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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2025. 2. 20.—2025. 6. 29.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자. 백남준 작품의 모티브나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이 있다.


전기, 통신에 대한 재료적 모티브뿐 아니라, 환경 기후 등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작품도 있다.



1. 김호남 작가의 작품




디스플레이 9개의 화면과 소리가 전송시간에 따른 지연으로 인해 각기 다르게 시작되어 동굴의 울림 같은 메아리를 만든다. 백남준도 위성 전파속도의 지연에 대해 주목했었기 때문에 백남준의 모티프를 잘 이해하고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설명 중에 "윤슬"이라는 매우 좋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고유 표현이다. shimmering water로 번역했다. 문장이 깔끔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TV 노이즈 화면과 같은 윤슬은 집합적이고 매개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텔레비전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백남준을 떠올리게 한다. The shimmering water found there, resembling television static, reminds us of Nam June Paik, who focused on the potential of telelvision to enable collective and mediated experiences."


이렇게 전시의 핵심 주제를 정확하게 포착해서 작품을 커미션하는 작가들이 있다. 저격수와 같다. 작품의 모티브와 전체 테마가 일치하여 정확히 타켓팅된 의도에 관람객도 원 샷 원 킬의 후련함을 느낀다. 


이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했던 아시아네트워크 길 위의 도자라는 전시가 있었는데, 그 참여 작가 중 예상 외로 단 한 명마 전시의 전체 모티브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기어간다.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광주에 와서 도자를 만들고 출품을 했는데, 인터뷰를 들어보면 교포의 정체성에 방황하느라 자기가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는 이도, 아이디어와 작품이 매치가 안되는 이도 있었다.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캄보디아계 미국 현대 미술 작가 에이미 리 샌포드가 일견 한국과는 거리감이 있는 낯선 국가 출신임에도 광주 전시 기획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6RgQ1n87s 


이 유투브 12:40즈음에서 그 인터뷰를 볼 수 있다.


복수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에서는 이런 저격수 같은 작가가 있어야 한다. 큐레이터가 하고 싶은 말을 작가 시점에서 재서술해주기도 하고, 전시 전체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김호남 작가의 이 작품이 백남준의 의도와 기획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



2. 정혜민 육성민의 영상 작품 두 점이다. 벽면에 있는 약 8분 짜리 영상.




동물에 GPS 시스템을 탑재하고 데이터화해서 그 신호와 시각화된 모습을 화면에 보여준다. 실제로 새가 날고 있기도 하고 그것을 3D로 구동해서 영상에 보여주기도 한다. 디스플레이 2개에 각각 연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새가 날아가면서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그 자연에서 잡히는 동물들의 신호를 포착해서 화면에 보여준다. 이주를 요청한다랄지, 조금 시원하다랄지, 하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들의 의지를 이해해볼 수 있다. 내레이션에서 동물은 더 이상 피를 공유하는게 아니라 오픈소스를 공유한다고 했다고 한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의도도 명확하다.



디스플레이가 두 개라서 기왕에 가운데 초점을 잡았는데 중간선때문에 약간 방해가 생겨서 아쉬움이 있다.


남서울미술관 건축의 전경에서도 비슷하 작품이 있었다. 보비스투 스튜디오, 룬트마할 어라운드, 2022. 디스플레이 두 개의 가운데 접점의 선이 몰입을 방해했다.



2.




가운데 있는 커다란 영상이다. 약 22분.



보험회사에서 메기나 두꺼비나 새 같은 동물이 지진 전조 증상을 잘 감지하는 것을 알고 GPS를 부착해 그들의 이동을 탐지하고 지진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아래 보면 로키라는 새가 자연 재해 23개를 미리 예측해서, 당신으 523만 4천달러를 아꼈다고 나와있다. 뒷 배경 왼쪽은 일본의 메기 (글씨는 일본초서인데 느낌만 비슷하게 표현만 해둔거라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없다.)이고 오른쪽은 서양 고대의 뱀이다. 다 지혜를 상징하고 미리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동물들이다.


주인공은 메기나 뱀이 아니라, 로키라는 검은 새를 고르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새는 다 움직이고 보험회사가 이를 통해 지진 예측을 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와중에


주인공은 자기 새가 신호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는 자기 뒤의 배낭에서 움직이라는 신호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 둘의 대화에서 수컷 새는 뭔가 움직여야할 것 같다면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암컷 새는 신호가 오지 않았으니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신호수신에 문제가 있는 장비를 제때 체크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회사의 직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필적 고의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듯 하다.








다만 새의 양안 시야각은 측면을 다 감각할 수 있기 때문에 측면에 있는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돌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만 보고 얼굴을 보지 않는 듯 대화하면 연출의 자연스러움이 깨지니까 새도 고개를 돌려 상대의 눈을 마주치는 것 같이 연출한 것 같다. 새의 의인화를 했기 때문이다.



영화 <소울>, <매트릭스> <스타트렉> 등에서 많이 보이는데 미래적 SF를 다루는 영화에서 중앙관제센터를 흰색으로 깔끔하게 그린다.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유백색의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중앙센터일수록 책상이 지저분하고 어지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정보와 요청이 몰려드는 가운데 주변 상황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에 집중하다보면 빨래나 청소기 돌리는 타이밍을 깜빡한다거나 냉장고의 자잘한 고장을 잊고 넘어간다든가 하는 것과 같다. 시험에 집중하다보면 계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하는 것과 같다.


