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영어 문제
문제집은 커녕 학교 가는 것도 힘들고
알파벳을 가르칠 교사도 없던 시절 최고 수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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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학원 1
이민진 지음, 정소영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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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의 신간 아메리칸 학원 영문 원서 뒤에 백 페이지 정도만 남겨두고 발 빠르게 번역된 우리말 번역본을 집었다. 빨리빨리의 민족, 급속 번역 기능이라도 있었는가, 원서 발매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원서를 채 다 읽기 전에 역서도 금방 나왔다. 지난 파친코의 유명세와 성공에 더불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지 않을까

번역본은 당혹스러운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마치 배우자나 이성 친구의 방귀, 처럼 존재하지만 바로 직면하지 않았던 민낯의 이민과 교육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각의 인물을 사실상 까페와 술자리에서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던 지인이 겪은 리얼한 인생 이야기처럼 읽을 가능성이 높다.

당혹스러운 건 영어로 읽다가 한국어로 읽어서다. 영문소설에 걸맞는 표현법이 번역투로 직역되었을 때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또한, 인물을 내 나름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이스를 부여하다가 이 화자들이 정말 한국어로 말을 했을 때 이정도 톤앤매너인가, 하는 낯선 감각이 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상 영어로 읽어도 거의 한국어로 읽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진짜 한국어로 읽었을 때 영어의 표현과 어휘로 번안된 한국의 무언가가 때론 과감하게 때론 뿌옇게 다가온다.

2D 캐릭터였던 원피스가 실사화되었을 때 적나라함과 당혹스러움과 비슷하다고 표현해보고 싶다. 픽션 속 인물은 실재 존재하는 사람으로부터 레퍼런스를 따와 만든 것이지만 정말 살과 뼈를 가진 인간 배우가 이를 연기할 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단점이 둘 다 존재하겠고, 특성이 그렇다는 거지 호오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룩백도 그랬다. 이런 애니화와 실사화의 간극마냥,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느껴진다. 같은 스토리에 같은 인물인데도 어떤 언어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물론 파친코도 그랬고, 파친코도 한일영으로 다 읽었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그것은 한 세대 전 20세기 초중반의 옛날 이야기 같았는데, 이건 정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바로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자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토니 모리슨, 헨리 제임스의 대사들, 그리고 아메리칸 학원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유도라 웰티는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 책은 시간을 두고 다듬은 흔적이 있는데 이 책은 너무 급하게 번역했고 편집부에서도 다듬어주지 않아 곳곳에 그 성급함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좋은 번역으로 실력을 보여주었던 이라 아쉬움은 배가 된다. 마치 신축 아파트에 마감 공사가 덜 된 흔적이 느껴진다랄까. 아까 언급했던 낯설고 당혹스러운 감각은 유명 해외 스튜디오의 조감도와 설계안이, 실제 시공되었을 때 다른 느낌과 비슷하다면, 이건 입주 시작한 매물에 페인트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23쪽 두 번째 줄에 대개를 ‘대게‘로 오타냈다.
이외에도 문장을 도착어인 우리말의 표현에 맞게 다듬어야하는데 영어의 직역이 남아있는 부분은 35-36쪽 외국인이 운영하는 그 특별한 학원에 보내는거야, 가 눈에 띄는데 중학생 여자아이가 할 만한 말투가 아니다.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 나름의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어로는 선뜻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3쪽의 ‘자기가 쓸모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도 ‘쓸모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정도로 순화해야할성 싶다. 25쪽의 ‘뛰어난 단거리 주자‘도 형용사와 명사로 압축해 표현하는 구미의 표현법이고, 한국어는 용언을 살려 100미터 달리기를 잘한다, 정도로 매만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좋은 부분도 있었으니, 26쪽 ‘벌충하고자‘는 매우 마음에 든 표현이었다.

이건 호오의 문제는 아니고, 스타일상 차이가 느껴지는(따라서 역자의 역어 선택이 중요한 부분인데) 18쪽의 2년 임대계약 보증금은 직역이고 틀리지 않았지만 전세로 이해했었다. 21쪽 고치 속에 들어앉다, 25쪽 특목고도 눈에 들어온다. 24쪽의 ‘외향적일 수도 있을텐데‘보다 ‘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가 나을 것 같다.

계속 걸리는 것은 신태헌의 지칭어인데, 외국은 성으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신씨가 무엇을 하다는 의미에서, 신을 주어로 쓰는 표현은 자꾸 걸린다. 직급 혹은 공적 명칭을 같이 부르는 문화에서 신이사, 신태헌, 태헌선배 정도로 하면 좋은데, 영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가 한국어로 바뀌니까 낯설고 우둘투둘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신이 천상의 신을 의미하는 말이라 더더욱.

