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기억전달자의 저자 로이스 로리의 신간이 나와서 읽어보았다.


더 기버는 다소 우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이긴하지만 문장의 호흡이 스타카토로 짧게 치고나가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영미권에서는 8-12세 대상 YA소설로 분류되고, 한국 영어학원이나 국제학교에서는 중학생 때 읽히는 편으로 알고 있다. 문장도 쉽고 클래스룸의 토론거리를 제시하기에 적절한 까닭.


이전에 멕시코에서 엘 다도르로 번역한 책도 구해서 읽어 보았는데 스페인에서의 현재완료가 대부분 Volvió처럼 단순과거로 바뀌어있었다. 일어 번역본도 보았는데 훨씬 무겁고 진중해서 카도가와풍의 소학교 책이 아니었다.


신간 빌딩 903도 익숙한 맛이다. 토이스토리5나 레트로, 리부트 트렌드처럼 옛날에 알던 테마(금지된 책..)가 재소환된 듯한 기분이다. 일단 처음은 그랬는데, 그런데 19장 이후 후반부는 너무 급히 끝나 용두사미였다.


무엇보다 계속 걸렸던 건 10대들의 말투였다. 1937년생으로 90대 논나제리안인


저자가 재구성한 옛 1950-60년대 청소년들의 말투다. 줄임말도 없고 문법도 다 맞는다고? 지금 이런 정중하고 고전적인 말투를 쓰는 사람은 나이 든 이모나 할머니다.


14세로 설정된 테사의 입을 통해 스마트폰과 숏폼, 디지털 줄임말이 일상화된 요즘 Z세대와 알파세대의 역동적인 구어체를 재현하는데는 실패했다. slang이나 밈은 등장하지 않고 코드명 같은 건 있지만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미들그레이드/YA소설 특유의 톡톡 튀고 사실적인 10대 말투를 기대했다면 좀 어색하게 고풍스럽고 인위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어쨌든 한나절이면 읽어서 부담은 없다.


그러고 보니 로이스 로리도 90대라니.. 나의 찬란하고 멋진 90대 노년여성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전기톱 들고 나무 자르는 1935년생 김윤신 (호암미술관)

시각예술가이자 퍼포먼스아트의 선구자 1936년생 조안 조나스 (백남준아트센터)

가천대 총장 1932년생 이길여

1세대 여성주의 화가 중국 만주 출생 1939년생 윤석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 허균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7
허균 지음, 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20년 전의 책 욕심
정길수 편역 허균 선집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중>

여행 가서 책 만 권 사오는거 어떤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963년 영어 문제
문제집은 커녕 학교 가는 것도 힘들고
알파벳을 가르칠 교사도 없던 시절 최고 수준 문제
https://www.instagram.com/p/DetZ4eaEvml/?img_index=2&dlrf=M3M2dTJ2YXE0Ymx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메리칸 학원 1
이민진 지음, 정소영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진의 신간 아메리칸 학원 영문 원서 뒤에 백 페이지 정도만 남겨두고 발 빠르게 번역된 우리말 번역본을 집었다. 빨리빨리의 민족, 급속 번역 기능이라도 있었는가, 원서 발매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원서를 채 다 읽기 전에 역서도 금방 나왔다. 지난 파친코의 유명세와 성공에 더불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지 않을까

번역본은 당혹스러운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마치 배우자나 이성 친구의 방귀, 처럼 존재하지만 바로 직면하지 않았던 민낯의 이민과 교육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각의 인물을 사실상 까페와 술자리에서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던 지인이 겪은 리얼한 인생 이야기처럼 읽을 가능성이 높다.

당혹스러운 건 영어로 읽다가 한국어로 읽어서다. 영문소설에 걸맞는 표현법이 번역투로 직역되었을 때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또한, 인물을 내 나름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이스를 부여하다가 이 화자들이 정말 한국어로 말을 했을 때 이정도 톤앤매너인가, 하는 낯선 감각이 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상 영어로 읽어도 거의 한국어로 읽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진짜 한국어로 읽었을 때 영어의 표현과 어휘로 번안된 한국의 무언가가 때론 과감하게 때론 뿌옇게 다가온다.

