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국립중앙박물관 정도가 아니면 국내 전시에서 파인화된(극도로 세분화된) 외국을 느끼기 쉽지 않다. 해외작가 다양성의 범위가 베스킨라빈스 31보다 적다. 거의 구미작가라는 말. 국공립정도가 아니면 태국(국중박특별전), 북아프리카, 아랍, 남미 등 여러 나라의 작가를 보기가 어렵다.

극도로 동질적이고 균질적인 한국사회에서 국적, 문화, 출신, 인종이 모두 하이브리드된 작가를 세분화해서 의도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은 다양성을 표방하는 예술의 영역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질적인 존재들을 인지하는 것에서 이해와 수용이 시작된다. 부유한 지역은 선진국 위주로 글로벌화되고(미국영국유학, 유럽풍베이커리와 까페, 일제제품), 가난한 지역은 도상국 위주로 글로벌화되는데(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몽골 이주노동자) 이것도 어쨌든 탈냉전 후 명시적인 적이 없어진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서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가져온 후속효과다. 인력의 모빌리티.

비슷한 맥락에서 비싼 미술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랑은 문화자본이 큰 미국, 유럽 작가를 위주로 전시해야 콜렉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데, 다양성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미국, 포르투갈, 영국 등 본국의 헤드쿼터에서 정체성 정치가 중요한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소속작가의 해외투어라고 볼 수도. 해외법인에 출장간 본사의 임원은 해외에 적응하기 보다 본국의 사회문화적 변화에 더 민감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외국계 갤러리에서 성장배경이 다른 작가들이 어떤 의도로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보면 생각의 확장에 도움이 되고 부분적으로 해외 트렌드의 변화를 일별해볼 수 있다.

예컨대 아프리카출신(화이트큐브에서 본 가나의 엘아나추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알렉스 카츠, 장미셸바스키아), 베네수엘라+아이티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색화 색면과 화풍을 공유하는 타데우스로팍 알바로 배링턴, 팔레스타인+말레이시아계의 영국런던태생 리만머핀의 멘디엘사예가 생각나고 러시아 근처 라트비아계 디아도 다른 예시다.

비엔날레도 다양한 지역의 작가를 만나기 좋다. 물론 어느 작가가 출신지와 문화를 모두 대변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소격효과는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보는구나. 한편 참여작가수만 늘리기 위해 의도가 선명하지 않은 작품을 거는 경우가 있으니 알잘딱깔센으로 주의

호추니엔이 디렉팅한 광주비엔날레. 삼십 개 넘는 곳을 땡볕에서 다녀야해서 과유불급이었던 24년과 달리 집약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그래도 몇 군데 빼고 거의 다 갔지만 재작년엔 정말 고생했었던 기억이 있다. 소낙비 맞으며 택시타며. 안소연님의 광주비엔날레와 베니스비엔날레 비교 학위논문을 읽은 지금이라면 더 재밌게 즐길 지도.

제주비엔날레에서 울시미 소장 와엘샤키 영상을 오랜만에. 국현미 과천 1층과 부산 카린과 대구에서도 있었는데 오래 전시를 다니면 이렇게 누적 경험에 따른 반가운 만남이 있다. 국현미 작가상의 제인 진 카이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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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하는 트립콤파니 채널에 카가와현과 다카시마를 다루며 근처 데시마, 나오시마 등의 미술관을 다루었다. 최민식씨는 미술관 취향은 아니라 내 기억으로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편에서 미술관이 등장하고 거의 없었다.

촬영금지인 이유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공간 자체의 분위기를 즐기도록 배려하는 것이지만 촬영이 중요한 여행유투버 입장에서는 자료를 못 수집하는 것일테니 아쉽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영상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미술관 여행을 함께 다니고 두런두런 전시에 대해 소감을 나눌 수 있는 취향이 같은 동행을 구하는 게 어려워 다들 혼자 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게 남편이든 아내든 파트너든 남친이든 여친이든 뭐가 되었든간에 여러 조건을 맞추는게 참 쉽지가 않다.

