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피엔드 보고 왔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그의 매니저 사이의 아들, 소라 네오 감독의 작품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으로서 고뇌가 있는 분인데 음악적 특징은 빼다 박았다.
네오 소라는 전통적 읽기방식이 아니다. 감독의 창의적인 네이밍이다. 원래라면 하늘 공 空은 소라 혹은 쿠우가 맞는데, 소리 음音 중앙 앙央은 온오 혹은 오토오 정도로 읽었을 거다. 소리 음의 훈독인 네, 앙의 뒤쪽 부분만 살려 네오라고 해서 영어의 새롭다라는 라틴어 Neo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로운 하늘 정도의 의미로 읽히고 그 뜻은 음악의 가운데라고 표시했다.영화제목에 속으면 안된다. 보통 제목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제목이 해피라고 해피한 영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퍼펙트데이즈>(2023)도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분)의 코모레비를 즐기는 나날을 그리는 것 같지만 막 가운데 삽입된 불안한 음악이 마냥 조용한 루틴 속 평화로운 내면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준다.영화제목에 해피가 직접적으로 들어갔으나 해피하지 않은 영화를 생각해보면 여럿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Happy Together>(1997)인데 두 주인공은 전혀 함께 행복하지 않고, 되려 두 남자의 고통스러운 관계와 아르헨티나에서의 외로움을 다룬 작품이다.제목이 똑같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Happy End>(2017)도 부유한 유럽 가정의 붕괴와 허무를 다룬다. 토드 솔론즈 감독의 <Happiness>(1998)는 일그러진 삶, 고독과 소외, 성적 일탈 같은 불쾌하고 충격적인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그리고 있으며 마이크 리Leigh 감독의 <Happy-Go-Lucky>(2008)의 주인공이 그나마 명랑하고 낙천적이지만 주변 인물이 냉소적이고 폭력적이기에 사회적 병리와 마주한 주인공의 긍정은 도피인지 아닌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도 해피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일그러지거나 고통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이전에 홍탕에게 말한 바 있듯 무난한 맛의 영화다. 마트에서 계획한 음식을 구매해 예상한 맛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EDM 노래와 잔잔히 흐르는 OST의 사운드가 풍성해 해상도 높은 유럽회화를 보는 것 같다. 노래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레거시가 가득하다. 에너지 플로우의 진행 같은 (왼손 옥타브 아래 E F# G#) (오른손 A B E E E D F# A E) 부분도 귀에 들려온다.다음은 기억나는 내용 몇 가지와 단상1. 키토총리의 한자는 귀신의 우두머리 귀鬼두頭총리다. 총리연설의 TV라이브 송출 중 도시락에 맞아 볼에 김이 붙은 부분에서 弁当で襲撃されるがけがなし 이런 느낌의 자막이 있었다. 도시락으로 습격당했지만 상처 없음.
2. 미래적인 느낌은 CCTV카메라와 얼굴인식 데이터마이닝과 AI를 이용한 감시시스템이 하나, 구름에 레이저로 쏴서 행정고지와 공공안내를 하는 부분이 둘
3. 아나키스트인 고등학교 선생과 제자들이 저녁에 술 마시고 담배피며 동지들과 함께 권력을 비판하는 노미카이(술모임)와 교장실 점거행동이 일본 60-70년대 활동한 전공투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1969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와 같은 일이다. 다만 항쟁의 대상이 69년은 정부, 총리, 미군이었고 영화상으로는 정부, 총리, 감시시스템이다.
4. 재일조선인 3대인 어머니는 말했잖아(言ってたの)를 잇떼따노가 아니라 윳떼따노로 구어체음변화를 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5. 재일조선인 음식점 메뉴판에 김치キムチ 한국 김韓国のノリ, 한국식모둠(韓国盛り合わせ)같은게 눈에 띈다.
6. 강당에서 룰은 지켜야한다고 항의하는 두 번째 인물(여성)의 딕션이 성우처럼 좋아 전달력이 훌륭하다.
7. 그림자극에 대한 레퍼런스도 있다. 영화에서 따로 보이스오버 나래이션이 없고, 인물들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목소리로 그상황을 나름 묘사하며 노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하나는 교장선생에게 혼나는 장면, 다른 하나는 졸업 후 미국 디트로이트에 돌아간다고 아프리카계 일본인(흑인) 톰이 유타에게 말하는 장면, 마지막은 톰의 생일파티에 1층에 내려가 꽁냥꽁냥하고 있는 밍과 아타를 내려다보는 장면(상단중간에서 좌측중간으로 3량 정도의 짧은 기차가 4초 정도 지나간다) 셋이다.
