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갤러리 LVS 전원근전과 삼청 초이앤초이 조니아브람스전과 갤러리신라 니콜라스 카르동에서 다녀와서 생각했다.


이제 색면추상의 시대도 곧 저물고 있다고. 세 작가의 작품은 좋았다. 


그러나 색면추상관련 전시가 너무 많다.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만 해도 색면추상전만 30회 이상 봤다.


대형 캔버스에 단색이나 몇 가지 면만 나뉜 작업들은 제작 난이도나 시간 대비 효율이 높아 작업속도도 빠르고, 


별다른 미술사 지식이 필요없어서 미술시장 입문자나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색면추상회화만 자주 보이면 식상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는다. 


자연스럽게 학벌, 네임밸류, 레지던시 이력이 좋은 상위 몇 명만 살아남는 고급화가 일어나고 중간층 이하의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든 시장의 법칙 그렇다.


색면추상이 질린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다시금 레트로와 리바이벌로 눈을 돌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향이 가능할까?


나는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될 거라고 본다


색면추상은 본질적으로 명상적이다. 정신적이고 절제된 미학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게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이제 관객은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림 옆을 걷고 지나간다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 색면추상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철학적 함의와 종교적 정신성을 극도로 높인, 이미 명성있는 일부만 그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새로 진입해서 영토를 확장하기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넥스트 흐름은 반대 극점에서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찾을 것이다.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것은 무엇이냐?


색면추상에는 다섯 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사', '장식디테일' '디지털' '과거와 그리움' '이머시브'



1) 서사: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음,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

→대안: 강한 내러티브, 역사와 신화적 구조


2) 장식성/디테일: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

→대안: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묘사 회귀


3) 디지털/기술성: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

→대안: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


4) 기억, 향수 :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 역사성 없음

→대안: 과거 체험, 촉각적 기억 복원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 유지

→대안: 몰입형 감각, 관람자 참여 유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것이다.


1) 서사 중심 회화의 복귀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다.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한다. 미니멀한 색감에서 은은한 배어나오는 감정의 절제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반대급부에서 단순히 감각적인 색면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찾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러티브가 강하다면 역사와 신화의 구조를 차용하면 좋다.


화이트큐브의 알렉스 카버도 중세 연옥 신화에서 따와 평면 안에 여러 이야기가 보인다.


OCI 김피리도 서사가 있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한국근대화에서는 박생광 같은 작품이다.


고전 회화, 민속화, 종교화의 아이콘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동양화의 설화와 연희성을 복원하면 좋겠다.


2) 화려한 장식, 극단적으로 세밀한 디테일을 추구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시킨 색면이 위주다.


반대 급부로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한 묘사로 회귀해 단위면적당 정보량을 높일 수 있다.


매우 화려하거나 세밀한 묘사가 들어간 회화나 공예다.


예를 들어 롯데뮤지엄에서 했던 주얼리전이나 푸투라서울에서 했던 불가리전이 생각난다.


동양화 쪽에선 MMCA 덕수궁에서 했던 정밀한 한국근현대사 자수가 적절한 예시다. 한벽원 미술관에 많이 한다. 


과도하게 장식적인 일러스트도 좋겠다.


3) 디지털과 기술성을 혁신적 복원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이었다. 물론 이 재료와 질감을 차별화하기 위해 색면추상 출품 작가마다 다르게 했다. 위에 언급했던 갤러리 신라의 니콜라 차르동은 엄마가 정리해준 침대 위 이불보처럼 약간 삐뚤한 선이 특징이도 하다. 작가마다 어떻게 마티에르감을 줄것인지, 어떻게 선을 처리할 것인지 다르다. 예술의 전당 크루즈 디아즈전에서처럼 착시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삼청 학고재 장승택전이나 성북 아트스페이스H 용환천에서도 그런 선이 보이고, 색면추상은 아니지만 압구정 코리아나C미술관 합성열병에서도 픽셀단위로 그런 착시 선이 보인다. 



반대급부로 대안은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하는 것인데 그냥 도입하는 게 아니라


포스트-디지털 레트로감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반이지만 감성은 아날로그인 예로는 VHS 미학, CRT 모니터 그래픽, 도트화, 윈도우 95 UX 기반 미술 등이 있다.


가장 좋은 예시는 북촌 갤러리 도로시의 성태진 개인전이었다. 아케이드 게임으로 회화를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이전에 갤러리 스탠 등에서 NFT 관련 젊은 작가 전시를 했으나 그런 방식은 아니다. 


