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화, 무엇이 문제인가?
독이 든 성배, 넷플릭스 진출 10년을 분석한다

지은이는 문화연구자로서 피에르 부르디외(장 이론, 아비투스)와 이매뉴얼 월러스틴(세계체제)의 눈을 빌려

한국의 영상 및 방송산업이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면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플랫폼 비즈니스에 올라타며 맞닥뜨린 기회와 한계를 해부한다.

막대한 자본력을 내세운 글로벌 OTT를 위시한 플랫폼 사업자의 하위 스튜디오가 되어 완성된 제품을 납품하고 관련 지적재산권을 양도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종속 구조에 대한 분석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한류 열풍과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소개글

와 넷플로 박사논문을 썼다. 거의 동시대의 사회문화현상와 발맞추며 동기화하면서 논지를 펼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단하다.

사료와 거리를 두기 위해 최소 3-50년 전의 과거를 다루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보법이 다르다. 언젠가 사회과학연구도 역사의 일환이 되겠지만 동시대 연구를 누군가가 진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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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보>의 원작 소설 상권 읽었다. 이상일 감독 인터뷰에 의하면 초기에 본인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요시다 슈이치 작가에게 말했는데 직접 가부키 세계 취재를 뛰어 소설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영화화했다고 했다. 상호 도움을 주었다는 뜻이고 이미지 연출에 능한 감독과 배경을 설명하는데 능한 소설가 각자의 역할이 있단 뜻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원작을 얼마나 그대로 재현했는가가 작품의 가치판단에 큰 영향이 없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매력의 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N차 관람을 유도해 개봉 25주차까지 천만 관객을 뚫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은 영화와 달리 조금 캐릭터가 많고 단막극 해설하는 듯한 나레이션이 있으며 가부키 극 줄거리를 상세히 설명한다. 영화는 키쿠오로 집중해 일관된 스토리를 위해 캐릭터 몇을 제하고 상황을 압축했다.


예컨대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2023)>의 아역 배우 중 더 키가 큰 쿠로카와 소야가 키쿠오의 아역으로 나오는 영화 초반에 같이 첫 가부키 열연하면서 장난치던 친구 같은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스미조메, 친구는 세키베이역이다. 한지로가 키쿠오의 재능을 발견하고, 야쿠자에게 습격받는 영화 도입부다. 이후 아버지가 죽고 강 위 배에서 단도로 공모하다가 복수를 위해 원수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장면 이후 이 인물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서는 토쿠지라는 야쿠자 조직원이자 의형제로 소설에서 비중있게 등장한다. 키쿠오와 하루에가 사랑을 나눈 후 하루에가 내가 많이 벌어서 극장도 세워줄게, 하는 대사는 원래 토쿠지의 것이다. 술집에서 일하는 소꿉 여자친구가 대신 돈을 벌어서 극배우 뒷바라지해주겠다는 말과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동성 친구가 하는 말의 뉘앙스는 다르다. 캐릭터를 하나로 압축시켰다.


예명 세습 때 백호는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가는 부분에서 키쿠오가 한지로 이름을 받게 되 계기를 설명하는 대사는 소설에 없고 영화가 각본을 더 썼다. 이외에도 여러 개가 있는데 이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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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노자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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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쓴 SF 작가 켄 리우의 도덕경 번역이 나왔다. 중국 간쑤성 출신으로 하버드 학부와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주경야독해서 낮에는 법률분야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테드 창만큼 유명하거나 작품이 미디어믹스되지는 않았나, 2011년의 <종이동물원은> SF상을 휩쓴 작품이다.


도덕경 전체 81장을 두 파트로 나누어, 파트1 도는 1-37장(p17-120), 파트2 덕은 38-81장(p123-192)으로 분류했다. 괄호는 한글번역본 기준이다.


몇 년 전부터 인문교양 베스트셀러는 고전 원서나 학술서는 전멸했고 다이제스트본이나 편집본, 혹은 처세술, 성공학, 에세이를 곁들여 멋진 표지로 새단장한 도서만 팔린다. 한국출판시장에서 이 책은 그런 트렌드의 일환으로 읽힌다.


도덕경의 아포리즘적 문체가 자기 생각을 곁들인 해설서를 가능하게 한다. 81장까지 일관적인 서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상관 없다. 수수께끼 같은 구절이 오묘하고 깊은 의미가 있고 이를 저자가 참신하고 재밌게 설명하면 금상첨화다. 구절은 익히 다 아는 짧은 격언이라 수많은 독자들이 이미 내용에 대해선 익숙하다. 융통성 있는 자유로운 해설이 관건이다. 코멘트를 베푸는 저자가 원래 명성이 있는 경우 판매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될 수 있다.


전문 학술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일반 작가가 <사기>, <춘추공양전>, <예기>에 대해 해설서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도덕경>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도서관에는 도덕경 한 권에 대해서만 수없는 번역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도덕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원문 전체를 무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의역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극호와 극불호의 양극화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래에서 상술한다.


또한 1장에 이어 서문을 대신한 판본에 대한 코멘트 17쪽, 3장에 덧붙여 노자의 생애를 서술한 코멘트 8쪽을 제외하면 4쪽 이상을 넘어가는 코멘트가 많지 않다. 아니 파트2로 넘어가면 번역만 있고 코멘트는 없다시피하다. 파트1 37개장(1-37장)이 113쪽 분량인데(p17-120), 파트2 44개장(38-81장)이 70쪽 분량(p123-192)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113쪽이 37개장인 파트1과 70쪽이 44개장인 파트2. 구성적으로 너무 기울어진 비중이다. 용두사미같다고도 느껴질 정도다. 앞에서 17쪽 분량으로 우다다 말을 쏟아내고 뒤로 갈수록 장만 보이니 왜 뒤에는 침묵했는지, 완전히 배태되지 않은 생각의 단상을 무리하게 출판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게다가 코멘트 역시 한자 원문의 용례를 설명하거나, 영어로 이렇게 바꾼 이유가 아니라 관련없거나 벗어난 개인적 단상이다. 어그로나 트위터 문화에 대한 휘발하는 스레드 글 같은. 물론 원서의 문제고 역자나 한국출판사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번역시 도덕경 원문을 확인했을텐데 저자가 어떤 식으로 번역을 했는지에 대한 해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어쨌든 독자는 두 가지 태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이냐?


