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 봉산문화회관

러시아·우즈베키스탄 현대미술展

2024년 08월 08일(목) ~ 2024년 09월 01일(일)




과천 K&L미술관

금빛 땅의 유산: 포용의 어머니

미얀마 현대미술 특별전

2025.02.12-03.30



위의 사진은 K&L미술관 제공

https://www.kandlmuseum.com/exhibitions/16/


https://www.kandlmuseum.com/exhibitions/16/works/artworks-407-htoo-aung-kyaw-the-art-of-living-unique-birth-life-2023/



HTOO AUNG KYAW


The Art of Living Unique; Birth, Life & Death,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60 x 84 "

152.4 x 213.36 cm



아티스트 Htoo Aung Kya는 다다이즘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듭니다. 어릴 적부터 역사와 철학에 대한 깊은 열정이 그의 예술적 여정을 형성했습니다. 젊은 시절 때 바간을 자주 방문하며 거기의 역사와 독특한 벽화 예술을 탐험했습니다. 창작 과정에서는 자신의 직관과 지혜를 따라 개인적인 비전에 맞게 작품을 만듭니다. 부처의 철학을 존중하면서도, 종교적인 신념보다는 삶의 방식으로서 그 원칙에 끌렸습니다. "예술은 공유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작품에 담긴 삶과 동양 철학에 대한 개념을 항상 공유합니다. 게다가 역사적, 인류학적 지식도 작품에 접목되어 있습니다. 삶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열정과 신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목적과 열정을 갖고 존재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인생이 지겨울 때는 아예 새로운 여행을 가자


생각해보지 못한 나라로.


작년 대구 봉산문화회관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전시회에서는 농촌풍경이라는 제목의 작품 마저 매우 이국적이었다


우리가 알던 그 예수님의 얼굴이 러시아적 고뇌로 가득차고 도스토예프스키적 고민으로 내면이 일렁이는 모습이다.


올해 과천 K&L미술관의 미얀마의 작품에서는 전투적인 부처의 얼굴가 보였다


선불교의 온화함 대신 마치 전장에 선 장군처럼 결연한 눈빛이다 미얀마인의 불교란 그런 것이다


새로운 여행은 새로운 시선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그리하여 새로운 삶은 새로운 부대에


인생이 공고한 때에 내면의 여행을 떠나보자


알던 종교 성화마저 다시 보게끔 하는


익숙한 길이 아닌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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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개의 전시 작품을 겹쳐보자


시간적으로 2개는 상설, 하나는 작년 2024년, 하나는 2025년 현재진행중

공간적으로 전남, 북서울, 남서울이다.



2. 전남도립미술관 지하1층 상설

서도호, Stove, Apartment A, 348 West 22nd St., NY, NY 10011, USA, 2013

폴리에스테르 천, 스테인리스 철사, 유리 진열장, LED 조명


성북동 화정미술관 1층 상설 현대미술

서도호, Hub, 260-10 성북동, 성북구, 서울, 한국, 2016 

폴리에스터 패브릭과 스테인리스 스틸


남서울미술관

SeMA 옴니버스 《제9행성》

20240731-20241027

정승, Landscaping a Machine, 펠트, 스티로폼, 손 자수 실, 가변설치, 2013



서울대미술관

무기세 (武器世)

2025년 02월 06일 - 2025년 05월 04일

허보리, 부드러운 K9, 양복, 이불솜, 실, 바느질, 앵글프레임, 2020




3. 작품 모두 원래 단단하고 딱딱한 물건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물성으로 치환했다는 특징이 있다.


단단한 스토브, 철제 탱크와 자동차, 콘크리트 건물처럼 원래는 무게와 강성을 지닌 사물들이 부드러운 천과 패브릭으로 재탄생했다. 재료적 치환을 통해 익숙한 사물의 감각을 뒤흔드는 시각적 트릭이자 촉각적 전복이다. 머릿속에서 딱딱한 금속과 콘크리트의 차가운 감촉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패브릭의 말랑하고 흐물거리는 질감이 상상되어 낯선 긴장과 충돌을 일으킨다. 


정승 작가의 펠트천으로 만든 자동차는 아예 분해되어 전시장에 분산 설치되었다. 파편화된 자동차 부품은 분절된 개인의 노동을 상징하고 쿠션은 노동 후 휴식을 의미한다. 허보리 작가의 양복 천으로 만든 탱크와 소총은 남성 양복으로 만들어져 전쟁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폭력적인인 무기를 무력화시킨다. 한국에서 출생해 영미에서 활동한 서도호 작가는 뉴욕과 성북동의 기억이 묻은 장소특정적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이주 경험과 공간 기억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개인적 네러티브를 특정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장소가 지닌 역사성과 의미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 된다. 부드러운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따뜻하고 편안했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물리적으로 구현하였다.


