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월간 문예춘추 9월호는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의 수상작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전문이 수록된 합본이라 정가대비 2천원 정도 비싼 편이다.


일본은 문학팬이 두터워 수상작은 잡지에서 그대로 읽고 별도로 다른 출판사에서 단행본이 나오면 사는 아날로그형 지식정보 문화라 한다. 책으로 꾸리면서 가필하고 수정하기도 하지만, 굿즈를 정성스럽게 모으고 물건(모노)를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소장하는 것 같다.


일본은 근대예술, 한국은 현대예술이라는 거칠지만 편한 도식으로 생각해보자면, 한국도 예능이나 콘서트의 디지털 영상 원본은 그대로 시청하고, 숏츠나 편집본으로 또 다시 시청한다고 유비해보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잡지에서 로raw한 전문을 읽고 또 책으로 사서 보는 것이.


그리고 깨끗이 읽고 보관했다가 때가 되면 헌책방에 너무 싸지 않은 가격에 팔고 또 책을 사는 듯하다. 일본만화대상, 이 만화가 대단해! 수상한 <책이라면 팔 만큼> 에서 습득하고 추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햇빛을 최대한 가려 책의 변색을 저지하기 위해 가게가 북향으로 나있다는 유명한 헌책방 거리 진보초 거리뿐 아니라(사실 진보초 안 가보았다. 여행 유투브랑 사이트로만 보았고 베이징 유리창琉璃廠은 가보았다. 헌책방의 대명사라고 하니 그냥 하는 말) 소도시에도 여러 헌책방을 보았었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운영될리가 없지.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다 읽은 책 헌책방에 팔곤 했었다. 그 헌책방 주인은 하루종일 책만 읽어서 찌르면 교수 뺨 칠 정도로 디테일하고 전문적이 본격 순수 불문학 이야기가 줄줄 나왔었다. 옛날에 나도 시즈오카 미술관 전시 보고 나와서 근처 거리를 걷다가 발견한 금일 영업하지 않은 문 닫은 헌책방의 바깥의 무인 코너에서 코인 넣듯이 100엔 넣고 햇빛도 받고 먼지도 쌓여 약간 더럽지만 그런대로 안은 깨끗해 읽기엔 괜찮은 책을 산 적이 있다. 100엔 하나는 아니고 네 권 샀었던가 그랬고 물티슈로 닦아서 보았다. 7-80년에 나왔던  책이었는데. 아득한 시절부터 손때를 많이 탔는데도 이정도 외형을 유지하다니. 한겨레 txt에 울산대 도서관이 디지털화하며 종이책 다 갖다 버린다는 기사를, 통도사의 스님이 책 버릴 거면 여기다 갖다 달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것이 불과 작년이다.


최근 한일 SF교환일기에 보니 일본 작가가 오히려 한국의 출판문화를 부러워하며 책 디자인이 예쁘고 화려하고 소장가치가 높다고 부러워했었다. 한 손에 아담하게 들어와 가볍고 미니멀해 이동할 때나 웨이팅할 때 읽기 좋은 문고본이 한국에는 없어 일본의 그것을 부러워했었는데 양국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10월호에는 쇼와 100년의 아리따운 일본인, 즉 인생이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미덕을 보여주는 일본인 50명이 꼽혔다. 


기사는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나라의 대통령과는 정반대인 인물(かの国の大統領と真逆の人間で)로, 나(사심)를 버리고, 이익에 휩쓸리지 않으며, 지조를 지키고, 진실함을 간직했던 일본인에 대한 기록(私を捨て、利に流されず、節を貫き、誠を持った日本人の記録).


쇼와인이라 하니 1926년부터 1989년 태생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도 많지만, 현역도 있으니 아무로 나미에 같은 유명 가수가 있다. 가장 막내는 누굴까 마지막 꼭지를 열어보니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다. 에? 이 사람이 이렇게 옛날 사람인가? 하며 찾아보니 94년생으로 헤이세이인이다. 음, 쇼와인의 기준이 애매하다. 20세기적 덕목, 옛 사람 같은 신념일까? 참고로, 나는 잘 모르지만 야구선수는 한 명 더 있었는데 구로다 히로키다.


50인 중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한 꼭지씩 읽으면 재밌겠다. 아직 다 안 읽고 휘리릭만 보았다. 대충 7명 정도만 안다.


가수 아무로 나미에

배우 키키 기린

수녀 와타나베 카즈코(이해인 수녀 정도로 책으로 선한 영향력 많이 준 사람이고 228사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패션 디자이너 모리 하나에

가수 야마구치 모모에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이외에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고, 등산가나 네팔에서 봉사활동한 의료인 등 있음직한 사람들이 보인다.


