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은 양극화의 한 해였던 것 같다

태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중간은 없듯, 불은 태워서 재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발화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듯

이렇게 어떤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중립 없이 극단적으로 좌우로 나뉜 느낌은 예전엔 별로 없었다

최근엔
나홍진 호프에 대한 엄청난 호불호가 홍해처럼 갈라졌고
이동진 비티비파이아키아에서 암살자(들)에 분석영상 내렸고
룩백실사에 대한 일본현지의 차가운 반응이 있었다

상반기엔 휴민트 햄넷 폭풍의언덕에 대한 기존 팬층의 비난이 기억난다

전시의 경우
굳이 국공립에서 데이미언허스트냐는 불만
최근엔 서도호에 대한 비판
대만파빌리온은 과외로 하고..

그와중에 홍상수는 상반기엔 그녀가돌아온날 하반기에 또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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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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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지만 압도적이라니, 심사위원의 평이 그정도인가? 싶긴하다. 과하게 일방적으로 칭찬만하는 주례사 평같아 신뢰가 가지 않고, 누구는 A는 B가 아니고 C에 가깝다, 같은 표현을 쓰는데 요즘 챗지피티가 쓰는 말투라서 곤란하다.


흡입력이 좋다. 술술 읽힌다. 일단, 스토리는 뒤에서 쫓아오는 타임라인 때문에 속도감이 붙는다. 3억 빚을 3개월 안에 갚아야한다는 줄어드는 모래시계와 관찰기록 1주, 2주하며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타임 시퀀스, 그리고 수해로 인한 급박한 전환까지. 재일과 수아가 같은 목적(물웅덩이)를 추구하면서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있기에 영원히 협업할 수 없다는 설정도 인상깊다. 그런데 원인 규명 및 확인이 바로 해결로 이어지며 기승전에서 너무 급마무리해 용두사미다. 마치 퓨즈가 꺼지며 잠이 들듯이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 드라마화가 되기에는 구멍이 많다. 강남 클리닉센터를 운영하다 빚을 지고 구급센터 계약직으로 전락한 의사와 로봇관리자 두 캐릭터 밖에 나오지 않아 세계관이나 배경이 얕아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저자의 배경이 전문적인 문학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꼭 어떤 교육을 받아야 훌륭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물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인도네시아인 수기안토, 베트남인 하, 네팔인 삼성, 미얀마인 등이 나오지만 개개인의 특성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드러내는 캐릭터라이징이 덜 되어서 정말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잠을 등가교환해 노동만 한다는 설정은 이해하고 있으나, 비몽사몽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아의 잠 묘사 의식을 한국어로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을까? 또한,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는데 해결은 구급대원과 로봇관리자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고, 총매니저나 시큐리티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뒷 부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이스가 주어진 인물은 혈청 확인을 외주받은 과거의 인연인 민석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스타워즈 트루퍼스 정도의 NPC 같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노동최적화를 위한 주파수가 필로폰 맞은 듯 잠 안 자고 노동하게 하는 궁극의 원인이라면, 감염 브로커는 왜 나온 것일까? 이 복선은 깔끔하게 회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주목만으로 이미 한겨레문학상이 지향하는 점은 현명하는 획득했다. 깨끗하고 밝은 세계가 아니라 강남 뒷골목 시술의 명암, 지방물류센터에 전락한 사람들의 뒷 이야기는 시사적이다. 하청과 재하청, 김해사랑상품권으로 지급 같은 아이디어도 좋다. 나는 남자의 무지 위에 나의 거짓을 쌓았다, 라든지 군데군데 좋은 표현이 있지만, '노르스름하다'는 두 번이나 나왔고, 스타카토식으로 짧게 치고 가지만 탁월한 어휘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아쉽다. 아울러, 1인칭 소설로 묘사와 대사로 진행하면서, 관찰 일지 같은 공문서 형식이 개입되 뜻밖의 글맛을 배가 시킨다. 중간에 예상외의 뜬금포지만 수아의 편지도 마찬가지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다양한 형식의 효과는 좋았다.


