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산불사태 때 외신 댓글에서 알게 된 재밌는 점
LA 부유저택 수영장 물을 어떻게 청소하느냐?
소독약으로 청소한다고 한다. 워낙 물이 부족하기 때문
그말인즉슨 처음 받은 물이 몇 달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화학적 세척에 기반한 서양의 위생관념은 물리적 청소에 기반한 동양의 위생관념과 다르고 나아가 사회문화에까지 연결되는 것 같다.
영미인은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눕는다. 더러움은 보이는 먼지나 흙 같은 물리적인 흔적보다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에 있고 이를 화학적으로 중화시키는데 위생의 목표점이 있다.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 하고 욕탕청소도 물을 전부 비우고 솔로 문질러야 비로소 깨끗하다고 느낀다. 더러운 게 눈에 보이면 불쾌하다.
서양에서 한 냄비에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넣거나 피자를 같은 디핑소스에 찍어 먹는 걸 불결하게 여기지만 한국은 공동체의 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위생감은 이주민 수용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뚫려있는 평지에 사람의 출납이 자유롭고 타대륙인과도 오래 접촉하며 살아온 유럽은 물리적 외양은 달라도 언어나 제도에 동화되면 동일한 시민으로 인정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LA사례에서처럼 매번 욕탕물 갈듯이 물을 갈 수 없고, 약품소독하고 적당히 낙엽같은 부유물만 정리하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감각은, 넓은 땅덩어리에 노동력은 부족한 나라에 적당히 언어, 문화로 신분세탁만 되면 쓸만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비슷하다. 비자, 영주권이 발급되었다면 화학적 소독된 것이다.
물론 진정한 미국시민으로, 주류가 되기까지는 많은 기여와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거친 비유일 뿐이다
반면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단일한 민족 구성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이주민이 말과 문화는 익혔더라도 외모나 태도, 몸짓 같은 물리적 차이가 남아 있으면 우리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치 눈에 보이는 먼지가 남아 있으면 아무리 소독했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