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갤러리 LVS 전원근전과 삼청 초이앤초이 조니아브람스전과 갤러리신라 니콜라스 카르동에서 다녀와서 생각했다.


이제 색면추상의 시대도 곧 저물고 있다고. 세 작가의 작품은 좋았다. 


그러나 색면추상관련 전시가 너무 많다.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만 해도 색면추상전만 30회 이상 봤다.


대형 캔버스에 단색이나 몇 가지 면만 나뉜 작업들은 제작 난이도나 시간 대비 효율이 높아 작업속도도 빠르고, 


별다른 미술사 지식이 필요없어서 미술시장 입문자나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색면추상회화만 자주 보이면 식상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는다. 


자연스럽게 학벌, 네임밸류, 레지던시 이력이 좋은 상위 몇 명만 살아남는 고급화가 일어나고 중간층 이하의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든 시장의 법칙 그렇다.


색면추상이 질린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다시금 레트로와 리바이벌로 눈을 돌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향이 가능할까?


나는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될 거라고 본다


색면추상은 본질적으로 명상적이다. 정신적이고 절제된 미학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게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이제 관객은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림 옆을 걷고 지나간다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 색면추상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철학적 함의와 종교적 정신성을 극도로 높인, 이미 명성있는 일부만 그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새로 진입해서 영토를 확장하기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넥스트 흐름은 반대 극점에서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찾을 것이다.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것은 무엇이냐?


색면추상에는 다섯 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사', '장식디테일' '디지털' '과거와 그리움' '이머시브'



1) 서사: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음,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

→대안: 강한 내러티브, 역사와 신화적 구조


2) 장식성/디테일: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

→대안: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묘사 회귀


3) 디지털/기술성: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

→대안: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


4) 기억, 향수 :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 역사성 없음

→대안: 과거 체험, 촉각적 기억 복원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 유지

→대안: 몰입형 감각, 관람자 참여 유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것이다.


1) 서사 중심 회화의 복귀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다.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한다. 미니멀한 색감에서 은은한 배어나오는 감정의 절제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반대급부에서 단순히 감각적인 색면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찾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러티브가 강하다면 역사와 신화의 구조를 차용하면 좋다.


화이트큐브의 알렉스 카버도 중세 연옥 신화에서 따와 평면 안에 여러 이야기가 보인다.


OCI 김피리도 서사가 있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한국근대화에서는 박생광 같은 작품이다.


고전 회화, 민속화, 종교화의 아이콘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동양화의 설화와 연희성을 복원하면 좋겠다.


2) 화려한 장식, 극단적으로 세밀한 디테일을 추구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시킨 색면이 위주다.


반대 급부로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한 묘사로 회귀해 단위면적당 정보량을 높일 수 있다.


매우 화려하거나 세밀한 묘사가 들어간 회화나 공예다.


예를 들어 롯데뮤지엄에서 했던 주얼리전이나 푸투라서울에서 했던 불가리전이 생각난다.


동양화 쪽에선 MMCA 덕수궁에서 했던 정밀한 한국근현대사 자수가 적절한 예시다. 한벽원 미술관에 많이 한다. 


과도하게 장식적인 일러스트도 좋겠다.


3) 디지털과 기술성을 혁신적 복원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이었다. 물론 이 재료와 질감을 차별화하기 위해 색면추상 출품 작가마다 다르게 했다. 위에 언급했던 갤러리 신라의 니콜라 차르동은 엄마가 정리해준 침대 위 이불보처럼 약간 삐뚤한 선이 특징이도 하다. 작가마다 어떻게 마티에르감을 줄것인지, 어떻게 선을 처리할 것인지 다르다. 예술의 전당 크루즈 디아즈전에서처럼 착시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삼청 학고재 장승택전이나 성북 아트스페이스H 용환천에서도 그런 선이 보이고, 색면추상은 아니지만 압구정 코리아나C미술관 합성열병에서도 픽셀단위로 그런 착시 선이 보인다. 