추적 데이터의 상업화는 보험회사로


동물의 본능 대신 인공장치에 의존하게 된 역설적인 모습은 정비되지 않은 장비배낭에서 신호가 송출되지 않는데 지진 신호 앞에서도 떠나지 않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것도 역시 의도가 명확하고 서사가 잘 짜여지고 시각화도 잘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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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2025. 2. 20.—2025. 6. 29.



1. 미술관 박물관이 곁에 여러 개 있을 경우 전시를 묶어서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용인 기흥역-상갈역 사이에 있는 경기도박물관과 백남준아트센터는 좋은 예시다.

전자는 역사, 후자는 현대예술테마로 주제도 상호보완적이어서 같이 들리기에 좋다.


클러스터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한 지역에 모여 있을 경우 상호작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시너지 효과가 창출된다. 소비자(관람객)도 이에 따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두 곳을 나누어 방문할 필요없으니 교통비도 시간도 절감되고, 다른 테마를 다루니 다양한 니즈를 만족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한 지역에 모이면 방문객이 많아지고, 상업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진다. 관람객들로 거리가 북적여서 늘 소비자가 있으니 주변 서비스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안국, 북촌처럼 수십 개의 화랑이 밀집해있을 경우 한 번에 다 방문할 수 없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과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흥처럼 중간 규모 이상의 전시장이 상호보완적 테마로 두 개 있는 경우는 적절한 것 같다. 물론 안국, 북촌에 있는 모든 화랑을 다 방문할 목적으로 데이트나 나들이를 하는 것은 아니겠다. 반면 너무 외딴 곳에 한 곳만 있는 경우는 자주 가기엔 곤란한 측면이 있다.



2. 1층은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 2층은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다. 1층 전시는 여러 번 와서 봤다.


백남준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고, 국공립미술관에 개별작품이 여러 소장되어 있으며, 단독으로 이름을 따서 만든 미술관도 있는 예술가가 또 있나 싶다. 언뜻 생각해보면 제주에 김창열 미술관이 있고 양주에 장욱진이 있고 무안오승우미술관, 김세중미술관, 콜렉터의 이름을 딴 광주시립하정웅미술관, 제주유동룡(이타미준)미술관, 서보미술공간 등등이 있는데 백남준만큼의 임팩트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백남준이 다가올 정보통신시대를 화려하고 강렬하게 예고했었다. 너무 빨리 시대를 앞서가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예술가다.


RM이 롱런해서 소장작품 모아서 하정웅이나 이건희처럼 해주면 좋겠다. 이름도 백남준과 비슷한 김남준이다. 2050년 개관할 김남준아트센터를 기대한다. RM이 좋아할 것 같은 또 다른 작품은 고 권훈칠이다. 개인전도 안했고 오래 은둔하며서 작업만 해서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작가인데, 그의 드로잉에는 경쾌한 경건함이 배어있다. 




3. 1층 전시에는 백남준의 작품들이 있다. 지나가며 생각난 김에 백남준의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그가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나 동남아시아연구자 통차이 위니차쿨(Thongchai Winichakul)과 비슷한 결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셋은 미디어가 한 집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앤더슨의 유명한 책, 상상된 공동체는 미디어 소비라는 공유된 경험을 통해 국가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1983년의 책이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자기와 같은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된 세계를 확인한다. 농촌 사회에서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와 관습이 다른 사람인 반면, 근대사회에서 같은 신문을 읽는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공간이 다르더라도 일정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러한 공통된 감각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상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독립신문 1호에서, 원산, 서울, 인천 등지의 도시가 등장하는데 신문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이 같은 신문을 저 다른 도시에서도 읽고 있구나! 하면서 같은 공동체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상상된 공동체이다.


한 국가의 가장 작은 구성원이 모든 도시의 사람을 실제로 알고 지내지 않지만,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수평적인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국가가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신문을 읽는 습관도 의례가 되어 공동체 감각을 강화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신문을 읽는 의례적 행위는 불특정 다수의 동시적 경험을 만들어 낸다. 나아가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독자를 공유된 시간적 틀 속에 결속시킨다. 앤더슨은 이러한 신문 읽기의 의례적 행위가 종교적 성찬과 비슷하다고 하였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개인들이 집단적 현실에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국가를 실재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의 상상을 통해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신문과 인쇄 자본주의는 민족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제공했다. 이 상상된 공동체 개념은 미디어가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이바지하고, 위니차쿨의 연구와 백남준의 작품에서도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위니차쿨은 앤더슨의 논의를 바탕으로 신문에서 더 나아가 지도를 사용하고 지리적 신체geo-body개념을 주장했다. 지도적 표현이 태국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이 개념을 확장했다. 백남준은 통신과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글로벌 연결성을 탐구하며, 국가 경계를 넘어선 공동체의 확장된 비전을 제시했다. 


위니차쿨의 지리적 신체는 지도를 통해 태국의 영토 경계 시각화가 국가 의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서구식 지도 제작이 도입되기 전에는 시암의 정치적 공간은 유동적이었으며 조공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적 지도의 채택과 함께, 시암의 지도층은 국가를 명확한 경계를 가진 독립된 영토적 실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위니차쿨은 지도가 지리적 현실의 수동적반영이 아니라 생각했고, 지도가 갖는 국가 공간의 범위를 상상하는 능동적 역할에 주목했다. 이러한 지도적 상상력은 태국 정부가 주권을 행사하고, 식민주의적 침략에 대응하며, 국가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했다. 앤더슨이 신문을 통해 동시성을 강조했듯, 지도도 시각적 도구로도 기능한다.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을 단일한 국가적 실체로 통합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태국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앤더슨의 초기 논의에서 결여되어있던 시각화 도구인 지도를 더해야 백남준의 시대감각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백남준은 앤더슨과 위니차쿨의 논의를 통신 기술의 영역으로 확장한 인물로 볼 수 있다. 미디어는 매개체이고 그 대상은 기술발전에 따라 시대마다 변한다. 앤더슨에게는 신문이 중요했고, 위니차쿨은 지도에 주목했다. 백남준의 미디어는 텔레비전과 위성 기술이었다. 


