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데터: 죽음의 땅(2025)>은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언더도그 서사 기반 오락영화로 게임과 제휴가 활발한 IP라는 점이 <던젼앤드래곤:도적들의 명예(2023)>와 닮았다.
티아/테사 역의 엘 패닝은 <아이앰샘(2001)>의 루시와 <우주전쟁(2005)>의 레이첼로 유명한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다. 필모는 많은데 아직 확실한 시그니쳐 작품은 없는 듯하지만 아역 배우 이미지가 너무 강한 언니와는 달리 중장년 때 브랜딩하는 낭중지추가 될 수도 있겠다.
하반신이 잘린 합성인간은 일종의 SF식 접근성 캐릭터(장애)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기계 사이보그 인간 같은 포스트휴먼으로 볼 수도 있다. 후반부의 상반신 하반신 연동액션은 전례 없는 특이한 액션 합이다.
아울러 픽션 구조 속에서 무한 세포증식 재생이 가능한 칼리스크와 합성인간(synth)은 닮은 꼴이다. 그래서 티아가 칼리스크 새끼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버드라고 이름 지어준 것이다.
이러면 파워 인플레를 피할 수 있다. 초장에서는 나약함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아빠나 듀얼을 이길 수 없었던 형이 넘어야할 산이었는데 스토리의 말미에서 복수를 이루고 레벨업을 하고 나니 사실 그들은 더 큰 세계의 일부였을 뿐이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에서 읽은 원왕조가 중화질서를 재해석한 사상구조와 같다. 중화가 최고이자 기준점인 줄 알았는데 사실 더 큰 혼일천하(The Greater Integrated World)의 일부였다고 더 큰 분류체계 속에 부분집합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원래 태어나고 자란 부족에서 열등하다고 버려져 다른 인종과 팀을 이룬다는 서사는 미국식 언더도그 성공서사가 SF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때 우주행성 탐험에서는 국가가 아니라 회사가 중앙집권 기관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기관의 대표가 엄마(영화에선 mu/th/er로 표시)라는 모계수장이라는 점도.
캐나다도 국가 이전에 허드슨 컴패니가 먼저 점령했고 미국 서부 개척도 정부관료 진출 이전에 기업이 먼저 진출했던 역사가 있다. 우주개척시대에는 국가가 아니라 회사가 더 중요한 에이전트가 될테다. 그만큼 막대한 자본과 조직이 필요한데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그 프로토모델이거니 싶다. 픽션은 근미래를 예고한다.
행성에 적응하면서 하나씩 배워 나간 생물특징과 지형지물을 활용해 최종 복수를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역시 언더도그 서사에서 중요한 장치다.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도 최종 퀘스트에서 스프라우트 선생수업에서 배운 축축한 식물, 빗자루 타고 날아 스니치 잡기, 움직이는 체스판 등이 등장해서 이전 복선을 회수했다.
<프레데터>에선 육식 덩굴, 마비독 식물, 면도날 풀, 산성침 도마뱀, 폭탄 애벌레 수류탄, 본 바이슨 투구 등을 사용해 적진에 침투해 칼리스크 어미를 되찾고 테사에게 복수한다. (덱의 어깨에 있는 산성침 도마뱀은 테사의 어깨에 있는 레이저 머신과 닮은 꼴이다)
물론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까지 중간 보스를 해치우며 협력자를 찾아나가는 여로형 모험을 거쳐야하는데 영화에선 익룡, 본 바이슨, 루나벌레, 칼리스크 등의 중간 분기점이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적진 침투해서 티아와 칼리스크 어미를 구출하고 메카닉에 탑승한(아바타1의 마일스 대령이 탄 기갑물) 테사를 무찌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미쌍관을 위해 형 퀘이를 죽인 아버지에게 까지 찾아가 1:1전투(중세듀얼전투 모티브. 듄처럼)를 통해 승리하고 참수한다는 데까지 스토리가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함선의 크기를 통해 엄마가 더 큰 세력으로 모계사회였다는 점이 은유된다. 여왕벌이 더 크고 수컷벌은 그 권속인 것처럼.
