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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고니아> 보고 왔다. <가여운 것들(Poor Things, 2023)>를 연출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이다. 막이 전환될 때 스틸컷과 함께 저음의 호른이 울려펴지는 브라스음과 폰트의 특이한 활용이 주특기다.


<유전(2018)> <미드소마(2019)> <보이즈어프레이드(2023)>을 연출한 아리 애스터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가했다. 시대를 잘못 만난 희대의 명작 <지구를 지켜라>에 둘의 취향이 버무려졌다.


엔딩 크레딧에 보니 로케는 영국 런던과 미국 애틀랜타 그리고 그리스의 마일로스섬이다. 애틀랜타 유닛과 그리스 유닛이 나뉜 것을 보니 애틀랜타에서 테디네집을 많이 찍고 그리스 유닛은 엔딩에 나열된 죽은 사람들 컷을 많이 찍었을 것 같다. AT필드 깨트리는 것처럼 톡하고 지구 대기권의 방어막을 뚫자 모든 인류는 전멸한다. (이때 등장하는 지구 모형도 구형 지구가 아니라 지구평면설에 의거한 납작한 대륙이다) 이 허망한 죽음을 정지장면으로 잘 표현했다. 모스크에서 기도하다 죽고 성관계하다 죽고 결혼식 준비하다 죽고 회의하다 죽고 선탠하다 죽고 수술하다 죽고 생선팔다 죽고 배달 패키징하다 죽고 배 운항하다 죽는다. (또 뭐가 있었더라)


에코 채임버 이펙트 등 여러 심리학 용어로 진단할 수 있는 고립된 저학력 저임금 계약직 지방 청년 테디와 약간의 지능 장애가 있는 돈은 넷플 <소년의 시간>의 주제가 생각난다. 


사람 납치해서 지하에 가두고 잘 짜인 대사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듀오감독의 <헤레틱(2024)>도 생각난다. <노팅힐>의 그 휴 그랜트가 나오는 영화로 마지막에 끔찍한 납치감금의 결과가 나온다는 점도 동일하다. 미쉘이 발 잠금 장치를 풀고 비밀 장소에서 안드로메다인 둘을 죽인 결과를 보고 각성해서 총든 테디를 위협하는 신에서 테디와 미셸의 얼굴이 교차편집되며 공룡부터 노아의 방주에 이은 외계인의 인류실험사를 구술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인류진화사 시나리오를 묘하게 닮았는데 리처드 셴크만 감독의 <맨프롬어스(2007)> 같은 대체역사다. 


차이점은 후자는 시드니 루맷 감독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처럼 카메라 위치를 바꾸어가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대사 나열에 연출적 리듬을 준다. <부고니아>는 시각적 임팩트를 위해 강한 렘브란트식 강한 음영을 미셸 위에 쏘아 각진 그림자를 만들고 피랍자에서 외계인 여황으로 전복된 권력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엠마 스톤 얼굴을 로우 앵글 샷으로 잡았다. 이는 초반에 작당 모의하며 화학적 거세 약물 투입할 때 모닥불 앞에서 테디와 돈의 얼굴이 같은 카라바죠식 강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chiaro陽+oscuro陰)로 연출된 것과 대조적이다. 영화의 방점이 테디와 돈에서 미셸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극장에서 들은 이 화학적 거세약물(chemical castration substance)는 메드록시프로줴스테론..어쩌구로 였는데 돌아와 찾아보니 아세트산 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Medroxyprogesterone acetate이고 테스테론 생성억제 및 성욕감퇴용이고 약물투여중지하면 효과는 없어진다. 돈이 투여 후 마음이 들쑥날쑥하고 조금 슬프다고sad하다고 말했을 때는 리비도 감소효과 때문에 그럴 것이다. 과거 궁정출납을 위한 환관처럼 아예 물리적으로 거세하는 것은 아닌데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그저 피랍자에게 성적 관심을 끊고 더 숭고한 이유(외계인 알현)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물론 이런 어려운 그리스어가 포함된(화학물질명에서 합성어 연결시 o를 활용하는) 약물명을 읊는 것은 자신의 그리스 출신임을 드러내면서 일상 속에서 관료적이며 건조한 공포를 만드는 란티모스 감각과 맞물려있긴하다. 그러나 픽션 내부적으로는 개인의 생식 능력을 포기해야 외계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연출적 장치다. 이게 무슨 말이냐?