22쪽 ‘신은 존에게 형과 다름없는‘, 55쪽 ‘그녀가 추앙하듯 신을 바라보는‘이 예시다. 물론 시간에 쫓겨 번역 납품을 해야해서 본 실력이 발휘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국출판시장은 바이럴 될 때 매출이 나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꾸준한 스테디셀러 매출이 별로 없기에 완성도가 떨어져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계속 걸리는게 있어도 끝까지 안 읽지는 않겠다. 허나, 영어 원서 독해 후 번역본을 손에 집는 이와, 그 반대의 독서 여정은 전혀 다른 감각을 낳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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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문장들 - 서술의 시대, 논리의 구조를 세우는 글쓰기
강진규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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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 서울 특파원 강진규 기자가 뉴요커의 문장들에서 극찬한 뉴요커 기사 원문. 2026년 1월 12일자 덱스터 필킨스의 글이다.

저자는 캐릭터라이징이 입체적으로 잘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인물 특성을 설명하기보다 생생한 상황 속 태도를 묘사했기에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글을 읽어보면 이 점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기사 원문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군사작전에 대한 간결하면서 핍진한 묘사로 시작해 24년 대선까지 읽는 이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 잘 꾸민 단편소설같은 탁월한 기사다. 나도 학창시절 뉴요커를 우연히 집은 이후 손에 놓치 않고 종종 찾아 읽었던 그 오랜 세월동안 좌절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그냥 현대(영)작문의 천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KTX는 보내주자 무궁화호도 경의중앙선도 같은 레일에서 운행 못하는 거 아니니.

최근엔 노벨문학상 받은 앤 카슨이 인터뷰에서 보여준 태도가 위로가 되었는데 나 역시 그녀처럼 기원전 고전 읽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산문을 아예 안 읽는 건 아니고 그보다 포션이 좀 높겠지만 AI슬롭이나 천편일률적인 글을 읽느니 옛 학자들의 숨결을 따라가는게 더 풍요로룬 지적생활을 가능하케 한다고 느낀다. 한 꼭지 독해에 하루가 걸릴 때도 있지만 글자 단위 면적당 뉘앙스가 풍부한 고기능 영양식이다. 물론 조회수 높이는데는 아무 도움 안되고 다수에게 전적인 공감을 받을 수 없지만 나와 옛 선현만이 나누는 내밀한 대화이자 지적 교류다.

만약 읽을 거라면 뉴요커와 NYT와 뉴욕리뷰오브북스가 제일 낫고!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6/01/19/marco-rubio-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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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복권, 그 사이의 균형 -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가 들려주는 경제 밸런스 ㅣ 나를 위한 교양 2
우석훈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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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맞다. 물론 성인들 중에서도 한 권을 끝까지 안 읽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저자의 초중생 자식들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A가 아니라 B에 가깝다느니, 결국 뭐라느니, 24년 이전에는 잘 안 쓰던 어휘로 수상한 AI 냄새가 나는 글을 작성하는 시대. 요즘 너도 나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AI 말투로 글을 생산하는 추세에 사람 본연의 글맛이 우러나와 읽기 편하다. 수식 없이 문장으로만 안내한다. 어느 경제학자의 관점으로 본 사회문화와 정치역사 분석이라고도 함직하다.


출판사가 책을 내달라고 저자에게 읍소했다고 하는데 여러 집안 사정에 의해 미뤄졌다가 결국 약속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잡은 물고기에게 소홀히하는 것일까, 그렇게 투고를 애원한 출판사라고 보기엔 뒷 부분에 오타나 편집오류가 많아 검수를 덜 한 것 같다. 예컨대


p224 생겻을 때 -> 생겼을 때

p242 누가나 호혜적이 -> 누구나?

p246 분정을.. -> ?


p259 제3 세계 (숫자 띄어쓰기 부각됨)

p222 2 금융권 (숫자 띄어쓰기 부각됨)

p262 globalment -> globalement. 인용된 프랑스어 문구에 e가 빠졌다. 프랑스어는 여성 단수 형용사 -e 엔딩에 ment을 붙여서 부사화하기 때문에 global'e'ment 이어야한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거다. 저자는 청소년에게 두 가지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다단계, 불법 대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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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월간 문예춘추 9월호는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의 수상작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전문이 수록된 합본이라 정가대비 2천원 정도 비싼 편이다.


일본은 문학팬이 두터워 수상작은 잡지에서 그대로 읽고 별도로 다른 출판사에서 단행본이 나오면 사는 아날로그형 지식정보 문화라 한다. 책으로 꾸리면서 가필하고 수정하기도 하지만, 굿즈를 정성스럽게 모으고 물건(모노)를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소장하는 것 같다.