반대급부로 대안은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하는 것인데 그냥 도입하는 게 아니라


포스트-디지털 레트로감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반이지만 감성은 아날로그인 예로는 VHS 미학, CRT 모니터 그래픽, 도트화, 윈도우 95 UX 기반 미술 등이 있다.


가장 좋은 예시는 북촌 갤러리 도로시의 성태진 개인전이었다. 아케이드 게임으로 회화를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이전에 갤러리 스탠 등에서 NFT 관련 젊은 작가 전시를 했으나 그런 방식은 아니다. 


NFT는 지금 많이 시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비주얼 언어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를 백남준처럼 복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 현대 백남준 소장품




4) 기억, 향수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한다. 과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성이 없다.


대안은 과거를 추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넷플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시청자층은 당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동경이 시청 동기다. 


기억과 향수를 테마로 삼아 촉각적 기억 복원하면 좋겠다.


1990년대 방 구조, 학교 급식판, 낡은 선풍기 등, 개인의 과거 경험을 극도로 섬세하게 복원한 작업들이 생각난다.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 비근한 예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봉준호가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의 말)


설치예술작가는 폐교된 전남 경북의 학교를 임대해 설치예술로 만들어봐도 좋겠다.


촉각에 기반한 향수(haptic memory-촉각기억)를 자극하는 감각 기반 미술이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향은 컨트롤이 어렵다. 아르코의 오도라마전은 향이 정교하게 전달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이 있다. 조각도 아닌데 약간의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친근하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럼 반대항으로 아트+테크노 오페라 스타일을 합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몰입형 감각을 제공하고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박물관에 이머시브 디지털 전시는 얼마든지 있고 관객이 직접 그려서 전시하게 하거나 병풍을 접어서 굿즈로 주는 등 참여유도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내 말은 실재 공간과 가상공간, 미디어아트, AI, 연극적 설치가 복합된 연극적인 예술의 형태다. 탈춤, 사물놀이 등 연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가장 각광받을 수 있다.


이머시브하면 우리에게 빛의 벙커도 있고 일본에 팀랩도 생각나는데 다 거대한 공간을 기반으로 산책형 구조다.


4+5를 합쳐 MMCA 순간이동과 작가상에서 했던 구하윤의 VR이 좋은 예시다. 경성 구보씨의 일일도 괜찮다.


하지만 VR기기 하나를 착용한 1:1 체험이 아니라 좀 더 서사적이고 감정적인 감성극 대중 공연 스타일로 발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색면추상이 추구한 미니멀한 형식미의 반대항의 모든 것, 즉, 감정, 기억, 서사, 장식, 디테일, 기술의 결합이 앞으로의 예술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본다. 


색면추상의 해석 없는 시각적 압박에 지친 자들에게 읽고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미술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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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 다녀왔다


무슨 화장이지? 장례인가? 화정박물관과 뭐가 다르지? 원래 영화도 트레일러 안 보고 보는 지라 아무 생각 없이 갔다. 화장은 코스메틱스였다.


화장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상고, 삼국, 신라, 고려, 조서, 근대의 역사를 두드리며 건넌다. 주로 옛 화장용품 보관용 작은 도자기류를 전시하고 있었고 윗층은 옛 포장지인 보자기 특별전이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팥가루와 녹두가루로 손을 씻었다는데 실제로 화장실에도 비치되어있었다. 당연히 현대 비누가 낫지만 특이한 경험이다. 가루의 사용으로 인해 6층에서 내려가는 하수관이 막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김기창의 그림에 거울 보는 여인이 있고 옛 그림에 표현된 여자 눈썹표현이 재밌다. 


실제 은장도를 보니 너무 작아서 위급상황에 호신용 전기충격기처럼 남을 찌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은장도로 자결하거나 치한을 공격하는 클리셰가 픽션에 많다)


근현대사 공부할 때 교과서에 나온 박가분도 보인다.