백남준의 위성TV를 사용한 작품들은 한 국가를 넘어 다수의 국가가 새로운 형태의 상상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굿 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1984)에서 백남주은 전자 미디어가 지리적, 정치적 장벽을 초월하여 글로벌하게 연결된 문화를 구축할 수 있음을 예견했다. 그의 유명한 말 중에 음극선관(cathode ray tube)은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텔레비전과 통신이 예술적 표현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재정의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앤더슨이 한 국가 내부의 민족주의에 초점을 맞춘 반면, 백남준은 공유된 경험의 개념을 행성적, 지구적 규모로 확장했다. 뉴욕과 서울을 연결한 그의 위성 방송은 국경을 초월한 가상 공동체의 형성을 시사한다. 오늘날의 글로벌 디지털 문화의 전조로 볼 수 있다.


앤더슨과 위니차쿨과 백남준 모두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집단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지 연구한 사상가다.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집단 정체성은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의해 형성된 인식적 구성물임을 시사했다. 앤더슨은 인쇄 자본주의가 동기화된 독서 습관을 통해 국가적 의식을 생성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위니차쿨은 지도적 표현이 국가를 지리적 신체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백남준은 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공동체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정신을 예견하면서 둘의 논의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앤더슨과 위니차쿨이 매개된 정체성의 과거와 현재를 국가단위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백남준은 미디어가 국경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초국가적 미래를 소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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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의 보석 · 매혹의 시간

THE ART OF JEWELLERY

2024. 12. 6 FRI - 2025. 3. 16 SUN


1. 잠실역에 있는 롯데 뮤지엄이다. 6층에 위치해있다.






2. 티켓은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후원해주셨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서울 아트 가이드가 있는데 많은 전시회를 다니다보니 뒤쪽의 전시정보 일람 지도와 전시정보를 꼼꼼히 보고 피드백을 몇 번 주었더니 이번에 티켓을 보내주셨다.




3. 전시 제목이 고혹의 보석이다. 끌린다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이 매혹적이다이고, 그것보다 더 문학적인 표현이 고혹적이다이다. 끌린다 < 매혹적이다 < 고혹적이다


XX의 XX라는 제목을 들으면 일본식 표현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배웠던 세대가 20세기 초에 썼던 신소설에는 이런 일본식 표현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인직의 혈의 누(1906년작). 피 혈에 눈물 누로, 피 눈물이라는 뜻이다. 일본어의 '의'는 の노인데, 영어의 of처럼 여러 번 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의'는 1번만 써야하고 그 의미가 가리키는 바도 영어나 일본어처럼 많지 않다. 그 언어들에서는 of, の가 ~에 대하여, ~와 함께, ~에 있어서, ~에 대해 말하자면, ~에 속해있는, 등 여러 의미값이 있고, 두 번 이상 쓸 수 있다.


한국어의 표현의 풍부함이라고 '의'를 두 번 쓰면 어색한 표현이 된다. 여기서 두 번 등장하는 '의'를 다른 표현으로 적절히 바꿔줘야 자연스럽다. 우리말의 용언을 활용하면 좋다. 한국어에 있는 풍부한 표현이라고 한다든지. 


고혹이라는는 한자는 蠱惑이고, 일본어로는 코와쿠こわく, 중국어로는 구훠guhuo라고 읽는다. 

혹은 매혹, 미혹하다할 때의 혹이고, 고는 뱃속벌레 고이다. 蠱. 벌레 虫가 세 개가 있고, 아래 피 혈이 있다. 피와 함께 있는 벌레, 즉, 독충으로, 사람을 매혹하거나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독충을 의미한다. 그런 독충이 옛날 사람들의 상상 속에는 어떤 주술적 파워를 가진 매력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대만 중국어는 일본,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래 한자를 쓰지만 대륙 중국어는 간략히 생략된 간체자를 쓰는데, 원래 한자 蠱惑가 蛊惑으로, 벌레가 세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었다는 점이 재밌다.


고혹적이다를 영어로 치면 attractive, seductive, alluring 등이 해당되는데, attract에서 tract(끌다), seduct에서 duct(이끌다)라는 라틴어 유래 표현에 "끌어당기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어서, 누군가를 홀리듯이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뜻을 잘 전달한다.


소장가인 아라카와 카즈미씨가 붙인 전시 제목일 듯하다.




4. 일본 소장가 이름이 특별하다. 우측 하단에 흘림체로 쓰여있다. 有川一三 유천 일삼이다. 보통 아라카와씨는 荒川 사나운 시냇물을 쓰는데, 이분은 있을 유를 쓴다. 일본어로 감사하다, 아리가또할 때 있을 유有를 쓴다. 아리가또는 아리가따이에서 유래한 말로, 다들 히라가나로 배우지만, 한자로 바꾸면 有難い이다. 있기 어렵다라는 뜻인데, 있기 어려운 일을 했으니 감사하다는 뜻이다. 우리도 습관적으로 안녕이라는 말을 한글로 쓰지만, 安寧의 한자 의미를 뜯어서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다는 의미를 매번 풀어서 생각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경우 그냥 아리가또를 thank you 고맙습니다로 치환해서 토큰을 전달해, 의미가 통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더 깊게 생각해보면서 단어 안에서 스며나오는 깊은 뉘앙스를 음미해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름은 하나 일, 석 삼. 카즈미라고 읽고 一三라고 쓴다. 이것도 조금 특이하게 쓰는 표현이다. 보통 かずみ는 和美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야후 일본에서 검색해보니 여러 인터뷰가 뜬다. 


https://myphilosophy.global/interview/arikawa_k/


https://www.uyedajeweller.com/archive/column/column_13.html


뉴욕타임즈에서도 소장가에 대한 기사가 있다.


https://www.nytimes.com/2020/01/25/fashion/jewelry-kazumi-arikawa-collection-tokyo.html


뉴욕타임즈 2020년 1월 25일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도 소장가가 의도한 바대로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오는 분위기에서 보석을 감상했다. (As Gregorian chants played in the background, he and a small coterie of staff members presented piece after piece, each in its own custom-made box.)


