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수원 앞 행리단길의 바이브는 심상치 않다. 대학생 커플, 영 패피, 퇴근한 디자이너, 백인 투어리스트, 국제 커플, 반려견 산책자, 아티스트가 모두 함께 정조의 못 다 이룬 수도 이전의 꿈 앞에서 걸어다니고 있다. 정조의 세종시, 행궁 앞 잔디밭과 큰 광장을 두고 뒤로 뻗어 있는 골목에 프랜차이즈 하나 없이 갖가지 힙한 음식점과 까페가 적벽돌의 주택가와 함께 줄지어 있다. 초창기 홍대의 느낌이다. 프로 혼술러 홍탕이 좋아할 법한 빈티지 바도 보인다. 타르틴에 진심인 포피코가 좋아할만한 수제 베이커리에서 향기와 앰비언스가 흘러나온다. 흥흥킁킁 두둠칫두둥 뭉게뭉게 예에에에 후청각을 사정없이 때린다. 시각을 자극하는 미술관 이후의 또 다른 후청각을 자극하는 미술관이다. 나는 가끔 청담 한류스타의 거리, 백화점 1층, 아울렛 프레시푸드, 스낵코너를 보면서 이런 풍경도 시각을 충분히 자극한다는 점에서 전시장의 주말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과 상품이 경합구도에 있다는 말이다. 


수원시립 갔다 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은 대부분 입구 DIY 지하철 모델(DDP 톰삭스가 생각난다)과 상업팝아트 설치작품 위주의 1, 2전시실 사진일 거다. 이유가 있다. 3전시실의 퀴어, 노인의 성 영상은 인스타그래머블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노인의 사랑과 성생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쉬쉬하고 있을 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마지막 부분도 엄마의 딴남자(합의하 상호불륜?)에 대해 에둘러 언급만했는데도 2008년에 대중의 거부감이 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필름 지원, 소준문 감독의 저예산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고두심 배우는 40살 어린 경훈(지현우 분)과 설레는 사랑을 느끼고 키스를 하는데, 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노년여성의 사랑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하지만 3전시실의 이 영상은 순애보다는 훨씬 나아갔기 때문에 포스팅되고 널리 바이럴될 가능성은 없을 거다.


그나마 그 옆의 자본주의적 예술을 비판하며 돈대신 그림으로 값을 받는 커피집 설치예술은  인스타 포스팅으로 오케이다.노동테마는 군사주의 정권때는 타부였으나 민주주의 흐름이 진행되면서 주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대부분 국공립미술관 전시에서 보면 심리, AI, 노동, 여성, 퀴어 같은 동시대 예술의 담론을 터치하고 있다. 이번 수원시립은 외국의 이름을 빌렸다.


신기한 포인트. 남다현 작가의 영어이름은 남다훈dahoon으로 되어있다. 김가람의 분더캄머 프린팅의 이쁜 여자는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있다. 클레어 퐁텐의 예술권위를 비판하는 작품은 광고판 하나 밖에 없다.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89, 91년 영상이 재밌는데 아무도 앉아서 도합 1시간 보지 않는다. <뮤지엄 하이라이트:갤러리 토크>(1989)와 <웰컴 투 워즈워스: 뮤지엄 투어>(1991)


미드웨스턴 억양의 수준 높은 영어를 하다가 갑자기 톤다운되기도 하고, 대니얼의 가족 초상화를 다 읊으며 나열하기도 하며 만담같은 재미도 주고, 청산유수같이 말하다가 자기 가족 이야기가 나오거나 근처 지역치안이나 상관없는 작품을 소개하는 등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할머니들 이야기 듣는 것 같아 재미있다. 갤러리토크나 도슨트투어라고 하면 정형화된 루트에 정해진 대본에 따라 말을 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안하는데서 흥미와 웃음이 유발된다는 뜻. 톤다운에 대해서는 이런 뜻이다. 발리우드 영화에서 후궁이 지체높은 왕족처럼 힌디어를 하다가 넘어지려는 순간 당황해서 갑자기 사투리가 튀어나와 취집(?)으로 가려져있던 하층 출생신분이 드러나고 관객은 이 부분에서 깔깔대며 웃는다. 아마 지금 종영되었나, 개그콘서트에서 잠깐 봉숭아학당 리부팅시킬 때 김지민 개그맨이 졸부 여자 캐릭터 싼티나를 분하면서 디질뻔했네!, 아니 고인이 될뻔 했네 하면서 말을 수정한다. 동일한 표현이지만 사회계층적에서 다르게 표현하는 말들. 이런 언뜻 드러나는 부분을 꼬집으며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이런 부분이 안드레아스 프레이저의 두 영상에서 읽힌다.


김지민 싼티나: https://www.youtube.com/watch?v=vJOO2UCCRYE


미드웨스턴 억양은 지금은 미국할머니들 말씨인데, 마지막에 악센트를 주면서 피치가 떨어진다. 영상을 다 봤다면 제인 캐슬톤이 누군지 모를 수 없다. 로마 아이 조각상을 근육질의 남성이라고, 로마 엄마를 미국 엄마라고 약을 파는 모습을 모를리 없다. 마치 구민준 편집자가 편집한 둔색환시행을 봤다면 밤이 끝나는 곳을 모를 수가 없고, 요루 핫츠루 토코로를 읽었다면 소리 지르는 가즈에를 포함한 세 엄마에게서 유곽에서 자라난 아이가 사실 선대 황제의 자식이었다는 점을 모를 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 전시든 영화든 책이든 실제로 봐야지만 아는 게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정당한 학습없이 다들 변죽만 울린다. 어이없는 일이고, 그래서는 안되는데 사회적으로 만연하다.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모르면 모르고, 알면 아는 것인데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 훑은 것은 훑은 것이고 공부한 게 아닌데 제목이나 출판사 소개나 아랫사람이 정리한 브리핑정리 훑어놓고 다 아는 척 한다. 진국은 그것을 시간을 들여 읽고 본 사람의 글에서만 나온다. 그런 글은 스크래핑으로 잘 안 읽히고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함정.



사진은 공식사이트도 볼 수 있고 SNS에서 검색가능!