NFT는 지금 많이 시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비주얼 언어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를 백남준처럼 복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 현대 백남준 소장품




4) 기억, 향수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한다. 과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성이 없다.


대안은 과거를 추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넷플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시청자층은 당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동경이 시청 동기다. 


기억과 향수를 테마로 삼아 촉각적 기억 복원하면 좋겠다.


1990년대 방 구조, 학교 급식판, 낡은 선풍기 등, 개인의 과거 경험을 극도로 섬세하게 복원한 작업들이 생각난다.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 비근한 예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봉준호가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의 말)


설치예술작가는 폐교된 전남 경북의 학교를 임대해 설치예술로 만들어봐도 좋겠다.


촉각에 기반한 향수(haptic memory-촉각기억)를 자극하는 감각 기반 미술이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향은 컨트롤이 어렵다. 아르코의 오도라마전은 향이 정교하게 전달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이 있다. 조각도 아닌데 약간의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친근하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럼 반대항으로 아트+테크노 오페라 스타일을 합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몰입형 감각을 제공하고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박물관에 이머시브 디지털 전시는 얼마든지 있고 관객이 직접 그려서 전시하게 하거나 병풍을 접어서 굿즈로 주는 등 참여유도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내 말은 실재 공간과 가상공간, 미디어아트, AI, 연극적 설치가 복합된 연극적인 예술의 형태다. 탈춤, 사물놀이 등 연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가장 각광받을 수 있다.


이머시브하면 우리에게 빛의 벙커도 있고 일본에 팀랩도 생각나는데 다 거대한 공간을 기반으로 산책형 구조다.


4+5를 합쳐 MMCA 순간이동과 작가상에서 했던 구하윤의 VR이 좋은 예시다. 경성 구보씨의 일일도 괜찮다.


하지만 VR기기 하나를 착용한 1:1 체험이 아니라 좀 더 서사적이고 감정적인 감성극 대중 공연 스타일로 발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색면추상이 추구한 미니멀한 형식미의 반대항의 모든 것, 즉, 감정, 기억, 서사, 장식, 디테일, 기술의 결합이 앞으로의 예술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본다. 


색면추상의 해석 없는 시각적 압박에 지친 자들에게 읽고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미술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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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 다녀왔다


무슨 화장이지? 장례인가? 화정박물관과 뭐가 다르지? 원래 영화도 트레일러 안 보고 보는 지라 아무 생각 없이 갔다. 화장은 코스메틱스였다.


화장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상고, 삼국, 신라, 고려, 조서, 근대의 역사를 두드리며 건넌다. 주로 옛 화장용품 보관용 작은 도자기류를 전시하고 있었고 윗층은 옛 포장지인 보자기 특별전이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팥가루와 녹두가루로 손을 씻었다는데 실제로 화장실에도 비치되어있었다. 당연히 현대 비누가 낫지만 특이한 경험이다. 가루의 사용으로 인해 6층에서 내려가는 하수관이 막힐 수도 있을 것 같다.




김기창의 그림에 거울 보는 여인이 있고 옛 그림에 표현된 여자 눈썹표현이 재밌다. 


실제 은장도를 보니 너무 작아서 위급상황에 호신용 전기충격기처럼 남을 찌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은장도로 자결하거나 치한을 공격하는 클리셰가 픽션에 많다)


근현대사 공부할 때 교과서에 나온 박가분도 보인다.





큰 도자기 안에 작은 도자기 합 여러 개를 보관하는 러시아 마트로슈카 인형같은 도자기가 있다. 기초화장용, 파우더용 등 각기 다른 기능 분가루를 각기 다른 합에 보관하고 이것들을 큰 합 안에 넣은 것이다. 이름은 청자상감 모자합. 영어로는 상감inlaid 청자celadon을 살리고 모자(엄마자식 母子)를 빼고 화장 케이스 cosmetic cases를 넣어 의미를 명확히 전달했다. 원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해야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정보와 뉘앙스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어미모 자식자로 모자합이라고 했을 때는 엄마가 자식을 품듯 큰 도자기가 작은 도자기 여럿을 너른 가슴에 품는 느낌이다. 일본어에는 닭고기와 달걀을 넣어 먹는 오야꼬동이 있는데 그 한자는 친자親子+덮밥丼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끔찍하다.


끔찍한 생각말고 좋은 생각 착한 생각 해보자 심호흡하고! 가장 흥미로웠더 부분은 코리아나 화장품회사의 1분짜리 광고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보는 것이었다.