큰 도자기 안에 작은 도자기 합 여러 개를 보관하는 러시아 마트로슈카 인형같은 도자기가 있다. 기초화장용, 파우더용 등 각기 다른 기능 분가루를 각기 다른 합에 보관하고 이것들을 큰 합 안에 넣은 것이다. 이름은 청자상감 모자합. 영어로는 상감inlaid 청자celadon을 살리고 모자(엄마자식 母子)를 빼고 화장 케이스 cosmetic cases를 넣어 의미를 명확히 전달했다. 원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해야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정보와 뉘앙스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어미모 자식자로 모자합이라고 했을 때는 엄마가 자식을 품듯 큰 도자기가 작은 도자기 여럿을 너른 가슴에 품는 느낌이다. 일본어에는 닭고기와 달걀을 넣어 먹는 오야꼬동이 있는데 그 한자는 친자親子+덮밥丼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끔찍하다.


끔찍한 생각말고 좋은 생각 착한 생각 해보자 심호흡하고! 가장 흥미로웠더 부분은 코리아나 화장품회사의 1분짜리 광고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는 것이었다.


채시라가 92년부터 06년까지 15년 전속모델이었다. 이후 전지현, 정우성, 김민희, 비, 이연희, 김민정, 김남주, 한혜진, 서인영 등으로 모델이 바뀐다. 


확실히 채시라는 코리아나의 대표간판격이었고, 지금 50대 이상 여성인구의 장기기억에 잘 남아있을 것이다.


광고를 시계열적으로 보면 미의 기준의 변화에 따른 사회변화가 보인다. 광고는 해당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 시각적 메시지이다. 광고의 변천은 사회문화의 변화를 읽는 것과 같다.


초기 광고에선 화장품을 쓰는 채시라의 아름다움을 광고했다. 94년까지는 프랑스어 노래도 들리고 외국인도 보이고 마치 디즈니 판타지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세계를 강조했다. 정보보다는 이미지를 전달한 것이다.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화장시간이 매일 일상생활의 루틴으로 들어오고 화장품의 가짓 수도 많아지자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낫다는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라이벌 회사와의 차별화된 브랜딩도 보인다.


채시라도 세월을 어쩌지 못해 늙어가며 젊은 여배우를 기용한다. 그러나 투트랙으로 채시라는 중장년여성위주를 타겟팅한 화장품 광고용 이미지로 쓰인다. 그러다가 05년을 지나 채시라가 사라진다. (박물관 광고영상 내에 한정)


00년 밀레니얼 세대이후로 얼굴이 서구적이고 스타일은 당돌해진다. 자기 PR과 아이덴티티에 주목한다. 그 이전 세대가 조선적이고 순응적으로 보일 정도다. 




정우성이 화장품 모델로 나왔을 때는 아마 논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화장품광고를 했으니까.  젊은 남성을 새로운 소비집단으로 유치하고자하는 목표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아름답고 잘생기다고 여기는가, 에 그 사회문화적 특성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인미남은 빠르게 촌스러워진다.

헤어스타일, 화장법, 패션 모두 내년이면 달라진다.

벚꽃은 매년 같은 옷을 입어도 아름다운데 사람은 유행따라 매년 다르게 입지 않으면 후줄그레해보인다.


화장법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과 바르는 순서가 한국과 외국에서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한국인이 외국에 유학하면 다른 화장법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유투버로 유명한 원지는 여성으로서 차별화를 위해 해외 각국 여행시 거금을 들여 뷰티샵에서 메이컵을 받는다고 한다. 세계마블편에 오드리햅번처럼 해달라고 했더니 너무 진하게 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매우 만족하지만 동양인 원지는 모르겠다 어색하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각국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covk6_m3RXo


