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명대 근처 김달진자료박물관 1층에서 서울미술관 아카이브 전시(3.7-5.2)가 열리고 있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발간하는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이다. 전시가 시작하자마자 다녀왔는데 오늘 3월 31일 자 조선일보에 허윤희 기자가 전시를 소개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3/31/QJ6BQZOTLNGIJGVUSLO3RJIC64/
전시에서 다루는 서울미술관은 1981년부터 20년간 운영되고 이제는 폐관된 서울미술관이다. 지금 '서울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과거의 서울미술관은 구기동 88-2번지에 위치했고 유럽문화를 소개해 한국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곳이었다.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 전경. 1981년 촬영.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시 장소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옛 서울미술관 건물이 있는데 네이버 거리뷰를 보면 사유지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판넬이 세워져 있고 건물은 흔적도 없이 황폐화된 상태다.


전시는 김달진자료박물관 1층에서 열리고 있다. 단독 전시로 보기에는 다소 아쉬울 정도로 규모가 작으니 성북동이나 평창동의 갤러리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다.



구기동의 서울미술관이 개관한 지 1년 후인 1982년에 열린 프랑스 신구상회화전은 한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외국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당시 서울미술관은 유럽 미술과 서양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신속한 전파를 경험하는 지금은 체감할 수 없는 시절의 감각이다. 프랑스 유학파 화가인 임세택과 강명희 부부가 사재를 털어 운영했고 15년간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다가 결국 폐관하고 말았다. 강명희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3.4-6.8)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바로 그 강명희다. 중국해에서 쓴 프랑스어 편지라는 아카이브를 보면 프랑스어 작문실력이 아주 좋다.




강명희 화가가 쓴 위의 프랑스어 편지를 번역해보면 대충 이런 말이다.
마침내, 저편에서 우리를 비추는 신비로운 전리품처럼 동양을 붙잡는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높은 곳을 향해 여행을 밀어붙인다. 뒤흔들리는 몸과 뒤집힌 눈은 헛되이 돌아가며 얇게 다문 입술이 감춘 비밀을 찾는다.
여기서는 오래된 바다가 사라진다. 해독할 표식도, 찬양도 없다. 여기서는 속삭임과 인간의 비명이 물속에 잠긴다. 창백한 팔로 배와 죽은 도시를 감싸는 폭풍 속 난파선들이 여기 있다.
답을 남기지 않은 해안들이
화강암 같은 얼굴을
파도에 내민다.
연회석 위에 팽팽하게 펼쳐진 강철 매트처럼
식인종들의 만찬을 위하여.
한여름 곤충 떼처럼
성가시게 몰려드는 기억들,
거지 오우거들이 입에서 입으로 건네며,
손이든, 눈이든
미소의 윤곽을 내게 건네준다.
물 위를 떠도는 스테인리스 요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전쟁의
투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심연에서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삼킨다.
마치 메기 같은 예의를 갖춘 채.

미술관의 폐관을 막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비롯한 예술인과 지식인 1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구기동의 서울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었다. 선진 유럽 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문화가 한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었고 사범대 입학정원에서도 불문학과 독문학 TO가 있었다. 1980년대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성은 유럽 문화에 대한 동경과 우위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같은 미술관의 1990년대 이후 조용한 몰락은 유럽 문화의 쇠퇴와 함께 미국 문화의 압도적인 부상을 방증할 것이다. 구미 열강 중의 하나가 아니라 패권국가로서 미국이라는 확실한 대안으로 인해 영어 외의 외국어는 점차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고 한국인이 향유하는 문화의 중심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물론 유럽문화의 맥이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방점 이동, 시프팅은 분명 있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오늘 3월 31일 코리아타임즈 기사에서는 1990년에 한국에 와서 30년 넘게 거주 중인 제프리 밀러가 미국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과정을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소개했다.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5/03/177_394317.html