원서에서 영어권 사람들이 더 읽기 쉽게 의역했다는 점, 코멘트가 적거나 아예 없거나 혹은 상관없다는 점. 그래서 도덕경 원문과, 켄 리우의 영어 원서와, 이 한글 번역본까지 셋을 들고 왜 이렇게 했을까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되려 인문교양 베스트셀러 도덕경 편집본이 해설이 너무 많거나 특정 연령대의 취향에 경도되어 있을지언정 더 친절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몇 가지만 보자

5장과 7장 등에서 성인은 Dao-aware이라고 번역했다.


25장 천대, 지대, 왕역대를 Dao, heaven, and earth are all grand, as is humankind라고 했다. 대개 이렇게 같은 문형으로 대구를 이루어 리듬감을 이루는 도덕경의 원문을 싹 다 병렬처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예컨대 30장에서도 

果而勿矜(과이물긍) 목적을 이뤘으되 자랑하지 않고 

果而勿伐(과이물벌) 목적을 이뤘으되 뽐내지 않고 

果而勿驕(과이물교) 목적을 이뤘으되 교만하지 않는다

After victory, don’t swagger, boast, swell with pride.라고 했다.

과를 목적이냐 승리냐 어떤 말로 번역할까하는 고민과 판단이 모두 재밌는 생각의 훈련이 된다.


원문의 문형을 바꾼 것도 있다. 예컨대 39장의 시작은 평서문인데 영어는 의문문으로 바꾸었다.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예부터 하나를 얻은 것이 있다 

What do they become when at one with Dao?


그리고 세미콜론으로 병렬해서 짧게 축약했다. 굳이 얻다라는 술어를 반복하지 않아 깔끔해보인다.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 :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Heaven, clear;


地得一以寧(지득일이녕) :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해지고 

Earth, tranquil;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 : 신은 하나를 얻어 영묘해지고 

Spirits, animated;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 :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 차게 되고 

Gorges, filled;


뭐 이런 여러가지 번역적으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예 다 생략하고 없앤 것도 있는 것 같다. 도착어인 영어에서 적당한 역어가 없었거나 문맥상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거나. 그렇게 하려면 81장 전체를 한자-영어-한글 다 봐야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대충 포스팅은 이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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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라의 캐릭터 줄거리 단계별가이드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4권을 기점으로 구분한다.


해리포터는 볼드모트를 물리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볼드모트의 부활전후로 파트가 나뉘어진다는 것


스토리 구조만 4권을 기점으로 나뉘어지는 게 아니라 영단어 수준이 달라진다.


3권까진 아동용 소설이어서 단어레벨이 높지 않았는데 4권부터는 YA수준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두꺼워진다.


rummage, unobtrusive, chivvy, waddle, jiffy, ruffle, heave, ladle, wince 등


7권에서는 GRE어휘책에 나오는 thwart까지 나온다.


그런데 비유법 같은 문학기법은 성인레벨로 올라가지 않는다.


와와 거리다 ooohed and aaahed

군청색 하늘 blue-black sky를 포함해

마치 ~ 인 듯하다 as if, as though

처럼, 같이 like, as 같은 직접 비교가 빈번하게 쓰여


보여주기(show)보다는 설명하기(tell)에 가깝다 



마지막 사진 4권을 예로 들어 이 문장은 비가 후두둑 쏟아지는 장면을 as if로 연결한 후속 문장으로 해설하고 있다.

The rain was now coming down so thick and fast that it was as though buckets of ice-cold water were being now emptied repeatedly over their heads.


그러나 고급 영문학에서는 비유를 문장 밖에 연결하기보다는 문장 안에서 느낄 수 있게 풀어 쓴다.


매우 굵고 빠르게 비가 내렸다를

Slammed against라든지 hit with the weight of라든지 pressed hard라든지 밀도와 압력을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동사로 치환한다.


나아가 fast로 상징되는 힘과 시간, thick이 의미하는 흐린 시야를 아래처럼 확장해 쓸 수도 있다.


어쨌든 형이상학적 은유나

밀도, 온도, 리듬, 음향을 활용한 문학적 이미지를 빚는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The rain slammed against them, each drop a splinter of cold glass breaking on their skin.

비가 기차를 세차게 때렸다.

떨어지는 빗방울마다 차가운 유리 파편처럼 부서지며 피부 위에서 깨져나갔다.


The sky emptied itself in shards of cold light, each strike of rain a small shiver running through the world.

하늘은 차가운 빛의 파편으로 자신을 쏟아냈고,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세상이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라고 써볼 수 있겠다. 아니면 좀 더 쉽게


The rain pressed hard against the train, a dense curtain of sound that blurred the world outside.

빗방울이 기차를 내리쳤는데 소리의 두꺼운 커튼이 외부 세계를 흐릿하게 했다 같이 공감각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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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읽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로 의미있는 작가인데


그 의미가 어떤 서클에서는 확실하고 선명하게 논의되었는데


나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 아닌가


그전에 나는 민음사, 을유 등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몇 백 권도 읽지 못했다.


세상에 얼마나 읽을 책이 많은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시간을 제대로 쓰면서 살아온게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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