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금암 미술관에 다녀왔다

은평 한옥 마을 안에 있다

도로 하나를 맞서고

앞에는 금융기업이 세운 자사고가 콘크리트 노출기법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고


뒤에는 기와를 올린 전통한옥마을이 있다




안동만큼 전통일까? 한옥에서 살던 조선인의 후예가 한옥마을 프로젝트로 정비된 관광지에 사는데 호주 목재에 중국 유리창 등을 썼기에 테세우스의 한옥이라고도 이를 수 있겠다. 한옥집의 1층에서는 수제 영국식 미트파이를 팔고 지하에는 헬스PT가 한창이었다. 아아 글로벌 하이브리드의 시대여!

금암미술관에서는 작가 4명의 전시를 하고 있다. 여성 작가라고 이름했기에 사실 한 팀은 목공예가와 칠개장인 두 남녀인데 남성작가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송진으로 하늘을 형상화한 부분이 재밌다

직접 짠 목각 함 위에 삼각산 모양의 장식이 돋보인다

분청혼합토로 타렴성형하여 산화소성 1250도씨에서 굽고 화장토로 채색한 도자와 도자로 만든 회화가 눈길을 끈다

삼각산 능선을 삼색 테이프로 감싸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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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전에 다녀왔다

원래 다른 5월 전시랑 묶어가려고 했는데 내일부터 황사라서 급히 성북-북촌 돌다가 6시를 넘었는데 마침 수요일 저녁 6-9시 무료오픈시간이라 겸사겸사 고양이가 생선가게 들어가듯 MMCA 현관문을 열었다

인스타감성용 전시수요에 트렌드 얼리어답터와 기존 아트러버에 국내거주 외국인 모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MMCA로는 드물게도 줄서서 차례를 기다려 입장했다

온갖 SNS에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어서 기본 구도는 충분히 예습이 된 상태여서 보통 눈여겨보지 않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잔털과 선진국의 탄수화물 위주 식사로 인해 쌓인 복부 피하지방의 사실성이다

이에 더해 백인 특유의 콧대가 높고 눈두덩이가 파여있는 부분의 주름, 백인 남성 노인의 검버섯과 노화 및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처진 지방 가슴, 라파엘로처럼 광원 노출에 따라 달라지는 깊은 눈매와 매서운 턱선 같은 것이다

10대 소녀의 미래와 신체성장에 대한 불안한 눈빛은 손목의 잔털로 인해 그 두려움이 강화된다

10대 소년과 소녀의 손 꽉 쥔 데이트 조각은 전면 측면 후면에서 모두 표정이 달라 각도에 따라 어떨 땐 소년의 억압이 어떨 땐 소녀의 수긍이 어떨 땐 그 모든 상황적 폭력과 부조화가 느껴진다

엄마의 피로감과 무력감이 만연한 엄마얼굴을 바라보는 갓난아기 조각은 베이비의 두개골이 숨구멍이 아직 안 막히고 후두가 아이답게 튀어나와있는데서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새끼발가락 제5족지가 안쪽으로 말려 있고 검지발가락 제2족지가 긴 것이 서양인의 골격이다

팔꿈치의 나이테 같은 주름진 피부도 눈에 들어 온다. 다 헤진 나무배에 타고 있는 남자는 완전한 알몸, 성기마저 드러내고 있는 취약한 상태이며 그 대각선 시선의 끝에는 파도, 혹은 유동하는 관객의 움직임이 걸린다

작가는 거의 금욕적 수도승마냥 매일 작업하는 일상이다 술에 취해 시를 음송하는 이백처럼 살아선 이정도 규모의 극사실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조용한 삶(still life)의 루틴에서 정물화가 나온다



화제가 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전

극사실적 작품사진은 얼마든지 SNS에서 접할 수 있다

가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은 세 가지다


1) 하나는 지하 2층 높이에 쌓은 사십 여점의 해골더미

죽음이 거대한 질량을 가지고 매섭게 덮쳐온다

작품 이름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소장의 <매스>(2016-2017)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구성되는데