그래서 그런지 롯데뮤지엄 전시에서도 짜임새있는 화성이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온다. 이 그레고리안 성가는 무신론자마저 마음이 숭고해지는 누미노오제의 경험을 조성하는 데 특화된 음악인데, 특히 도리안 C♯(Protus Authenticus)기준으로 C♯, B, A♯, G♯으로 떨어질 때, 그리고 그 다음 D♯에서 C♯으로 떨어질 때 피에타의 마리아가 느낄 법한 애처롭고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음이 떨어질 때 샾이 붙어있어서 반음만 떨어지는데 거기서 영혼 저 깊은 어느 곳에 숨겨져있는 잃어버린 어떤 숭고함, 인류 전체에 대한 희생에 대한 고양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성가 덕분에 소장가가 의도한 대로 그대로 보석들을 그 자체로 느끼는 순간이 빚어진다.




그림자마저 전시 일부로 만드는 작품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것이다. 수미쌍관으로 전시장 입구에 백색 배경으로 하나, 끝날 즈음에 흑색 배경으로 하나 두 번 전시되어있다. 존재하지 않는 검은 그림자 선을 차경으로 빌려와 추상마저 구상으로 만들었다. 유럽의 종교와 왕정이라는 두 추상적인 제도 권력이 실제하지 않으나 보이는 그림자로 구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림자선이 원래 구조물보다 더 큰 범위를 거느리듯, 소수의 중심부가 거대한 영역을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로 지배하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보석, 혹은 원래 구조물이다. 보석이 갖는 장신구적 아름다움이 빛으로 인해 퍼지듯, 권력 또한 중앙제도에서부터 널리 확장된다.




5.



전시장 앞에 있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뒷 부분 두 문장만 뜯어보자.


1) 천연 보석 속에 함유된 내포물은 인간의 지문처럼 제각각 달라 보석을 구별하는 척도가 된다.

Imperfections in a gemstone, called inclusions, are unique like human fingerprints and help with identification.


- 이 문장은 한국어 영어 둘 다 잘 쓰였다. 한국어와 영어의 순서가 달라 먼저 들어오는 정보가 다르다. 

영어의 경우, 보석의 불완전함은 두 내포물이라고 불리는데, 인간의 지문처럼 특별해(달라).. 이렇게 쓰여져있다.

불완전성imperfection이 먼저 들어오지만 한국어는 그런 느낌의 말이 없다. 두 관객의 특성을 이해하고 쓴 것이다.


우리 말로 "함유, 제각각 달라, 척도가 된다"같은 표현도 적절하고, 영어에서 쓰인 바도 적절하다. 

이런 표현들이 각자 언어의 맛을 잘 살린 글쓰기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억지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두 언어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각기 다른 글쓰기를 해야한다.


2)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천연 보석의 레드, 블루, 그린, 핑크 빛깔은 그 자체로 아주 매혹적이다.

The natural hues of red, blue, green, and pink in untreated stones are indeed mesmerizing in themselves.


빛깔은 hues,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천연 보석은, 손 대지 않은 돌(untreated stones)로 적절한 표현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와' '예쁘다' '대박' '야바이' '스고이' 정도만 말할 수 있다면 그만큼 나의 세계가 좁다는 것을 말한다. 예쁘다의 동의어를 아주 많이 알고 있어야한다. 매혹적이다라는 표현도 attractive, seductive, alluring, 여기서는 mesmerizing. 영어권 화자들은 같은 표현을 중복해서 쓰지 않고 동의어를 활용해서 다채롭게 표현한다. 예쁘다는 한 번 탄성으로 족하다. 다음 번에는 다르게 표현해보아야한다. dazzling gems도 좋은 표현이다. 눈부신 보석들



6. 눈 부신 보석들을 2억 화소로 찍었다. 그래도 다 그 아름다움이 온전히 화면에 담아지지 않는다.



주얼리의 특별함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각적으로 입체적이다. 시야를 보석에 고정하고 앞에서 움직이면 빛이 다른 각도로 반사되어 번쩍번쩍하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준다. 이 황금의 보석 앞에서 여느 아이돌 콘서트 레이저 빔 못지 않게 휘황찬란한 빛이 번쩍번쩍한다.



또 하나는 아주 자세하게 볼수록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주 미세하게 관찰해야 보석의 다른 절각, 세공기법, 표현방식, 장식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설치예술 같은 거대한 작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햄버거나 피자나 아이스크림처럼 이미 하방이 낮고 이미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까하는 고민이

주얼리 세공사들의 고민했던 결과 같다. 단 것을 입에 넣고 악 맛없어 하고 뱉는 사람은 없듯이, 보석을 보고 뭐야 이 추한 것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예쁜 것을 어떻게 한 차원 더 예쁘게 만들까하는 고민이 들어있다.