이제 버거킹, 도미노, 피자헛 같은 프랜차이즈는 이제 지방 곳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제프리 밀러는 처음 TGI Friday's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아니, 밥이 없잖아!"라는 재밌는 반응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명지대로 가는 길에서 KFC인 줄 알고 봤더니 간판에 Kentucky가 아니라 Kenturky라고 다르게 적혀 있던 웃픈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스타벅스, 맥도날드, 버거킹을 모르던 사람이 대다수이던 시절이라니. 소재도 재밌고 저자의 자전적 회상과 함께 잘 엮인 글이었다.
Still, old habits die hard. Once, in 1996, I was having lunch with students at a newly opened TGI Friday's near Hongik University when a middle-aged woman and her mother walked by our table. The older woman stopped, stared at our spread of breaded chicken strips, spinach and Cajun chicken salads, barbecue ribs and burgers, and then exclaimed in horror to her daughter, “There’s no rice!”
Sometimes, efforts to hop on the Western food bandwagon veered into the downright odd. In 1997, while riding a bus to visit friends behind Myongji University, I glanced out the window and thought I saw a familiar Kentucky Fried Chicken facade. A second look revealed it was actually “Kenturky Fried Chicken.” I couldn’t help but laugh at the creative imitation.
By Jeffrey Miller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5/03/177_394317.html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망성쇠에서 본 80년대 유럽미술의 흥성과 90년 후반의 몰락
90년대 미국식문화의 진입과 대중적 확산
이 두 기사를 겹쳐 읽으면 문화적 수용과 확산이 마치 주가 그래프처럼 등락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표전쟁을 언급한 지난 글에서 문화의 전파는 질량이 작은 매체부터 퍼진다고 주장했다.
즉, 만드는 에너지가 적게드는 순서대로 말 → 글 → 이미지 → 영상 → 기술 → 대중 상용화 순으로 확산된다.
비저너리들이 처음에 예언가처럼 말도 말하고, 조금 시간을 들여서 글로 정리한 후 출판되고
출판된 책을 읽은 예술가들이 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배우와 미디어 기술로 영상화가 된 후
기술자들이 실용화를 하는데 제작비가 비싸서 상용화는 안되다가 코스트를 낮추는 기법이나 물질이 개발되어 기업가들이 대중에게 팔아먹고 상용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배터리, 우주, 로켓, AI, 디스플레이 등등. 과거에는 마법이라고 생각된 것들이 이제 과학이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해서 생각해볼 것은 한 문화의 전파에 있어서 같은 언어권 내에서는 빠르게 퍼질 수 있지만, 다른 언어권으로 번역되어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들 사이에서는 문학작품, 음악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중국어로 쓰여진 작품은 중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에도 쉽게 퍼진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다. 영국, 미국뿐 아니라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의 영어권 나라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일종의 관세와 같은 것이다. 한국어의 관세는 매우 높다. 외국의 한국동포를 제외하고는 퍼질 곳이 없고, 진입장벽도 매우 높다. 폐쇄적인 언어권의 문화가 퍼지기 위해서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조금 그 문화가 퍼질려는 조짐이 보인다.
먼저 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음악, 춤, 이미지가 퍼진다. 음악과 춤은 언어가 아닌 보편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kpop이 한국어 가사 때문에 퍼진 게 아니라 정확하고 파워풀한 안무와 세련된 멜로디와 아름다운 패션과 뮤비에서 일차적으로 자극되어서 퍼진 것이다.
그 다음 자막과 더빙의 도움을 받아 영상이 확산된다. 드라마나 영화. 이후 시간이 지나 점차 노래 가사나 대사를 번역해 이해하던 단계에서 원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발전하다가 결국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아마 정말 마지막으로 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는 두 개가 있다면
그 지각쟁이는 하이컬쳐로서 식문화와 미술일 것이다.
