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비슷하다 했다. 비교하려고 찾아보니 같은 작가였구나!


광주 ACC에서 한 신체/장애 테마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가 서울역 모두미술공간에 하고 있다. 길이 폭 너비 모두 2미터에 달하는데 정작 얼굴은 없는 코끼리 설치작품이 있다. 만져볼 수 있게 되어있는 재생 플라스틱 플레이크 부스러기가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문자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시각화한 작품으로 접근성, 장애 테마와 결을 같이 한다.

내가 이런 얼굴 없는 거대 코까리 어디서 봤는데 하고 한참 사진첩을 뒤지다가 작년 10월 학고재 엄정순, 딩이, 시오타 치하루 단체전에서 발견했다. 아이고 근데 같은 엄정순 작가였네.

공교롭게도 실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는 마침 지금 가나아트에서 개인전하고 있다.

코끼리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코를 제거했으나 코끼리 형상을 전달해냄으로써 결핍은 나쁜 것이 아니라 상상력 촉진제라는 점을 시사했으며 방향성 없는 코끼리의 걸음걸이를 통해 이주문제도 연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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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기체가 북촌 안쪽 가고시포, 담, 단정, 충남갤러리가 있던 곳에서 한성대입구역으로 옮겼다. 반디트라소, 성북예술공간 멀리는 유영공간, 성북구립미술관, 문학관, 선잠박물관, 우손갤러리 서울 등이 있는 곳이다.

일월화를 쉰다. 수-토에만 가야한다. 김지용 작가의 그림은 루시안 프로이드를 언뜻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론 뮤익의 할아버지 느낌도 난다. 드로잉을 부식된 청동조각의 질감을 살려 구현한 그림이다.

이런 거친 그림은 미학적으로 매끈한 그림이 아니기에 보통 유년기 트라우마로 손쉽게 설명되곤한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해석의 한 가지 방법이고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아울러 부유한 작가가 끔찍한 그림을, 가난한 작가가 환상적 그림을 그리는 모순적 경향도 어느정도 있으나 그것도 케바케다

그림을 볼 때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하며 작가의 사적배경을 톺아가는 접근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보는 나의 감정에 주목해서 내가 그림과 호젓하니 허물없이 대화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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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스퀘어에 있는 모두 미술 공간에 다녀왔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했던 장애, 접근성 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를 하고 있다. 전시기간에 광주에 갈 예산이 없었는데 서울로 순회를 와줘서 참 다행이다. 이로서 상반기 전국 접근성 전시 4대장을 모두 소화할 수 있게됐다.


부산현대 열 개의 눈

국립현대 기울인 몸

서울시립 말하는 머리들 


전시 인트로에 예술과 몸의 관계를 성찰하는 김원영 작가의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2024)"에서 발췌한 문구가 있다. 이 문구에서 전시제목을 따왔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번역된 영어가 다 따라가지 못해서 아쉽다.

한국어를 타이핑해보면 이렇다. 타이핑할만큼 좋은 문장이고 전시의 핵심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적은 없어도 각자의 몸짓과 말하기 방식, 삶을 향한 독특하고 드문 태도를 나누었다. 계단과 언덕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친구들의 몸은 내 몸에 한곳에 새겨졌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나를 돌본 사람들, 내가 만나고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배우고 무대에 오른 여러 개개인의 몸이 모두 연결되어 내 안에 있었다.

영어는 이렇게 번역됐다.


We who have disabilities may have never learned a foreign language from a native speaker or seen a painting in an art museum, but we have shared our own gestures, forms of speech, and uniquely rare attitudes toward life. The bodies of my friends who pushed my wheelchair around my hilly, stair-ridden high school remain engraved as part of my body. As long as we live with a body, our bodies will always be embedded with those of specific others. 


As it turned out, the bodies of the many individuals whom I had met, who had taken care of me, helped me, studied with me, and stood on stage with me all remained connected within me.