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다. 예컨대 철을 이정도로 가공하려면 천도 이상의 온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육안으로는 다 보이지 않아 30배 이상 클로즈업을 했다. 미시경제학처럼, 미생물학처럼, 가격변동 하나, 세포 하나 까지 보는 미시적 시각으로 보아야 주얼리의 가치가 다 보인다.


7.



보석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다시 공부한다. 물질을 기준으로 역사를 재구성해서 공부하는 것도 창의적인 접근방식이다. 영어 공부하기에도 좋은 표현들이 많다.


8. 

소장자가 일본 사람이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세공품도 전시해두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을 시기의 문화이다. 일본이 자포니즘으로 곳곳에 등장한다.


일본의 국립서양미술관 창립자 마츠카타 코지로는 모네와 함께 찍은 사진마저 있다.


이제 우리도 BTS가 스웨덴 공주에게 준 보석, 이런 식으로 22세기 콜렉션에 등장할 날도 오지 않을까?





9.



영어 표현이 아카데믹하고 세련되었다. 

한국어로도 번역투가 느껴지지 않게 신경써서 잘 번역했다.


After the upheavals of the French Revolution 프랑스 혁명 이후

Europeans saw Rome as the pinnacle of civilization 당시 유럽은 고대 로마를 문명의 이상향으로 동경했고

a burgeoning middle class 중산층의 성장


맨 처음 문장은 본 문장의 주어 동사가 19세기는 ~시대였다, 라고 고정된 상황에서

뒤에 with N Ving를 추가 문장으로 부연설명하면서 문장을 합친 문장이다. 라틴어의 ablative absolute에서 유래되었고 문장 두 개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The Korea Times같은 영자신문에 자주보인다. 접속사 없이 두 문장을 붙여서 사용하고, ~해서, ~하되, ~하지만 등 다양하게 해석한다. 여기서는 두 문장을 끊었다.


The 19th century was a time when various jewellery styles coexisted, with Neoclassicism emerging as a dominant trend in the early years.

19세기는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초반에 두드러진 사조는 과거의 영광을 되돌아보는 신고전주의였다.


with Neoclassicism에서 with은 빼고, 신고전주의가 주어고

emerging은 그냥 술어로 해석한다.

신고전주의가 (19세기) 초반에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다.


다시 영어 원문에서 번역하면

19세기는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가 공존하는 시대였고, 신고전주의가 초반에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다.


한국어는 뒷 표현을 조금 더 다듬어서 의역했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초반에 두드러진 사조는 과거의 영광을 되돌아보는 신고전주의였다."라고.




10.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다. 이정도까지 클로즈업을 해야 보인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까 - 금, 은, 에메랄드, 사파이어, 황수정 등등 각기 다른 물성에 대한 이해


어떻게 표현할까, 구부릴까, 음각할까, 팔까, 동그랗게 만들까 - 세공법에 대한 이해


무엇을 표현할까 - 신화, 문학, 문화적 이해


누구에게 주는 것이고 용도는 무엇일까 - 권력제도에 대한 이해


가격은 얼마일까 - 시장과 경제논리(희소성)에 대한 이해


장인은 그저 단순하 생산직이 아니라 인문학과 재료공학을 결합한 크리에이터였고, 그들의 고민에는 사회 다방면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묻어난다.


장인들은 유럽왕가의 인적 재산이고 그들이 만든 물품은 국가적 자산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이오, 반도체, 철강, 조선, 전력통신망 같은 핵심 기술이었다.





11.  중세의 보석은 오늘날의 반도체 집적기술과 같다. 반도체에 스택하듯이, 보석 위에도 레이어를 올려 입체감을 준다.




왼쪽 아래를 보는 두상이 전형적인 상황에서 오른쪽 위를 보는 각도가 특별해보인다.


12.





전시는 단순히 보석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늘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반짝이는 원석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따라 유럽 고대 로마를 지나 중세를 거쳐 아르누보 시대까지 발걸음을 옮기듯 훑으며, 시대별로 보석이 지닌 사회적 기능과 세공 기법의 변천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저 장신구에 그치지 않고, 보석을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한 역사적 흐름이 오롯이 담겨 있다.


펜던트, 반지, 티아라까지 가지각색의 고혹적 보석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눈앞을 수놓는다. 비단 별이 아니라 별들이 흐르는 흔적인 은하수와도 닮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석들은 찰랑찰랑 빛을 머금고, 눈부신 세공품은 마치 속삭이는 별빛처럼 창조자 세공사의 손길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아련하고 성스러운 울림 속에서 나를 둘러싼 시간의 결이 아득해지고, 인간을 넘어선 거대한 뜻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어느새 전시장 안은 보석의 눈부신 향연을 넘어, 거룩한 파도 물결에 휩싸인듯한 황홀함이 온몸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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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 vs. 염지혜 《돌과 밤》

20241205-20250330


1. 중계역과 하계역 사이에 있다. 방문해보면서 어떤 역에서 나가는 것이 빠를까 궁금했는데 하계역이 더 좋은 것 같다. 





2, 우선 타이틀 앞에 등장하는 홍이현숙 작가만 먼저 다룬다.


돌과 밤. 


한국어에 있는 한 글자 어휘의 감각이 좋다. 돌, 불, 밤, 꿈, 봄, 물 등.


홍이현숙작가는 돌을 담당한다.


참고로 돌 석石은 한중일 다 쓰고 다 rock의 의미를 공유하지만, 이름 돌 乭이라는 한자는 한국이 개발한 한자다.


돌 석을 위에 올리고 아래 새 을 乙을 달아 ㄹ의 발음을 넣었다. 발음은 돌이지만 rock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 이름이라는 뜻이다.