화학적 거세약물을 투여해 인간의 생식 능력을 자발적으로 끄는 행위가 곧 외계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행증이라는 말이다. 재생산의 중단이 외계 지성에 접근하는 문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수사나 불교의 스님이 번식 능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항백룡의 방식(강호동양학자 조용헌의 표현)으로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속 외계인은 인간의 개체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전체가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더 관심을 둔다. 양봉업자 테디의 고민과 결이 같다. 벌 하나 하나보다는 벌 전체의 개체수 감소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원인을 살충제의 사용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태학자 최재천의 사유 방식이다.


개체보다 집단의 동역학에 초점을 두는 냉정하고, 통계적이며, 무차별한 번식논리다. 그런데 이때 개인적 성적 기능을 비활성화했다는 것은 인간 개체의 번식 욕구를 잠시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외계인의 관찰 스펙트럼 안으로 끌어들인다. 성적 본능, 후손을 남기려는 충동, 자신의 유전적 계보에 대한 애착 같은 종의 번성에 대한 사적 욕망이 억제된 상태로 호모 사피엔스 종의 번식 체계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존재다. 이렇게 개체적 욕망을 걷어내야 외계인이 마주하고 싶은 순수한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생존과 번식이라는 동물적 충동에서 잠시 벗어난 테디와 돈은 외계인의 실험환경을 교란하지 않고 종 전체를 바라보는 외계인의 관점과 더 가까운 위치로 이동한다.


어떤 점에선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의 질서에서 잠시 분리된 인간이 되어 외계인이 논문 작성하듯 다루기 좋은 표본이 되는 셈이다. 영화의 초중반은 테디를 납치범에 잘못된 음모론에 경도된 캐릭터로 그리고 있기에 이 부분이 주목되지 않으나 사실 영화 안에서는 중요한 장치인 것이다. 테디의 바람대로 함으로써 외계인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화학적 거세약물 투입은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생식, 종족, 지속성에 대한 은유로 정교하게 읽어낼 수 있다.




대사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상 필요했다. 성공한 CEO가 할만한 배운 영어로 각본을 아주 잘 다듬고 엠마 스톤이 훌륭한 딕션으로 잘 전달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2014)>때 부터도 이미 대사 딜리버리는 좋았었다. 테크, 경영, 심리학, 화학 등 고급 영단어가 많아서 뭉개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대사다. 또한 엠마 스톤은 납치된 것을 깨닫고 정확히 상황파악한 후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지 않고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피랍범과 대화하는 장면도 잘 살렸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클로즈업 장면에서 눈 연기가 훌륭하다.



미셸 풀러의 회사 Auxolith는 어벤저스 헤드쿼터나 최근 개봉한 <F1더무비(2025)>의 회사를 닮았다. 이런 저층에 유리로 된 깔끔한 회사건물은 아마 애플 건축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과거였으면 메트로폴리탄의 고층빌딩이었을 것이다.


테디와 돈의 집은 <원배틀애프터어나더(2025)>의 집도 생각난다. 전형적인 미국 목조주택이다. 돈은 억양에서 r이 강하게 묻어나는 남부 사투리다. 영화 로케를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로 잡았기 때문이다. 총기로 집을 지키는 것도 그러하고.


윤기나는 검은색의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지프에서 내리는 미셸을 납치하며 티격태격하는 신은 미국의 전형적 우왕좌왕 B급 코미디로 처리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감독의 스타일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 심장을 죄여오는 듯한 과한 긴장감도 지양한 편이다. 영화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대신 테디의 믿음에 대한 의심과 불신에서 미셸의 태세변환으로 정황상 믿음, 그리고 확신으로 넘어가는 크레셴도가 좋다.



<가여운 것들>에서는 장소명으로 <부고니아>에서는 월식 3일전, 2일전 하는 스틸컷으로 막을 표현하는데 전혀 끊긴다는 생각이 없고 거슬리지 않는다. 또한 인물과 전체 관계를 대각선에서 3D 카메라구도로 표현했다. 주특기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Marlene Dietrich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963)다. 생태위기로 재해석되는 노래다. 영화는 외계인 음모론에 담았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kveooWmqq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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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터: 죽음의 땅(2025)>은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언더도그 서사 기반 오락영화로 게임과 제휴가 활발한 IP라는 점이 <던젼앤드래곤:도적들의 명예(2023)>와 닮았다.


티아/테사 역의 엘 패닝은 <아이앰샘(2001)>의 루시와 <우주전쟁(2005)>의 레이첼로 유명한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다. 필모는 많은데 아직 확실한 시그니쳐 작품은 없는 듯하지만 아역 배우 이미지가 너무 강한 언니와는 달리 중장년 때 브랜딩하는 낭중지추가 될 수도 있겠다.