알라딘이 이미지 넣기가 하나씩 해야해서 좀 번거롭고 시간이 걸려서 일단 오늘은 무리

https://suma.suwon.go.kr/exhi/current_view.do?lang=ko&ge_idx=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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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의외로 멀지 않다. 반포에 있는 서울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8900원이다. 이정도면 왠만한 서울 외곽지역 고양, 용인, 안산 가는 것과 똑같은 시간이다. 버스전용 차선으로 130km로 달려서 그런가보다. 경부고속 타고 천안아산까지 적토마처럼 우다다 내달린다.


생각보다 가까워 놀랐고, 생각보다 번화가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젊은 인구가 받춰주고 유동인구와 소비인구가 꽤 되는 중소도시의 활기참이 느껴진다. 신세계 백화점 안에는 노출콘크리트와 인더스트리얼 풍의 천장 아래 서울 유명 맛집들이 입점해있고, 참깨번에 패티퀄로 유명한 다운타우너 햄버거나 눈 앞에서 츄뤽~우쮝~촵하고 자몽을 착즙해 유기농시럽과 섞어주는 아메리칸 트레일러도, 예산사과로 왕건이가 알알이 씹히는 사과파이 매장도 눈에 띈다. 중산층이 모이는 힙한 신세계를 마주보고 도로 맞은 편에는 빌딩에는 온갖 병원부터 빵집까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업체끼리 아웅다웅 어깨를 겨누며 웅성웅성거리고 있다. 대기업과 자영업이 시장을 잘 나눠가진 좋은 예시처럼 보인다.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의 중심부를 약간만 벗어나도 자전거, 아시아식료품점 등 베트남 간판이 꽤 보인다.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수도의 중심부는 선진국 중심으로 국제화하고 외곽은 개도국 중심으로 국제화한다. 충청은 조선의 지명이었으니 이제 아쉽지만 충주는 버리고 청주는 아직 건재한 편이니 놔두고 천안, 세종을 묶어서 불러야할 것 같다. 천세청? 천세도? 일산에서는 특이하게 아빠와 10대 후반 딸아이가 같이 산책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천안에서는 할머니와 10대 초중반 아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인구는 많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인구이고 4-50대는 친정엄마에게 애 맡기고 돈 벌러 다른 지역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라리오갤러리천안과 천안시립미술관에 들렀다. 일단 천안시립부터. 가는데 버스 405타고 35분 정도 걸린다. 시립미술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시외곽에 위치해있다. 보는데 20분도 안 걸린다. 돌아오는 버스는 유관순사적지 종점을 찍고 귀환하기에 나를 데려다줬던 바로 그 버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타면 시간이 절약된다. 지방에서 버스는 시간당 1대 있는 경우가 많이 놓치면 노답. 캐치볼이나 릴레이 같은 감각이다. 부메랑을 던지고 그 위에 올라탔다가 중간에 내렸다가 부메랑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올라타서 원래 던진 자리로 돌아가는 셈



이번 전시는 AI에 대한 테마다. 8명의 작가 작품을 볼 수 있다. 각 작가별 특징에 대해 대충 적어보면 이렇다



노상호의 작품은 인터넷 이미지의 홍수를 편집해 네모난 화면에 살짝 어긋났는데 전체적으로 맞는 4프레임을 보여주면서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해 질문하고,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를 조합해서 불타는 눈사람 캐릭터를 다수 배치하기도 한다.



정아사란의 작품은 물결 포말을 물성으로 보여준 작품을 보여주며 부유하는 가상세계와 실제의 물질과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정말 바다가 출렁이는면서 윤슬이 빛나는가? 아니면 작품에서 보여져서 그렇게 보이는가



김다윤은 타인과 교류, 군중 사이에서 스침을 회화로 나타내며 인터넷 시대의 소통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김보원은 동공이 움직이지 않는 리얼타임엔진으로 만든 3D 사람과 대화를 통해 AI 가상아바타와의 소통과 감정 교류가 가능한지 질문한다





김웅현은 엑스포와 관련된 소품을 모두 불러오고 세대별로 사람별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이벤트를 다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00년대 이후에 태어나 93 엑스포를 경험하지 못한 10대 여아에게 VR기계로 체험시킨 영상작품도 만들었다



김현주는 LLM모델, 데이터마이닝, 코퍼스와 시각화를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었고




이아영은 장지에 수묵화를 그리되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지 않는 사물을 그려 관객이 이게 뭐지?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게한다




임현하은 디지털 이미지의 휘발성과 알고리즘 광고에 의해 제약당한 소비자 선택권에 의문을 제기하며 온라인광고를 자수로, 천으로 엮어 노동집약적인 거대한 손바느질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인사이트는
1) 전시나 작가가 AI라는 테마를 완전히 소화하지 않았다. 디지털, 온라인, 상품소비, 군중 속의 고독, 디지털 아바타, 사이버세계의 교류는 10-20년 전의 이슈다. 말이나 기술 일부만 AI로 치환한듯하고, 정말 AI에 대한 특별한 인사이트는 없었다

2)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 그 지점을 비판하기 위해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득이 없다.

3) 디지털 소외는 오프라인 대면이 시작점, 벤티지 포인트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세대 간 시선의 차이는 기억의 부재가 한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광고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은 제한이 수동성이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했고, 맞춤형 콘텐츠 착취문제는 개인화는 억압이라는 프레임에서, 디지털 자아의 인간미 부족은 눈을 통한 교감이 공감이라는 프레임에서, 가상 세계 속 정서적 교류 약화는 가상현실의 관계는 가짜라는 인식에서, 피상적 소비와 이미지 과잉은 가벼움은 의미없다는 인식에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인식은 디지털은 덜 진실하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모두 다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고 그 편견은 AI가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질문과 그에 대한 해결이 고루하고 올드해보인다.

공감은 눈에만 있는가? 공감의 기준은 시대마다 바뀌고 기계와 공감하기 위해 인간이 아바타화해서 그들의 무대에서 공감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눈이 아니라 프레임, 색변화 같은 비신체적 방식으로 공감할 수는 없는가?

느린 관계만이 진짜인가? 익명기반 커뮤니티 속에 공감은 없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소비 속 짧게 모였다가 헤치는 강렬한 연대는 반드시 잘못되었나?