안국역 MMCA서울의 <순간이동> 전시 참여 작가 유태경의 VR작품 <시네마틱 스크리닝: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에서 보이는 무성영화의 주인공이 복돌인데 福乭이라고 썼다. 뒤로 가면서 한자가 복돌이라고 한글로도 보이고 섞어서 福돌이라고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글로 돌이라고 하면 사람이름 돌도 되고 광물 돌도 된다는 뜻이고, 사람 이름 돌은 을乙을 돌 석石 아래 붙여 새로운 한자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만약 이 전시 제목인 돌과 밤을 한자로 번역했다가 다시 한글발음으로 옮기면 석과 야 (石과 夜)가 될테다.



3. 작가는 무슨 돌을 말할까?


작가는 '돌을 만지고 본다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장 전체를 양껏 써서 작품을 전시했다. 일본어에는 풍성하고 풍부하게 양껏 사치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贅沢な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제이타쿠한 느낌이 느껴진다. 이 전시장 아니면 이정도의 느낌을 구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공간을 양껏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돌이라는 매체의 적막하고 지배적인 느낌을 전달하는데 적합했다.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프로타쥬한 작품이다. 32분 가량의 작품 메이킹 영상도 있다. 사운드 녹음에서 인수봉에서 자주 들리는, 까마귀의 목구멍 안쪽 깊은 곳에서 소리가 나오는 까악까악 울음과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인수봉 자체의 일부만 땄음에도 전시장에서 보이는 작품은 매우 거대하다. 자연의 웅대함이 느껴진다.



전시장 안에 옮겨오면 이렇게 거대해보이는 작품이 자연 안에서는 얼마나 작은가.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공적 물품의 하찮음이여



4. 전시장 중간에 있는 아미동 비석 마을이라는 거대 영상 작품은 뒷 부분에 숨겨져있는 작가 둘의 녹음을 스크립트와 함께 읽으면 풍부하게 읽혀진다. 작품 앞부분에 있는 일부 대사는 뒷편의 스크립트와 연관성이 있다. 대부분 관객은 그렇게까지 다 보고 들을 여유가 없고, 그냥 휙 둘러보고 나갈 뿐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영상이든 녹음이든 러닝타임 동안 다 지켜보면 훨씬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을 갖고 다 들어보면,  파라스파라 삼받드하, 수 해파리 사바하, 말미잘 말미잘 말미잘이여!를 녹음하는 작가 둘의 음성이 드라이한 사무직의 음성톤과 전문 성우가 아닌 일반인이 스크립트를 기계적이면서 어색하게 읽는 듯한 음성톤의 어떤 중간의 매력이 느껴진다.


솟구친다!! 빠방!!에 기왕 느낌표를 두 개나 넣었는데.. 수슉, 푸와와앙!!이라고 했는데 이런 톤으로.. 꽈르릉 꼬르릉도...






다른 형태의 돌을 아주 꼼꼼하게 관찰하고 영상에 담았다.


퍼포머 히로무 사토의 무브먼트가 참 좋다. 지하 바닥의 거미, 전갈, 쥐의 움직임을 아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스크립트도 잘 썼다. 존재의 목적이라는 한글 자막이 보였는데 들리는 음성에서 아카시(存在の証)라고 들렸다.


보통 存在の目的 손자이노 모쿠테키라고 해도 의미는 통하지만


목적 대신 証(아카시, 증거)라는 보다 일본스럽게 자연스러운 표현을 썼다.




5. 다음 전시장에서 여러 단채널 비디오 영상을 상영하고 있는데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의도로 만든 두 작품씩 병치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것들이 있다. 


그중 두 작품 한 세트로 두 세트가 인상적이다. 


한 세트는 수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돌에 대한 것이다.


먼저 전시 주제인 돌부터.


두 영상 속에서 작가는 돌 부처상을 꼼꼼하게 만지고 본다. "꼼꼼하다"는 표현을 최대한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꽤나 전문적인 락 클라이머로 보이는 작가는 큰 돌부처상을 맨 손으로 만지면서 오른다. 이것이 정말 제대로 돌을 만지는 것!


옆의 작품에서는 돌부처상의 모든 명칭을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묘사하면서 아주 꼼꼼하게 훑는다. 빌 브라이슨 같이 발칙하면서 집요한 느낌이다.


야릇하면서 동시에 매우 테크니컬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정말 돌부처를 사랑하는구나.


작품의 감각과는 상관없는 예시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뒷 부분 어디에서 사람 가죽을 벗기고 가죽 해체 기술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부처 가사 명칭부터 시작해서 두툼한 손에 대한 애정어린 표현까지, 정말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작품을 관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작가에 의해 꼼꼼히 만져지는 우리 돌부처님.


6. 수어 영상은 따로 만들어졌으나 두 개를 병치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좌측은 수어를 9명이 배우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고,


우측은 여호와의 증인 야외 예배에서 수어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의 노트에 동생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고 어머니와 간다고 함께 참여를 권유해서 참석했다고 했다.


일반적인 도슨트 설명에서는 이런 작가의 사적 배경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로 관람객의 흥미를 유도할 것이다.


도슨트를 경유하지 않는 일반적인 관객들은 이게 뭐야? 예배랑 수어네 주제만 하고 넘어갈 것이다. 


둘 다 한계가 있다.


우선, 작가의 사적 배경이 작품 감상에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니까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별 관련 없다. 남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것이다. 


작가의 퍼스널한 부분은 아무럼 어떤가. 남의 뒷담화일 뿐이다.