채시라가 92년부터 06년까지 15년 전속모델이었다. 이후 전지현, 정우성, 김민희, 비, 이연희, 김민정, 김남주, 한혜진, 서인영 등으로 모델이 바뀐다. 


확실히 채시라는 코리아나의 대표간판격이었고, 지금 50대 이상 여성인구의 장기기억에 잘 남아있을 것이다.


광고를 시계열적으로 보면 미의 기준의 변화에 따른 사회변화가 보인다. 광고는 해당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 시각적 메시지이다. 광고의 변천은 사회문화의 변화를 읽는 것과 같다.


초기 광고에선 화장품을 쓰는 채시라의 아름다움을 광고했다. 94년까지는 프랑스어 노래도 들리고 외국인도 보이고 마치 디즈니 판타지와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세계를 강조했다. 정보보다는 이미지를 전달한 것이다.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화장시간이 매일 일상생활의 루틴으로 들어오고 화장품의 가짓 수도 많아지자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낫다는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라이벌 회사와의 차별화된 브랜딩도 보인다.


채시라도 세월을 어쩌지 못해 늙어가며 젊은 여배우를 기용한다. 그러나 투트랙으로 채시라는 중장년여성위주를 타겟팅한 화장품 광고용 이미지로 쓰인다. 그러다가 05년을 지나 채시라가 사라진다. (박물관 광고영상 내에 한정)


00년 밀레니얼 세대이후로 얼굴이 서구적이고 스타일은 당돌해진다. 자기 PR과 아이덴티티에 주목한다. 그 이전 세대가 조선적이고 순응적으로 보일 정도다. 




정우성이 화장품 모델로 나왔을 때는 아마 논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화장품광고를 했으니까.  젊은 남성을 새로운 소비집단으로 유치하고자하는 목표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아름답고 잘생기다고 여기는가, 에 그 사회문화적 특성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인미남은 빠르게 촌스러워진다.

헤어스타일, 화장법, 패션 모두 내년이면 달라진다.

벚꽃은 매년 같은 옷을 입어도 아름다운데 사람은 유행따라 매년 다르게 입지 않으면 후줄그레해보인다.


화장법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과 바르는 순서가 한국과 외국에서 각기 다르다. 그래서 한국인이 외국에 유학하면 다른 화장법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유투버로 유명한 원지는 여성으로서 차별화를 위해 해외 각국 여행시 거금을 들여 뷰티샵에서 메이컵을 받는다고 한다. 세계마블편에 오드리햅번처럼 해달라고 했더니 너무 진하게 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매우 만족하지만 동양인 원지는 모르겠다 어색하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각국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covk6_m3RXo


아름다워 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하지만 '어떻게' 아름다워질 것인가? 는 사람마다 세대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기의는 같은데 기표는 다르다. 시스템과 프레임은 같은데 안의 내용물과 콘텐츠가 다르다. 따라서 뷰티업계는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가장 장시간 화장품 모델을 해서 기네스북에 올라간 채시라와 함께 코리아나는 길었던 호황기를 지나 05년 후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가 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단위로 모델이 자주 교체된다. 이 시기는 아마 글로벌시장 정복에 성공하 아모레퍼시픽에게 밀리는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코리아나는 머드팩, 한방화장품 등 신토불이를 기수 삼아 90년대를 호령했지만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분명 진입이 늦어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부족한 기업이 기존 업계의 강자을 누르고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뒤늦게 시작한 자가 굴러들어와 박힌 돌을 어떻게 빼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기업의 잘못일까? 기존에 승리했던 전략을 고수하면서 기술을 정밀화, 자동화하고 더 많은 유통망을 장악하는게 나쁜 것일까? 원래 내 제품 좋아하던 사람들이 다른 제품 좋아하는 걸 배신이라고 여겨야할까? 떠나는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왜 한 기업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걸까?


우리는 니시마켓과 블루오션을 파악하는 영민한 통찰력 그리고 혁신과 트렌드 선도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말한다.