일본은 근대예술, 한국은 현대예술이라는 거칠지만 편한 도식으로 생각해보자면, 한국도 예능이나 콘서트의 디지털 영상 원본은 그대로 시청하고, 숏츠나 편집본으로 또 다시 시청한다고 유비해보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잡지에서 로raw한 전문을 읽고 또 책으로 사서 보는 것이.


그리고 깨끗이 읽고 보관했다가 때가 되면 헌책방에 너무 싸지 않은 가격에 팔고 또 책을 사는 듯하다. 일본만화대상, 이 만화가 대단해! 수상한 <책이라면 팔 만큼> 에서 습득하고 추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햇빛을 최대한 가려 책의 변색을 저지하기 위해 가게가 북향으로 나있다는 유명한 헌책방 거리 진보초 거리뿐 아니라(사실 진보초 안 가보았다. 여행 유투브랑 사이트로만 보았고 베이징 유리창琉璃廠은 가보았다. 헌책방의 대명사라고 하니 그냥 하는 말) 소도시에도 여러 헌책방을 보았었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운영될리가 없지.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다 읽은 책 헌책방에 팔곤 했었다. 그 헌책방 주인은 하루종일 책만 읽어서 찌르면 교수 뺨 칠 정도로 디테일하고 전문적이 본격 순수 불문학 이야기가 줄줄 나왔었다. 옛날에 나도 시즈오카 미술관 전시 보고 나와서 근처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금일 영업하지 않은 문 닫은 헌책방의 바깥의 무인 코너에서 코인 넣듯이 100엔 넣고 햇빛도 받고 먼지도 쌓여 약간 더럽지만 그런대로 안은 깨끗해 읽기엔 괜찮은 책을 산 적이 있다. 100엔 하나는 아니고 네 권 샀었던가 그랬고 물티슈로 닦아서 보았다. 7-80년에 나왔던  책이었는데. 아득한 시절부터 손때를 많이 탔는데도 이정도 외형을 유지하다니. 한겨레 txt에 울산대 도서관이 디지털화하며 종이책 다 갖다 버린다는 기사를, 통도사의 스님이 책 버릴 거면 여기다 갖다 달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것이 불과 작년이다.


최근 한일 SF교환일기에 보니 일본 작가가 오히려 한국의 출판문화를 부러워하며 책 디자인이 예쁘고 화려하고 소장가치가 높다고 부러워했었다. 한 손에 아담하게 들어와 가볍고 미니멀해 이동할 때나 웨이팅할 때 읽기 좋은 문고본이 한국에는 없어 일본의 그것을 부러워했었는데 양국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10월호에는 쇼와 100년의 아리따운 일본인, 즉 인생이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미덕을 보여주는 일본인 50명이 꼽혔다. 


기사는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나라의 대통령과는 정반대인 인물(かの国の大統領と真逆の人間で)로, 나(사심)를 버리고, 이익에 휩쓸리지 않으며, 지조를 지키고, 진실함을 간직했던 일본인에 대한 기록(私を捨て、利に流されず、節を貫き、誠を持った日本人の記録).


쇼와인이라 하니 1926년부터 1989년 태생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도 많지만, 현역도 있으니 아무로 나미에 같은 유명 가수가 있다. 가장 막내는 누굴까 마지막 꼭지를 열어보니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다. 에? 이 사람이 이렇게 옛날 사람인가? 하며 찾아보니 94년생으로 헤이세이인이다. 음, 쇼와인의 기준이 애매하다. 20세기적 덕목, 옛 사람 같은 신념일까? 참고로, 나는 잘 모르지만 야구선수는 한 명 더 있었는데 구로다 히로키다.


50인 중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한 꼭지씩 읽으면 재밌겠다. 아직 다 안 읽고 휘리릭만 보았다. 대충 7명 정도만 안다.


가수 아무로 나미에

배우 키키 기린

수녀 와타나베 카즈코(이해인 수녀 정도로 책으로 선한 영향력 많이 준 사람이고 228사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패션 디자이너 모리 하나에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이외에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고, 등산가나 네팔에서 봉사활동한 의료인 등 있음직한 사람들이 보인다.


절찬리에 연재중인 나가노 교코의 명화로 읽는 서양사는 어휘구사력이 높아 배울만한 표현이 많고(특히 한자나 일본 특유의 묘사법), 명화의 인물을 촘촘하면서도 간결하게 묘사했다가 배우와 대중문화로 유비했다가 다시 1600년 전의 그리스도교사로 안내한다. 대단한 필력의 작가다.


광고 코너에서도 깨끗한 하얀 컬러삽지에 번화가에서 만나요! 하는 카피라이팅이 눈길을 끌었는데 1872년부터 긴자 거리의 발달로 시작해 약제상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게 시세이도의 광고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주 부드럽고 매끈하게 넛지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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