진지한 관람객은 그러나 굳이 왜 그 기회를 영상으로 작품으로 만드는 수고를 했고, 전체를 롱테이크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을 촬영했으며, 왜 이 두 작품을 병치해서 한 작품으로 구성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동생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말보다 더 흥미로운 작가의 말은 다음에 있다. 이런 부분을 포착하면 작품을 읽을 때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언니는 예술을 믿고 나는 종교를 믿는거야.


그럼 여기서 우리는 저 영상에 보이는 종교적 특성과 예술의 특성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


열광적인, 메시아에 의지하는, 추상적인 것을 말하는, 거대 퍼포먼스를 하는, 권위에 저항하는 듯 하면서 어떤 권위에는 저항하지 않는 등등..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이 작품이 병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비교분석하는 시각적 훈련을 할 수 있다.


작품 안에서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오래 생각해보는 이런 심도 깊은 생각이 우리를 한 걸음 더 지적으로 나은 시민으로 만든다.




작가의 말에서 아티스트로서 어떤 가벼움이 느껴진다. 그들에게도 멋진 부분이 있다. 




좌측과 우측을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별해내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의미와 맥락을 이끌어내는 작문 훈련을 해볼 수 있다. 미국 AP 미술사의 핵심 작문 문제이다. 다음 두 작품을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맥락을 말해보세요.


대상의 공통점

좌측 수어: 닐리리맘보라는 노래와 춤

우측 예배: 기독교 노래와 춤


대상의 차이점

좌측은 지금 막 배운 자유로운 메시지의 가사와 어색하지만 흥겨운 리듬 

우측은 단선적 방식의 춤과 이미 공유되고 학습된 단일한 메시지의 가사


장소의 공통점

전투기 엔진소리가 들리는 공군기지 근처의 수원

상암 월드컵 경기장. 경기와 공연으로 인해 주변 아파트 단지의 민원이 많다

둘 다 소음이 있는 공간이지만


장소의 차이점

좌측은 밖에서 안으로 외부소음이, 원하지 않는 시간, 훈련 일정이 사전 공지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시간대에 불규칙적으로 굉음이 들린다

우측으 안에서 밖으로 소음이 나가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생활에 불편함을 가한다.


연출의 공통점

청각장애의 시선을 담아 경험을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좌측은 닐리리 맘보 노래와 춤을 수어로 배우면서 청각 장애자의 환경에 공감한다.

우측 예배 촬영 카메라는 수어 쓰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는 음소거를 하고 다른 부분을 카메라에 담을 때는 음성을 넣어서

마치 수인들의 시선처럼 연출했다.


그외 생각해볼 점

둘 다 무언가를 배운다. 수어를, 기독교 구원의 메시지를

등장인물 좌측은 나이대가 다른 한국 여성 9명이고 우측은 동남아 등 전세계 각국의 사람 일부를 포함해 대부분 한국인 5만명이다. 이들을 묶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한 장소에 모이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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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 아카이브전

 《세 개의 호: 미래로 항해》

2024-11-28 ~ 2025-03-16





1. 가는 것이 쉽지 않다 청주까지 2시간 청주에서 대청호까지 1시간. 청주 시내에서 문의면 읍내와 시골 동네를 다 통과하고 1000원 내고 공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 갔을 때는 이름이 청주시립대 + 청호 미술관인줄 알았는데, 청주 시립 '대청호' 미술관이다. 크게 맑은 호수다. 



2. 문의면 시골 마을 안쪽 깊숙히. 살풍경한 동네를 거쳐가야한다.



깊은 물인 임수와 해수의 기운을 품고 사람들의 시각에서 숨겨져있다. 무덤의 부장품 마냥. 고요한 적막한 곳. 일부러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은 듯한 느낌의 공간이다. 도시의 분주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숫자상으로는 같은 7시지만 아침의 7시는 특정 시각을 기한으로 어느 지점까지 가야하는 마음으로 조급하고 저녁의 7시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까지 쌓인 여러 남겨진 일들을 쳐내야하는 마음으로 분주하다. 등교 혹은 출근이라는 단일한 지상과제나 투-두-리스트라는 복수의 자잘한 일을 해야하는 주중의 마음을 품고는 한적한 곳에 호젓히 있는 이런 소규모 미술관을 방문하기 어렵다. 


메이저 전시관과 비교했을 때 별 반 볼거리가 없는데 시간과 품을 들여 느슨한 감정과 느릿한 리듬으로 마실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양껏 시간을 사치하기 위해 지방의 어느 소규모 미술관을 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자유로운 소박하지만 풍성한 영혼은 현금 대신 시간을 풍성히 소비하기 때문이다. 버스비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만끽할 수 있는 시골 마을 감상을 겸한 나들이다.





3. 들어가면서 고양이와 인사하고 궁디팡팡 가려운 곳도 긁어주고 집사서비스 제공후 입장. 어째서인지 고양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른다는 걸 느낀다. 무작위의 공간에서 처음 만나는 고양이들도 내게 호의를 보낸다. 


식빵 굽던 냥냥이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






4. 메이저한 전시는 물론이거니와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 박물관 까지 다 가보는 것이 목표다.



