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엑스에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오늘 오픈했다.
전량 매진이고 현장 구매도 안된다고 한다. 보통 나도 티켓을 못 구하는 사람들에 속하곤하는데, 이 답사를 계속 하라는 하늘의 뜻인지 터렐도 그렇고 예약을 아주 빠르게 제때 했다. 물론 국제도서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매년갔다. 코로나 때 잠시 성수동에서 축소해서 했을 때조차도.
부유한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와 문화홍보전략의 일환으로 항상 거대하게 부스를 차려놓고 있다. 작년에는 악기소개를 했었다.
작년과 몇 가지 차별점은 만화와 여행과 자기계발류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24년 단독 부스를 크게 열었던 대원이 보이지 않고 여행관련 중소출판사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명령조로 할 수 있다고 강요하지만 실제 변하지 않는 현실에 지친, 공허한 외침에 지친 이들이 자기계발을 외면하고 무해한 에세이로 침잠해 들어가기 시작한지 오래다. 금수저 부동산 부자와 계층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바꾸기보단 소확행이 더 큰 소구력을 얻었다.
이에 더해 거의 매년 보였던 LP판 부스가 없었다. 항상 옛 노래 틀고 있었던. 작년과는 달리 아동용 도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2010년대에 많이 보이던 경제경영 자기계발서류도 안 보인다. 굳이 참가 안해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도. 한때 종이책을 위협한다고 눈총을 받던 전자책은 확실히 자기포지셔닝을 했다. 너나나나 사정 다 열악하다는 것을 아는지.. 또한 어느 순간부터 팝업북이 사라지고 자그마한 굿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정말로 책을 사러 왔다면 지금은 굿즈를 사거나 강연을 들으러 오거나 하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 리셀을 하려는지 입구쪽에는 큰 캐리어에 굿즈를 주섬주섬 담고 있는 보부상들이 눈에 띈다.

20년대 이후로 종교관련 서적이 많이 축소되고 특히 기독교 계열 출판사들의 퍼포먼스가 급감했다. 그 자리를 불교와 심리서적이 차지했다. 특히 비주얼 랭기지가 돋보이는 타로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올해는 큰 부스에 시연행사가 있어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에 의하면 프랑스 MZ세대 49퍼가 점과 타로 등 에소테리즘을 믿는다고 했다. 그 모든 신령술 중 타로가 가장 직관적이고 시각문화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에게 적합하다. 또한 전자신호로 데이터로만 존재하전 웹소설이 이제 양지로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눈에 띈다.
한때 큰 부스를 운영했던 글항아리가 이제는 소규모 부스만 운영한다. 안타깝다. 300페이지 이상의 벽돌 양서를 내는 곳인데 더이상 잘 팔리지 않는다. 사단 대학출판사 연합회는 매년 부스가 축소되더니 올해는 작년의 1/3로 매대 한 라인만 운영한다. 그래도 아예 참가하지 않은, 비슷한 인문분야 교양서를 내는 돌베개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일까. 인문사회 전공자가 쓴 연구서는 100부도 팔리지 않는다더니..
뿐만 아니라 마포출판사 연합을 포함해 혜화1117같은 자기 색깔있는 소규모 출판사들은 대개 출판사 2개에서 4개씩 연합해서 부스를 운영한다. 그래서 참가하는 출판사는 많아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적다.

작년보다 독립출판 장터의 규모나 숫자도 적어보이고 파는 상품도 책보다는 엽서 키링 등 굿즈가 더 많다. 그 굿즈 중 오이 싫어 굿즈가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외화내빈이다. 편집자와 직원의 희생 속에 곪아 들어가고 있는 한국 출판계의 현실같이 느껴진다.

올해 주빈국은 대만이다. 아시아 최초 동성혼인 허용국가로서 대만에서 유행하는 퀴어문학도 많이 소개되었다. 이런 장르변화는 책을 읽는 독자층의 변화를 반영한다.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 일하는 청년남성이나 해외공장에 중간재 납품하는 중년남성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데이오프날에 전자는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고 후자는 골프치거나 술을 마신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소비하는 주 계층은 주제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략 문학의 경우 젊은 여성, 나이든 여성, 퀴어가 많다.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거나 비주류이거나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대변해줄 목소리를 찾고 있거나 대학에 소속되어 공부하며 현실과 불화하며 다가 올 미래의 상상을 하는 이들이다. 민음사나 창비같은 거대 출판사가 밀고 있는 작가군만 살펴봐도 이러한 트렌드를 알 수 있다. 거대 출판사의 대표작가군이 쓰는 책의 경향은 문학책을 사주는 메인 계층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고 이 계층은 사회문화적인 구조를 반영한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대만문학이 출판계에서 주목을 받고 그 위상이 올라가며 주빈국으로 초대되며 대만의 퀴어 혹은 원주민 소수자문학 등이 한국문학에 수용되는 것은 소비자의 변화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2인 출판사 무제의 대표가 피로에 쩔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팬들이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부스보다는 최강록 셰프 대담코너에 사람이 더 많은데 아직 입이 다 풀리지 않았다고 버벅대며 양해를 구한다. 매일 다른 유명인과 연사가 초청되는데 티켓 전량 매진이고 현당 구매도 안되는 상황에서 매일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아무리 출판업계 관계자라도 도서전 운영자라도 책 신선이 와도 이 모든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없을 거다. 표지도서하면서 지나가기에 바쁘다. 트렌드는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행사에 다녀왔다는 경험과 인스타 사진만 남는다. 책은 소외되고. 몇 시간 부스를 걸으며 허겁지겁 지식을 섭취하는 하루살이의 리듬과 찬찬히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음미하는 천년 묵은 소나무의 호흡이 다르다.
제지회사가 두 개나 입점한 것이 특이하다. 버거 회사보다는 매장에 번을 납품하는 SPC삼립이나 롯데웰푸드나 멕시코계 빔보가 B2B로 돈을 벌듯, 까페 매장보다는 커피의 균일한 품질을 좌우하는 정수 필터회사 브리타가 돈을 벌듯, 출판계는 제지회사가 돈을 번다. 필수 중간재를 B2B로 제공하는 사업이 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