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빠진 로맨스 (2021) 보았다.
계기는 제작자와의 SNS 소통인데 마침 넷플에 있고 어떻게 보실지 정말 궁금하다고 해서 연말에 시간이 있어 클릭을 눌렀다.
영화는 섹드립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해피엔딩 로맨스 코미디영화다. 노출 없이 야한 농담 따먹기로 야시시한 분위기를 만드는 로코의 한 세부장르로 장르적 재미와 연기 차력소 둘 다 잡은 일석이조의 영화다.
이런 영화의 계보를 올라가자면 <변강쇠> <옹녀>도 있고 비교적 최근으로는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그리고 변성현 감독의 <나의 PS 파트너(2012)>가 생각난다. 또 TV방송 중에는 개콘 사마귀 유치원의 쌍칼 사마귀 조지훈(2011-2012)도 떠오른다.
공교롭게 직접적 성행위보다 말로 돌려 까는 성적 은유가 돋보이는 창작물은 2010-12년에 몰려있었던 것 같다. 왕관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쓰는 시절을 잘못 만난 영화는 아쉽게도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한 모양이지만, 미투운동 즈음하여 성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에 성적 욕망에 솔직한 여성캐릭터의 원나잇이라는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데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으며 각본을 잘 짰다.
또한, 코로나시절인 2020년 촬영한 영화치고는 상대적으로 빨리 관객을 만난 편이다. 크랭크인 10월 26일, 크랭크업 12월 27일에 개봉은 21년 11월 24일이다. 비슷한 시기 촬영한 <원더랜드>와 <탈출>, <브로큰>이 크랭크업 4년만에 개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창고에 묵혀두지 않고 바로 반출되었다.
연기도 일품이다. 전종서 배우 외에 이정도로 섹드립을 태연하고 찰지게 구사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었을까. 당연히 술이 아니라 술색깔 나는 보리차를 마시면서 연기 했겠지만 술취하고 혀 꼬인 연기가 훌륭하다. 전종서 배우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으로 데뷔해서 땅거미가 거의 진 어둑한 시골 하늘 아래 벤(스티븐 연 분)과 마약을 하다가 가슴을 까고 자유로운 춤을 추는 신으로 강렬한 첫 시작을 알렸는데 어쩐지 이미지가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고착되어 개성 강한 장르 영화(콜, 모나리자와 블러드문, 발레리나)에만 나오는 듯한 인상이다. 천우희가 써니(2011), 곡성(2016), 더에이트쇼(2024)에서 나사빠진 미친년 연기를 이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박보영의 간호사 역할처럼 한 가지 이미지가 고착되면 계속 업계에서 그 배역으로 찾아오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전종서든 천우희든 박보영이든 대중에게 각인된 첫인상 외에 연기 스펙트럼이 더 넓다는 생각이 들고 더 창의적인 캐릭터로 이들의 연기력을 배출하면 좋을 것 같다.
손석구 배우의 데이팅어플 오작교미(오작교+me도 되고 오작+교미도 되는 언어유희로 보인다)에서 닉네임 직박구리도 작중 이름 박우리(빠구리)를 간접적으로 의미한다. 손석구 배우는 늘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바라본다.

<기생충(2020)>에서 기우(최우식 분)에게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 분)이 유학간다고 부잣집 고액 과외 자리를 넘겨줄 때 대화가 이루어지는 삼거리 오르막길의 구멍가게가 연상되는 배경에서 임성재와 손석구 배우의 시발놈아 하는 티키타카 호흡이 좋다. 이 부분은 연기도 잘 살렸지만 짧은 호흡의 편집이 대사의 리듬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최마초역의 임성재는 몇 컷 안 나왔으나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마 손석구와 그 다음에 목소리로나마 재회한 영화는 차량 블랙박스로 찍어 10분 짜리 영화로 짜투리 시간에 극장상영한 <밤낚시(2024)>일 것이다.
이렇게 남남 배우 호흡도 좋고 여여여 배우 호흡도 좋다. 함자영(전종서 분)과 고학력 여성인 이혼변호사 선빈(공민정 분)과 왈가닥 캐릭터 유미(김슬기)가 술자리에서 수다떠는 장면이다. 애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술집 주인 남사친 캐릭터로 배유람 배우도 적절하다.


영화 초반에 조루남이어서 차버리는 남친으로 나오는 배우는 이학주인데 최근 개봉한 넷플 <대홍수>에서도 주인공의 남편으로 차가 물에 빠져 죽을 때 나온다. 급발진 꼰대 상사 캐릭터인 편집장역에 김재화 배우도 적절하다.
함자영은 조루남을 차고 남친을 찾는데 그 대안이 웃픈 설정이다.
헬스장 큐티보이이나 마마보이라서 아웃,
운명적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자다 깨서 만났지만 사이비라서 아웃,
산악회가서 만났는데 유부남이라서 아웃,
혜화동 북클럽에 갔으나 여탕이라 아웃,
아니면 NPC 같은 술집주인 친구라 아웃,
성관계는 하고 싶은데 남자가 하도 없어 사이버 만남인 오작교미까지 가야하는 장애물을 잘 배치했다. 자만추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려워서 가상 어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설정이다.
한국어 각본이 찰진데 넷플 영어자막도 이를 창의적으로 잘 살렸다. 1:1 번역하지 않고 문화적 배경을 헤아리고 잘 의역했다.
예컨대 왜 서른인지 알아? 서-어른(서, 얼른)을
영어자막에서 Do you know why thirty is thirty?
Because you're allowed to be dirty (더러울 수 있는-야할 수 있으니까)
t와 d만 바꾼 같은 단어다.

주인공 이름도 한 번 자요를 뜻하는 함자영인데 sleep once로 번역했다.
한국어의 미저리 쓰리 콤보야? 도 영어 자막에선 like Kathy Bates in Misery라고 스티브 킹 작품 안의 배역을 상술했다.

박우리가 나 문창과 출신이야라는 말을 educated man이라고 영어식 사고 방식에 맞게 다듬었다.

자영 할머니(김영옥 분)에게 섹파SP를 송편이라고 에둘러데는데 영어는 FWB(Friends with Benefits)다. 영어를 차용한 한국어지만 외국에서는 다르게 쓰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번역은 태평양을 뛰어놀던 애가 어떻게 하천에서 놀겠니? 에서 '태평양을 뛰어놀던 애'를 someone of my caliber로 바꾼 것이다. 칼리버는 사전적 의미로는 총의 구경이지마 사람의 수준을 뜻하는 고급영어다.

앞은 호흡이 빠른 유머고 뒤는 감성으로 느리게 처리했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로만 점철되면 네러티브의 기승전결이 약해지고 웃긴 쇼츠모음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기에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 AtoZ가 잽으로만 구성할거라면 카메라 패닝, 파스텔톤, 연극적구성, 수직수평구도의 웨스앤더슨처럼 스타일의 미학까지 추구해야한다.
클라이맥스에서 놀이공원에서 비밀이 들통나고 함자영의 무너진 마음을 대변하는 연출이 좋았다. 배우를 지하철 두 칸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가두어 악플로 지탄받고 고립된 감정을 정합적으로 연출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육집 첫 신에서 손석구 대사가 다른 초점 카메라 컷 대여섯 개로 이어져 프레임이 튀어보여 약간 짜임새가 부족해보인다.
엔딩에서 주인공 둘은 다시 만나고 관계를 이어나간다는 암시를 주며 영화가 끝난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용서했느냐라는 관점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딱히 용두사미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화의 영제는 Nothing Serious 심각할 게 없다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