아름다워 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하지만 '어떻게' 아름다워질 것인가? 는 사람마다 세대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기의는 같은데 기표는 다르다. 시스템과 프레임은 같은데 안의 내용물과 콘텐츠가 다르다. 따라서 뷰티업계는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가장 장시간 화장품 모델을 해서 기네스북에 올라간 채시라와 함께 코리아나는 길었던 호황기를 지나 05년 후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가 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단위로 모델이 자주 교체된다. 이 시기는 아마 글로벌시장 정복에 성공하 아모레퍼시픽에게 밀리는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리아나는 머드팩, 한방화장품 등 신토불이를 기수 삼아 90년대를 호령했지만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분명 진입이 늦어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부족한 기업이 기존 업계의 강자을 누르고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늦게 시작한 자가 굴러들어와 박힌 돌을 어떻게 빼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기업의 잘못일까? 기존에 승리했던 전략을 고수하면서 기술을 정밀화, 자동화하고 더 많은 유통망을 장악하는게 나쁜 것일까? 원래 내 제품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른 제품 좋아하는 걸 배신이라고 여겨야할까? 떠나는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왜 한 기업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걸까?


우리는 니시마켓과 블루오션을 파악하는 영민한 통찰력 그리고 혁신과 트렌드 선도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말한다.

금메달을 빼앗기지 않으며 방어전에 성공하는 챔피언의 지속력과 인내심 그리고 불안함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고 우리가 알던 자유주의 세계화시대가 저물어 각국이 벽을 쌓는 중세시대가 되면

어쩌면 코리아나도 재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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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lazymike.art/exhibitions


삼청 레이지마이크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뒷편 ㄱ자형 골목에 위치. 건물의 1층은 페레스, 2층은 디아, 3층은 레이지마이크다. 레이지마이크는 라트비아 기반 화랑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슬라브, 동유럽쪽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지금은 세르비아 출신 필립 미라조비치의 검은 대리석 질감으로 그리 얼굴 없는 인물회화를 볼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선 모스크바 출신 예브게니야 두드니코바의 낭만적 초현실주의 회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일견 지금 탕에서 하고 있는 엘렌 샤이들린과 비슷한 감성과 화풍이다. 대략 하늘하늘 부드러운 버전의 샤갈+무하 조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레이지마이크: https://www.instagram.com/lazymike.art/

예브게니야 두드니코바 : https://www.saatchiart.com/evgeniyadudnikova?srsltid=AfmBOopzlhEDN0tZAlqRs3EGA0jKaoYviu71AKrzzZJcQB-aOVg7KXX6

엘린 샤이들린: https://www.tangcontemporary.com/2025-sheidlin-unconditional



Filip Mirazović <Homo Mundus Minor> 2025, Oil on linen, 132 x 83 cm




Filip Mirazović <The Magician> 2025, Oil on linen, 132 x 83 cm



필립 미라조비치의 작품은 일관되게 얼굴 없는 인간형상의 조형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옷을 걸치지 않은 누드지만 알몸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피부가 대리석처럼 무기질적으로 표현되어 사람의 형태를 입었으되 유기체의 생명성보다는 조각의 물질성이 더 부각되어  돌의 표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부의 감성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인물들의 정지된 듯한 동작과 생명 없는 껍데기로서 피부질감이 합쳐져 오늘날 인류가 겪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기억의 퇴색을 시사할 수도 있다.


작품의 레퍼런스는 여럿 보인다. 링컨 이미지에서 많이 보이는 19세기 미국의 탑 햇(높은 모자)를 쓰고 있거나, 그리스로마 조각의 콘트라포스토를 취하거나, 천지창조 하나(느)님 아버지의 손짓의 끝부분과 같은 르네상스 종교회화가 보인다. 화면의 구성은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이며 초상화의 인물은 직립해 있고 왼쪽 다리에 체중을 두고 상반신을 오른쪽으로 비틀며 시선은 우측하단을 향해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정형적 인체비율을 따르는 이상적 몸과 근육이다. 빛은 인물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거나 일부를 희미하게 지워내는데 시간의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듯하다. 너무 매끈한 표면이 풍화와 같은 시간에 의한 침식을 지워낸다. 고전주의풍 조각의 모습은 한쪽 어깨를 내려앉히고 몸의 무게중심을 대각선으로 분배해 자연스러운 운동감을 포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움직임이 정지된 순간, 즉 동작과 정지 사이 어딘가의 비정상성을 드러낸다. 영원과 불안정이라는 두 감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데 키리코의 작풍도 떠오른다. 전통적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물들은 대부분 화면 중앙에 고립되어 있으며 배경은 흐릿하거나 추상적이어서 초현실적 감각을 준다. 배경과 인물 간 공간적 깊이를 만들지 않아 인물을 마치 무중력 공간이나 몽환적 무대 위에 나른나른하게 부유시킨다.


