제판은 4월 10일 발간



이불 사이보그

Lee Bul, Cyborg W1, 1998

Lee Bul

Cyborg W1, 1998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85 x 56 x 58 cm


출처: 타데우스 로팍

https://ropac.net/ko/artists/31-lee-bul/works/11870-lee-bul-cyborg-w1-1998/


Met 전시중인 작품은 발만 있는 것 같다. :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857469



이수경의 번역된 꽃병

출처: 위의 NYT 기사 (원본 출처: 베네치아 비엔날레 아카아브)


이수경 번역된 꽃병

Translated Vase_2022 TVCSHW 1

Yeesookyung 

202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902346


작가 사이트

https://www.yeesookyung.com/translated-vase-






2. 기사 일부 한국어 번역 및 해석


《괴물 같은 아름다움: 아름다운 도자기의 이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가 제국주의 시대 유럽을 휩쓴 장식양식 '시누아즈리(Chinoiserie)'에 대해 페미니즘적 재해석을 시도하다


*시누아즈리는 프랑스어로 중국+풍이라는 뜻이다. 


아루나 드수자, 2025년 4월 3일


"드래곤 레이디", "기생", "순종적인 미녀" —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들은 실제 여성들과 만나기도 전에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이미지들이 유통된 중요한 매체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도자기였습니다. 16세기 무역선이 향신료를 실어 나를 때 발란스로 사용되었던 이 하얗고 투명한 자기들은 유럽인들을 열광시켰고, 곧 '시누아즈리'라는 장식양식을 유럽 전역에 퍼뜨렸습니다. 이는 아시아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강화했고, 특히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이국적이고 성적화된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시 「Monstrous Beauty: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점이 넘는 작품을 모아,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서구의 고정관념이 어떻게 도자기와 시각예술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특히 동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작가 7인의 현대 작품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이미지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이수경의 ‘변형된 꽃병’ 시리즈

전시 입구에서는 한국 작가 이수경(Yeesookyung)의 ‘번역된 꽃병(translated vases)’ 시리즈가 전시됩니다. 버려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이고 금박으로 균열을 감싸는 방식은 전통적인 ‘금개(金繼)’ 수리기법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복원이 아닌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새로운 조형물로 재창조됩니다. 이는 전시 제목인 ‘괴물 같은 아름다움(Monstrous Beauty)’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입니다.


시누아즈리: 미적 감상의 이면에 깔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도자기 열병은 단순한 예술 감상을 넘어, 유럽의 산업적 집착과 권력 욕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아우구스투스 2세는 중국 도자기를 얻기 위해 병력까지 교환했다고 전해지며, 유럽 왕실들은 이 도자기들의 제조 비밀인 카올린(kaolin, 백토)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도자기 디자인에는 종종 인종적 고정관념이 담겨 있었는데, 예를 들어 유럽산 도자기에는 중국인, 흑인, 유럽인을 풍자적이고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도자기 인형은 특히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는데, 배우, 어머니, 여신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면서 동시에 유럽 여성에게는 다른 문화 속의 자아상을 상상하게 하는 경로가 되었습니다.


현대작가들의 개입

이수경 외에도, 현대작가 리불(Lee Bul)의 사이보그 조각은 전족이라는 과거 여성 억압의 전통과 미래 기술의 접점을 제시하며, 아시아 여성의 신체에 투사된 환상과 통제의 역사를 다룹니다.


패티 창(Patty Chang)의 작품 〈Abyssal〉은 도자기로 만든 마사지 테이블을 통해 2021년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계 여성 스파 종업원 살해 사건을 환기하며, 오랜 시간 지속된 성적 대상화와 폭력의 역사를 조명합니다.


안나 메이 웡: 고정관념을 넘어

1930년대 할리우드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배우 안나 메이 웡도 이 전시에 등장합니다. 드래곤 레이디, 이국적 팜파탈의 역할에 갇혔던 그녀는 유럽에서 맞춤 제작한 용 자수가 박힌 이브닝 드레스와 경극 전사의 코트를 연상케 하는 외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예쁘고 이국적인 물건들’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숨겨진 권력, 고정관념, 성적화의 구조를 해체하고자 합니다. ‘시누아즈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여성들이 어떻게 대상화되었는지를 예술을 통해 성찰하게 합니다.



3. 전시의 장단점


일단 내가 생각하는 전시의 장점은 네 가지다.


1) 비판적 역사관: 단순히 아름다운 도자기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중심 시각과 성적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식민주의와 성적 대상화의 시대에서는 아름다움은 도구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착하고 무해하다는 고정겨관념을 깨뜨리고 전시는 아름다움은 이데올로기의 은폐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쁘게 꾸며진 도자기, 곡선을 강조한 여성상, 정교한 의상과 자수들은 모두 성적 대상화, 인종화, 소비주의라는 거대한 구조를 감추는 포장지였다. 그런 점에서 예쁜 것이 단지 취향이나 감상이 아니라 권력 구조 속에서 정치적 기능을 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도자기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여성을 환상적으로 대상화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의 물리적 구현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를 정치적으로 읽는 훈련이 부족했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전시의 가치가 돋보인다.