하반신이 잘린 합성인간은 일종의 SF식 접근성 캐릭터(장애)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기계 사이보그 인간 같은 포스트휴먼으로 볼 수도 있다. 후반부의 상반신 하반신 연동액션은 전례 없는 특이한 액션 합이다.


아울러 픽션 구조 속에서 무한 세포증식 재생이 가능한 칼리스크와 합성인간(synth)은 닮은 꼴이다. 그래서 티아가 칼리스크 새끼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버드라고 이름 지어준 것이다.


이러면 파워 인플레를 피할 수 있다. 초장에서는 나약함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아빠나 듀얼을 이길 수 없었던 형이 넘어야할 산이었는데 스토리의 말미에서 복수를 이루고 레벨업을 하고 나니 사실 그들은 더 큰 세계의 일부였을 뿐이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에서 읽은 원왕조가 중화질서를 재해석한 사상구조와 같다. 중화가 최고이자 기준점인 줄 알았는데 사실 더 큰 혼일천하(The Greater Integrated World)의 일부였다고 더 큰 분류체계 속에 부분집합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원래 태어나고 자란 부족에서 열등하다고 버려져 다른 인종과 팀을 이룬다는 서사는 미국식 언더도그 성공서사가 SF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때 우주행성 탐험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회사가 중앙집권 기관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기관의 대표가 엄마(영화에선 mu/th/er로 표시)라는 모계수장이라는 점도. 


캐나다도 국가 이전에 허드슨 컴패니가  먼저 점령했고 미국 서부 개척도 정부관료 진출 이전에 기업이 먼저 진출했던 역사가 있다. 우주개척시대에는 국가가 아니라 회사가 더 중요한 에이전트가 될테다. 그만큼 막대한 자본과 조직이 필요한데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그 프로토모델이거니 싶다. 픽션은 근미래를 예고한다.


행성에 적응하면서 하나씩 배워 나간 생물특징과 지형지물을 활용해 최종 복수를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역시 언더도그 서사에서 중요한 장치다.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도 최종 퀘스트에서 스프라우트 선생수업에서 배운 축축한 식물, 빗자루 타고 날아 스니치 잡기, 움직이는 체스판 등이 등장해서 이전 복선을 회수했다. 


<프레데터>에선 육식 덩굴, 마비독 식물, 면도날 풀, 산성침 도마뱀, 폭탄 애벌레 수류탄, 본 바이슨 투구 등을 사용해 적진에 침투해 칼리스크 어미를 되찾고 테사에게 복수한다. (덱의 어깨에 있는 산성침 도마뱀은 테사의 어깨에 있는 레이저 머신과 닮은 꼴이다)


물론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까지 중간 보스를 해치우며 협력자를 찾아나가는 여로형 모험을 거쳐야하는데 영화에선 익룡, 본 바이슨, 루나벌레, 칼리스크 등의 중간 분기점이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적진 침투해서 티아와 칼리스크 어미를 구출하고 메카닉에 탑승한(아바타1의 마일스 대령이 탄 기갑물) 테사를 무찌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미쌍관을 위해 형 퀘이를 죽인 아버지에게 까지 찾아가 1:1전투(중세듀얼전투 모티브. 듄처럼)를 통해 승리하고 참수한다는 데까지 스토리가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함선의 크기를 통해 엄마가 더 큰 세력으로 모계사회였다는 점이 은유된다. 여왕벌이 더 크고 수컷벌은 그 권속인 것처럼.


영화는 맨 처음에 EDM풍 초저음 몽골목젖소리 흐미로 시작한다. 듄2 사다우카에서 강한 인상을 준 이후 SF물에서 강한 임팩트를 주는 라이트 모티프가 된 것 같다. 


티아는 "우리는 협력하도록 만들어졌어요"라고 말하는데(자막에서) 영어 대사는 we are created in tandem이다. 탄뎀은 라틴어로 본뜻은 마지막으로라는 뜻이지만 점차 일련의 시리즈 마지막에 이어졌다는 의미로 '협력' '함께'를 의미하게 되었다. in tandem with은 고풍스러운 의미로 in collaboration with이라는 뜻이다. 이를 한자문화권으로 비유하자면 함께 공共이나 한 가지 동同을 쓸 자리에 함께 해偕를 써서 백년해로라고 쓰는 것 같다랄까. 혹은 함께 대신에 더불어 여與를 써서 여민동락이라고 쓰는 것 같다랄까.