중력의 무게감이 있는 원본과 팔랑팔랑한 느낌의 재현이 서로 충돌하며 감각의 교란이 일어난다. 경직된 것과 유연한 것, 위협적인 것과 무해한 것 사이의 긴장을 통해 우리는 익숙함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촉각적 사고를 경험하고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러한 낯설게 보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해함이다. 본래는 산업사회의 거칠고 차가운 외면과 냉혹한 기능성을 지닌 사물들이 폭신폭신하고 포근한 표면을 변하면서 위협의 기세가 사라진다. 탱크나 자동차 같은 전쟁, 기술진보와 산업화의 상징을 천으로 덮었을 때 전혀 다른 의미망이 생성된다. 권력과 폭력이 연상되던 물체가 몽글몽글하고 완만해져서 유순함을 획득한다. 유년기의 유연한 쿠션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혼란한 외부세계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해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해함을 반영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마치 갑각류의 딱딱한 외골격이 아니라 말랑한 연체동물의 유연한 신체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거친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게처럼 날선 집게다리를 가지고 전투적으로 남을 위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존재하고 싶은 자들의 욕망이 무해함이다. 거친 현실과 대조되는 무해한 연성은 일종의 자기 위안 같은 방어 기제처럼 작용하기도 하며, 사물의 본질이 어떻게 고정된 인식틀 안에서 해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겹쳐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촉각적 언어를 통해 사물과 감각을 다시 정의하는 접근 방식이다. 보통 우리는 시각적 경험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지만, 이 작업은 촉각적 경험을 소환해 시각적으로 환기시키고 기존의 감각적 위계를 무너뜨린다. 아울러 안전과 위안을 제공하는 무해함과 부드러움을 통해 무겁고 위압적인 존재를 친숙하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받아들이는 사물의 속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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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부분 전시는 월요일에 안한다, 가 디폴트다

갤러리의 경우 일요일도 거의 열지 않는다.

일요일 데이트로 삼청동에 갔다가 어 학고재 유명하다던데 왜 안해? 라고 하는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전시를 보러 가겠다면 화수목금토에만 가면 된다.


월요일에 오픈하는 혜자스러운 곳은 따로 기억하자


월요일에 오픈하는 곳을 먼저 가고, 나머지 주중에 다른 곳을 가야 효과적이다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 무휴!

21디자인, 산토리, 국립신 - 월오픈, 화휴무


한국 서울

국공립 중 무휴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서울(청주, 덕수궁, 과천 제외)

상업예술센터는 월운영은

삼성잠실 인근의 롯데뮤지엄과 마이아트

안국의 푸투라, 그라운드


갤러리는 보통 일월 휴무이고

인사갤러리는 월요일에 하고 화요일 전시교체를 사유로 휴무인 경우가 있다

국제갤러리는 7일동안 하지만 전시기간이 아니면 닫기도 한다. 예컨대 국제는 작년 11월 함경아-jina park 사이에는 문 닫았다. 


갤러리는 매번 확인해야한다




2. 

인사동 갤러리를 둘레둘레 다니다가 좋은 전시, 곤란한 전시 하나씩 우연히 마주쳤다


좋은 전시는 나다영의 가죽 조각보로 변산반도의 해식절벽을 표현한 작품




곤란한 전시는 낸시랭의 팝아트 전시였다.




작품 자체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조선 민화에 캐릭터를 새겨넣는다든지 세련된 현대적 미감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한다든지



그런데 전시 소개가 조금 곤란했다.


"최근 우주가 붐업되고 있는 중.. space art 분야를 개척하며 과거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아트와 같은 형태의 우주를 대상으로 한 현대미술 분야를 올해 개인저을 통해 국내 최초로 발표하였다 항공 우주분야 국제학회에 사용될 포스터를 맡겨져 제작 및 기획하였는데 세계최초이자 첫 시도"



작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앞으로 활동을 잘해나가길 기원하지만

백남준 선생님과 비교는 너무 과했다!


백남준은 동서양 언어에 능하고 고전을 탐독해 작품에 사상적 깊이가 있었다. 다음 시대를 예견한 비져너리였다. 그리고 공학적 베이스가 있어 회로도 자기가 디자인했다


우주항공포스터 제작이 아니라 항공역학을 공부해 설계하고 다가올 세상을 예견하고 고전의 어휘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럼 백남준 반열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같은 레벨로 놓기에는 곤란하다





2.

