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남짓한 흑백 영상의 저채도 화면 속에도 물방울 알알이 부각되는 폭우인데 그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잉크로 글을 쓰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하는 남자가 있다.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의
비 (텍스트를 위한 프로젝트)
La Pluie (Projet pour un texte) 1969다.
5.14 이대 EMAP 스크리닝 중 한 테마다.

실패 이전에 하나의 시도가 있고, 어떤 실패는 끝내 철회되지 않는다는걸 새삼 깨닫는다. 우스꽝스러움과 비애라는 특이한 조합이 보인다. 마치 먹과 비가 천천히 뒤섞이듯. 다르게 말하면 허망한 성실함이다. 불가능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수행하는 집요하 몸짓이 여기에 있다

자연이 언어보다 빠른 것이다. 잉크가 번지고 종이가 젖어 단어는 문장이 되기 전에 비 속에 용해돼 소멸대고 만다. 흥미롭게도 남자는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결과가 아니라 지속이 중요하다는 걸 호소하려는 것 같다. 글쓰기의 목적이 의미 전달이 아니라,
쓰려는 태도, 자세 혹은 이 모든 것을 합한 어떤 태세 자체에 있다고 증언하려는지도 모른다.

하여 글쓰기 이전에 존재하는 글 짓는 자의 모습이 화면 전면에 부각된다.

문학은 결과물과 퍼포먼스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희극을 품은 텍스트 생산 노동은 자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한 인간의 분연한 정신을 상기한다.

시인으로 출발했던 브로타에스는 언어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기에 단어를 설명의 도구가 아니라 물질처럼 다뤘다. 그래서 이 영상에서 자연은 배경효과가 아니라 글 작성을 도와주는 편집자로 기능한다. 인간이 만든 문장을 비가 삭제하고 그라마톨로지의 주장처럼 의미를 희석시키고 엄밀한 형식적 표현을 자연의 카오스적 리듬으로 되돌린다. 빗물은 잉크를 씻어내면서 동시에 언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남는 것은 흔적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상상한 자연은 어디갔는가. 인간 의지를 무심히 압도하는 근원적 힘을 발산하는 자연. 냉엄한 현실 앞에 재난영화의 과장됨도 숭고함의 수사도 없다.

생각한 바를 기록하려 하는 인간과 달리 세계는 그것을 굳이 보존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허ㄴ나 브로타에스는 그 간극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되려 무심하게 반복한다. 그 무표정함 때문에 작품은 한층 더 우울하고 한결 더 우스운데 이상하게 현대적이다.

작가의 비애. 예술가의 초상. 인류의 운명. 끊임없이 만들고 작업하지만 언제나 행위 위로 비가 내려 결과물은 애통하게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 수많은 작업물 중 유물이 되어 후대에 남겨진 것이 있듯, 깃발처럼 휘날려 쉬이 휘발될 수 있었 퍼포먼스가 화학 혼합물이 필름에 각인되고 디지털화되어 특정 방식으로 조합된 이진법의 전자신호가 해저케이블과 스크린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https://youtu.be/EHhigM53ILw?si=I5H9QuykZR9yvL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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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아트나인 서울 무용 영화제에서 성승정 감독의 <춤이 된 카메라, 롤 인 액션>을 보았는데 스크린에 보이는 로케이션이 바로 그 아트나인 근처에 있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앞에 있는 필라테스 있는 특이한 건물 옥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 인터뷰 뒤로 보이는 아일렉스는 홍대입구역 1번출구에 있는데 저렇게 가운데 건물 몇 개를 넘어 저층 빌딩에서 고층이 보이려면 대충 서교초 방향 어울마당로가 아닐까

아마도미술공간은 천장이나, 맞은편 창문 뒷편에도 작품을 설지했고 성곡에서 한 부산시립미술관의 전시에선 계단 모서리나 망원경으로 보도록 멀리 작품을 설치했다. 현대예술은 내용만큼 형식도 중요한 메시지다. 영화도 영화제작환경을 호출해 외부 무대형식을 보는 자에게 전달한다. 김지운의 <거미집>도 하나의 시도.

성승정의 <댄스어 특강>이 창의적이고 인상깊었다. 불가능한 주제를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701n8G9y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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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 영화 태국 느와르 <친애하는 나의 킬러> 보았다.

왜 1위에 올라있는가 궁금해서 클릭했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느와르 복수극으로 특별한 점은 없다. 금을 영어로 골드가 아니라 라틴어로 aurum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 테이큰이나 존윅 같은 미국 영화의 영향도, 한국 드라마의 빠른 편집점과 클로즈업 연출, 가족신 강조 중국 드라마의 세례도 보인다. 아무래도 한 장르영화가 후대에 제작될 수록 이전 시기의 작품들을 누적해서 레퍼런스로 삼아 학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 느와르를 다 본 입장에서 태국에서만 보이는 차별점도 확인할 수 있다. 장르의 기본 설정은 같더라도 그대로 적용하는게 아니라 제작하는 시공간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 드라마에서 보일 법한 남주-여주의 로맨스신인데 벌레가 스크린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엄청난 벌레가 날아다녀 여주의 얼굴을 가린다. 말단 직원의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인접국 베트남과의 관계도 강조된다. 베트남 마을에서 구출한 희귀 혈액형 보유자가 태국에 와서 자라기 때문. 이것도 유학이다. 마치 시골에서 땅팔고 논팔아 경비를 마련해 자식을 읍내 거점고등학교나 서울로 상경시키는 것도 그 시절에서는 유학이듯. 해외로 출국시키는 것만 유학이 아니고 나고 자란 고향을 벗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빌리티가 유학이 상징하는 이동성이다. 배와 비행기로 대륙을 넘어다녔으니 훗날에는 행성을 이동할 것이다. 달나라에서 수정하고 출생한 이들의 지구 역유학도 있겠지


그리고 인종적으로 몽골로이드가 지배적인 한국에 없는 여러 인종이 보인다. 한족 계통도 있지만 동남아 골격구조가 있다.