2D 캐릭터였던 원피스가 실사화되었을 때 적나라함과 당혹스러움과 비슷하다고 표현해보고 싶다. 픽션 속 인물은 실재 존재하는 사람으로부터 레퍼런스를 따와 만든 것이지만 정말 살과 뼈를 가진 인간 배우가 이를 연기할 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단점이 둘 다 존재하겠고, 특성이 그렇다는 거지 호오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룩백도 그랬다. 이런 애니화와 실사화의 간극마냥,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느껴진다. 같은 스토리에 같은 인물인데도 어떤 언어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물론 파친코도 그랬고, 파친코도 한일영으로 다 읽었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그것은 한 세대 전 20세기 초중반의 옛날 이야기 같았는데, 이건 정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바로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자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토니 모리슨, 헨리 제임스의 대사들, 그리고 아메리칸 학원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유도라 웰티는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 책은 시간을 두고 다듬은 흔적이 있는데 이 책은 너무 급하게 번역했고 편집부에서도 다듬어주지 않아 곳곳에 그 성급함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좋은 번역으로 실력을 보여주었던 이라 아쉬움은 배가 된다. 마치 신축 아파트에 마감 공사가 덜 된 흔적이 느껴진다랄까. 아까 언급했던 낯설고 당혹스러운 감각은 유명 해외 스튜디오의 조감도와 설계안이, 실제 시공되었을 때 다른 느낌과 비슷하다면, 이건 입주 시작한 매물에 페인트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23쪽 두 번째 줄에 대개를 ‘대게‘로 오타냈다.
이외에도 문장을 도착어인 우리말의 표현에 맞게 다듬어야하는데 영어의 직역이 남아있는 부분은 35-36쪽 외국인이 운영하는 그 특별한 학원에 보내는거야, 가 눈에 띄는데 중학생 여자아이가 할 만한 말투가 아니다.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 나름의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어로는 선뜻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3쪽의 ‘자기가 쓸모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도 ‘쓸모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정도로 순화해야할성 싶다. 25쪽의 ‘뛰어난 단거리 주자‘도 형용사와 명사로 압축해 표현하는 구미의 표현법이고, 한국어는 용언을 살려 100미터 달리기를 잘한다, 정도로 매만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좋은 부분도 있었으니, 26쪽 ‘벌충하고자‘는 매우 마음에 든 표현이었다.

이건 호오의 문제는 아니고, 스타일상 차이가 느껴지는(따라서 역자의 역어 선택이 중요한 부분인데) 18쪽의 2년 임대계약 보증금은 직역이고 틀리지 않았지만 전세로 이해했었다. 21쪽 고치 속에 들어앉다, 25쪽 특목고도 눈에 들어온다. 24쪽의 ‘외향적일 수도 있을텐데‘보다 ‘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가 나을 것 같다.

계속 걸리는 것은 신태헌의 지칭어인데, 외국은 성으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신씨가 무엇을 하다는 의미에서, 신을 주어로 쓰는 표현은 자꾸 걸린다. 직급 혹은 공적 명칭을 같이 부르는 문화에서 신이사, 신태헌, 태헌선배 정도로 하면 좋은데, 영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가 한국어로 바뀌니까 낯설고 우둘투둘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신이 천상의 신을 의미하는 말이라 더더욱.

22쪽 ‘신은 존에게 형과 다름없는‘, 55쪽 ‘그녀가 추앙하듯 신을 바라보는‘이 예시다. 물론 시간에 쫓겨 번역 납품을 해야해서 본 실력이 발휘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국출판시장은 바이럴 될 때 매출이 나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꾸준한 스테디셀러 매출이 별로 없기에 완성도가 떨어져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계속 걸리는게 있어도 끝까지 안 읽지는 않겠다. 허나, 영어 원서 독해 후 번역본을 손에 집는 이와, 그 반대의 독서 여정은 전혀 다른 감각을 낳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뉴요커의 문장들 - 서술의 시대, 논리의 구조를 세우는 글쓰기
강진규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FP통신 서울 특파원 강진규 기자가 뉴요커의 문장들에서 극찬한 뉴요커 기사 원문. 2026년 1월 12일자 덱스터 필킨스의 글이다.

저자는 캐릭터라이징이 입체적으로 잘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인물 특성을 설명하기보다 생생한 상황 속 태도를 묘사했기에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글을 읽어보면 이 점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기사 원문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군사작전에 대한 간결하면서 핍진한 묘사로 시작해 24년 대선까지 읽는 이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 잘 꾸민 단편소설같은 탁월한 기사다. 나도 학창시절 뉴요커를 우연히 집은 이후 손에 놓치 않고 종종 찾아 읽었던 그 오랜 세월동안 좌절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그냥 현대(영)작문의 천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KTX는 보내주자 무궁화호도 경의중앙선도 같은 레일에서 운행 못하는 거 아니니.

최근엔 노벨문학상 받은 앤 카슨이 인터뷰에서 보여준 태도가 위로가 되었는데 나 역시 그녀처럼 기원전 고전 읽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산문을 아예 안 읽는 건 아니고 그보다 포션이 좀 높겠지만 AI슬롭이나 천편일률적인 글을 읽느니 옛 학자들의 숨결을 따라가는게 더 풍요로룬 지적생활을 가능하케 한다고 느낀다. 한 꼭지 독해에 하루가 걸릴 때도 있지만 글자 단위 면적당 뉘앙스가 풍부한 고기능 영양식이다. 물론 조회수 높이는데는 아무 도움 안되고 다수에게 전적인 공감을 받을 수 없지만 나와 옛 선현만이 나누는 내밀한 대화이자 지적 교류다.

만약 읽을 거라면 뉴요커와 NYT와 뉴욕리뷰오브북스가 제일 낫고!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6/01/19/marco-rubio-profil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