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은 참 큰 곳이다. 시의 모양새가 서울을 닮아 특이하다. 수원역에 가서 수원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여의도만 간 사람이 서울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크디큰 수원 전역에 수원시립미술관은 행궁본관, 북수원, 만석전시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네 군데 걸쳐있다.
그중 북수원이 가장 가기 어렵고 광교는 신분당선 강남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 근처 인디시네마가 싸고 좋다고 홍보했는 홍탕의 추천으로 호주의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 달팽이의 회고록을 본 날에 겸사겸사 옆에 있는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 들렀다.
컨벤션 센터 같은 큰 건물의 지하 한 층에 전시공간이 있다. 마치 양주장욱진/민복진조각미술관이나 양구박수근의 홍이현숙전처럼 전시를 자주 교체 안하고 한 해 내내 하는 듯하다.
2025 아워세트:김홍석×박길종 (3월 25일에서 10월 12일까지)

김홍석의 풍선 청동 조각도 특이하지만 레진, 스펀지 등으로 만든 동물 탈을 쓴 사람크기 인형이 눈에 띈다.






서울역이나 인천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처럼 널부러진 이 인형들 앞에 있는 팻말에 각기 사연이 적혀있다. 경비원 휴학생 노동자 망명자 무용가 등이다.
사회적 가시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형상화한 서발턴이다. 그런데 일당 금액 대신 기부, 표현 기법 혁신, 일자리 요청, 도움의 정중한 거부 등에는 저마다의 긍지가 보인다.
동물 마스크에 주목해보자. 외모 피부색(인종) 피부빛깔(물광피부와 재력) 학력 같은 외부의 낙인을 가려내는 동물 마스크는 인간의 자리와 사회적 조건을 지워버린다. 덕분에 관객은 개별적 타자가 아닌 구조적 주변인의 자리를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얘는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사는거야, 얘는 무용수인데 안 예쁘네 등등 외모 품평을 넘어 사연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동물 마스크의 사용은 역설적이다. 인종, 계급, 나이, 젠더의 차이를 지우기 위해 더 비인간적인 얼굴을 씌우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탈각시키며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기에 역설적이다.
또한 한국이라는 문화적 맥락을 감안할 때 퍼포먼스하는 인형 군상은 특이하다. 한국은 인형을 감상하는 문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웃나라 일본은 키메코미 인형, 히나 인형, 네츠케 등 기법별로 세분화된 인형장인의 전통이 있으며, 국립박물관에서도 독립 전시 코너가 있을 정도로 축적된 미적 전통이 있다. 쿨저팬을 견인하는 현대 망가 피규어 산업 역시 인형 제작이라는 장인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 것이다. <그 비스크돌은 사랑한다>와 같이 최근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만화와 이에 기반한 넷플 애니도 인형 장인이 주인공일정도로 대중문화에서도 친숙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인형을 애들 놀이감이나 장례 부장품(꼭두) 정도로만 대했다. 일본과는 달리 인형을 예술적, 사회적 매개체로 보는 감상 문화 자체가 얇다는 뜻이다.
딱히 이슬람처럼 종교 교리로 재현이 금지된 것도, 비잔틴처럼 성상파괴운동이 있던 것도 아닌데 사람 모양을 닮게 만드는 실물 크기의 모형에 대한 감상 기반이 없다시피 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홍종의 작업은 인형 감상이 결핍된 미적 전통 속에서 전혀 새로운 감각을 구축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문화적 결핍의 전략화, 블루오션 개척, 니시마켓 개발인 것이다. 일본처럼 인형 전통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기반이 없는 한국에서 인형이 예술적 사유의 장치로 제시된 것은 이례적이며 부재의 전통을 새로운 미학으로 바꿔낸 실험으로서 인형이 각기 위트있게 현대한국사회의 서발턴을 대리한다는 점에서 국제갤러리 컬렉션에 포함될만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