가벼우면 반드시 의미없는가? 단기간 소비되었다 바이럴은 그치지만 데이터화되어서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인터넷밈도 축적되고 아카이빙되면 의미있지는 않은가? 짤 줍줍, 밈, 반복재생gif 등에 담긴 집단 무의식이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포착하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물질적 실재만 영향력있는가? 촉감이 아닌 데이터 상의 연결정도, 정서적밀도도 사회적 실재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소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았는데 대안은 없었지 않았나? 과계의 깊이다 단절과 연결의 이분법으로만 설명되는가? 연결 방식의 질적 전환은 안되는가? 오래된 인연만이 연결인가? 가까이있는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지 않은가? 인간 대 인간의 연결을 넘어 인간-비인간, 비인간-인터페이스간의 새로운 관계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닿는 물리적 거리 대신 반응성을 정서적 연결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고 능동적 주체성이 상실된다는 비판, 필터링과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비판은 누구나할 수 있지 않은가? 억압이 아니라 예측된 선택이라는 새로운 체계로 받아들이면 안되는가? 어차피 이전의 삶도 자본의 제약, 사회적 지위의 제약 속에 조건부 자율성 안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나? 최대치의 자유라는 것은 상상된 개념, 허상이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요즘 들어

1) 노동집약적 작품

- 여기에선 바느질

2) AI, 최신 테크놀로지 활용 작품

- 여기에선 리얼 타임 엔진 3D 모델 + 공간 이동 영상작품

- 여기에선 VR기기

- 여기에선 LLM, 시각화, 데이터마이닝, 머신러닝, 드론

3) 기억의 정치학

- 여기에선 할머니 회원증, 엑스포 소품 등 당시 관련 자료 모두 소환


이런 테마가 많이 눈에 띈다.



내일도 멀리 갈거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기생수나 마저 읽다가 자야겠다. 오늘은 영화를 못 봤다. 다른 날 두 편 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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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인제 진부령미술관에 다녀왔다


지방미술관은 가는 것 어렵지 않다. 시간이 들 뿐이다. 티켓값과 이동비를 치환한다. 왕복교통비가 4만원, 대신 미술관이 무료인 셈. 그 시간을 들여 갈만한 장소인지가 관건이다


봄에 너무 열심히 다녔나 5월 아트가이드잡지에서 크게 눈에 띄는 전시가 없다. 중하순에 열리는 것은 6월로 이월해도 큰 상관이 없다. 서울내에서 이제 갈만한 지역은 다 갔으니 교외를 다니자. 안산 용인 양주 성남 고양 양평 청주 이제 인제다

직통 시외버스가 있는 곳은 가기 어렵지 않다. 2만원에 티켓을 끊고 2시간 반 몸을 맡기면 된다. 티켓가격도 4-5배에 달하는 옆나라 일본에 비하면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곳은 상시 지진으로 인해 복구비용이 평소에 느슨하게 청구되는 구조다. 발생하지 않은 수리비를 미리 조금씩 내면서 분배하고 있는 셈


고속도로라고 해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눈이 어지럽고 아프다. 학술세미나, Met talk를 들으면 좋다.


Robert Hur의 청문회나 민희진 간담회도 이동중에 들었다. 특히 학술세미나의 경우 "제가 잘 모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지만..." 같은 겸양표현을 가서 앉아서 들으려면 고역이지만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느슨하게 들으면 편하다.

시외버스로 진부령까지 갔지만 돌아오는 차편이 어차피 진부령에서 없다. 원통가는 시내버스 타고 내려오면서 여초김응현서예관을 들렀다가 다시 원통으로 가는 루트가 좋다. 인제군 시내버스는 전기차로 바뀌어 시트도 반들반들하고 승차감도 좋아 서울버스와 진배없다.




강원 전라 경상의 산의 폼은 각기 다른 것 같다. 강원은 산이 병풍처럼 내 눈 앞에 성큼 다가와있다. 안데스, 후지산, 히말라야는 너무 압도적이고 올라오지 말라는 듯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강원도 산은 그래도 친근해서 올라감직하다. 좀 너무 가까운 감이 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 눈을 부비면서 본다면 존재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인제 나는 진부령미술관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보니 황태 건조보관소와 황태해장국 음식점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옥수수와 감자떡도. 맨날 똑같은 거만 먹으면 물리는 법. 산간의 감자와 해안의 동태를 교환한다. 물물교환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매일 보아 물리는 것보다 특별한 것을 원하기 마련. 유럽회화 좋아하는 우리네 마음도 똑같다


미술관 1층은 옛날 영화사진이 재밌었다. 두만강아 잘있거라는 많이 들어본 영화인데. 한국영상자료원고전영화에 있으려나. 기러기아빠는 21세기 용어가 아니었나보다. 누나의 한이라니..스크림을 연상케하는 검은 복면 소품이 조악하다


렌티큘러로 측면에서는 드로잉, 정면에서는 컬러유화로 표현한 그림이 재밌다. 밥풀로 만든 그림도 있는데 밥풀로 무엇을 표현했는지가 핵심. 꽃이나 나무보다는 능선 같은 선의 윤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일본 미대 유학한 작가의 매우 세밀한 꽃과 나비 표현이 인상깊다. 흘러내리는 초록선이 나무와 바위를 동시에 표현했다. 달항아리의 표면이나 목재의 물성을 캔버스에 돌출시킨 작품도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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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 다녀왔다. 궁중여인의 복식은 오늘로 끝났다. 기획전시로 크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원삼과 당의 한 벌씩만 전시되어있었다. 실제 사용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었을까. 용두사미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가면 더 많은 복식을 볼 수 있다.



역사학도 트렌드가 있는데 인접학문과 사회문화의 발달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1990년대는 한국적인 가치의 찾기, 2000년 후부터는 글로벌 교류사, 2010년대이후 과학사, 의학사, 2020년대 후 여성사 등이 있다.


그러한 학문의 발전에 따라 왕조사 중심이던 조선사에서 과학이라는 주제를 발견했고 박물관에도 따로 코너가 생겼다. 아 물론 지금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어번역은 다소 불만이 있다. 그나마 몇 년전 번역에 비하면 다듬은 편이지만 여전히 영어 잘하는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고 한국사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재밌게 읽을 수가 없다. 나의 꿈은 영어로 한국사, 한국미술사를 써서 퓰리처상을 받는 것! 대안으로 나는 이렇게 표현해보면 좋겠다.