영화는 맨 처음에 EDM풍 초저음 몽골목젖소리 흐미로 시작한다. 듄2 사다우카에서 강한 인상을 준 이후 SF물에서 강한 임팩트를 주는 라이트 모티프가 된 것 같다.
티아는 "우리는 협력하도록 만들어졌어요"라고 말하는데(자막에서) 영어 대사는 we are created in tandem이다. 탄뎀은 라틴어로 본뜻은 마지막으로라는 뜻이지만 점차 일련의 시리즈 마지막에 이어졌다는 의미로 '협력' '함께'를 의미하게 되었다. in tandem with은 고풍스러운 의미로 in collaboration with이라는 뜻이다. 이를 한자문화권으로 비유하자면 함께 공共이나 한 가지 동同을 쓸 자리에 함께 해偕를 써서 백년해로라고 쓰는 것 같다랄까. 혹은 함께 대신에 더불어 여與를 써서 여민동락이라고 쓰는 것 같다랄까.
중간에 불피우고 하루 묵는 장면에서 티아가 우리는 트리오(trio)야, 나무(tree)에서 하는 식으로 언어유희를 하는 장면도 있었고 미국 액션물에 많이 나오는 웁스! B급 너드 유머도 있다. 대표적으로 침투했을 때 식물원에 있던 합성인간 세 명이 야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끔살당하는 장면도 있고, 이상한 질문을 쏟아내는데 답하지 않는 장면도 있다. 티아가 송곳니(fang)은 뭐에 쓰는거냐랄지 물어보는데 씹는다. 반면 어려운 과학용어는 대사가 줄줄 나오다가 중간에 잘리는 것도 너드 과학자의 말을 중간에 컷하는 기조와 같다.
우성 유전자가 아닌 몸이 작고 인정받지 못한 열성(deficient) 야우차, 감수성 많은 합성인간 티아, 말 못하지만 힘순찐 궁극기가 있는 충성 반려펫 캐릭터 칼리스크 새끼, 이 셋이 만들어가는 가오갤식 후속 서사가 궁금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가오갤에 빌런 역지사지형 서사가 결합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형 서사란 빌런 혹은 다른 캐릭터 관점에서 원작 스토리를 재서술한다는 의미로 쓴 말인데 해리포터를 말포이 입장에서 서술한 연극 cursed child에서 말포이가 사실 나는 해리론헤르미온느 너의 셋의 케미가 부러웠다는 대사에서 보인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작품은 여럿 있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2019)〉는 원작 서사 〈배트맨〉의 가해자 조커가 주인공으로 탈바꿈해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시선에서 사회제도 속 인간의 광기와 탈선을 탐구했다.
〈크루엘라(2021)〉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악녀 크루엘라 드빌을 젊은 디자이너의 반항 서사로 재구성해서 빌런의 서사로 원작 세계관을 재해석한 케이스다.
또 〈Wicked(2024)>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를 주인공으로 위치시켜
초록색 피부 마녀가 사실 도덕전쟁의 희생자임을 드러내 권력, 정의,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재해석을 한 작품이다.
이와 반대로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마라(듀나의 책에서 읽음)라는 말에 따라 악인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기조의 영화도 많다. 떠오르는 것은 영화 <타겟(2023)>이다. 히로인(신혜선)을 그놈(임성재)이 왜 추적하고 스토킹하는지 이유가 없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하비에르바르뎀도 마찬가지로 악인의 배경이 없이도 스토리를 견인한다.
이런 모든 의미에서 야우차는 기존 IP에서 인간을 사냥하던 외계인 사냥꾼 입장에서 쌓아올린 역지사지형 캐릭터다. 전작들이 많이 망했기 때문에 더 이런 실험적 서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2023년에 봤던 <던젼앤드래곤:도적들의 명예>처럼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좋았던 게임믹스 언더도그 서사 기반 오락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