절찬리에 연재중인 나가노 교코의 명화로 읽는 서양사는 어휘구사력이 높아 배울만한 표현이 많고(특히 한자나 일본 특유의 묘사법), 명화의 인물을 촘촘하면서도 간결하게 묘사했다가 배우와 대중문화로 유비했다가 다시 1600년 전의 그리스도교사로 안내한다. 대단한 필력의 작가다.


광고 코너에서도 깨끗한 하얀 컬러삽지에 번화가에서 만나요! 하는 카피라이팅이 눈길을 끌었는데 1872년부터 긴자 거리의 발달로 시작해 약제상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게 시세이도의 광고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주 부드럽고 매끈하게 넛지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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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은 양극화의 한 해였던 것 같다

태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중간은 없듯, 불은 태워서 재를 만들거나 아니면 아예 발화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듯

이렇게 어떤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중립 없이 극단적으로 좌우로 나뉜 느낌은 예전엔 별로 없었다

최근엔
나홍진 호프에 대한 엄청난 호불호가 홍해처럼 갈라졌고
이동진 비티비파이아키아에서 암살자(들)에 분석영상 내렸고
룩백실사에 대한 일본현지의 차가운 반응이 있었다

상반기엔 휴민트 햄넷 폭풍의언덕에 대한 기존 팬층의 비난이 기억난다

전시의 경우
굳이 국공립에서 데이미언허스트냐는 불만
최근엔 서도호에 대한 비판
대만파빌리온은 과외로 하고..

그와중에 홍상수는 상반기엔 그녀가돌아온날 하반기에 또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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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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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지만 압도적이라니, 심사위원의 평이 그정도인가? 싶긴하다. 과하게 일방적으로 칭찬만하는 주례사 평같아 신뢰가 가지 않고, 누구는 A는 B가 아니고 C에 가깝다, 같은 표현을 쓰는데 요즘 챗지피티가 쓰는 말투라서 곤란하다.


흡입력이 좋다. 술술 읽힌다. 일단, 스토리는 뒤에서 쫓아오는 타임라인 때문에 속도감이 붙는다. 3억 빚을 3개월 안에 갚아야한다는 줄어드는 모래시계와 관찰기록 1주, 2주하며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타임 시퀀스, 그리고 수해로 인한 급박한 전환까지. 재일과 수아가 같은 목적(물웅덩이)를 추구하면서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있기에 영원히 협업할 수 없다는 설정도 인상깊다. 그런데 원인 규명 및 확인이 바로 해결로 이어지며 기승전에서 너무 급마무리해 용두사미다. 마치 퓨즈가 꺼지며 잠이 들듯이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 드라마화가 되기에는 구멍이 많다. 강남 클리닉센터를 운영하다 빚을 지고 구급센터 계약직으로 전락한 의사와 로봇관리자 두 캐릭터 밖에 나오지 않아 세계관이나 배경이 얕아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저자의 배경이 전문적인 문학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기도 하겠지만, 꼭 어떤 교육을 받아야 훌륭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물 묘사가 너무 부족하다. 인도네시아인 수기안토, 베트남인 하, 네팔인 삼성, 미얀마인 등이 나오지만 개개인의 특성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드러내는 캐릭터라이징이 덜 되어서 정말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잠을 등가교환해 노동만 한다는 설정은 이해하고 있으나, 비몽사몽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아의 잠 묘사 의식을 한국어로 완벽히 알아들을 수 있을까? 또한,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는데 해결은 구급대원과 로봇관리자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고, 총매니저나 시큐리티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뒷 부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이스가 주어진 인물은 혈청 확인을 외주받은 과거의 인연인 민석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스타워즈 트루퍼스 정도의 NPC 같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노동최적화를 위한 주파수가 필로폰 맞은 듯 잠 안 자고 노동하게 하는 궁극의 원인이라면, 감염 브로커는 왜 나온 것일까? 이 복선은 깔끔하게 회수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주목만으로 이미 한겨레문학상이 지향하는 점은 현명하는 획득했다. 깨끗하고 밝은 세계가 아니라 강남 뒷골목 시술의 명암, 지방물류센터에 전락한 사람들의 뒷 이야기는 시사적이다. 하청과 재하청, 김해사랑상품권으로 지급 같은 아이디어도 좋다. 나는 남자의 무지 위에 나의 거짓을 쌓았다, 라든지 군데군데 좋은 표현이 있지만, '노르스름하다'는 두 번이나 나왔고, 스타카토식으로 짧게 치고 가지만 탁월한 어휘력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아쉽다. 아울러, 1인칭 소설로 묘사와 대사로 진행하면서, 관찰 일지 같은 공문서 형식이 개입되 뜻밖의 글맛을 배가 시킨다. 중간에 예상외의 뜬금포지만 수아의 편지도 마찬가지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다양한 형식의 효과는 좋았다.