중간에 불피우고 하루 묵는 장면에서 티아가 우리는 트리오(trio)야, 나무(tree)에서 하는 식으로 언어유희를 하는 장면도 있었고 미국 액션물에 많이 나오는 웁스! B급 너드 유머도 있다. 대표적으로 침투했을 때 식물원에 있던 합성인간 세 명이 야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끔살당하는 장면도 있고, 이상한 질문을 쏟아내는데 답하지 않는 장면도 있다. 티아가 송곳니(fang)은 뭐에 쓰는거냐랄지 물어보는데 씹는다. 반면 어려운 과학용어는 대사가 줄줄 나오다가 중간에 잘리는 것도 너드 과학자의 말을 중간에 컷하는 기조와 같다.


우성 유전자가 아닌 몸이 작고 인정받지 못한 열성(deficient) 야우차, 감수성 많은 합성인간 티아, 말 못하지만 힘순찐 궁극기가 있는 충성 반려펫 캐릭터 칼리스크 새끼, 이 셋이 만들어가는 가오갤식 후속 서사가 궁금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가오갤에 빌런 역지사지형 서사가 결합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형 서사란 빌런 혹은 다른 캐릭터 관점에서 원작 스토리를 재서술한다는 의미로 쓴 말인데 해리포터를 말포이 입장에서 서술한 연극 cursed child에서 말포이가 사실 나는 해리론헤르미온느 너의 셋의 케미가 부러웠다는 대사에서 보인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작품은 여럿 있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2019)〉는 원작 서사 〈배트맨〉의 가해자 조커가 주인공으로 탈바꿈해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시선에서 사회제도 속 인간의 광기와 탈선을 탐구했다.


〈크루엘라(2021)〉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악녀 크루엘라 드빌을 젊은 디자이너의 반항 서사로 재구성해서 빌런의 서사로 원작 세계관을 재해석한 케이스다.


또 〈Wicked(2024)>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를 주인공으로 위치시켜 

초록색 피부 마녀가 사실 도덕전쟁의 희생자임을 드러내 권력, 정의,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재해석을 한 작품이다.


이와 반대로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마라(듀나의 책에서 읽음)라는 말에 따라 악인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기조의 영화도 많다. 떠오르는 것은 영화 <타겟(2023)>이다. 히로인(신혜선)을 그놈(임성재)이 왜 추적하고 스토킹하는지 이유가 없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하비에르바르뎀도 마찬가지로 악인의 배경이 없이도 스토리를 견인한다.


이런 모든 의미에서 야우차는 기존 IP에서 인간을 사냥하던 외계인 사냥꾼 입장에서 쌓아올린 역지사지형 캐릭터다. 전작들이 많이 망했기 때문에 더 이런 실험적 서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2023년에 봤던 <던젼앤드래곤:도적들의 명예>처럼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게임믹스 언더도그 서사 기반 오락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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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박찬욱 감독의 33년을 조명한 지상파 최초 다큐멘터리 <뉴-올드보이 박찬욱>이 넷플에 동시에 공개되었다.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학교 입학 전 초기를 조명하는 넷플 오리지널 다큐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가 여러모로 생각난다. <노란문>에서는 '우리는 그냥 동아리였는데, 봉준호는 영화를 진심으로 생각했구나'라는 회한이 중심 감정이었다. <뉴-올드보이>는 박감독과의 협업이 의미있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중심이 된다.


두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진 감독들의 영화사적 성취는 공동체 모두의 성취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의 소속감과 성취감은 이 두 감독의 세대에 국한된 것이고 다음 세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대정신과 세대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후속 세대는 우리의 성공이 충무로의 성공이자 나라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고 다르게 접근할 것 같다. 자신이 속한 취향 공동체의 지향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든지, 사업적 성취를 위한 홍보 수단이라든지


국가나 영화계의 집단적 위신 향상이 자신의 자존감 향상과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는 발전하고 좋은 영화는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인류에겐 맥락과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큐는 DDP 바스키아전이나 리움 이불전, MMCA 김창열전 같이 그간 작품을 톺아보며 시대의 변화를 음미하는 회고 형식인데, 스틸컷의 미술은 전시회로서 존재하고, 움직이는 이미지의 영화는 영상으로 존재한다.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는 정적 공간에 정지되어 있기에 사람이 동적으로 움직여서 가야만 감상이 되고, 동적으로 존재하는 영상은 흘러가기에 사람이 정지해 앉아서 보는 것이다.