MMCA의 전신, 옛 기무사 건물의 거대한 지하를 잘 활용해

원래 소장되어 있는 곳보다 훨.씬. 잘 배치되었다

압도감이 남다르다

아마 옛 군사정권 시절에 스파이 고문과 이름 모를 죽음이 있었을 법한

옛 보안사 건물의 지하에서 전시되는 사람보다 더 큰 사이즈의 두개골

의미심장하다


2) 또 하나는 줄 서서 한 명씩 론 뮤익과 대담하는 자리다

<어두운 장소>2018

어두운 공간에 컨트롤된 조명이 라파엘로의 그림처럼 극적인 명암대비를 부여하여 파인 광대, 매서운 턱라인, 그림자가 내려앉은 눈 두덩이에서 엄격한 수도승과 같은 작가의 자아가 느껴진다

140x90x75cm 자신의 얼굴보다는 큰 사이즈로 독대를 하게 되는데

조각과 시선교환을 했다면

한 층 아래 내려가 작가 작업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영상에서는

실제 작가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샷으로 시선교환을 할 수 있다



3) 마지막은 스틸라이프(48분, 2013)과 치킨/맨(13분, 2019-2025) 영상이다

박효신의 <야생화> 같은 심금을 울리는 노래도 정확한 음정과 호흡을 바탕으로 부르며, 침묵에도 의도된 시간이 있듯이

즉흥성과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재즈도 선명한 큐사인, 엇박에도 엄격한 박자 계산, 패턴화된 리듬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듯이

타격이 폭발적인 액션영화나 깜짝 놀래키는 공포영화도 몇 년의 세월 동안 관객이 순간적으로 느낄 감정을 몇 년동안 되새김질하며 구상하듯이

이런 극사실적 조각을 만드는 작가의 삶은 루틴의 연속이다

시간의 흐름은 크리스마스에서 한 번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업실 벽에 귀멸의칼날 도공 하가네츠카 호타루鋼鐵塚蛍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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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옛돌박물관에 다녀왔다

날씨가 선선하고 햇볕이 따갑지 않은 지금이 방문의 적기다. 태평양 고기압의 습윤한 기단이 한반도를 침범하여 후덥지근해지면 쾌적한 마음으로 고즈넉한 우리네 정원을 감상할 수 없다

일본의 정제된 인공정원에 비견되는 한국 정원의 미학은 무질서 속의 질서다. 정확한 순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의도한 바만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일본정원은 건축마저 군더더기 없는 콘크리트 타설에 시공마저 완벽하고 목재가 아귀가 오차 없이 맞아 선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승려같은 관리인이 새벽부터 쓸고 닦아 관리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네 옛돌 공원에는 아무렇게나 막 만든 것 같은 웃긴 돌상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동선은 자유롭다. 이렇게 가면 좋겠다는 큰 구도는 있지만 주도적인 한국인은 자기 멋대로 다닌다. 어 이거 길인가? 오솔길을 갔다가 막혀서 돌아왔다가 하는데서 일탈과 해학의 맛이 있다. 발길 닿는데로 가는 루트에 제주에서 공수한 하루방을 만나기도 하고 어련히 문반의 조선인지라

수십 점의 문인상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깨방정 동자 무리도

소원을 들어준다는 미륵불도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이 버무려져 조형된 비빔인간 칠성신도

만날 수 있으며

합격을 보장한다는 승승장구길도 걸을 수도

신라의 별궁 경주에서 1300년 전 제작된 수세식 화장실 판석 유적도 만날 수 있다. 따로 세련된 화장실이 있으니 여기서 용변을 보지 말기로 하자

시선을 돌려 풍경을 멀리보면 성북동의 고급 저택과 자웅을 다투는 언덕배기의 낮은 주택가 위로 저 멀리 시그니엘이 차경으로 잡힌다. 산악 능선의 굴곡을 따라 절과 집이 같이 있는 마을경관은 연안도시나 평야지대에 건설된 타국의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는 길은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02를 타고 종점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라는 교통수단에 맡기면 쉬운 길이다. 걸어올라간다면 사실상 등반루트다.

