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oreatimes.co.kr/lifestyle/arts-theater/20250828/frieze-2025-kim-tschang-yeul-the-painter-who-made-fleeting-waterdrops-eternal
더코리아타임즈 주말판 믿음직한 박한솔 기자의 국현미 김창열전 리뷰 기사다
우수한 영문 저널리즘에서 그러하듯이 핵심 단어인 물방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며 단어의 외연을 풍부하게 더했다. 예를 들어
A drop of water → 물 한 방울
fleeting beads → 덧없는 구슬들 / 순간적인 알갱이들
the glistening droplets → 반짝이는 물방울
they perched weightlessly~ → 물방울은 무게 없이 얹히고
slide downward~forever suspended in motion → 아래로 미끄러지다 멈춘 방울
a single bead of water → 단 하나의 물의 구슬
a single, suspended tear-like bead of water → 공중에 매달린 눈물 같은 단 하나의 물의 구슬
pearl-like drops → 진주 같은 방울들
his ephemeral beads → 그의 덧없는 구슬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a lifetime spent chasing these transient forms 이 덧없는 형태를 쫓았던 인생
이런 다양하고 풍부한 동의표현이 글에 원어민적 감각을 더한다.
다음은 채선생에게 좋은 문단만 일부 복붙해서 번역해잘라고 부탁한 결과다.
첫 네 문단 번역
유리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고, 땅속으로 스며들며, 공기 속으로 증발해 사라지는 물 한 방울. 김창열(1929–2021)은 이 덧없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슬들을 붙잡아 영원으로 만들었다.
반세기 동안 그는 수도승 같은 헌신으로 반짝이는 물방울을 되풀이해 그렸다. 때로는 갓 떨어진 듯 가볍게 캔버스 위에 얹혀 있었고, 때로는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다 영원히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극사실적 환영의 성취를 넘어선다.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전쟁과 유랑의 말해지지 않은 상처의 상징이었다. 그 여린 곡선 안에는 상실의 고통과 더불어 위안의 가능성, 지워짐과 초월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물방울의 힘이 아무리 강렬하다 하더라도, 그것만을 응시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사람과 그가 자신의 상징적 모티프로 나아가게 된 길고 우회적인 여정을 가려버릴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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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0여 년 동안, 그는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음울한 앵포르멜 추상에 쏟아부었다. 다수가 「의식(Rite)」이라는 제목을 공유하는 이 초기의 어두운 색조 작품들은 거칠게 내리친 흔적과 원형의 압흔을 담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탱크의 무한궤도와 총탄이 살을 찢는 흔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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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거의 없고 인정을 받을 뚜렷한 길도 없었던 그는 점차 새로운 양식으로 기울었다. 밝고 유동적인 형상을 불러내며 기묘한 생명력으로 고동치는 듯한 형태들 — 살아 있는 창자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형상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창자 그림(intestine art)”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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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요한 고독 속에서 비전이 찾아왔다. 어느 새벽, 밤새 작업을 마친 뒤 그는 캔버스에 매달려 있던 단 하나의 물방울이 여명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덧없는 광경에서 탄생한 것이 「밤의 사건(Evenement de la nuit)」(1972) — 캔버스 위에 매달린 눈물 같은 한 방울의 물이었다.
오랫동안 그의 최초의 물방울 그림으로 평가받아온 이 작품은, 서울 회고전에서 새롭게 맥락화된다. 그곳에서는 한 해 전 이미 구슬 같은 방울들이 빛나고 있던 두 점의 미공개 캔버스가 함께 전시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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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마 캔버스, 신문지, 그리고 한국의 전통닥나무 한지를 비롯한 다양한 지지체 위에 다시금 그 덧없는 구슬들을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