8. 영화는 화보집, 영화잡지, 평론집에 수록될 것을 기대하고 좋은 스틸컷 장면을 7초 이상의 롱테이크로 넣었다. 마치 두 주인공이 비오는 날 지하 국수집에서 만나는 화양연화의 유명한 스틸컷처럼(캄보디아 유적지 틈 사이로 침묵의 절규를 하는 양조위도)
기억나는 것만 세 개. 유타가 어린애라고 불평하며 코우가 돌아가고 톰이 마트 봉지를 들고 뒤를 쳐다보는 장면, 밍이 음악연구회 동아리방 한 모서리에 서있고 아타랑 같이 프레임 왼쪽에 있는 장면, 유타 엄마가 유타 퇴학 당하고 백으로 5차례 존나게 패는 장면(오른쪽은 기울어진 도로를 배치하고 뒷쪽 건물과 도로가 차경으로 프레임 위쪽으로 잡히고 두 인물은 좌측에 있고 더 좌측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육교 마지막 장면. 육교샷은 육교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장면부터 시작해 밍과 아타가 밍의 아버지가 큰 저녁 사준다고 헤어지고 저 멀리 둘이 머뭇거리다가 이별하는 장면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롱테이크다. 배우들이 열연했다.
9. 영화 처음에 유타가 코우에게 스키나 다이스키가 아니라 아이시떼루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다지 퀴어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10대 특유의 치기어린 표현 같은 것이다
10. 교장은 점거한 학생에 대해서는 빡치지 않는다. 비싼 스시 줘도 안 받으니까 먹어! 먹으라고食い(くい)! 라고 한다.
그런데 어쨌든 교장이나
11. 사회시스템에 항거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이별에 아쉬워하는 10대 청소년을 그린 영화는 외국에는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같다. 한국픽션은 입시, 서바이벌, 생존에 바쁘다. 일본은 3시에 수업 마치고 부활동하는 문화라서 그런가? 우리나라에 없는 감성이다. 학원집학교에 메말랐던 감성을 충전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찾아보기도 하는 듯.
정확히 10대에만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감정이다
12. 재일조선인 코우는 특별영주권이 없어 자기만 끌려가는 억압적인 사회현실에 항거하며 데모도 나가고 하면서 유타에게 너는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강당신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은 코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던지면서까지 진실을 말하고 그 책무를 다하는 자는 유타다. 유타가 생각이 없어서 음악하면서 지내는게 아니라 음악을 하기에 5명의 친구들이 모일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마저 진지해져버리면 너무 괴로우니까. 겉으로는 치기어리고 생각없어보여도 내면으로는 생각이 깊은 캐릭터다. 창고에서 마지막 우퍼를 챙겨올 때 정정당당하게 교무실로 들어가 신청서 없이 서랍에서 키 꺼내서 가져가며 시끄러워 うるせ하면서 벌점 감수하면서 유유히 나가는 것도 유타다. (교무실 전원 어이없음)
13. 교사와 교장 캐릭터가 아주 좋다. 이들이 없으면 무게감이 전혀 없을 뻔 했다. 이들이 안타고니스트로 있기에 영화가 아주 쫀득쫀득하고 매력적이다.
14.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약자의 무기: 농민 저항의 일상적 형태라는 책에서 거대한 권력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저항의 형태를 설명한 바 있다. 졸업식에서 아타가 보여준 빠개진 Z를 자수로 수놓은 교복와 치마를 입어서 보여준 조롱도 그 한 형태다. 교토 졸업식 같은 것이 생각난다. 전통과 권력의 기득권이 강하고 단단하지 않다면 이런 조롱이 재미가 없다. 근미래의 일본인데 여전히 기립, 례, 착석 같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아있다. 후미처럼 기립하지 않고 사람모아서 데모하고 항거하는 것도 저항이지만 유타도 저항의 한 형태다. 오히려 코우가 친구들에게만 분노할 뿐 명시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저항하면 불안한 자신의 법적 지위가 박탈되니까 말이다.
15. 또 뭐 말할게 있던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기억 안난다. 나는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