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 갤러리 LVS 전원근전과 삼청 초이앤초이 조니아브람스전과 갤러리신라 니콜라스 카르동에서 다녀와서 생각했다.
이제 색면추상의 시대도 곧 저물고 있다고. 세 작가의 작품은 좋았다.
그러나 색면추상관련 전시가 너무 많다.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만 해도 색면추상전만 30회 이상 봤다.
대형 캔버스에 단색이나 몇 가지 면만 나뉜 작업들은 제작 난이도나 시간 대비 효율이 높아 작업속도도 빠르고,
별다른 미술사 지식이 필요없어서 미술시장 입문자나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색면추상회화만 자주 보이면 식상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는다.
자연스럽게 학벌, 네임밸류, 레지던시 이력이 좋은 상위 몇 명만 살아남는 고급화가 일어나고 중간층 이하의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든 시장의 법칙 그렇다.
색면추상이 질린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다시금 레트로와 리바이벌로 눈을 돌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향이 가능할까?
나는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될 거라고 본다
색면추상은 본질적으로 명상적이다. 정신적이고 절제된 미학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게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니 이제 관객은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림 옆을 걷고 지나간다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 색면추상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철학적 함의와 종교적 정신성을 극도로 높인, 이미 명성있는 일부만 그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새로 진입해서 영토를 확장하기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넥스트 흐름은 반대 극점에서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찾을 것이다.
색면추상이 제한하거나 회피한 것은 무엇이냐?
색면추상에는 다섯 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사', '장식디테일' '디지털' '과거와 그리움' '이머시브'
1) 서사: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음,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대안: 강한 내러티브, 역사와 신화적 구조
2) 장식성/디테일: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
→대안: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묘사 회귀
3) 디지털/기술성: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
→대안: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
4) 기억, 향수 :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 역사성 없음
→대안: 과거 체험, 촉각적 기억 복원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 유지
→대안: 몰입형 감각, 관람자 참여 유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것이다.
1) 서사 중심 회화의 복귀
색면추상은 이야기가 없다. 스토리로부터 배어나오는 감정고양을 배제한다. 미니멀한 색감에서 은은한 배어나오는 감정의 절제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반대급부에서 단순히 감각적인 색면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찾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러티브가 강하다면 역사와 신화의 구조를 차용하면 좋다.
화이트큐브의 알렉스 카버도 중세 연옥 신화에서 따와 평면 안에 여러 이야기가 보인다.
OCI 김피리도 서사가 있는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한국근대화에서는 박생광 같은 작품이다.
고전 회화, 민속화, 종교화의 아이콘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동양화의 설화와 연희성을 복원하면 좋겠다.
2) 화려한 장식, 극단적으로 세밀한 디테일을 추구
색면추상은 최대한 단순화시킨 색면이 위주다.
반대 급부로 극도의 장식성과 세밀한 묘사로 회귀해 단위면적당 정보량을 높일 수 있다.
매우 화려하거나 세밀한 묘사가 들어간 회화나 공예다.
예를 들어 롯데뮤지엄에서 했던 주얼리전이나 푸투라서울에서 했던 불가리전이 생각난다.
동양화 쪽에선 MMCA 덕수궁에서 했던 정밀한 한국근현대사 자수가 적절한 예시다. 한벽원 미술관에 많이 한다.
과도하게 장식적인 일러스트도 좋겠다.
3) 디지털과 기술성을 혁신적 복원
색면추상은 아날로그 재료 중심이었다. 물론 이 재료와 질감을 차별화하기 위해 색면추상 출품 작가마다 다르게 했다. 위에 언급했던 갤러리 신라의 니콜라 차르동은 엄마가 정리해준 침대 위 이불보처럼 약간 삐뚤한 선이 특징이도 하다. 작가마다 어떻게 마티에르감을 줄것인지, 어떻게 선을 처리할 것인지 다르다. 예술의 전당 크루즈 디아즈전에서처럼 착시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삼청 학고재 장승택전이나 성북 아트스페이스H 용환천에서도 그런 선이 보이고, 색면추상은 아니지만 압구정 코리아나C미술관 합성열병에서도 픽셀단위로 그런 착시 선이 보인다.
반대급부로 대안은 AI, AR, 레트로 디지털 도입하는 것인데 그냥 도입하는 게 아니라
포스트-디지털 레트로감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반이지만 감성은 아날로그인 예로는 VHS 미학, CRT 모니터 그래픽, 도트화, 윈도우 95 UX 기반 미술 등이 있다.
가장 좋은 예시는 북촌 갤러리 도로시의 성태진 개인전이었다. 아케이드 게임으로 회화를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이전에 갤러리 스탠 등에서 NFT 관련 젊은 작가 전시를 했으나 그런 방식은 아니다.
NFT는 지금 많이 시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비주얼 언어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를 백남준처럼 복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 현대 백남준 소장품
4) 기억, 향수
색면추상은 현재의 시각성 중시한다. 과거가 느껴지지 않는다. 역사성이 없다.
대안은 과거를 추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넷플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시청자층은 당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동경이 시청 동기다.
기억과 향수를 테마로 삼아 촉각적 기억 복원하면 좋겠다.
1990년대 방 구조, 학교 급식판, 낡은 선풍기 등, 개인의 과거 경험을 극도로 섬세하게 복원한 작업들이 생각난다.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 비근한 예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봉준호가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의 말)
설치예술작가는 폐교된 전남 경북의 학교를 임대해 설치예술로 만들어봐도 좋겠다.
촉각에 기반한 향수(haptic memory-촉각기억)를 자극하는 감각 기반 미술이 주목받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향은 컨트롤이 어렵다. 아르코의 오도라마전은 향이 정교하게 전달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5) 이머시브:
색면추상은 관객과 거리감이 있다. 조각도 아닌데 약간의 신성함이 깃들어 있어 친근하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럼 반대항으로 아트+테크노 오페라 스타일을 합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몰입형 감각을 제공하고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박물관에 이머시브 디지털 전시는 얼마든지 있고 관객이 직접 그려서 전시하게 하거나 병풍을 접어서 굿즈로 주는 등 참여유도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내 말은 실재 공간과 가상공간, 미디어아트, AI, 연극적 설치가 복합된 연극적인 예술의 형태다. 탈춤, 사물놀이 등 연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가장 각광받을 수 있다.
이머시브하면 우리에게 빛의 벙커도 있고 일본에 팀랩도 생각나는데 다 거대한 공간을 기반으로 산책형 구조다.
4+5를 합쳐 MMCA 순간이동과 작가상에서 했던 구하윤의 VR이 좋은 예시다. 경성 구보씨의 일일도 괜찮다.
하지만 VR기기 하나를 착용한 1:1 체험이 아니라 좀 더 서사적이고 감정적인 감성극 대중 공연 스타일로 발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색면추상이 추구한 미니멀한 형식미의 반대항의 모든 것, 즉, 감정, 기억, 서사, 장식, 디테일, 기술의 결합이 앞으로의 예술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본다.
색면추상의 해석 없는 시각적 압박에 지친 자들에게 읽고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미술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