도쿄도미술관에서 했던 데키리코전

https://dechirico.exhibit.jp/




아래 그림은 전근대 회화의 관습적 구성과 배치를 뒤집었다. 전근대회화에서는 남성이 지배적인 위치로 보통 시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여성이 피지배적인 위치로 남성 시선 아래에 있다. 필립 미라조비치는 다른 작품에서는 없는 여성의 젖가슴을 그려서 일부러 여성임을 강조했다. 그리스로마,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화풍과 구도인데 여성이 위에 있고 남성이 아래에 있다. 재밌는 전복이다.



Filip Mirazović <Solace> 2025, Oil on linen, 141x 160 cm



동양의 서울에서 하는 전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작가가 관심있는지 모르지만


금박의 용 장식도 넣었다. 하이힐에도 넣었다. 나름 정교하게 모사하려 하엿다.


서양은 드래곤, 동양은 용이고 서로 생물종도, 상징적 의미도 다르다. 동양의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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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론뮤익전에서 왜 우리는 감동을 느끼는가?


명상적이고 성찰적인 색면추상 회화로 가득했던 이강소전이 자기 독백적인 모노톤 소설이라면 


론뮤익전은 다층적 시각을 보여주는 연출방식이기에 관객들은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같은 사소설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기독백적 내레이션, 멀리 나아가서는 수학자 이윤하가 쓴 <나인 폭스 갬빗>처럼 마치 한 캐릭터의 보이스톤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비슷한 색감, 비슷한 작품의 크기, 위치와 동일한 시선높이 등. 한 테마에 몰입하기에는 좋지만 다채롭다고 느껴지는 않는다. 색감이 아니라 관객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그래서 다양한 레이어와 타이밍과 표현방식을 구사하는 이머시브 전시가 각광을 받는다.


그런데 디지털 스크린으로 연희문화적 한국인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머시브 전시가 아닌데도 론 뮤익전의 티켓은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환호하게 하는가? 다양한 관객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동선과 시선적인 측면에서도, 메시지 측면에서도 다양한 해석을 낳는 다층적 구조를 띠고 있다.


론 뮤익전에서 사람들은 걸리버 여행기의 릴리풋 소인의 시점으로 보았다가(누워있는 거대한 여인)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토끼굴 속으로, 즉 6전시실 계단 지하로 들어간다



우리가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소인국 릴리풋 인간들이 걸리버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가듯 관객도 국립현대미술관 6전시실 지하계단으로 홀리듯 내려간다. 6전시실까지 안 가고 집에 가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앨리스 사진 출처 : https://www.lookandlearn.com/history-images/A008091/Alice-in-Wonderland-by-Lewis-Carroll


그 토끼굴에는 두 개 합쳐 1시간 분량 론 뮤익의 작업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영상에서는 마치 루시안 프로이드가 살점을 그리는 것처럼 점토로 얼굴살을 제대로 표현하기위해 이리저리 시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Lucian Freud 사진 출처 : https://www.wikiart.org/en/lucian-freud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관객들의 시선도, 저 멀리 바다 끝을 응시하는 나룻배 위 알몸의 남자도, 관객과 독대하는 거대한 론 뮤익의 자화두상도 모두 카라바죠가 그린 도마의 불신에서처럼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그득하다.