금메달을 빼앗기지 않으며 방어전에 성공하는 챔피언의 지속력과 인내심 그리고 불안함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고 우리가 알던 자유주의 세계화시대가 저물어 각국이 벽을 쌓는 중세시대가 되면

어쩌면 코리아나도 재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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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모리에 있는 1904년(메이지37) 아오모리 은행기념관(青森銀行記念館)이다



지식이 많아지고 사물을 인내심을 갖고 디테일하게 바라보게 되면 세상을 읽는 것이 참 재밌다


지적 해상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흑백 브라운관이 아닌 올레드 디스플레이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단계는 와 예쁘다

- 비율이 안정적이고 장식이 조화롭다고 생각하지만 큰 관심 없음


2단계는 서양풍도 조금 보이네

- 서양건축 같은 요소들이 눈에 띄지만 정확한 용어는 모름


3단계는 서양식 네오클래시시즘 외관에 일본 목재건축기법을 사용한거네

- 삼각형 지붕(페디먼트), 둥근 지붕(큐폴라), 코니스, 아치창 등에 대해 설명가능


4단계는 서양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 일본의 화양절충(和洋折衷) 스타일이 함께 보이네

- 페디먼트는 있으나 프리즈는 없는데서 빌려오되 생략하고 로컬화한 것을 발견


5단계는 러스티케이션으로 무게감을 조절했구나

- 재료와 질감 읽을 수 있음


구체적으로

1층 하단부에 돌출된 큰 블록(러스티케이션 rustication)의 원래 기원은 르네상스 이탈리아 궁전(Palazzo)양식. 1층을 거칠게 처리하여 안정과 힘을 보여주던 기법인데 아오모리 은행기념관은 목조라서 러스티케이션을 시각적 질감으로 흉내만 냈다는 것을 간파. 덕분에 건물이 아래는 무겁고 위로 갈수록 가벼운 인상을 줌


6단계 큐폴라는 아치구조 기반이네? 필라스터가 아니라 카럼이 하중을 지탱하고 있고!

- 구조와 장식, 내외면 설계도 모두 투사해봄


중앙의 작은 돔(큐폴라 cupola)은 반구형 지붕구조인데, 큐폴라는 무게를 수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아치(arcuated system) 원리를 사용함. 내부는 목재 아치(또는 리브 rib)로 지지하고 외부는 작은 판금(도금) 마감. 이 방식 덕분에 비교적 가벼운 재료로도 큐폴라를 얹을 수 있음. 큐폴라는 건물에 상징적 왕관 역할+시각적 중심점을 만들어줌. 외벽에 붙은 장식기능 필라스터도 볼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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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lazymike.art/exhibitions


삼청 레이지마이크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뒷편 ㄱ자형 골목에 위치. 건물의 1층은 페레스, 2층은 디아, 3층은 레이지마이크다. 레이지마이크는 라트비아 기반 화랑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슬라브, 동유럽쪽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지금은 세르비아 출신 필립 미라조비치의 검은 대리석 질감으로 그리 얼굴 없는 인물회화를 볼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선 모스크바 출신 예브게니야 두드니코바의 낭만적 초현실주의 회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일견 지금 탕에서 하고 있는 엘렌 샤이들린과 비슷한 감성과 화풍이다. 대략 하늘하늘 부드러운 버전의 샤갈+무하 조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레이지마이크: https://www.instagram.com/lazymike.art/

예브게니야 두드니코바 : https://www.saatchiart.com/evgeniyadudnikova?srsltid=AfmBOopzlhEDN0tZAlqRs3EGA0jKaoYviu71AKrzzZJcQB-aOVg7KXX6

엘린 샤이들린: https://www.tangcontemporary.com/2025-sheidlin-unconditional



Filip Mirazović <Homo Mundus Minor> 2025, Oil on linen, 132 x 83 cm




Filip Mirazović <The Magician> 2025, Oil on linen, 132 x 83 cm



필립 미라조비치의 작품은 일관되게 얼굴 없는 인간형상의 조형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옷을 걸치지 않은 누드지만 알몸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피부가 대리석처럼 무기질적으로 표현되어 사람의 형태를 입었으되 유기체의 생명성보다는 조각의 물질성이 더 부각되어  돌의 표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부의 감성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인물들의 정지된 듯한 동작과 생명 없는 껍데기로서 피부질감이 합쳐져 오늘날 인류가 겪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기억의 퇴색을 시사할 수도 있다.


작품의 레퍼런스는 여럿 보인다. 링컨 이미지에서 많이 보이는 19세기 미국의 탑 햇(높은 모자)를 쓰고 있거나, 그리스로마 조각의 콘트라포스토를 취하거나, 천지창조 하나(느)님 아버지의 손짓의 끝부분과 같은 르네상스 종교회화가 보인다. 화면의 구성은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이며 초상화의 인물은 직립해 있고 왼쪽 다리에 체중을 두고 상반신을 오른쪽으로 비틀며 시선은 우측하단을 향해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정형적 인체비율을 따르는 이상적 몸과 근육이다. 빛은 인물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거나 일부를 희미하게 지워내는데 시간의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듯하다. 너무 매끈한 표면이 풍화와 같은 시간에 의한 침식을 지워낸다. 고전주의풍 조각의 모습은 한쪽 어깨를 내려앉히고 몸의 무게중심을 대각선으로 분배해 자연스러운 운동감을 포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움직임이 정지된 순간, 즉 동작과 정지 사이 어딘가의 비정상성을 드러낸다. 영원과 불안정이라는 두 감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데 키리코의 작풍도 떠오른다. 전통적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물들은 대부분 화면 중앙에 고립되어 있으며 배경은 흐릿하거나 추상적이어서 초현실적 감각을 준다. 배경과 인물 간 공간적 깊이를 만들지 않아 인물을 마치 무중력 공간이나 몽환적 무대 위에 나른나른하게 부유시킨다.


