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 (Paperback, Reprint)
Vintage Books / 198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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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가에 꽃혀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An Artist of the Floating World가 눈에 띄여 오래만에 다시 읽었다. 켄트대 철학과를 나온 일본계 영국인이 쓴 현대영소설이다. 초판은 1986년에 나왔는데 나는 대략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과 함께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2013년에 한 번 더 읽고 remains of the day같은 그의 다른 책을 비로소 읽었다. 그리고 지금 읽었으니 13-14년꼴로 한 번씩 읽은 셈이다. 책은 변함이 없고 바뀐 것은 나 자신의 상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분위기가 오묘하고 처연하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다고 느꼈다. 첫 문단이 배배 꼬여있어서 풀어서 이해하는 것이 약간 어려웠다. 이때는 일본어를 못했다. 재독했을 때는 N3정도는 하는 수준이었기에 스기무라, 오노상, 켄지, 카와카미하는 한자명이 시각적으로 출력되고 혼쵸니 센세니 하는 일반명사도 마음 속에서 일본어로 그려볼 수 있었다. 책 자체에 대한 전반적 인상이 바뀐 것은 아닌데 That S V seem C 도치문과 일부 대화문이 일본어의 사고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저자의 일본계 백그라운드 때문인지, 혹은 내가 일말의 일본어를 해서인지 분간하지 못했고 다른 책 몇 권(다는 아니다)을 집어들고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고 관찰자적 느낌이 일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말번역본은 아직 읽지 못했다. 삼독한 지금은 일본원서를 대단하지는 않으나 어느정도 읽어 둔 상태라 일어원문의 감각과 정서를 이해하는 편인데 책에서 교포의 뿌리없음에 따른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선조의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새로운 문화적 토양에서 뿌리내린 이민2세가 조부세대를 상상한다. 유학생이 SNS를 보며 유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랐으면 어땠을까 하며 있었을 법한 미래를 그려보는 듯도 하다. 이는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 디아스포라만이 제공할 수 있는 유리된 감각이다. 파친코,코고나다감독,작은야수의땅도 동일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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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은 2013년이 아니라 2017년이다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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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세트 - 전8권 정사 삼국지
진수.배송지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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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 주, 김영문 역, 정사 삼국지 세트 읽었다.


작년 12월 출간 후 막 제본해 본드향이 갓난쟁이 냄새처럼 날 때 배송받아 2달 반 동안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야금야금 읽어 끝까지 갔다. 최상급 번역자인 김영문의 지난 역서 원본 초한지 3권도 재밌게 읽었다. 시리즈 맨 마지막에 지도와 용어해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책 뒤에 원문 표점도 잘 되어 있고 깔끔하게 직역해 이해하기 쉬워 한문공부에 도움이 많이 된다. 책 중간을 한 움큼 집어 가자미처럼 눈을 하고 왔다갔다 보아야하지만.


모든 이야기 중 오나라 주태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담략과 기세가 남들의 두 배는 되어(膽氣倍人)

몸에 칼빵이 열두 군데(身被十二創)


주석의 강표전에는 이와 같이 되어 있다.


경은 과인의 형제를 위해 곰처럼 범처럼 싸우며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다가(卿爲孤兄弟戰如熊虎 不惜軀命) 수십 군데 상처를 입어 피부가 마치 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변했소(被創數十 膚如刻畫)


한문과 한글을 비교해


읽어야 어떻게 축약했는지 알 수 있다.

피(입다)창(을)수십(번) (피)부 마치 새겨 그리다


나무위키에 한글해설만 있는 부분인데 원문을 읽으니 재밌다

사진의 한자에 독음을 붙여본다.


1. 일단 주태(周泰) 부분


주태자유평, 구강하채인야.

여장흠수손책위좌우. 복사공경, 수전유공.

책입회계, 서별부사마, 수병. 권애기위인, 청이자급.

책토육현산적, 권주선성.

사사자위, 불능천인, 의상홀략, 불치위락.

이산적수천인졸지, 권시득상마, 이적봉도이교어좌우, 혹절중마안, 중막능자정.

유태분격, 투신위권, ◆담기배인. 좌우유태병능취전. 적기해산.

◆신피십이창, 량구내소.

시일무태, 권기위급


2. 주 부분

강표전왈

권파기비, 인류체교련, 자지왈, 유평!

◆경위고형제전여웅호, 불석구명,

◆피창수십, 부여각화.

고역하심부대경이골육지은, 위경이병마지중호?

경오지공신, 고당여경영욕, 등휴척. 위평!