영어로 쓴다.


1.

From its inception in 1392, the Joseon Dynasty articulated a unique epistemological vision wherein scientific inquiry was not only instrumental to governance but foundational to royal legitimacy. Unlike the segmented division between science and state often assumed in Western historiography, Joseon's rulers, heavily influenced by Neo-Confucian ideology, saw the mastery of natural phenomena—especially astronomical cycles—as a sacred duty of kingship.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not simply a matter of cosmic curiosity; it was an enactment of moral authority, inscribing the monarch’s rule into the very rhythms of the universe.


In this context, the observation and codific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jeolgi, 節氣) served not merely as agricultural markers but as celestial confirmation of royal virtue. By accurately measuring time, forecasting seasonal shifts, and aligning the agrarian calendar with cosmological order, the Joseon court positioned itself as an intermediary between Heaven (cheon, 天) and Earth (ji, 地), thereby reaffirming its claim to the Mandate of Heaven (天命, cheonmyeong). This was not symbolic rhetoric—it was enacted in bronze instruments, star charts, and the construction of observatories such as the Cheomseongdae and later Gwancheongcheo.


The dynasty's investment in scientific institutions—exemplifi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Royal Bureau of Astronomy (Gwansanggam, 觀象監) and Hall of Worthies (Jiphyeonjeon, 集賢殿)—reveals a sustained commitment to integrating scientific precision into the ideological fabric of the state. Technologies and calendrical systems from Ming China, and later Jesuit-infused Western astronomy, were neither passively received nor wholesale adopted. Rather, they were meticulously reinterpreted, hybridized, and adapted to the Korean ecological and cultural milieu. The synthesis of these foreign systems with indigenous knowledge reflects not cultural dependency, but intellectual sovereignty—a deliberate assertion of Joseon’s capacity to refine and localize universal knowledge.


Indeed, the Joseon king was not merely a patron of science; he was expected to embody its principles. The Confucian sage-king was a ruler whose virtue radiated outward to harmonize society, nature, and the cosmos. Thus, the empirical sciences—far from being secular or neutral—were imbued with metaphysical and moral weight. Accuracy in calendrical reform, advancements in medical practice, and innovations in agricultural technique were understood as direct expressions of just governance. Conversely, failures in these domains were read as signs of cosmic imbalance and political illegitimacy.


Over five centuries, this integration of scientific rationality into the symbolic order of power not only stabilized the Joseon polity but also fostered a distinctive form of technocratic kingship. The Joseon experience complicates conventional narratives of modernity by demonstrating that a sophisticated, state-led scientific culture could emerge outside the Enlightenment framework, driven not by capitalist markets or secularism, but by ritual, hierarchy, and moral philosophy.


In the ideological architecture of the Joseon Dynasty, the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was not derived solely from bloodline or military conquest, but from a continuous reaffirmation of the Mandate of Heaven through cosmological literacy and moral governance. The sovereign’s role was not only administrative but cosmic—an agent positioned between Heaven and Earth whose virtue had to be continually validated through alignment with celestial rhythms.


Astronomy thus became a political theology: it offered a tangible, empirical means of enacting and confirming the king’s fidelity to divine order. The regular observation of the stars, correction of calendars, and public dissemin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were not mere scientific tasks, but sacred responsibilities. When eclipses, comets, or unusual meteorological events occurred, they were interpreted not as natural anomalies, but as potential signs of cosmic displeasure—warnings from Heaven about the king’s moral failings or the court’s ethical lapses.


Accordingly, every astronomical act was a ritual of state. Calendrical reform, for instance, was a public testament to the king’s intellectual virtue and his ability to harmonize human affairs with natural law. The monarch’s observance of rites (ye, 禮) tied to seasonal changes reaffirmed his role as a moral exemplar whose personal discipline mirrored the cyclical precision of the cosmos.


Even beyond state rituals, the dissemination of accurate seasonal information through the Gwansanggam (Royal Bureau of Astronomy) enabled agricultural stability, linking celestial insight with the material welfare of the people. In this way, astronomical knowledge became a political instrument—one that fused Confucian ideals of benevolent rule with the empirical authority of science.


Ultimately, the king’s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a mirror of his governance on Earth. To rule well was to observe well. And through the meticulous reading of the skies, Joseon kings inscribed their authority into both the calendar and the cosmos.


2. 한국어로 번역한다.

1392년 건국과 함께 조선 왕조는 과학적 탐구를 단순히 통치의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왕권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 독자적인 인식론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구 역사서술에서 흔히 상정되는 과학과 국가의 분리와는 달리, 조선의 군주들은 성리학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아 특히 천문 주기같은 자연 현상의 통달을 왕으로서의 신성한 책무로 여겼다. 하늘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우주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실현하는 행위였으며, 군주의 통치가 우주의 리듬 속에 새겨지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물네 절기(節氣)의 관측과 체계화는 단순한 농업 지표가 아니라 왕의 덕성을 하늘이 확인해주는 증거로 기능하였다.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며, 농사력과 우주의 질서를 일치시키는 일을 통해 조선 왕실은 스스로를 하늘(天)과 땅(地) 사이의 매개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로써 천명(天命)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수사가 아니라, 청동기구, 성도(星圖), 첨성대 및 후대의 관청처(觀廳處) 같은 천문대의 건설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