어쩌면 일본에 사는 이들이 일본공항-1시간-인천공항-1시간-서울역(4호선)-한성대입구역하여 3시간 컷으로 오기에 안성맞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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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나루에 있는 스페이스K에 다녀왔다


1.작가는 독일표현주의 화풍의 뮌헨출생 영국작가 소피 폰 헬러만. 가볍게 흩날리는 선이지만 허투루 날린 스트로크가 아니다. 해부학적 구도를 따르면서 윤곽을 깔끔히 다듬은 회화가 궁서체로 익숙한 해서라면 폴록은 초서이고 독일 표현주의는 초서를 똑바로, 해서를 흘려 쓴 행서에 가깝다. 행서나 독일표현주의나 엄격한 드로잉 수업을 받고 바른 정자부터 시작해 몇 십년의 트레이닝이 있어야 자기 화풍이 나온다.


2.기존 티켓박리다매 전략을 답습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것을 실감한 영화관은 3D, 4D, 낮잠, 재개봉 등 전략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영화제작자는 영화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아우라를 위해 돌비, 아이맥스로 작업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시관도 전시장에서만 할 수 있는 시도를 해서 관객유치를 하고자 하는데 하나는 이머시브 다른 하나는 관객참여형 프로그램. 또, APMA의 해링턴전에서처럼 천장이 높은 규모가 있는 전시장은 거대 벽화를 그리기도 하는데 바로 이번 스페이스K의 축제전이 그렇다. 왠만하면 스크린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아우라를 느끼게 해주어 몰입감을 선사한다.



출품작은 약 23점인데 다 2025년에 그렸다. 전시 시작은 4월 9일이다. 그말인즉슨 올해 초에 전시 결정되고 여러 250호짜리 대형 캔버스를 그렸다는 것이다. 내한 후 벽화를 그리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도 상당히 빠른 작업속도다. 서예의 행서에 비유한 것이 적절하다. 평생 붓을 들어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가의 스타일은 연구자의 이론틀과 같아 고착되고 익숙해지고 대중화되고나면 주제만 교체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폰 헬러만이 이번에는 한국 전통문화로 했다면 다음에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축제로도 할 수 있는 것. 한국작가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면 좋겠다. 민화로 그린 베트남 설화 재해석. 자개장으로 짠 태국 가구


5월 5일 단오를 영국 메이데이 축제와 연관시켜 풍년과 기복의 보편성을 시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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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990, 토플 120, JLPT N1, HSK 6급(이젠 7-9급) 유럽어 C1을 보통 고급이라고 말하지만 외국인 기준에서 고급이다. 우리나라말을 배우는 외국인이 토픽6급을 따면 칭찬해줄 일이지만 한국인 네이티브 입장에서는 아직 배워야할 것 천지다.

자동차 면허증 같은 거다. 진정한 걸음마의 시작이다

영어로 교육을 받아도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다


고교때 읽었던 워드 스마트 지니어스에서는 abecedarian알파벳을 처음 배우는 초심자라는 표현이 특이했다

매일 뉴욕타임즈를 읽을 때 한 단어 정도는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처음 시작하는 inchoate

역겹다 nauseating

왁자지껄 걸걸한으로 raucous 등을 배웠다

뉴욕리뷰오브북스는 kafkaesque, rabelais가 나오는데 이때부턴 언어가 아니라 문화지식의 영역이다

저번에는 듣도 보도 못한 louche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문란한 promiscuous라는 말이었다


한자도 그렇다 박물관 서예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배울 게 많아서다


남들은 그냥 쓱 한자네 하고 지나가지만 서당 비슷한 곳을 다녔던 입장에서 여기는 풍부한 예문 천지다


심지어 좋은 전시는 한국어 해석도 다 베풀어준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사립에서는 코엑스 고개에 있는 S2A의 김정희 윤형근 정선전이 원문 한글해석이 길고 좋았다


경기도박물관 김가진 서예에서는 물 졸졸 흐를 잔을 처음 배웠다



왕을 칭할 때는 다시 라인을 띄워 위로 올려준다. 여기선 지존이 그렇다.


독일어 프랑스어도 잘 하고 미술관에 가면 캡션 설명 읽으며 배울 게 많다. 영어 설명이 없는 자국 특유의 표현과 문장 구조에서 특별한 감각이 느껴진다.

일본어도 아무리 파파고 번역기가 있어도 직독직해가 되면 일본 전시에서 배우는 게 많다

신문과 미술관이 최고의 선생이다

신문은 현재의 글을 읽기에 좋고

미술관 박물관은 과거의 글을 읽기에 좋으며

이 모든게 내 안에 버무려져

나는 미래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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