액션적 특징으로는 마체타를 총구 방아쇠에 넣어 당겨 어퍼컷하듯 아래에서 위로 총을 쏘게 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무게중심을 낮게 가져가는 (무에타이의 특징인지) 하반신 타격이 많다. 베트콩의 트랩처럼. 남방지방에서는 과일과 작물이 많아 탄수화물은 


풍부하게 섭취 할 수 있지만, 소 돼지 등 가축이 폭우와 습기에 대량으로 자라기 어려워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탓, 그리고 유전적 영향으로 키와 몸집이 몽골인인처럼 크지 않다. 다들 작다. 따라서 자연스레 공격기술도 질량이 큰 사람을 타격하는게 아니라 작은 사람끼리의 무장해제로, 몸을 수그려 낫으로 발목을 자른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 같다.

태국은 관광산업이 발달했고 제조업이 부족해 남성이 일할 일자리가 없는 구조다. 따라서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은 이는 군대에 입대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여러 환대산업과 이와 연결된 서비스직군(운전, 요식업, 배달, 가이드 등)에 종사한다. 사회에도 많으니 픽션을 그릴 때도 특징적으로 트렌스젠더나 게이캐릭터가 하나씩은 있다. 피지컬: 아시아에서도 전직 배구선수로 LGBTQ인 제임스 루사미카에가 있었고, 여기서도 드랙퀸 같은 인물이 센 언니 캐릭터로 나왔다.

인도, 두바이도 보인다.

연출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쿠키를 추가 엔딩화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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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에 올라온 일본 애니는 매 주 시간이 쫓겨 만든 TVA에 비해 작화가 훨씬 뛰어나다.

붓벌레, 이누도지 같이, 귀엽고 무해하며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반려동물 캐릭터는 굿즈 2차 시장에 필요해서 등장하는 것 같다.

지브리의 붉은 돼지서부터 느꼈는데 인물 묘사가 서구적이다. 말과 행동거지는 일본인인데 동양인에 없는 금발과 하얀 피부다. 이젠 청발, 녹발도 있다.

한국에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에 중체서용(中體西用)이 있듯 일본에 화혼양재(和魂洋才)가 있다.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침략에 저항하며 한중일 저마다 자신의 전통을 지키며 근대과학기술을 도입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보수적 근대화 전략이다.

건담이나 제이캅스(한국엔 케이캅스로 수입) 같은 소년 메카닉 만화가 이런 화혼양재의 픽션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단한 외갑은 서양의 기계공학에 기반하되 조종사는 일본의 순수한 정신을 상징하는 초등학교 소년이다.

그런 로봇만화가 화혼양재의 하드버전이라면, 소프트버전이 바로이런 애니의 외양묘사인 것 같다. 말과 행동거지는 일본인인데 금발 녹발 청발의 서구적 외모다. 19세기의 꿈이 21세기에 생각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이 산업의 장르문법이고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표현해서 굳어져 보기에 거슬리지 않다.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아야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만 흑발 흑안에 양복정장을 입은 무채색의 사회을 판타지 세계에 그릴 수는 없다. 꿈을 상상할 것이라면 형형색색이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화혼양재의 반대는 본 적이 없다. 얼굴은 동양인인데 말은 교포인 그런 픽션은 없다. 러시아인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예능은 본 적이 있어도. 일본문화는 폐쇄적이고 내수용이고 고맥락적이라 일본어를, 화혼을 경유해야만 소비할 수 있다.

조금 더 글로벌 지향적인 한국엔 서도동기가 있다. 교포 래퍼, 교포 연예인, 교포 배우, 혼혈 선수 여럿 생각나고 미나리나 성난 사람도 있다. 한국의 소울은 피라는 헤리티지에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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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쌍화점(2008)>을 보았다. 고려 원 간섭기 공민왕을 모티브로 한 퀴어 사극이다. 주진모와 조인성이 키스를 한다. 무술 합도 좋고 거문고도 직접 연주하며 열연한 주진모는 엄숙하고 위엄있으면서 연인을 질투하는 얼굴을 연기한 덕분에 백상 최우수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로 쉽지 않은 소재인데 잘 소화했다. 역사에 BL이라니, 특이한 조합이다. 아마 신라 화랑도도 비슷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유하 감독의 작품을 최근에서야 봤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강남1970(2015)>, <파이프라인(2021)>. 하울링만 아직. 연출은 정석적인데 소재나 스토리에서 비전형적인 반전을 곁들여 흥미를 돋운다

지금 중량감 있는 배우들의 초기모습이 보인다. 송중기, 정성일이 눈에 띈다. 마치 이창동의 밀양에서 데뷔초 장혜진, 이민성, 김종수, 도준이아빠처럼

어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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