인사아트센터 x 타데우스로팍


인사아트센터 3층 나다영의 전시는 꽤 괜찮았다. 가죽보를 스테이플러로 연결해 변산반도 해식절벽을 재해석한 작품이 대표적으로, 작가가 재료 연구를 매우 끈질기게 한 듯하다. 이렇게 재료와 이미지의 매칭이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비전통적, 비관습적 조합일 때 모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가죽의 물성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질감과 은은한 광택과 주름이 만들어내는 깊이가 있다. 그 물성을 활용해 바다, 절벽 같은 유성이 있는 장면을 표현한 것은 창의적인 시도다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표면 위로 무두질된 광택이 스며들고 가죽 고유의 주름 사이로 미세한 윤기가 흐른다. 손끝을 스치는 무게감 속엔 강인함이 깃들고 세월이 각인된 표면은 시간의 결을 머금은 채 조용히 숨 쉰다.


그러나 조형이나 구도는 로스코, 윤형근 등을 떠올리게해 다소 아쉽고 설명이 빈약하다



여기서 타데우스 로팍의 알바로 배링턴의 삼베로 만든 석양그림이 왜 위대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왜 세계적인 갤러리가 그를 선택했는지


재료의 선택과 조형적 구도라는 시각적 요소에 역사적 맥락, 개인적 서사, 세계적 아젠다를 잘 연결시켰기 때문


good to great 어떤 것은 좋음에서 그친다. 위대함으로 나아가야한다


나다영의 작품은 재료 스터디, 재료의 물성과 작품의 조형적 요소와 관계, 에서 멈췄다, great이 될 수 있는데


그럼 great이 작품은 뭐냐? 타데우스 로팍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가 선택한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알바로 배링턴의 그림을 나는 이렇게 표현해보고 싶다.


지평선 너머 반쯤 저무는 석양을 그린 카리브-아이티계 화가 알바로 베링턴은 열대 바다와 뜨거운 빛을 담아내기 위해 잘 선택되지 않는 매체인 삼베를 사용해 재료와 이미지 사이의 창의적 긴장을 유도한다. 작가의 조상이 생산했던 삼베의 거친 섬유질 표면은 식민 노동의 고된 흔적을 환기한다. 카리브 연안의 바느질 기법을 활용해 전통 직물공예를 계승하는 동시에 조각보를 퀼트로 엮어내 빛과 바다의 갈라지는 표면을 효과적으로 분리해낸다. 부조처럼 튀어나온 삼베 조각을 덧대고 삐져나온 실타래를 그대로 남겨 조각적 레이어를 더하며 크기와 색이 다양한 콜라주는 캐리비안 연안의 하이브리드 문화의 융합을 시사한다. 올이 굵은 섬유 조각보의 질감과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색감이 맞물리며 석양이 지는 바다 위 윤슬이 중첩되고 반사되는 낭만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나다영의 이런 작품은 알바로 배링턴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작품 자체는 좋다. 부족한 것은 서사다. 


왜 가죽인가? 재료와 조형은 어떻게 호응하는가? form인가 function인가? 가죽을 선택한 개인적 이유와, 그 개인적 선택이 자신을 둘러싼 역사, 전통과 어떻게 호응하는지, 그 논의는 사회적 아젠다와 전세계적 이슈와 어디서 접속하는지, 를 고민하고 쓴 글과 이를 국제 학술 용어로 잘 다듬어진 영문설명이다.




타데우스 로팍 알바로 배링턴

https://ropac.net/exhibitions/736-alvaro-barrington-soul-to-seoul/


인사아트갤러리 나다영

https://www.insaartcenter.com/bbs/board.php?bo_table=exhibition_current&wr_id=107&futu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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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 근처 김달진자료박물관 1층에서 서울미술관 아카이브 전시(3.7-5.2)가 열리고 있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발간하는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이다. 전시가 시작하자마자 다녀왔는데 오늘 3월 31일 자 조선일보에 허윤희 기자가 전시를 소개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3/31/QJ6BQZOTLNGIJGVUSLO3RJIC64/


전시에서 다루는 서울미술관은 1981년부터 20년간 운영되고 이제는 폐관된 서울미술관이다. 지금 '서울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과거의 서울미술관은 구기동 88-2번지에 위치했고 유럽문화를 소개해 한국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곳이었다.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 전경. 1981년 촬영.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시 장소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옛 서울미술관 건물이 있는데 네이버 거리뷰를 보면 사유지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판넬이 세워져 있고 건물은 흔적도 없이 황폐화된 상태다. 