남편/남친의 경우 돈은 잘 벌어와 일본여행 가게는 해주지만 데시마 미술관에 가서 야! 뭐 이런 촌구석에 볼게 있다고 와서 돈낭비해! 하고 꼽준다거나

아내/여친의 경우 쇼핑가구시퍼 굿즈샵갈래하며 이동해야하는데 징징거리는 경우 아프거나 해서 일정 차질을 빚게 하는 경우

서로 더치 페이하고 좋아하는 미술관 잘 왔는데 그/그녀가 너무 설교조로 가르치려들어서 내 인상을 바보취급하고 좋았던 기분이 싹 사라지는 경우

다 좋은데 함께 다니기에 조금 구색이 안 맞거나 외모/패션/냄새/화장/자기관리가 안되거나 음식 취향이 안 맞거나

체력이 안돼 내가 원하는만큼 함께 다녀주지 않거나
미술관을 가긴 가는데 정말 휘릭 보고 나오는, 자연경관 좋아하는 하이킹 타입이어서, 밖 까페에서 계속 앉아 있어 눈치가 쓰여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나온다거나

온갖 불편한 케이스를 상상해본다

그럴 바에는 정말 혼자 다니지! 외치며

그렇게 혼자 자유롭게 미술관 여행다니다가

점점 취향의 성벽이 높아져 스스로 고립되어간다. 대개 많이 읽고 보는 자는 앎이 증가할수록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한 고통이 수반되는 법이니까

https://youtu.be/64_lBt1-qjI?si=5914jqn6BKddTL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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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음식들 - 선재 스님의 인생 발효 에세이
선재 지음 / 나무의마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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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스님의 에세이 읽었다.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앞부분에만 자극적으로 재밌는 스토리를 배치하고 뒤는 맥이 빠지는 용두사미형 책이 있는 반면(경제경영에 많다), 뒤로 갈수록 점점 흥미로워지고 훨씬 더 웅숭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글이 있는데 선재스님의 발효된 장맛 같은 글은 후자에 속한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과 자신이 쓰는 글과 그 글감이 되는 자신의 삶이 모두 합치한다.

삶과 마음의 제행합일, 자연에 따르는 목적의식과 제철음식을 각 재료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요리하는 레시피가 조화를 이룬다. 먹는 것이 곧 삶이고, 음식이 곧 나이자 부처인 것이다.

흑백요리사2를 통해 모두 그 맛 보고 싶었으되 어디서도 팔지 않아 맛의 비밀이 꼭꼭 감추어진 그 잣국수, 선재가 성재를 감동시킨 그 잣국수의 레시피가 공개되어있다. 이와 더불어 그리운 옛 할머니들이 만들어 주던 투박하되 시원한 동치미의 비밀도. 재료는 그저 청각과 고추씨가 전부이고 기술적으로는 대나무 껍질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간단한 레시피가 모두 공개되어있지만 그 맛을 구현하는 자는 많지 않으리라. 음식을 만드는 자의 진심과 정성이 더해져야하기 때문. 그것이 선재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음식은 상품 이상의 것이고, 음식 만드는 자와 그이가 만드는 음식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

이외에 제호탕도 흥미로웠는데 일본어로 제호미(醍醐味 다이고미 だいごみ)는 제호처럼 매우 좋은 맛, 묘미, 석가여래의 심오한 가르침이라는 듯이고 제호는 우유로 만든 무슨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의 제호탕은 레시피가 달랐다.

르코르동블루 강연에서 꿀벌 일화를 통해 감동받은 학생, 샌프란시스코 강연 때 만난, 사업실패 후 스님 조언따라 연근 먹고 기도하고 회생한 사업가 이야기, 사찰음식 지망 고등학생, 은사 스님의 시금치 데친 물 아끼라는 이야기, 성재셰프가(이름은 언급안되었고 맥락상) 칼질 숭덩숭덩이 아니라 싹싹에서 몸짓이 통해 웃었다는 이야기 모두 기억에 남는다.