3층에서는 청주대, 서원대, 충북대 등 지역 회화과를 나온 현업 작가들이 10년, 20년 전에 이곳에서 전시를 했던 소감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대 홍익대가 아닌 지방 작가로서 고뇌와 회한이 느껴진다. 상급 대학원 진학이나 외국 유학을 통해 학벌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보수적 예술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힘들어서 제주로 떠나 소박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5. 아카이브전을 보면 시대별 변천사가 보인다 각 시대별로 무엇이 화두고 시대정신이었는지 보인다 한국인은 남들이 하는 거 다 따라하고 잘 나간다고 하면 자기 필드에도 적용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 전통이나 관습이나 기존 전시 스케쥴이 중요한 일본에 비해 조금 더 유연하고 대중에 니즈에 빨리 빨리 반영하는 맛이 있다 도쿄나 교토의 전시에서는 서양 불교 하는 식으로 순환하는 것 같은데 비해 한국의 전시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듯 하다 심지어 벽지의 이 소규모 미술관에서조차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6. 작가들은 대청호라는 호수로부터 수몰민이나 생태나 기후변화나 여러 함의를 이끌어내서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7. 아래는 이은영의 사직동(2024)이다. 린넨 위에 목판으로 드로잉했다. 작가는 시적 서사의 시각화를, 평면인 드로잉과 입체인 도자조각으로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평면을 입체로 옮겨오면서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장충동 신라호텔 지하에 조현화랑 서울지점에서 작년 여름에 했던 전시가 생각난다.


아래는 이은영의 4시와 6시 사이의 OO이다.  2023년 작품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을 모티브로 삼아 도자나 점토로 만든 듯하다.


8. 96년 도록에서 도판도 만듦새도 디자인도 폰트까지 모두 그 시절분위기가 난다




다소 영어에 보완점이 있다. Welcoming...  I congratulate.. Today must be the time.. 같은 부분에서 번역투가 느껴진다.


아마 당시에는 세련된 디자인과 폰트였겠지만 시간이 지나자 레트로하게 느껴진다. 


아마 지금 생각하기에 세련된 UX를 자랑하는 SeMA 미술관 인터페이스도 나중에 이렇게 레트로하게 느껴지리라.


 


9. 서양인들의 눈매는 매섭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상위 포식자의 눈처럼 사람을 골똘히 응시한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동양인들은 그 눈길을 피해 도망다닌다. 서양인들의 부리부리한 눈은 딱히 해칠 의도를 품고있지 않다. 그들은 미술관에서 사물을 응시하는 훈련을 받은 것일 뿐이다.


미술가가 자신의 미학을 언어로 유려하게 해설할 수 있다면 조형적 언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미술가는 그저 예술로 말한다. 결과에 가지런히 정련된 노력으로 증명할 뿐이다. 작품의 의도나 맥락을 작가나 비평가처럼 표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지속되는 유명세를 얻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 자체로서 말하고자 할 뿐이다. 관객에게 원하는 것도 작품 자체를 느끼는 것이다. 설명은 해석을 잘 하는 이들에게 아웃소싱하면 그만이다. 


미술사학자는 숭고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미세한 디테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도슨트는 소중하다.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허들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기여한다. 큐레이터는 고귀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작품의 보존과 정리, 전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관객은 역사적 사실이나 작품에 대한 잡다한 설명이나 전시의 기획의도 같은 것이 관람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관객은 심지어 제목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바란 바처럼 어떤 이들은 작품과 자신의 독대를 원한다.


그러한 관객은 작품을 볼 때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가? 작품을 보고 의뭉스럽게 떠오르는 생각, 봄 밤의 흩날리는 따스한 바람 한 줄기 잡아보듯 작품에 대한 스쳐지나가는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작품의 옆에 있는 작가의 말이나 큐레이터의 정형화된 글쓰기는 시각적 분석의 풀이예시다. 이과가 수학문제로 논리적 사고연습을 해야하듯, 창작자도 예술로 시각적 분석 훈련을 해야한다. 수학문제에 풀이와 정답이 있다면 예술작품에는 캡션의 설명이 있다. 그러나 지적 훈련의 예제로서 예술작품에는 정답이 없고 수많은 해석만 있는데, 캡션은 하나의 해석 방식을 제시할 뿐이다. 나도 이렇게 접근해보고 캡션의 접근도 이해하고 내 생각과 비교해보는 그런 생각의 시간을 갖느라 유럽인들이 미술관에서 그렇게 작품 앞에서 오래 있는 것이다. 이과는 정답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만 창작자에게는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냐 아니냐만 중요하다. 이과는 맞다 vs 아니다의 이분법으로 말하지만 창작자는 설득력이 있다 vs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점에서는 설득되고 이런 점에서는 설득되지 않는다의 다중 접근을 취한다.


미국 수능인 AP 미술사에서 채점 기준에 역사적 사실에 얼마나 들어맞느냐에 대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몇 년도 작품이냐를 정확히 모르면 대략 몇 세기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게 설령 약간씩 어긋나도 전체적으로 만점을 받는데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20세기 작품을 선사시대라고 말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전한길 강사가 소리치며 비판한 공무원 한국사 시험 만큼 도표를 달달 외워야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각적 분석을 잘 했는가, 큰 역사적 배경과 의의와 설득력있게 잘 서술 했는가에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고, 선진국 미술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의 형태로 탬플릿화 되어 교육 받기 이전에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관에 자주 다니며 작품을 보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했고, 그 훈련의 결과 매의 눈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미술사 책은 대부분 작품을 누가 만들었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사람과 교류했고 작품을 왜 만들었으며 하는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게 예술을 감상하는 핵심은 아니다.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를 자기의 언어로 말해볼 수 있어야하고, 큐레이터의 캡션을 풀이예제 삼아 자기 생각과 비교해볼 수 있어야하고, 시각적 조형적 요소가 작가의 메시지를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어야한다. 나는 이러한 지적 훈련이 앞으로 백제형 문화 네트워크 제국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진국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탑재하고 있는 '보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원래 의도한, 작품과 관객이 직접 대면하게 하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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