조선의 과학 제도에 대한 투자는 관상감(觀象監)과 집현전(集賢殿) 같은 기관의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과학적 정밀성을 국가 이념의 구조에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명나라로부터 전래된 기술과 역법, 나아가 예수회가 들여온 서양 천문학은 단순히 수용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모방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이를 철저히 재해석하고 혼합하며, 자국의 생태적·문화적 현실에 맞춰 정교하게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외래 체계와 토착 지식의 융합은 문화적 의존이 아니라 지적 자율성(지적 주권))의 표출이었으며, 보편 지식을 정련하고 지역화할 수 있는 조선의 역량에 대한 의도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의 국왕은 과학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체현하는 존재로 기대되었다. 유교의 성군은 덕을 통해 사회, 자연,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경험과 실증에 기반한 과학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역법 개정의 정밀성, 의학의 발전, 농업 기술의 혁신은 모두 정의로운 통치의 직접적 표현으로 여겨졌고, 반대로 이들 분야의 실패는 곧 우주의 균형이 깨졌거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5세기에 걸쳐 조선은 과학적 합리성을 권력의 상징 질서에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했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기술관료적 왕정’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조선의 경험은 ‘근대성’에 대한 통념적 서사를 흔들며, 계몽주의, 자본주의 시장, 세속주의가 아닌 제의, 위계, 도덕철학이 이끄는 세련된 국가 주도의 과학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조선 왕조의 이념적 구조 속에서 왕권의 정당성은 단지 혈통이나 무력 정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천명)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을 통해, 천문 지식과 도덕적 통치의 실천 속에서 정당화되었다. 국왕은 단순한 행정의 수장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서 그의 덕은 끊임없이 하늘의 리듬과의 조화를 통해 입증되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문학은 일종의 ‘정치적 신학’으로 기능했다. 천문학은 국왕이 신성한 질서에 충실함을 실천하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수단이었다. 별자리의 정기적인 관측, 역법의 수정, 그리고 스물네 절기의 대중적 보급은 단순한 과학적 과업이 아니라 신성한 책무였다. 일식, 혜성, 이상기후와 같은 천문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는 단순한 자연적 이상이 아니라, 왕의 도덕적 결함이나 조정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해석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천문학적 행위는 국가의 의례이자 정치적 제의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역법의 개정은 왕의 지적 덕성과 인간의 일상을 자연법과 조화시키는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는 행위였다. 절기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예(禮)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은, 우주의 주기적 질서에 부합하는 도덕적 모범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국가 의례를 넘어, 관상감(觀象監)을 통해 제공된 정밀한 절기 정보는 농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천문학적 통찰을 백성의 물질적 삶과 연결해 주었다. 이처럼 천문 지식은 과학의 경험적 권위와 유교의 덕치 이념을 결합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궁극적으로 하늘에 대한 국왕의 이해는 곧 지상에서의 통치의 거울이었다. 잘 다스린다는 것은 곧 하늘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었다. 하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 권위를 달력 속에, 그리고 우주 질서 속에 새겨넣은 것이다.



3. 여기서부터는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


1) 첫 문장은 During the Joseon Dynasty(1392-1897)로 시작하는데 조선시대 내내 과학의 역할을 다룰 것이 아니라면 역사지식용 연도는 필요없다. 어떻게 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고, 사회안정에 기여했는지 설명이 없어 과학도구를 만들었다는 다음 문장과 이음새가 약하다. 문장이 다 깨지고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과학-국가가 분리된 서양과 차별성과 그 이유를 언급해줘야하다. 

From its inception in 1392, the Joseon Dynasty articulated a unique epistemological vision wherein scientific inquiry was not only instrumental to governance but foundational to royal legitimacy. Unlike the segmented division between science and state often assumed in Western historiography, Joseon's rulers, heavily influenced by Neo-Confucian ideology, saw the mastery of natural phenomena—especially astronomical cycles—as a sacred duty of kingship.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not simply a matter of cosmic curiosity; it was an enactment of moral authority, inscribing the monarch’s rule into the very rhythms of the universe.


1392년 건국과 함께 조선 왕조는 과학적 탐구를 단순히 통치의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왕권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 독자적인 인식론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구 역사서술에서 흔히 상정되는 과학과 국가의 분리와는 달리, 조선의 군주들은 성리학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아 특히 천문 주기 같은 자연 현상의 통달을 왕으로서의 신성한 책무로 여겼다. 하늘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우주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실현하는 행위였으며, 군주의 통치가 우주의 리듬 속에 새겨지는 방식이었다.


2) 천문 하나가 끝이 아니라 세분화해서 요소별로 설명해줘야 영어권 사고흐름에 맞다. 절기, 역법, 그리고 관측지까지. 각각의 문맥적 의미도 끌어ㅐ줘야한다. 그렇게 쓰기는 어렵지 않다. ving로 연결해주면 된다. 영작에서는 원래 원어를 써주고, 한국어 음차에 한자까지 괄호에 넣어줘야 한다. 읽을 때는 그냥 읽히지만 각주처럼 이런 세밀한 보정작업이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In this context, the observation and codific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jeolgi, 節氣) served not merely as agricultural markers but as celestial confirmation of royal virtue. By accurately measuring time, forecasting seasonal shifts, and aligning the agrarian calendar with cosmological order, the Joseon court positioned itself as an intermediary between Heaven (cheon, 天) and Earth (ji, 地), thereby reaffirming its claim to the Mandate of Heaven (天命, cheonmyeong). This was not symbolic rhetoric—it was enacted in bronze instruments, star charts, and the construction of observatories such as the Cheomseongdae and later Gwancheongcheo.


이러한 맥락에서 스물네 절기(節氣)의 관측과 체계화는 단순한 농업 지표가 아니라 왕의 덕성을 하늘이 확인해주는 증거로 기능하였다.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며, 농사력과 우주의 질서를 일치시키는 일을 통해 조선 왕실은 스스로를 하늘(天)과 땅(地) 사이의 매개자로 자리매김했고, 이로써 천명(天命)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수사가 아니라, 청동기구, 성도(星圖), 첨성대 및 후대의 관청처(觀廳處) 같은 천문대의 건설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


3) 간간히 서양 예수회도 언급해줘야 몰입이 끊기지 않는다. 그러나 문단의 시작은 과학제도=기관설립으로 시작하고 외래기술이 더해져서 더 나은 기술이 되었다는 데 방점이 있다. 영작에서 dash의 사용은 글을 맛깔나게 만든다. 부연설명일 때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었으며, 로 쓰기 위해 사용했다.

The dynasty's investment in scientific institutions—exemplified by the establishment of the Royal Bureau of Astronomy (Gwansanggam, 觀象監) and Hall of Worthies (Jiphyeonjeon, 集賢殿)—reveals a sustained commitment to integrating scientific precision into the ideological fabric of the state. Technologies and calendrical systems from Ming China, and later Jesuit-infused Western astronomy, were neither passively received nor wholesale adopted. Rather, they were meticulously reinterpreted, hybridized, and adapted to the Korean ecological and cultural milieu. The synthesis of these foreign systems with indigenous knowledge reflects not cultural dependency, but intellectual sovereignty—a deliberate assertion of Joseon’s capacity to refine and localize universal knowledge.