9남매중 7번째로, 직장다니다가 출가하고, 40살에 간경화로 죽을 뻔하다가 발효간장차와 당근김치주스 마시고 푹 쉬어 회복했다는 개인사도 모두 울림이 있다. 자기가 건강을 잃고 좋은 음식을 통해 회복했던 전사가 있었기에 사람들의 건강을 살릴 수 있는, 오프라 윈프리 같은 상처입은 치료자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음식 안에 생명과 평화가 깃든다. 5대 영양소로, 칼로리로 환원할 수 없는 자연과 사람간의 조화에 대한 철학이 있다. 먼저 나 자신이 바로 세워지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주변을 돌보고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 모두 내 입에 들어가 나를 구성하게 될 음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잘 익어가야한다. 은은하게 깊어져야한다. 간단한 진리지만 누구보다 선재스님이 이 말을 했기 때문에 한결 먹먹한 울림이 든다. 타인이 말했으며 억압적인 설교조였을 것 같은데 선재스님이 음식으로 대접하며 말해 맑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는 또한 쓴 이의 삶이 청정하고 정갈했던 까닭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좋았던 두 문단은 위에 캡쳐에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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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세줄에서 식물의 물성을 감각해보았다. 삼(hemp) 냄새가 나는 박서보풍 명상적 미니멀한 작품이었는데, 그 부직포같은 질감을 눈으로 느끼며, 비로소 삼이라는 재료가 트렁크 라이너(바닥재), 천장재(헤드라이너)와 토목건축용 매트 등등 자동차 내장재와 산업용 마대로 쓰인다는 걸 상기했다.

성곡미술관 우순옥전은 유학 생활 동안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 낯선 세계 속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그저 방안에서 곱씹으며 한국에 두고 온 그랬을 법한, 될 수 있었을 법한 존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대 조형학과 졸업생 모임을 대체하기도. 베니스의 죽음이나 타르콥스키 영화 선택에서도 짙은 허적이 느껴지지만 교수가 되었으니 성공한 인생임은 틀림없다 불일치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여민공수와 서울도시계획대관람, 두 전시는 니은자로 인접하고 있는데 영조시대의 한양도성 방비 지도와 1966년부터 시작하는 서울도시발전지도를 보면서 지역만 고정하고 시간이 200년 이동했을 때 그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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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타이틀매치 오인환 장서영전 중 일본여성들의 성씨변경 인터뷰

전시 전체의 주제는 기술 만능 시대에 인간 고유의 기능인 창작에 주목하자 그 일환으로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발생하는 실수로서 휴먼 에러에 초점을 맞추자. 주류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에 질문을 제기하고 주어진 시스템에 순응하기 보다 오류를 만들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드러내자, 였어요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오인환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소환하고 그중 퀴어가 대표적이었을 뿐, 일본 호적제도에 의해 성이 바뀌는 과정 속에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본여성의 스토리도 전시 주제에 걸맞았던 것 같아요.

경직된 사회제도와 천편일률적인 가부장의식이 마땅히 그러하다고 요구하는 삶의 형태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인터뷰로 보여주었죠. 비단 이혼에 의한 성씨변경 뿐 아니라 전대에 소실된 특이한 성씨 사용, 펜네임 활용과 같은 것도 있었는데 어떤 성씨는 자기와 겉돈다고 생각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오자와, 키노시타, 아베, 다시 오자와, 등등 여섯 번. 무슨 레이코 무엇이 되었다가 다시 성씨가 바뀐 레이코. 등등

한편 장서영은 인간이 만들어낸 재료공학기술(실리콘)이 불완전한 인간보다 더 오래산다는 데 착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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