전시를 오기 전 SNS를 보는 우리의 표정도, 전시에 와서 짓는 우리의 표정도, 조각의 표정도 

모두 예수의 부활을 믿기 힘들어하는 도마의 표정을 닮았다.


카라바죠, 도마의 불신 incredulity of Thomas, 1602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e_Incredulity_of_Saint_Thomas_(Caravaggio)


유럽회화에서 해골의 의미는 선명하다. 마지막 전시장에서, 이름 모를 죽음이 있었을 법한 옛 보안사 건물터에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의 같은 공간에서 7m 높이에서부터 굴러 떨어지는 거대한 해골 더미와 함께 전시를 끝맺는다.


일견 론 뮤익전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그의 수도승과 같은 작업루틴과 완성되어 놓여진 정적 조각은 말을 건내지 않는다. 그러나 전시에서는 온갖 다층적 보이스가 난무한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처럼 독자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통해 풍자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관객이 표면적인 이야기와 더 깊은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사회적 풍자가 있냐고? 소녀의 손을 뒤에서 꽉 쥔 소년조각이나 자신에게 존재를 완전히 의탁한 베이비를 품에 안은채 무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서 문화적, 철학적 함의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읽어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뒷모습 디테일



Ron Mueck. Young Couple, 2013. Mixed media, 89 x 43 x 23 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Hauser & Wirth. Photograph: Isabella Matheus.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Mixed media, 113 x 46 x 30 cm. Collection: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Photograph: Isabella Matheus.
















바흐찐의 말마따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목소리가 서로 충돌하고 얽히는 다층성(다성성 폴리포니)이 읽힌다. 작품의 사이즈도 그렇고, 사이즈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형되는 관객의 시선과 위치도 그렇고, 지하굴로 들어갔다가 죽음을 만나는 동선도 그렇고,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렇게 층층이 쌓인 여러 보이스가 상상력을 자극해 고작 30여 남짓 적은 수의 그냥 사람 조각일 뿐인데도 우리로 하여금 신기진기한 묘한 경험, 걸리버와 앨리스와 카라바죠와 루시안을 한꺼번에 모듬세트로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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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opac.net/news/2327-tom-sachs-space-program-infinity-dongdaemun-design-plaza-ddp/


DDP에서 톰 삭스 전을 하고 있다. 2만원은 조금 아깝고 얼리버드로 만6천원, 현대카드추가할인으로 만2천원이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도쿄에 21_21 디자인인사이트가 있다면 서울에는 DDP가 있다. 회화과 학생이 서양미술을 보러가고 동양화, 도예과 학생이 국중박을 간다면 시디과, 산디과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바로 DDP다. 패션, 섬유 등 물질문화 전반에 대한 디자인 레퍼런스를 얻기 좋다. 많은 배움이 된다.

다음은 단상이다.

1. 미국의 우주에 대한 문화적 애착을 이해해야 이 전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인에게 우주는 거대한 미개척지로 17세기 신대륙 정복(Age of Exploration 탐험의 시대와 Colonial America식민지 아메리카)와 서부개척(American Westward Expansion))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전통의 계보를 잇는 집단적 낭만이다. 역사와 함께 태동해 정치외교, 사회문화를 통해 더 강화된 상상계다. 냉전시대 우주경쟁에서 발아해 아폴로 달탐사, 스타트렉, 스타워즈, 스탠리큐브릭의 오딧세이 등 스페이스 픽션, 최근에는 스페이스X와 머스크가 쏘아올린 작은 공, 곧 화성식민지까지.


유투브에는 현대카드 컬쳐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제작한 톰 삭스의 약 7시간 분량의 라이브 발사 재현 영상까지 올라와있다.