조선의 과학 제도에 대한 투자는 관상감(觀象監)과 집현전(集賢殿) 같은 기관의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과학적 정밀성을 국가 이념의 구조에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명나라로부터 전래된 기술과 역법, 나아가 예수회가 들여온 서양 천문학은 단순히 수용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모방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이를 철저히 재해석하고 혼합하며, 자국의 생태적·문화적 현실에 맞춰 정교하게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외래 체계와 토착 지식의 융합은 문화적 의존이 아니라 지적 자율성(지적 주권)의 표출이었으며, 보편 지식을 정련하고 지역화할 수 있는 조선의 역량에 대한 의도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4) 여기서 중세정치신학자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주장한 왕의 두 신체 이론을 넣고 싶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패스. 이런 세부적인 논의를 하나하나 발전시켜야지 그냥 툭 하고 "천문학은 제왕학이었고 천문학을 통해 국왕의 통치가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드러냈다"하고 주장을 던지면 안된다. 주장 이후 뒷받침(substantiate)하는 문장을 보강해야한다. AP 작문의 핵심이다.

Indeed, the Joseon king was not merely a patron of science; he was expected to embody its principles. The Confucian sage-king was a ruler whose virtue radiated outward to harmonize society, nature, and the cosmos. Thus, the empirical sciences—far from being secular or neutral—were imbued with metaphysical and moral weight. Accuracy in calendrical reform, advancements in medical practice, and innovations in agricultural technique were understood as direct expressions of just governance. Conversely, failures in these domains were read as signs of cosmic imbalance and political illegitimacy.


실제로 조선의 국왕은 과학의 후원자일 뿐 아니라, 그 원리를 체현하는 존재로 기대되었다. 유교의 성군은 덕을 통해 사회, 자연, 우주를 조화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따라서 경험과 실증에 기반한 과학은 결코 세속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역법 개정의 정밀성, 의학의 발전, 농업 기술의 혁신은 모두 정의로운 통치의 직접적 표현으로 여겨졌고, 반대로 이들 분야의 실패는 곧 우주의 균형이 깨졌거나 정치적 정당성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5) 우리는 항상 1392-1897 정도로만 쓰지만, 영작에서는 유의어 표현이 발달해서 같은 표현을 다시 쓰지 않는다. 5세기라고 한 것은 조선왕조통치내내, 대신에 쓰는 표현이다. 꾀했다 같은 좋은 표현을 foster로 이해하며 좋다. 항상 '촉진하다, 도모하다'라고만 외우지말고 한국말의 다양한 용언을 익히는 게 좋다. allow to를 '-하도록 하다'라고 쓰는 게 나은 것 처럼. 

Over five centuries, this integration of scientific rationality into the symbolic order of power not only stabilized the Joseon polity but also fostered a distinctive form of technocratic kingship. The Joseon experience complicates conventional narratives of modernity by demonstrating that a sophisticated, state-led scientific culture could emerge outside the Enlightenment framework, driven not by capitalist markets or secularism, but by ritual, hierarchy, and moral philosophy.


5세기에 걸쳐 조선은 과학적 합리성을 권력의 상징 질서에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했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기술관료적 왕정’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조선의 경험은 ‘근대성’에 대한 통념적 서사를 흔들며, 계몽주의, 자본주의 시장, 세속주의가 아닌 제의, 위계, 도덕철학이 이끄는 세련된 국가 주도의 과학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6) 위에서 끝낼 수 있었지만, 조금 더 천문과 왕권의 정당성을 연결시키는 글을 발전시켜보자.

In the ideological architecture of the Joseon Dynasty, the legitimacy of royal authority was not derived solely from bloodline or military conquest, but from a continuous reaffirmation of the Mandate of Heaven through cosmological literacy and moral governance. The sovereign’s role was not only administrative but cosmic—an agent positioned between Heaven and Earth whose virtue had to be continually validated through alignment with celestial rhythms.


조선 왕조의 이념적 구조 속에서 왕권의 정당성은 단지 혈통이나 무력 정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천명)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을 통해, 천문 지식과 도덕적 통치의 실천 속에서 정당화되었다. 국왕은 단순한 행정의 수장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서 그의 덕은 끊임없이 하늘의 리듬과의 조화를 통해 입증되어야 했다.


7) 이 한 문단이면 천문학이 왜 조선의 통치에 중요했는지 그 아이디어를 영미권 화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다

Astronomy thus became a political theology: it offered a tangible, empirical means of enacting and confirming the king’s fidelity to divine order. The regular observation of the stars, correction of calendars, and public dissemination of the twenty-four solar terms were not mere scientific tasks, but sacred responsibilities. When eclipses, comets, or unusual meteorological events occurred, they were interpreted not as natural anomalies, but as potential signs of cosmic displeasure—warnings from Heaven about the king’s moral failings or the court’s ethical lapses.


이러한 맥락에서 천문학은 일종의 ‘정치적 신학’으로 기능했다. 천문학은 국왕이 신성한 질서에 충실함을 실천하고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수단이었다. 별자리의 정기적인 관측, 역법의 수정, 그리고 스물네 절기의 대중적 보급은 단순한 과학적 과업이 아니라 신성한 책무였다. 일식, 혜성, 이상기후와 같은 천문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는 단순한 자연적 이상이 아니라, 왕의 도덕적 결함이나 조정의 윤리적 타락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해석되었다.


8) 추가적으로 더 렌더링해준다. S's Noun of N같은 표현을 써보자. 왕조의 준수 of 예, 여기서 of를 '준수하는'과 같이 더 다양한 용언으로 바꿔줘야한다. of에는 소유격 의 말고 아주 다양한 뜻이 있다. 왕조의 예에 대한 준수, 라고만 하면 그 의미를 소략한 것이다. 예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까지 담았다.

Accordingly, every astronomical act was a ritual of state. Calendrical reform, for instance, was a public testament to the king’s intellectual virtue and his ability to harmonize human affairs with natural law. The monarch’s observance of rites (ye, 禮) tied to seasonal changes reaffirmed his role as a moral exemplar whose personal discipline mirrored the cyclical precision of the cosmos.