의쾌위지, 물이한문자퇴야

즉책교이기상소용어책청겸개사지. 좌패, 주가, 사태이병마도종출, 명고각작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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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김중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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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시네필 평론가의 책을 펼쳤을 때
목차에 있는 영화 중 얼마나 보았을까

얼마나 많이 봐두어야 앞으로 누군가가 출판할 영화에세이 책에 언급된 영화를 다 보았을 것인가

세상에 작품은 너무 많고 시간이 부족하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가장 인상깊어 뇌리에 남은 격언 한 마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비관하는 개인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물질이 풍요로운 사회에 시간이 가장 귀한 화폐다. 모든 것을 보고 읽을 수 있는 사회에서 그 무엇도 다 보고 읽지 못하는 개인이 있다

책 영화 미술 모두 신분 지위 재력 위치 거리 접근성 등에 막혀있지 않고 다 공개되어 있으나 시청절대시간이 부족하다 (지난세기엔 대사관과 문화원에 가야 외서와 영화를 겨우 보았고, 외국에 가야만 미술을 보았다)

랜덤하게 펼친 책에서 언급된 작품을 다 봤을 확률을 구하시오, 몇 퍼센트 봤을지 예측하시오, 모집단이 얼마나 되어야 몇 퍼센트 확률로 95퍼 이상을 봤을지 구하시오

책은 김중혁 영화 에세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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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rtigo Years: Europe, 1900-1914 (Paperback)
Blom, Philipp / Basic Books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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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블롬의 The Vertigo Years(2008)읽었다. 유럽문화사, 유럽지성사를 전공한 필립 블롬의 세 번째 책이다. 함부르크 출생으로 옥스포드에서 박사를 받고 비엔나에서 살고있다. 흡입력있는 그의 이 세 번째 책은 '정부가 어쨌다, 전쟁이 일어났다, 운동은 유럽전역을 휩쓸었다' 같은 추상적 서술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화, 증언, 매일의 일상을 묘사하다 구조적 요인의 영향 속 상호작용으로 점차 시선을 확장하는 미시사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설령 약간의 표현은 14년 연상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내나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윤문을 했을지언정, 그가 추적하고 섭렵한 수많은 사료들은 놀라울 지경이다. 2000년의 유럽땅을 딛으며 100년 전 1900년을 걸은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책은 우리말로 구할 수 없다. 첫 번째 책 <수집>이 번역되었으나 절판이다. 나머지는 없다. 독일, 네덜란드에서 상받은 이 책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빌 브라이슨처럼 지식이 방대해서 쉬이 손대기 어려울지도, 이 책을 번역할 능력을 갖춘 유럽사전공생의 팍팍한 삶을 방증하는지도 모르겠다. 미번역의 이유는.


꽤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한 번에 다 읽기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흡입력있는 서술 덕분에 매번 한 꼭지씩 읽어도 재밌었다. 비엔나 분리파에 대한 부분도 재밌었고. 라임이 좋아 읽는 맛도 좋고, 과하게 구체적인 고유명사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아 대중적으로도 접근성이 좋다. 쓸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면 일단 서론부터 시작하자. 대개 구매자는 서론부터 펼쳐보고 이 책이 재밌어서 살 가치가 있다고 홍보하려면 처음 문단을 잘 꾸민다.


귀찮아서 채선생에게 번역해달라한 첫 서론이다. 이 한 문단에 이 시대의 감각(압도적인 스피드), 책의 포인트(미시사), 표현의 유려함이 다 드러난다.




1.번역

그들은 가로수가 늘어선 시골길 옆에 서 있다. 대부분 남자와 소년들로, 기대에 차 있다. 여름의 열기가 그들 위로 내리쬔다.


그들은 시야가 닿는 데까지 뻗은 도로를 내려다본다. 희미한 윙윙거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곧 직선 도로 위에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난다. 작고, 먼지 구름에 둘러싸인 채, 매 순간 점점 커진다. 강력한 엔진이 차를 몰아붙이며 점점 더 큰 굉음을 내고, 응축된 힘의 환영처럼 관중을 향해 돌진한다.


구경꾼 가운데 열여덟 살의 한 청년이 기다려온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준비한다. 차량은 점점 가까워지고, 포효하며, 에너지로 맥동한다. 이제 거의 도달했다. 십대 사진가는 렌즈를 통해 집중해 바라본다. 그는 거대한 보닛 뒤에 있는 운전자와 동승자를 또렷이 본다. 연료 탱크에 그려진 숫자 6도 보인다. 엔진이 그를 스쳐 지나갈 때 소리와 힘의 충격파를 느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셔터를 눌렀다. 이제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지켜봐야 한다.


1912년 6월 26일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했을 때, 젊은 사진가는 실망한다. 6번 차량은 화면에 절반만 담겼고, 배경은 번지고 기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그는 사진을 치워둔다. 그의 이름은 자크 앙리 라르티그다. 그가 실패작이라 여긴 그 이미지는 40년 뒤 전시되어 그를 유명하게 만들 것이다. 세기 전환기부터 1914년 가을까지의 세월을 특징지었던 돌진, 에너지, 속도를 모두 보여주면서.