사진 캡쳐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VxXrEkeWkY0


한국인들은 보다가 끄거나 2배속으로 보겠지만,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다 본다. 놀라운 일이다. 일본인이 프랑스를 낭만적으로 그린 베르사유의 장미를 스킵하지 않는 것과, 한국인이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의 대사 하나하나 곱씹는 것과 일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우주라는 상상적 세계가 미국인의 문화적 영역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저 멀리 영겁의 허적과 흑암의 블랙홀을 겨냥해 인류가 쏘아올리는 거대한 기계문명의 정수, 로켓이 미국인 마음의 레짐을 거버넌스하고 있다.

2.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패권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20세기 중반 소련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우주 탐사를 국가적 아젠다로 삼았고 달 착륙 성공은 과학기술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신화화되었다. 톰 삭스는 이러한 한마음 꿈을 수용하면서 직접 제작(두잇열셀f)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공통의 몽상을 해체한다. 어떻게 해체하는가, 실제 NASA 미션은 정밀성과 완벽을 추구하지만, 이를 예술의 영역에서 재현한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잭 다니엘스 위스키르 알코올 연료로 사용하고 작품에 수공의 흔적을 남기며 서툴고 불완전한 임시방편적 구조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비판하고 실패와 불완전성 속에서 인간성을 탐구한다. 미국적 우주 신화를 향한 헌사이자 동시에 풍자인 셈. 현대문명의 욕망과 한계를 반영하는 예술적 고찰이다.


3. 미국인의 DIY 문화는 무엇이냐. 두잇열셀f, Do-It-Yourself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DIY문화는 자기 집에서 필요한 것은 직접 제작해서 쓴다는 문화이다. 미국의 개척시대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생존 능력을 중시한 미국인은 개인주의와 자조(스스로 도움, 自助, self-help) 이념과 맞물려 미국적 문화적 기질로 자리잡았다. 자기 문제는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mind your own business, 네 일이나 신경써! 이다. 의료보험이 비싼 미국에서는 드럭스토어에는 일반 약품뿐 아니라 수술세트도 파는데 심지어 수술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수술 DIY키트가 상품성이 있다. 코맥 매카시의 2005년작을 기반으로 코엔 형제 감독이 연출하고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안톤쉬거는 총상을 스스로 치료한다. 진정한 자조의 예시다.


일견 미국은 온갖 소비문화의 산실 같으나 히피와 같이 주류문화에 반기를 드는 혁명적 정신도 맥이 살아있어 DIY는 대량생산품에 대한 저항, 주류브랜드의 천편일률적인 상품에 대한 반감, 창의적 자아실현, 미국적 개인주의와 독립성의 상징으로 지속되었다. 20세기 중후반, 반체제 운동과 서브컬처의 확산 속에서 DIY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대기업 시스템에 대한 개인적 대안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톰 삭스는 이러한 미국적 DIY 전통을 현대적 우주 신화와 결합해 기술 숭배를 해체하고 인간적 결핍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니 톰 삭스의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이 DIY를 통해 표현해온 자유, 독립, 그리고 체제에 대한 은밀한 불신을 읽어내야 한다. 톰 삭스의 우주선은 완벽을 지향하는 기술문명의 상징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하고 다시 조립하는 인간 존재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4. 만들고자 하는 픽션을 미니어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전에 대만 북사미술관에서 본 <전투의 도시 포르모사>가 생각난다. 이전 포스팅 링크은 여기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241814


이런 미니어쳐 전시에 대한 공식 해설을 번역하면 이렇다.

출처: http://www.gncmedia.com/en/exhibition/tom-sachs-space-program-infinity


An artist who reinterprets the world with handcrafted precision, Tom Sachs

Born and based in New York City, Tom Sachs is renowned for his intricate bricolage sculptures and immersive, singular worlds. Using his studio’s standard materials like plywood, foamcore, cardboard, tape and resin, Sachs meticulously recontextualizes iconic and everyday objects, from Mars rovers to teacups, to make inimitable and unforgettable works of art. His Space Programs enable viewers to experience the visceral thrill of exploring the vastness of space while venturing into a transcendental and self-reflective realm.