아울러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영화 감독의 피사체는 살아있고 인격이 있는 배우이기에 감독 자신도 그 배우, 나아가 스태프의 관계성 속에 존재한다.  봉, 박 감독 모두 내향인이지만 협업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다큐로서 기록된다는 뜻. PR을 원하지 않아도 자신이 다루는 매체 형식의 특성상  이미지 외부에 존재할 수 없고 카메라 안에 포함되어야한다. 내향인이지만 살다보니 외향인이 되어야하는 아이러니. 인격적인 감독과의 기억이 따뜻하고 좋을수록 동료의 입을 빌려 감독은 선하게 그려진다.


두 감독이 존재했기 때문에 시네마테크나 영화감독조합도 유지되고 저작권, 스태프 노동문제, 룸쌀롱 문화타파 같은 여러 구태들이 타파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올드보이>의 시그니처 장면, 오대수의 격투 연출에서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보인다. <올드보이> 유지태 아역은 유연석 배우라는 걸 이 다큐를 보고서 알았다. 좋은 작품은 다시 읽으면 재밌다. 시간이 갈 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2부 마지막에서 탕웨이의 중국어 인터뷰 중 자막에 포함되지 않은 게 있다. 억양(어조의 기복:语气的起伏) 다음에 因为有跟着去说的时候, 是能(跟)深刻的感觉到 정도로 들리는데 yinwei you genzhe qu shuode shihou shi neng gen shenke de ganjue dao


조금 이상하다. 분명히 shi neng gen shenkedeganjuedao로 들리는데 neng gen이 아니라 能给人이 되어야 말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함께 가서 말할 땐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 정도의 뜻이다.


말하다가 말이 좀 꼬였을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의 작품성을 설득하기 위해 근친서사의 <오이디푸스>를 언급한다.


화면에 언급된 구절은 오이디푸스의 자기 인식을 나타내는 핵심 구절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 존재론적죄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고 - 근친상간(어머니와 결혼)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따 - 부친살해(아버지 살해)


라는 비극적 운명의 삼중 구조와 인간의 무지가 빚어내는 윤리적인 아이러니, 그리고 너무 늦은 알아차림을 나타낸다.

ὦ τάλας, ἐγὼ μὲν ὃς ἐγένοντο παρ᾽ οἷς οὐ χρῆν,

καὶ οὓς οὐ χρῆν ἔγημα, καὶ οὓς οὐ χρῆν ἔκτεινα.

이때 첫 문장은 자세히 보면 의미심장하다.


한: 나는 태어나서는 안 될 이들에게서 태어났고

영: Born of those from whom I should not have been born

희: ἐγένοντο παρ᾽ οἷς οὐ χρῆν

나는 태어났다 — 그러면 안 되는 이들로부터


희랍어 직역에 소포클레스가 숨겨놓은 모호한 중의성이 보인다.


이 말의 해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은 나를 낳아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는 부모의 죄이고(혈통의 금기)

또 하나는 나는 그들로부터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는 나의 죄(존재의 금기)다.


그들이 낳아서는 안 되었고, 나 역시도 태어나서도 안 된다는 두 겹의 금기가 포개져있다.


오이디푸스의 부모인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불길하다는 신탁을 듣고 버렸으니 애초에 그들의 잘못이 있고


신탁에서 예언했던 자신은 존재 자체가 죄의 증거이며 운명(신탁), 법(결혼), 도덕(살인)라는 세계의 질서를 붕괴시킨 불법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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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드라마 작가의 넷플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는 설정도 독특하고, 캐스팅도 적절하고, 자본도 뒷받침되고,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화부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13화까지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가영은 버린 부모는 증오하고 길러준 조부모는 사랑하는 최근 세대를 상징한다. 아무리 사이코패스 연기라지만 자신의 눈에만 지니가 보이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갑자기 과하고 찰진 욕설을 쏟아내고 급발진한다.


<멋진 하루>의 하정우처럼 계속 화를 받아주기만 하는 캐릭터였더라면 더 매력적이었을텐데 지니도 주인공의 목을 조른다. 이는 사패인 주인공이 아이였을 때 할머니 목을 조르는 신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사패의 자기반성을 요구하는신인걸까?


그런데 사패라는 캐릭터가 극 전체의 분위기와 걸맞는지 다른 캐릭터였으면 안되는지, 캐릭터 안에 일관성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걸리는 장면이 많다.


파리의 연인,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급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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