나아가,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분류작업자 뿐 아니라 채혈하는 의사의 노동의 리듬과 노동자의 손에 대한 주목은 훌륭했다. 대개 이런 류의 소설에 없는 SF적 터치가 가미해 익숙한 듯 매력적인 킥을 주었다. 정확한 주사기 명칭, 과학 실험, 혈청 분리와 생화학 설명은 글 안에 잘 습합되어 있다. 일부 문과 출신의 작가들이 겉으로만 배워 글의 문체와 과학 설명이 따로 겉도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말 이런 실험 프로세스를 잘 체화한 사람이 쓴 느낌이다. 그러나 시스템 속에 자기 착취하는 개인이라는 기존의 이론 이상으로 AI시대에 인사이트는 옅다. 목표 함수에 충실해 자기 보존을 위해 셧다운하는 기계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이 없는 이전 세대 컴퓨터 모델이고,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윤리적 관계까지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인상은 우수한 학부논문 정도로, 문제의식은 좋은데 덜 디벨롭되고 살짝 아쉽게 영글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은 너무 과한 평을 하는데, 출판시장도 안 좋고 대박적으로 매출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좋게 좋게 말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슈퍼밴드 같은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에게 후한 평가만 내리는데, 괜히 트집 잡아 시청자와 참가자 양쪽으로부터 욕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일지도. 나도 별점은 5점 주었다. 원래 성적 매길 때도, 심사할 때도 코멘트에 수정사항이 많다면 점수는 나이스하게 주는 게 매너이기에. 그런데 원래 잘 될 학생, 잘 될 작품일수록 더 나아지라고 애써 말을 하는 것이지, 아예 가능성도 없다면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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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질문답변: Overtakelessness 가 나오는 초반이 어딘가, 뒤적이다가 보니 앤 카슨의 녹스 1.3에 있었네요.


세상을 떠난 오빠에 대한 상실과 애도를 표현하는 녹스의 핵심 정서로 집중해 생각해볼만한데

우리말 번역본과 원서를 비교해보니 작가가 만든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철학자가 언젠가 말해준 것(told me by a philosopher once)하면서 콜론으로 부연하며 독일어 원어와 이에 대한 풀이를 붙였거든요.

das Unumgängliche, 다스 우눔갱리히. 결코 피할 수 없고 우회하거나 교섭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뜻으로 하이데거가 쓴 철학 개념어예요. un+um+gäng+lich+e로 분절되고 대충 영어로는 un+by+pass+able, un+avoid+able 정도로 직역될 거예요.

별책 부록에 번역자 윤경희는 쉽게 다루어질 수 없으나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기존에 자세히 풀어 쓴 용어를 원어에 가깝게 못다가에두름이라고 새로 말을 만들었다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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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 르네상스와 함께 만개한 돌봄 혁명
조지프 루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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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연구자 조지프 루치의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읽었다. 현대 한국의 베이비박스 문제를 다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2022)>와 18세기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의 여성 오케스트라를 다룬 <비발디와 나(프리마베라, 2025)>가 떠오른다. 앤서니 베일의 중세여행자 가이드를 읽고 난 다음부턴 이제 베네치아하면 보통 성문으로 진입하는 마을과 다르게 성문 없이 들어가 복잡한 미로가 더 강화된다는 표현이 문득 자동적으로 생각나곤 한다.

인노첸티는 직역하면 죄 없는 이들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지켜 주는 고아원을 뜻한다. 버려졌다는 뉘앙스가 아무래도 좋지 아니해서 영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말로 파운들링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우리말 업둥이로 번역해서 흥미로웠다. 우리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업둥이란 우연히 기르게 된 아이를 뜻하는 한국어로, 업은 곧 집안의 재물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의미한다. 인노첸티나 업이나 모두 비극적인 출신을 뒤덮는 좋은 뜻으로 사용된다

계급과 출신이 명확했던 위계적인 유럽 가부장 사회에서 주인에게 강간당한 노예의 아이나, 아이를 기를 능력이 없는 하류층 부모의 자식들이 업둥이였는데 체면치레가 강하고 위계적인 신분사회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초래한 불상사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아를 수출하던 과거 산업화시대 군부독재사회도 존재했으니 베네치아만의 일은 아니었을거다. AI시대에 줄어들 수 있을까?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거리에서 죽거나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다. 상류층의 아이로 태어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다. 아동이 독립적 인간존재라는 별도의 사회적 인식이 없던 오래된 미래