2. 그리고 중간에 Those Magnificent Men부분도 재밌었다. 비행-그리스신화-프랑스-독일-구체적 수치-기업사 산업과 지정학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글이다. 너무 재밌고 잘 써서 251쪽만 세 번 읽었다.


비행은 화려하고, 위험하며,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의 장인 다이달로스가 전설 속에 남긴 오래된 꿈을 실현한 일이었다. 신들은 그의 날개에 바른 밀랍을 녹게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를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내몰음으로써 그를 벌했다.


이제 거의 삼천 년이 지난 뒤, 인류는 이전까지 올림포스의 신들과 새들이 독점하던 하늘을 깨뜨렸다. 신들은 여전히 젊은 조종사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그들이 만든 기계의 불길 속에서 죽게 했지만 — 1912년 프랑스 대중 잡지 Je sais tout에는 지난 5년간 시험비행 중 사망한 수십 명의 비행사들을 집단 초상으로 실은 바 있었다 — 장벽은 이미 무너졌다. 이제부터 사건의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기술 발전이었다.


조종사들만이 대중에게 마법 같은 매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 경주 선수, 랠리 드라이버, 사이클 챔피언들도 인기 영웅이 되었다. 그들의 경력의 모든 단계는 신문에 보도되었고, 새로운 기록은 매주 깨지고 또 기록되었다. 경주는 그 시대의 강박 가운데 하나였고, 속도는 그들이 선택한 마약이었다. 그리고 속도라면, 급부상하던 독일만큼 두드러진 곳은 없었다. 독일의 기술자들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이미 1903년 10월 28일, 독일 기업 AEG는 시속 210.8킬로미터(130.5마일)에 도달한 전기 기관차를 시험하여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탈것이 되었다. 그 불과 일주일 전에는 경쟁사 지멘스가 제작한 유사한 기관차가 시속 206킬로미터(128.5마일)에 도달했다.


한 세대 만에 그 나라는 바람에 흩날리던 봉건 소국들의 누더기에서 벗어나, 누구와도 맞설 준비가 된 산업 거인으로 변모했다. 프랑스라는 숙적을 물리쳤고, 제국이 되었으며, 식민지를 획득했다. 프로이센의 모래 평원에서는 군인과 행정가들이 나왔고, 농촌적이던 남부는 화학 산업과 정밀 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선두가 되었다. 북부의 항구들은 전 세계에서 온 상품들과 ‘메이드 인 저머니’ 제품들로 넘쳐났으며, 서쪽 변경에는 유럽 최대의 도시적 대화재(대도시의 거대한 집적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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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체리뷰를 쓸 수 있을까? 그럴 바엔 네 번째 책을 읽으러가거나 2025년 독일어-영어 번역본을 읽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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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된 주성철 평론가의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재밌게 읽었다. 속히 광동어로 번역되어 양조위 생전에 그가 직접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도 이렇게 한 배우를 깊고 두텁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십 위주의 자극적이고 일회성 B급 기사와는 달리 작품 속의 배우의 역할에 주목한 품위있는 책이다. 감독의 의도, 배우의 해석, 커리어, 운명의 엇갈림, 비하인드 스토리, 역사적 변천, 메이킹 과정, 로케 과거현재 비교, 작품의 수평적(타작품) 수직적(역사) 비교 등 종횡무진한다. 예컨대 p127 143 213 267 269 354 386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번 책은 양조위이고, 이전엔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2022)에서 장국영을 주목했다.


비근한 예시로 영국 런던대에서 배우학으로 석사취득 취득하고 배우연구소를 설립한 백은하의 넥스트액터 시리즈(박정민, 고아성, 이병헌, 안재홍, 배두나, 전여빈, 변요한, 박해일, 고민시, 최현욱)가 생각난다. 주성철은 홍콩배우, 백은하는 한국배우에 천착한다.


책의 316쪽에 감정을 숨긴 화양연화는 달리 색, 계에 대해, 장아이링의 원작에는 성애묘사가 전혀 없는데 원작 팬들이 영화를 보고 당황했다고 써있다. "리안(감독)은 원작자가 던져 놓은 단서들 사이의 빈 공백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아직 <색, 계>는 보지 못했지만, 최근 보았던 채털리 부인식으로 각색한 <폭풍의 언덕(2026)>도 그런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대개 반응도 비슷할 것이다. 원작팬은 분노하고, 초기에 호불호가 갈리며 반응이 영 미덥지 않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영화를 보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뿐, 남의 평가를 앵무새처럼 답습하거나, 요액본 시청을 통한 판단의 외주는 금물이다.


그래서 <색, 계>는 어떤 영화일까, 글을 휘리릭 쓰고 이제 클릭해본다. 게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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