전시는 김달진자료박물관 1층에서 열리고 있다. 단독 전시로 보기에는 다소 아쉬울 정도로 규모가 작으니 성북동이나 평창동의 갤러리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다.






구기동의 서울미술관이 개관한 지 1년 후인 1982년에 열린 프랑스 신구상회화전은 한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외국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당시 서울미술관은 유럽 미술과 서양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신속한 전파를 경험하는 지금은 체감할 수 없는 시절의 감각이다. 프랑스 유학파 화가인 임세택과 강명희 부부가 사재를 털어 운영했고 15년간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다가 결국 폐관하고 말았다. 강명희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3.4-6.8)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바로 그 강명희다. 중국해에서 쓴 프랑스어 편지라는 아카이브를 보면 프랑스어 작문실력이 아주 좋다.






강명희 화가가 쓴 위의 프랑스어 편지를 번역해보면 대충 이런 말이다.



마침내, 저편에서 우리를 비추는 신비로운 전리품처럼 동양을 붙잡는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높은 곳을 향해 여행을 밀어붙인다. 뒤흔들리는 몸과 뒤집힌 눈은 헛되이 돌아가며 얇게 다문 입술이 감춘 비밀을 찾는다.

여기서는 오래된 바다가 사라진다. 해독할 표식도, 찬양도 없다. 여기서는 속삭임과 인간의 비명이 물속에 잠긴다. 창백한 팔로 배와 죽은 도시를 감싸는 폭풍 속 난파선들이 여기 있다.


답을 남기지 않은 해안들이

화강암 같은 얼굴을

파도에 내민다.

연회석 위에 팽팽하게 펼쳐진 강철 매트처럼

식인종들의 만찬을 위하여.

한여름 곤충 떼처럼

성가시게 몰려드는 기억들,

거지 오우거들이 입에서 입으로 건네며,

손이든, 눈이든

미소의 윤곽을 내게 건네준다.

물 위를 떠도는 스테인리스 요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전쟁의

투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심연에서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삼킨다.

마치 메기 같은 예의를 갖춘 채.



미술관의 폐관을 막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비롯한 예술인과 지식인 1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구기동의 서울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었다. 선진 유럽 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문화가 한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었고 사범대 입학정원에서도 불문학과 독문학 TO가 있었다. 1980년대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성은 유럽 문화에 대한 동경과 우위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같은 미술관의 1990년대 이후 조용한 몰락은 유럽 문화의 쇠퇴와 함께 미국 문화의 압도적인 부상을 방증할 것이다. 구미 열강 중의 하나가 아니라 패권국가로서 미국이라는 확실한 대안으로 인해 영어 외의 외국어는 점차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고 한국인이 향유하는 문화의 중심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물론 유럽문화의 맥이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방점 이동, 시프팅은 분명 있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오늘 3월 31일 코리아타임즈 기사에서는 1990년에 한국에 와서 30년 넘게 거주 중인 제프리 밀러가 미국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과정을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소개했다.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5/03/177_394317.html


이제 버거킹, 도미노, 피자헛 같은 프랜차이즈는 이제 지방 곳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제프리 밀러는 처음 TGI Friday's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아니, 밥이 없잖아!"라는 재밌는 반응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명지대로 가는 길에서 KFC인 줄 알고 봤더니 간판에 Kentucky가 아니라 Kenturky라고 다르게 적혀 있던 웃픈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스타벅스, 맥도날드, 버거킹을 모르던 사람이 대다수이던 시절이라니. 소재도 재밌고 저자의 자전적 회상과 함께 잘 엮인 글이었다. 


Still, old habits die hard. Once, in 1996, I was having lunch with students at a newly opened TGI Friday's near Hongik University when a middle-aged woman and her mother walked by our table. The older woman stopped, stared at our spread of breaded chicken strips, spinach and Cajun chicken salads, barbecue ribs and burgers, and then exclaimed in horror to her daughter, “There’s no rice!”


Sometimes, efforts to hop on the Western food bandwagon veered into the downright odd. In 1997, while riding a bus to visit friends behind Myongji University, I glanced out the window and thought I saw a familiar Kentucky Fried Chicken facade. A second look revealed it was actually “Kenturky Fried Chicken.” I couldn’t help but laugh at the creative imitation.


By Jeffrey Miller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25/03/177_394317.html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망성쇠에서 본 80년대 유럽미술의 흥성과 90년 후반의 몰락

90년대 미국식문화의 진입과 대중적 확산

이 두 기사를 겹쳐 읽으면 문화적 수용과 확산이 마치 주가 그래프처럼 등락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표전쟁을 언급한 지난 글에서 문화의 전파는 질량이 작은 매체부터 퍼진다고 주장했다.