먹고 살기 급급한 이들에게 아이는 부담이었고, 방치된 채 바람이 스승인 채 길거리에서 살았으니 인노첸티는 그래도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진 않게 해준 곳. 500여 년 동안 약 4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삶을 돌보아준 곳. 개별적 소원을 다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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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변화를 갈무리하고 내년의 유행을 예측하는 트렌드 서적 중에 선언자처럼 메시지성이 가장 강한 책이 송길영의 시대예보나 김난도라면, 여러 필진이 참여해 다양한 자료와 팩트에 기반한 진단이 소구력을 높여주는 책은 카이스트 미래전략이다. 매일경제신문사의 서적도 비슷. 개인이 쓴 책 중에는 최근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이나 중국 AI 미래 지도가 가장 좋았다. 물론 문체가 건조해 읽으며 신나지는 않지만 이런 글이 지적 허영이 없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논할 수 있고 1차 사료로부터 배움이 되는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책이다. 책이나 음식이나 고영양 건강식이 자극적인 맛은 없는 건 당연.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끝까지 읽었는데 마지막에 삼남매를 둔 삼성 파견 직원 가정에서 일하는 쓰레기 청소업자 위훙 아주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장녀는 서울대 박사과정, 차녀는 홍콩대 졸업, 막내 남동생은 대입 준비. 선전의 부동산이 폭등할 때 여러 채 구매했다가 코로나 시절 격리로 인해 홍콩으로이주하며 팔아서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한국어를 배우며 친해져 월급도 1100위안(그것도 많았는데)에서 1만 위안으로 올랐고 그 부동산 열쇠를 맡기고 관리시켰다고 한다. 한국어를 할 때는 중국어와 달리 더 부드러워진다는 부분, 서울이 선전보다 깨끗했다는 점, 부산에 갔더니 분리수거를 종류별로 나누고 씻어서 버렸다는 점 등에서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보였고, 흔히 언급되는 한국 화장, 성형 같은 스테레오타입은 적었다.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을 이르는 숭군다, 들나물의 일종인 뽀리뱅이, 꽃이 펑펑 터진다, 팀장이 말을 반복하는 게 마치 맷돌 돌리는 거 같다 같은 엄마의 구어체 표현은 번역자의 2차 창작의 결과 더 맛깔나게 번역되었다. 고맥락적 어휘가 맣아 난도가 높은 번역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만큼 재미도 있었겠다 싶다. 품은 많이 드는데 지적 희열은 자신에게만 귀속되니, 꽤 훌륭한 A급 역자가 아니면 못할 작업이다.

그러나 역자는 그렇다손 치고, 이 글을쓴 저자 장샤오만은 사실 엄마의 생생한 표현을 채집한 것에 지나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 불세출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잡과 미화원의 노동구조를, 독일 사회학자 로자의 소외과 가속으로 미화원의 삶의 양상을 일부 진단하지만,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 충분히 전문적인 인류학적 민족지를 기술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보이스가 한껏 뭍어나는 좋은 인터뷰집을 꾸려 중국의 밑바닥 계층의 시선으로 사회노동 발전사를 쓴 것이다. 자신의 보이스는 감춘채. 이는 현명하면서 제한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학원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읽었던 이 두 책 모두 정말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술자리나 카페에서 언급될만한 일상적 사람의 가십거리를 모아놓은 것 같다. 그 자체로 이미 어떤 사회적 군상에 대한 소셜 코멘터리가 된다. 아메리칸 학원의 문학성이 훌륭할까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경성 최대의 천재 영문학자 최재서의 손녀 수잔 최의 플래시라이트쪽이문학적으로는 더 감각적인데 접근은 좀 어렵다. 두껍고 조금 어렵고. 이민진의 이야기는 쉽다. 웹소설 같기도 하다. 자기복제적 캐릭터나 디킨스적 세례가 논란은 있을지언정 드라마화 하기엔 적절한 것 같다. 자녀 교육, 유학과 이민사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에 대한 당대성 있는 이야기라 몰입감이 높다. 장샤오위안의 책은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고향없음의 허무가 곁들어진 무진기행과 더 닮았고, 이민진의 책도 약간의 공허가 느껴지긴 해서 위대한 유산이 자꾸 생각난다.

공교롭게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도 다리병 난 미화원 엄마를 둔 모녀이야기로 시작하고, 아메리칸 학원도 개포동에 사는 삼 남매 교육에 대한 엄마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도 엄마의 중증 알츠하이머 투병기로 서문을 열고, 박희병의 엄마의 마지막 말들도 엄마 간병기가 전체인 이야기인데, (이 둘은 모자관계), 역시 자식과 분리불가능한 엄마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글의 흡입력을 높여주는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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