도쿄도미술관에서 했던 데키리코전

https://dechirico.exhibit.jp/




아래 그림은 전근대 회화의 관습적 구성과 배치를 뒤집었다. 전근대회화에서는 남성이 지배적인 위치로 보통 시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여성이 피지배적인 위치로 남성 시선 아래에 있다. 필립 미라조비치는 다른 작품에서는 없는 여성의 젖가슴을 그려서 일부러 여성임을 강조했다. 그리스로마,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화풍과 구도인데 여성이 위에 있고 남성이 아래에 있다. 재밌는 전복이다.



Filip Mirazović <Solace> 2025, Oil on linen, 141x 160 cm



동양의 서울에서 하는 전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작가가 관심있는지 모르지만


금박의 용 장식도 넣었다. 하이힐에도 넣었다. 나름 정교하게 모사하려 하엿다.


서양은 드래곤, 동양은 용이고 서로 생물종도, 상징적 의미도 다르다. 동양의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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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과 반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국립Rijks 박물관museum과 판van 호흐gogh 미술관은 걸어서 10분 거리로 바로 앞에 있다. 안국역 국립현대미술관과 고궁박물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글 혹은 아모레퍼시픽 사이 거리 정도다


양과 종류에 압도된다. 너무 많다. 예술의전당 2만원 전시 하나 보는 호흡으로 다 둘러볼 수 없다. 하루를 써야한다.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박물관이 힘을 모아 루브르처럼 쏟아지는 듯이 많은 양의 고려 불화, 조선 서화와 도자기 전시를 할 수 있을까?


항상 책에서 이미지로만 봐왔던 얀 아센 반 레이넨의 1650년경 작품 <위협받는 백조(The Threatened Swan>에 깜짝 놀랐다. 작은 프레임으로 봤을 때는 그냥 새를 잘 그렸겠구나 싶었는데 실물로 보니 화룡점정격으로, 프레임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게 아닌가. 남북조의 양승요가 반 레이넨의 전생임이 틀림없다. 그외에도 정물화 컬렉션에서 감동이 있었다. 괜히 이슬람에서 생명체 모방을 금지시킨 게 아니다. 예술가는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숭배될 가능성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머시브 회화다.


흑백과 컬러TV를 거쳐 디지털에 4D에 올레드까지 기술이 발달했다. 앞으로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거쳐 뇌척추 인터페이스로 오감전달까지 가능하게 될테다. 인류는 자연의 선명한 재현과 사물의 정밀한 모방 그리고 감각의 온전한 전달을 향해 분투하고 있다.


한 번 유럽 미술관을 가본 사람들은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다시 와서 더 많은 미술관을 다니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그렇게 마음먹게 할 정도로 미술관 컬렉션이 참 좋다. 이전에는 왕족과 귀족과 일부 부르주아만 향유할 수 있던 문화다. 좋은 시절이다.


판 호흐 미술관에서는 고양이를 건졌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네덜란드 친구가 추천해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녹진한 우유맛이다. 연유와 우유를 반도체 스택 쌓듯 뭉쳐놓은 저항감 있는 크림이다. 홋카이도 우유도 물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가게명은 van der linnde다



물론 지금 갔다온 것은 아니다. 6년 전 7월이다. 코로나도 겪지 않았을 시절의 이야기다. 


한국말의 선어말어미 '왔'은 과거형 표지라서 틀린 말은 아니다. 옛날에 갔다왔다는 말이다.


앞으로 자주 가고 싶다. 일단 아쉬운대로 일본, 대만, 홍콩이라도 가고 싶다.


SNS에 스친이 나고야에 갔다. "아이고야 나도 나고야 가고프다 나고야 좋아해 나도야"라고 댓글을 달았다. 라임이 좋다고, 대댓을 달아주었다. 그 메시지는 나고야로부터 온 데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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