이에 따라 모든 천문학적 행위는 국가의 의례이자 정치적 제의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역법의 개정은 왕의 지적 덕성과 인간의 일상을 자연법과 조화시키는 능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하는 행위였다. 절기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예(禮)를 준수하는 국왕의 모습은, 우주의 주기적 질서에 부합하는 도덕적 모범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9) 아까 관상감 한 번 썼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써보자 왜냐면 아까는 국가기관의 설립의 목적만 설명했을 뿐이고 지금은 그 기관을 풀어서 설명하면서 왜 중요했는지 재서술하려고 하기 때문.

Even beyond state rituals, the dissemination of accurate seasonal information through the Gwansanggam (Royal Bureau of Astronomy) enabled agricultural stability, linking celestial insight with the material welfare of the people. In this way, astronomical knowledge became a political instrument—one that fused Confucian ideals of benevolent rule with the empirical authority of science.


국가 의례를 넘어, 관상감(觀象監)을 통해 제공된 정밀한 절기 정보는 농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천문학적 통찰을 백성의 물질적 삶과 연결해 주었다. 이처럼 천문 지식은 과학의 경험적 권위와 유교의 덕치 이념을 결합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10) 최종 결론 한 문단으로 마무리. 늘 엔딩이 어렵지만, 너무 빨리 끝내면 <하얼빈>처럼 아쉽다. 관찰한다 정밀하게 읽어낸다. 국왕의 이해는 통치의 거울이다. 약간의 문학적인 표현을 곁들여서. 


Ultimately, the king’s knowledge of the heavens was a mirror of his governance on Earth. To rule well was to observe well. And through the meticulous reading of the skies, Joseon kings inscribed their authority into both the calendar and the cosmos.


궁극적으로 하늘에 대한 국왕의 이해는 곧 지상에서의 통치의 거울이었다. 잘 다스린다는 것은 곧 하늘을 잘 관찰한다는 뜻이었다. 하늘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통치 권위를 달력 속에, 그리고 우주 질서 속에 새겨넣은 것이다.


11)

아오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다보면 뒤쪽이 약간 분량이 줄어드는데 어쩔 수 없다. 전시도 도입 부분에 사람이 몰리고 뒤로 갈수록 슬슬 보며 지나치는 것과 같다. 이미 할 말을 앞에서 힘줘서 다 썼는데 어쩔.. 오늘은 오늘의 지력을 다 썼다. 이제 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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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에 다녀왔다


3층은 홍정인의 여성노동과 생태를 두루두루 다룬 작품으로 원래부터 다수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두루미DMZ Qrreeuk가 인상깊었다. 드래곤 라자가 생각난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이것은 또 별도로 포스팅


1층과 2층은 스페인 갤러리와 협업해 TBA21의 소장품을 전시했다. 아트선재는 동서양을 균형있게 다루며서 미래에 아젠다를 선점하고 그 이슈를 잘 보여줄 수 있으면서 마케터블한 작품을 가져오는데 영민함을 발휘한다. 전시가 바뀌는 흐름만 봐도 동서동서 균형이 있고, 서양의 경우 레바논계 프랑스인이라든지 스페인이라든지 주류문화권 내에서도 주목받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언뜻 생각해봐도 서용선→아투이→이요나→반데벨데→서도호→호추니엔→하종현 으로 로테이션이 있다


참조: https://artsonje.org/exhibition-program/exhibition/?_exhibition_type=past_exhibition&_paged=2


그 큐레이션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하므로 이유가 명확해야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차후 어떤 네트워크, 인적자원, 브랜드이미지에 연결될지를 예측하고 감수하며 행하는 점에서 전략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트선재는 작품을 보여주고 파는 상업화랑이 아니라 전시를 통해 어떤 이슈를 먼저 다루느냐 어떤 지역과 관계를 맺느냐 어떤 감수성을 한국의 예술 담론에 도입하느냐를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갤러리와 국공립기관 사이의 어딘가를 잘 포지셔닝했다.


그래서 이번 TBA21 연계전시는 비단 스페인 작가의 작업을 수입해 보여주는 미술도매상의 역할을 넘어서, 스페인 특유의 혼종문화, 기후위기와 탈식민, 쪼그라드는 구제국과 인구급증으로 영향력이 커지는 식민지 사이의 전복적 관계 그리고 인간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동시대 미술의 궤적을 보여준다. 단지 매달 매달 전시 콘텐츠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문화적 스탠스를 선취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일종의 비즈니스이자 공공외교이리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2층 끄트머리 레히나 데 미겔의 74분 영상이다. 레히나는 스페인어로 읽은 여왕regina이라는 뜻이다. 다른데선 레지나라고 읽는다.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자주나오는 (중세라틴어발음의) 사아알웨salve 뤠쥐이이나아아regina의 그 regina다. 안녕 레지나? 여왕 만세


Nekya, a river film 네키아 영화의 강(2022)은 스페인 남서부 리오틴토 지역의 고대신화와 식민착취, 노동운동, 생태파괴의 역사에 우주 생명탐사를 중첩해 하나의 장소를 다루면서 지역, 지구,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성찰하는 정치精緻한 영화이자, 고고학, 광물학, 지역사, 식민사, 천체생물학, 생태노동, SF 모두 한 큐에 쓰리큐션을 성공시킨 담대한 영화다. 이런 영화는 보고 나면 생각할 질문이 많아진다.



리오틴토라는 지역을 작가는 그저 하나로만 정의하지 않고 기억의 매장지이자 미래 실험실로 재구성하면서 이런 챕터를 버무린다.