2) 16세기부터 당대까지 총망라해서 과거와 현대가 서로 대화하게 했다. 현대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조각과 공예를 함께 배치해서 과거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용되고 재해석되었는지 시각적, 철학적 질문을 제시한다.


3) 다층적 큐레이션: 16세기부터 당대까지 200점 전시했다. 도자기, 회화, 조각, 설치예술, 의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적 다양성과 몰입감을 준다. 지역적으로도 그동안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을 조명헀다. 한국여성작가이수경, 이불이 전면에 드러났다.


4) 기술적으로 완성되고 미학적으로 화려한 작품이 아닌 작품을 전시해서 생각의 전환을 유도했다. 예를 들어 이수경의 작품은 예를 들어 "금이 가고 뒤틀린 형태의 꽃병"을 통해 오히려 완벽하지 않음, 심지어 괴물스러움조차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미학적 전환점을 제공한다. 도자기의 섬세한 곡선이 제국의 폭력을 감췄고 아름다움은 권력의 공범이였기 때문에 몬스터 도자기로서 은폐된 마음의 레짐을 폭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전시의 단점인데 네 가지다. 마지막 두 개는 NYT에서 기자가 비판한 것이다.


1) 비아시아 관객, 즉 서구백인 중심의 시선 재확인 및 맥락 탈색의 위험성. 과거 도자기의 문화적 문맥(예: 중국 내 자존감, 생산자 입장)은 배제되고, 소비자(유럽 왕실)의 시선과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작가도 미국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담론때문에 TO가 주어진 것 같다.


2) 아시아 내부의 다양성 부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덩어리로 다룬다. 이는 서유럽과 북유럽과 동유럽을 함께 묶는 것만큼 불완전하다. 조선 백자, 중국 청화자기, 일본 이마리자기 등 국가별 맥락은 다소 박하게 다루어진다.


3)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과잉 해석의 위험

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은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너무 많은 아이디어와 해석을 전시장에 쏟아부은 탓에 오히려 관객에게 혼란을 주거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장식 미술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해석 과잉으로 인해 흐려졌다. (“The exhibition is far from perfect — the curator, Iris Moon, has brought a lot of ideas and objects into the space, and takes every opportunity to interpret them, which overcomplicates an otherwise refreshing take on the decorative arts.”)


4) 도자기의 핵심 기술적 맥락이 배제되었다.

전시는 기존 시누아즈리 서사를 피하려는 나머지, 정작 중요한 도자기 기술(예: 백자 생산법, 유약의 구성, 킬른(도자생산지)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기술적 성취 없이 도자기를 논하면, ‘무엇이 그렇게 매혹적이었나’, ‘왜 유럽이 열광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약해진다. (“The exhibition is also so intent on avoiding the standard line on Chinoiserie, which focuses on the race to understand the technology of porcelain, that it fails to explain that technology at all.”)



4. 전시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나는 대안이 없는 비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1) 최근 일본 전시에서 봤는데 도자기에 센서를 넣어서 돌리면 체험할 수 있게 해서 흥미로웠다.

그런 맥락에서 AR(증강현실) 도자기 체험관에서 관람객이 실제 전시품을 보는 대신, AR 안경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의 도자기를 360도 둘러보고, 작품 안에 숨겨진 역사적 내레이션을 듣게 하면 재밌을 것 같다. 과거 유럽인들의 도자기에 투영된 상상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할 수 있겠다.


2) 아시아 여성 시점에서 쓴 픽션, 스토리를 전시하는 것이다. MMCA VR전시에서 이런 비슷한 인사이트가 있었다.

특히 과거 도자기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예: 무명의 기생, 여신, 욕탕 종업원 등) 각각을 현대 아시아 여성 작가들이 픽션화하여 그 서사를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문학과 시각예술을 결합한 몰입형 서사가 가능하다.


3) 최근 소리 전시가 여럿있었다. 아주 옛날에 언제였는지 기억 안나지만 MMCA과천의 소리전도 있었고, 서촌 아트사이드에서도 소리전이 있었다. 도자기 내부 소리를 전시하면 어떨까? 각 도자기 속에 스피커를 설치한 다음 관객이 도자기에 귀를 대면 당시 여성이 속삭이는 말, 억압된 목소리, 혹은 외면당한 욕망을 들을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남성은 문자를 독점해 시각문화를 지배했고 여성은 구술을 바탕으로한 청각문화를 향유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시는 시각 중심이므로, 전근대 여성을 대변하려고 할 때는 청각우위로 미디엄 시프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청각적 몰입을 통해 소유당한 대상이 아닌 말하는 주체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onstrous Beauty: A Feminist Revision of Chinoiserie

https://www.metmuseum.org/ko/exhibitions/monstrous-beauty-a-feminist-revision-of-chinois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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