매우 어색한 느낌이다. 특히 핵심문구인 "계단과 언덕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친구들의 몸은 내 몸에 한곳에 새겨졌다"에서

고등학교 자체를 힐리, 스테얼 리든이라고 한 부분과 새겨져 있다를 리메인 인그레브드라고 한게 어색하다.

대안은 깔끔하게 이렇게 쓰는 것인데

My friends pushed my wheelchair through the stairs and hills of high school. Their presence carved itself into my body.

이럼 서정적 느낌이 다 깎여 영양소가 탈곡된 낱알처럼 됐다.


차라리 b와 s의 두음 라임을 사리고 약간 더 의역해보자

In the stairwells and slopes of high school life, the bodies of my friends who pushed my wheelchair left their weight inside mine, like a memory that breathes beneath the skin.

아니면 인그레이브드 대신 임베디드가 좋고 끝없는 계단을 강조해보자 이렇게

Through the steep climbs and endless stairs of high school, their hands pushed me forward—until their touch became part of me, embedded in muscle and memory.

개인적으로는 더 단어를 넣고 싶다

their strength, their rhythm, their patience all etched into how I move


새겨졌다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인거다

written into me, like a second spine of memory도 왠지 좋을 것 같다 생각해본다

아울러, 전시제목과 연관되어 특히 중요한 문구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도 바꿔보자

그냥 간결하게 원어민이 말하듯이 내용을 전달하자면

As long as we live in bodies, they will never be ours alone. Others live in them, too 같은 느낌이다. 굳이 임베디드 안 써도 된다.

하지만 살리고 싶다면 링거링이 좋을 것 같다 아까 바로 윗 문장에서 써서 그런게 아니라 주어랑 잘 안 맞기 때문이다. 기억은 임베디드될 수 있는데 몸이 바로 구체적인 타인의 몸에 임베디드된다는 건 좀 어색하다.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리메인 대신 링거링을 써서 호흡을 끊고 부연설명으로 셰이핑과 에스 두음을 살려 스탠드와 스피크를 일상적인 행위로 써보자. 난 이렇게 해도 좋을 거 같다

So long as we move through the world in a body, we are never moving alone; others linger in us, quietly shaping the way we stand and speak.

그치만 약간 철학적인 느낌은 빠졌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언어로 체언에 임팩트를 주는 것을 좋아하니 팔림세스트라는 단어를 써보면 어떨까

원래 써 있는 글을 지우고 다시 쓴 필사본 문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 몸에 원래 기억과 이분법적 생각을 지우고 장애와 신체와 접근성을


포함해 삶을 다시 쓰자는 의미가 있다. 옛날 기억과 다시 쓴 기억이 모두 포함된 다층적인 문서로서 팔림세스트가 전시의 의미를 잘 표현할 것 같다. 한국어는 술어중심이라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라는 표현이 맞고 영어는 명사중심이니까 각 언어에 맞는 표현방법을 써야지 직역하면 문화적 문맥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A body is never just one person’s—it is a palimpsest, layered with the traces of those who have walked beside it.

물론 너무 비유적이고 철학적이어서 그냥 다시 톤다운하되 원래 보다는 함축적으로 써볼까..

To live in a body is to carry the presence of others—always specific, always intimate—within its very shape.

각 언어로 된 전시 인트로를 다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니까 3시간씩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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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대부분 색채연구라는 제목으로 레진을 듬뿍 쓴 쫀쫀해 보이는 바탕에 색면추상을 시도한 작품이다. 서사보다는 서정, 혹은 물성실험에 가까운 작업이다. 일견 화학자의 수행적, 반복적 작업같기도, 색채연구가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려는 구도적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촉각성같은 글로벌 담론으로 승화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질감 자체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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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에 있는 화인페이퍼 갤러리에 다녀왔다.
지난 4월에 끝난 정정하 작가의 전시다.
정정하 작가는 서양화과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수료하고 페인트 가게에서 조색사로 일하면서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시설명에 적혀있던 것이 기억난다. 생계를 유지하며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멋진 작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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