식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조미료와 소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조리법의 전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효식품은 그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향과 맛을 맛있다고 느끼고, 장내 미생물군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먹어 버릇한 식습관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수, 취두부, 홍어, 염소치즈, 골수, 내장 등을 맛있게 느끼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김치, 된장 등 한국의 발효식품이 해외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가 들려온다. 하지만 김치와 된장이 요즘 처음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인마트를 통해 조금씩 들어가 있었다. 오징어게임이나 한국드라마를 통해 수요가 생기면서 유통망이 확산되고 외국의 평범한 사람들도 먹기 시작해버릇하는 것이다.
미술 전시의 확산 속도가 느린 이유는 미술계가 보수적이고 미술관의 전시 스케쥴이 몇 년간 꽉 차있으며 상대적으로 소수의 문화층이 소비하는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 맥락에서 한 문화의 사상, 미술, 식문화는 전파속도가 비슷한 시기에 겹치는 것도 같다. 우리나라 80년대 유럽 미술과 유럽 사상이 유행하던 시기에 제빵 문화와 에스프레소 커피가 함께 퍼졌다. 마찬가지로, 해외 레스토랑에서 고추장 버터 스테이크가 인기 있는 현상과 외국 미술관에서 한국 민화 전시가 늘어나는 현상이 비슷한 시기에 겹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통계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나 그런 흐름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흥행하는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문화는 처음에는 소수의 전유물이지만 점차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등장한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처음에는 상류층의 문화였던 것이 이제는 누구나 즐기는 패스트푸드가 되었고 미국에서 온 원어민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과거에는 엘리트층의 특권이었지만 이제는 깡촌 시골에서도 디즈니 비디오를 보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다는 자서전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에 따라 기존 소수들의 차별화 전략이 등장하는데 이제는 본토 스타일의 수제버거(쉑쉑, 인앤아웃) 같은 F&B브랜드를 소비하고 일반 표준 영어가 아닌 legit 같은 미국MZ의 슬랭을 구사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적 차별화 요소가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절도 지나간다. 정점을 찍은 것은 모두 하향하게 되어있다. 삼성도 테슬라도 코인도 유럽문화도 미국문화도. 하향한다고 멸종하는 것은 아니고 분명 누군가에 의해 맥은 유지된다. 그러나 모두가 보편적으로 향유하던 지배적인 헤게모니는 아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부모세대와 다른 문화를 원하기 마련이고 대중은 늘 새로운 것을 찾게 되기 마련. 2040년에는 15년 전 오늘의 문화가 유치하고 촌스러워보일 것이다.
최근 세계정치의 흐름에 촉각을 세우고 이슈를 찬찬히 따라가고 있는 교양인들이라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블록화, 미국의 보호무역, NATO와 EU의 분열, 유럽 재무장, UN의 무능, 아랍이스라엘갈등, 미중갈등, 러시아부상 , AI와 양자컴퓨터, 데이터센터, 전력망의 기술지정학, 우주시대과 같은 테마에 익숙할 것이다. 이런 여러 복잡한 실타래 속에 한국 문화는 어느정도까지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 국내의 지배적인 헤게모니는 어떻게 변할까? 70-80년대 유럽문화, 90-00년대 미국문화였는데, 또 다른 해외문화가 한 자리 차지하게 될까? 혹은 신토불이 문화가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망성쇠와 문화의 전파
🖼️ 서울미술관 아카이브 전시 (3.7-5.2)
📍김달진자료박물관에서 폐관된 서울미술관을 다룬 전시가 진행 중.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오늘(3/31) 소개 📰
🎨 선진 유럽 문화의 창구였던 서울미술관
과거 구기동 서울미술관은 유럽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폐관.
🍔 90년대 후반, 미국 문화의 급부상
같은 날(3/31) 코리아타임즈에서는 미국인 밀러가 90년대 한국에서 미국 F&B브랜드가 어떻게 정착했는지 회고. TGI Friday’s에서 밥이 없잖아! 하고 충격받던 반응이 흥미롭다.
📈 문화 전파의 흐름 = 주가 그래프 📉📈
80년대 유럽 문화 → 90년대 후반 미국 문화
🛤️ 한국 문화의 확산, 이제 시작?
언어 장벽이 높은 한국어 문화는 확산이 더뎠지만, 음악(K-pop) → 영상(드라마·영화) → 문학, 미술, 음식으로 확산되는 중. 한국 문화도 글로벌 무대에서 자리 잡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