1) 외계행성을 향해 탐사하는 우주선으로 광물탐사의 의미를 성찰하다가

2) 남미 안달루시아 광맥탐사을 논하다가

3) 산맥아래로 내려가 그리스신화의 지하세계 이야기하고

4) 페니키아 전에 있었다는 스페인의 사라진 고대문명 타르테소스 이야기를 섞고

5-6) 이를 다시 로마와 콜로니, 노예노동의 이야기로 발전시키다가 리오틴토의 식민지회사 (독일자본에 영국직원에 스페인회사)와 광물소성으로 인한 거주환경 저하로 그 지역 사람들의 생태주의, 노동투쟁(유럽 최초)를 다루는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영화는 명시적인 엔딩없이 우주의 진공을 부유하는 우주선으로 다시 이어져 끊임없는 순환고리를 형성하고 리오틴토 지역의 극한노동 및 광물탐사와 연결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생명의 기원, 외계생명의 가능성을 질문하고, 우주라는 먼 공간을 위로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보게 만드는(즉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역사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래의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오디세이아의 지옥인 네키아의 검은 이미지의 우주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과거의 안달루시아 금광 은광개발을 현재의 우주탐험과 엮어 자원채굴의 욕망이 대륙과 세기를 초월해 반복된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주를 다루는 스페인의 방식이 흥미롭고 다른 문화와 비교해보면 재밌다. 픽션에서 우주를 다루는 방식은 문화별로 다른데 이유는 우주는 상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시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는 배경설정에 불과한 게 아니라 한 사회문화가 어떻게 역사와 기술, 인간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느냐를 반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서부개척의 일환으로 우주는 미개척지라고 생각한다. 전인류의 확장이라는 큰 소명을 미국이 대리해서 실현해준다고 믿는다.


즉 우주는 신프론티어이고 원래 냉전시기 군사기반의 나사의 프로젝트에서 비로쇠어 영화에서도 자주 미군과 연계된다. <인터스텔라>, <아마겟돈>, <마션> 같은 영화는 인간이 환경을 극복하고 식민지화한다는 서사다. 문제는 진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루기 위해 우주는 도전과 성취의 무대로 그려진다.


이렇게 10대의 개척자 스피릿이 뿜뿜 풍기는  미국에 반해 한국의 우주는 현실의 은유처럼 다뤄진다. 미국이 프런티어정신이면 한국은 언더독정신이다. <승리호>의 영어제목은 space sweepers로 우주쓰레기청소부다. 우주라는 화려한 배경은 있지만 서사는 철저히 현실의 고통, 언더독정신, 재벌비판, 소자영업자 옹호, 그리고 마지막에 누가 도와준다는 점에서 메시아적 구원의 구조 안에서 굴러간다.


<별들에게>나 <더 문>, <정이>도 거의 지구에 남은 가족, 책임감, 감정이 중심이 되어 우주로 배경을 바꾸었을 뿐 사실상 우주 자체보다는 지상 문제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미국과는 달리 공감과 생존을 테마로 한 현실비판의 감정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은 우주실사영화가 드물다. 훨씬 좋은 대체제가 있기 때문. 일본애니의 우주작화는 대단하다. <건담>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달리 현실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데 이유는 애초에 우주라는 공간이 현실적 도피처의 일부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보다는  더 큰 철학적 질문, 주체로서의 개인, 운명과 세계의 구조에 대한 질문이 엿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큰 로봇을 조종하는 일본소년의 이미지인데 이는 거대한 서양 문명의 외피를 입었으나 정신만큼은 동양 소년이 조종한다는 동도서기(한국버전), 화혼양재(일본버전)을 상징한다. 서구적 기술문명을 완전히 탈피할 수도, 쉬이 버릴 수도 없기에(즉 로봇을 버리거나 로봇 없이 서바이벌이 불가능하기에) 일본적 정체성이 충돌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네러티브가 만들어진다. 나아가 기계와 혼의 융합이라는 최근 논의되는 (사이보그로 부터 이어지는) 포스트휴먼철학까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주를 미개척지로 여기고 인류확장을 위해 투쟁하는 군사기업의 미국, 

우주를 배경설정으로 다루며 사회현실적 갈등을 중심에 둔 한국,

우주를 애니메이션의 무대 삼아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본


과는 달리 아트선재 스페인 영화 네키아에서 우주는 인간이 묻고 있는 오래된 질문의 다른 표현이다. 위로 올려다 본 우주로부터  아래로 내려다 본 우주(지하)까지 시선이 옮겨지며 미래가 과거로 등치된다. 식민주의의 역사, 인간의 생존조건, 신화적 과거, 포스트 식민을 논하면서 리오틴토 지역의 고대 지하신화 → 광물 자본주의 → 우주 생명탐사까지 한 축에 다루는 영화를 보고나면 우주는 저 멀리 개척지도, 또 다른 서바이벌 게임장이나 현실도피처가 아닌 이미 우리의 일부였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금, 은, 철, 니켈 등 온갖 광물의 이름을 읊조리는데 영어와 다르면서 비슷한 스페인식 발음의 과학용어를 듣는 재미가 있다. 스페인어는 유럽어 중 가장 발음이 쉽다고 마케팅되어 초급반 강의가 많다. 낱말 단위로 발음은 쉬운 편이지만 실제 회화에서는 단어들이 묶여 흘러가듯 발음되기 때문에 듣기가 어렵다.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는 셈.


유럽 스페인어와 남미 스페인어도 어휘, 문법, 발음에서 다르다.

예컨대 유럽에서 차는 coche지만 남미에서는 carro나 auto다. 컴퓨터는 스페인에서 ordenador지만 남미에선 computadora다. 유럽은 질서잡아주는 기계, 남미는 미국때문. 핸드폰도 스페인은 móvil, 남미는 celular다. 

같은 단어라도 발음이 다르다. 예를 들어, c는 스페인 본토에서는 영어의 th나 한국어의 ㅎ에 가깝게 들리는데 남미에서는 z에 가깝게 들린다.


문법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남미에서는 단순과거(pretérito indefinido)를 주로 쓰는 반면 스페인에서는 아베르+뻬뻬(haber+pp)의 복합과거(pretérito perfecto)를 더 자주 사용한다. 스페인 말라가 출생으로 알려진 레히나 데 미겔이지만 이 영화의 나레이션은 남미식 스페인어 같다. 프레테리토가 더 많이 들린다. 예컨대 영화에서 cubrieron이라 했다. 스페인이었으면 haber cubrido라 했을 것이다. 물론 스페인어의 힘듦은 발음보다는 재귀대명사 se의 여러 용법(무인칭인가 수동태인가 스스로인가 등)에도 있지만 아무말 대잔치는 여기까지. 오늘은 오늘의 전시와 영화를 가야해서 글은 여기까지 쓰고 나-가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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