나아가, 컨베이어 벨트의 노동분류작업자 뿐 아니라 채혈하는 의사의 노동의 리듬과 노동자의 손에 대한 주목은 훌륭했다. 대개 이런 류의 소설에 없는 SF적 터치가 가미해 익숙한 듯 매력적인 킥을 주었다. 정확한 주사기 명칭, 과학 실험, 혈청 분리와 생화학 설명은 글 안에 잘 습합되어 있다. 일부 문과 출신의 작가들이 겉으로만 배워 글의 문체와 과학 설명이 따로 겉도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말 이런 실험 프로세스를 잘 체화한 사람이 쓴 느낌이다. 그러나 시스템 속에 자기 착취하는 개인이라는 기존의 이론 이상으로 AI시대에 인사이트는 옅다. 목표 함수에 충실해 자기 보존을 위해 셧다운하는 기계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이 없는 이전 세대 컴퓨터 모델이고,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윤리적 관계까지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인상은 우수한 학부논문 정도로, 문제의식은 좋은데 덜 디벨롭되고 살짝 아쉽게 영글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심사위원은 너무 과한 평을 하는데, 출판시장도 안 좋고 대박적으로 매출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좋게 좋게 말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슈퍼밴드 같은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에게 후한 평가만 내리는데, 괜히 트집 잡아 시청자와 참가자 양쪽으로부터 욕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일지도. 나도 별점은 5점 주었다. 원래 성적 매길 때도, 심사할 때도 코멘트에 수정사항이 많다면 점수는 나이스하게 주는 게 매너이기에. 그런데 원래 잘 될 학생, 잘 될 작품일수록 더 나아지라고 애써 말을 하는 것이지, 아예 가능성도 없다면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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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을매일씁니다 2026-10-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가 있는 말씀이세요 ! :)
 































질문답변: Overtakelessness 가 나오는 초반이 어딘가, 뒤적이다가 보니 앤 카슨의 녹스 1.3에 있었네요.


세상을 떠난 오빠에 대한 상실과 애도를 표현하는 녹스의 핵심 정서로 집중해 생각해볼만한데

우리말 번역본과 원서를 비교해보니 작가가 만든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철학자가 언젠가 말해준 것(told me by a philosopher once)하면서 콜론으로 부연하며 독일어 원어와 이에 대한 풀이를 붙였거든요.

das Unumgängliche, 다스 우눔갱리히. 결코 피할 수 없고 우회하거나 교섭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뜻으로 하이데거가 쓴 철학 개념어예요. un+um+gäng+lich+e로 분절되고 대충 영어로는 un+by+pass+able, un+avoid+able 정도로 직역될 거예요.

별책 부록에 번역자 윤경희는 쉽게 다루어질 수 없으나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기존에 자세히 풀어 쓴 용어를 원어에 가깝게 못다가에두름이라고 새로 말을 만들었다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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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 르네상스와 함께 만개한 돌봄 혁명
조지프 루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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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연구자 조지프 루치의 <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읽었다. 현대 한국의 베이비박스 문제를 다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2022)>와 18세기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의 여성 오케스트라를 다룬 <비발디와 나(프리마베라, 2025)>가 떠오른다. 앤서니 베일의 중세여행자 가이드를 읽고 난 다음부턴 이제 베네치아하면 보통 성문으로 진입하는 마을과 다르게 성문 없이 들어가 복잡한 미로가 더 강화된다는 표현이 문득 자동적으로 생각나곤 한다.

인노첸티는 직역하면 죄 없는 이들로,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지켜 주는 고아원을 뜻한다. 버려졌다는 뉘앙스가 아무래도 좋지 아니해서 영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말로 파운들링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우리말 업둥이로 번역해서 흥미로웠다. 우리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업둥이란 우연히 기르게 된 아이를 뜻하는 한국어로, 업은 곧 집안의 재물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의미한다. 인노첸티나 업이나 모두 비극적인 출신을 뒤덮는 좋은 뜻으로 사용된다

계급과 출신이 명확했던 위계적인 유럽 가부장 사회에서 주인에게 강간당한 노예의 아이나, 아이를 기를 능력이 없는 하류층 부모의 자식들이 업둥이였는데 체면치레가 강하고 위계적인 신분사회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초래한 불상사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아를 수출하던 과거 산업화시대 군부독재사회도 존재했으니 베네치아만의 일은 아니었을거다. AI시대에 줄어들 수 있을까?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거리에서 죽거나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다. 상류층의 아이로 태어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시절이다. 아동이 독립적 인간존재라는 별도의 사회적 인식이 없던 오래된 미래

먹고 살기 급급한 이들에게 아이는 부담이었고, 방치된 채 바람이 스승인 채 길거리에서 살았으니 인노첸티는 그래도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진 않게 해준 곳. 500여 년 동안 약 4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삶을 돌보아준 곳. 개별적 소원을 다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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