수공예의 정밀함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예술가, 톰 삭스

뉴욕시에서 태어나고 거주하는 톰 삭스는 정교한 브리콜라주 조각과 몰입감 넘치는 독특한 세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표준 재료인 합판, 폼코어, 판지, 테이프, 레진 등을 활용하여, 화성 탐사 로버에서 찻잔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이고 일상적인 물체들을 세심하게 재구성하여 독창적이고 잊을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우주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우주의 광활함을 탐험하는 본능적인 스릴을 경험하게 하면서 동시에 초월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영역으로의 여행을 제공합니다.





전체 화면 사진 캡쳐 출처 : http://www.gncmedia.com/en/exhibition/tom-sachs-space-program-infinity


5. 오사카 엑스포의 미국관에서도 우주에 관한 대대적 홍보를 하고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360도 전면 영상에서 보여지는 로켓 발사 장면에 감동한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환경, 기후위기와 연관짓고 미국이 아닌 인류의 아젠다로 확장하는 화술이 솜씨가 대단하다. 미국관과 자웅을 다투는 일본관도 우주선에 탑승한 민간임 입장에서 건담이 보호하는 식으로 우주 테마를 연결하였으되 픽션 캐릭터인 건담에 대한 정서적 애착을 강화하는 식으로 설계기획을 했다. (정세월드 유투브에서 봤다. 사진캡쳐는 정세월드 유투브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icPlVnZPKI&t=1s


오사카 엑스포 미국관


오사카 엑스포 일본관




6. 내일 열리는 타데우스 로팍의 톰 삭스전은 피카소와의 관련성이고 DDP와 언뜻 관련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톰 삭스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타데우스 로팍의 톰 삭스전에 관한 이전 포스팅 링크느 여기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6365109


예를 들어 DDP에는




정육점 소년 달 암석 샘플  Butcher Boy Moon Rock Sample이라는 작품이 있다. 

암석채취 및 시료분석 과정을 미학적으로 패러디한 작품이다.과학적 프로세스의 미학적 렌더링이다.


나사에서 달 표본을 채취하는 정밀하고 엄격한 프로세스를 부정확하고 대충대충인 인간적 방식으로 바꾸었다.

과학 실험실의 최신식 고급장비가 아니라 정육점에서 고기 다루듯 조악하게 달 표본 샘플을 다룬다.


그러니 일견 진짜 암석채취 및 시료분석처럼 보여도 사실은 DIY 과정이다.

정밀한 실험식 과학에 대한 인간의 확신과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흉내 내려는 인간적 서투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통해 인간의 기술 숭배+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DIY정신+실패와 노력의 미학을 주제로 삼았다.


제목이 "정육점 소년"인 이유가 있다.

오랜 기간 전문 트레이닝을 받은 전문 우주과학자가 아닌

쟁기로 밭가는 농촌 마을에 사는 일개 정육점 소년이 연구하는 달 암석이란?

마치 의사가 아닌 상처 입은 개인이 마트 수술키트로 스스로 마취하고 환부를 도리고 째고 봉합하는 것과 비슷한 것



이런 부분은 타데우스 로팍에서 볼 수 있는 톰 삭스 작품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7.

매 세대는 기성 질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갈망한다. 

어린이는 어른을 피해 숨을 놀이터를 찾아 숲과 계곡을 쏘다니고, 

청년은 나만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경계를 넘어 이동한다. 

기득권이 굳건한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주연인 새로운 무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신대륙 개척은 이러한 탈출 본능의 대표적 사례였으며, 이후에도 사람들은 만주로, 알래스카와 남극, 북극, 히말라야, 안데스 산맥으로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탐험은 지리적 공간을 넘어 영화 속 세계로, 다시 디지털 가상 세계, 메타버스로 이동했다. 인간은 달 식민지와 화성 식민지로 리브랜딩한 우주에서 나만의 세계를 꿈꾼다. 톰 삭스의 작업은 바로 이 오랜 탈출의 충동과 그 끝에 소록소록 남은 낭만과 허무를 동시에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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