즉, 만드는 에너지가 적게드는 순서대로 말 → 글 → 이미지 → 영상 → 기술 → 대중 상용화 순으로 확산된다. 

비저너리들이 처음에 예언가처럼 말도 말하고, 조금 시간을 들여서 글로 정리한 후 출판되고

출판된 책을 읽은 예술가들이 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배우와 미디어 기술로 영상화가 된 후

기술자들이 실용화를 하는데 제작비가 비싸서 상용화는 안되다가 코스트를 낮추는 기법이나 물질이 개발되어 기업가들이 대중에게 팔아먹고 상용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배터리, 우주, 로켓, AI, 디스플레이 등등. 과거에는 마법이라고 생각된 것들이 이제 과학이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해서 생각해볼 것은 한 문화의 전파에 있어서 같은 언어권 내에서는 빠르게 퍼질 수 있지만, 다른 언어권으로 번역되어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들 사이에서는 문학작품, 음악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중국어로 쓰여진 작품은 중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에도 쉽게 퍼진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다. 영국, 미국뿐 아니라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의 영어권 나라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일종의 관세와 같은 것이다. 한국어의 관세는 매우 높다. 외국의 한국동포를 제외하고는 퍼질 곳이 없고, 진입장벽도 매우 높다. 폐쇄적인 언어권의 문화가 퍼지기 위해서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조금 그 문화가 퍼질려는 조짐이 보인다. 


먼저 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음악, 춤, 이미지가 퍼진다. 음악과 춤은 언어가 아닌 보편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kpop이 한국어 가사 때문에 퍼진 게 아니라 정확하고 파워풀한 안무와 세련된 멜로디와 아름다운 패션과 뮤비에서 일차적으로 자극되어서 퍼진 것이다.


그 다음 자막과 더빙의 도움을 받아 영상이 확산된다. 드라마나 영화. 이후 시간이 지나 점차 노래 가사나 대사를 번역해 이해하던 단계에서 원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발전하다가 결국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아마 정말 마지막으로 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는 두 개가 있다면

그 지각쟁이는 하이컬쳐로서 식문화와 미술일 것이다.


식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조미료와 소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조리법의 전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효식품은 그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향과 맛을 맛있다고 느끼고, 장내 미생물군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먹어 버릇한 식습관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수, 취두부, 홍어, 염소치즈, 골수, 내장 등을 맛있게 느끼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김치, 된장 등 한국의 발효식품이 해외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가 들려온다. 하지만 김치와 된장이 요즘 처음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인마트를 통해 조금씩 들어가 있었다. 오징어게임이나 한국드라마를 통해 수요가 생기면서 유통망이 확산되고 외국의 평범한 사람들도 먹기 시작해버릇하는 것이다. 


미술 전시의 확산 속도가 느린 이유는 미술계가 보수적이고 미술관의 전시 스케쥴이 몇 년간 꽉 차있으며 상대적으로 소수의 문화층이 소비하는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 맥락에서 한 문화의 사상, 미술, 식문화는 전파속도가 비슷한 시기에 겹치는 것도 같다. 우리나라 80년대 유럽 미술과 유럽 사상이 유행하던 시기에 제빵 문화와 에스프레소 커피가 함께 퍼졌다. 마찬가지로, 해외 레스토랑에서 고추장 버터 스테이크가 인기 있는 현상과 외국 미술관에서 한국 민화 전시가 늘어나는 현상이 비슷한 시기에 겹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통계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나 그런 흐름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흥행하는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문화는 처음에는 소수의 전유물이지만 점차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등장한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처음에는 상류층의 문화였던 것이 이제는 누구나 즐기는 패스트푸드가 되었고 미국에서 온 원어민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과거에는 엘리트층의 특권이었지만 이제는 깡촌 시골에서도 디즈니 비디오를 보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다는 자서전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에 따라 기존 소수들의 차별화 전략이 등장하는데 이제는 본토 스타일의 수제버거(쉑쉑, 인앤아웃) 같은 F&B브랜드를 소비하고 일반 표준 영어가 아닌 legit 같은 미국MZ의 슬랭을 구사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적 차별화 요소가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절도 지나간다. 정점을 찍은 것은 모두 하향하게 되어있다. 삼성도 테슬라도 코인도 유럽문화도 미국문화도. 하향한다고 멸종하는 것은 아니고 분명 누군가에 의해 맥은 유지된다. 그러나 모두가 보편적으로 향유하던 지배적인 헤게모니는 아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부모세대와 다른 문화를 원하기 마련이고 대중은 늘 새로운 것을 찾게 되기 마련. 2040년에는 15년 전 오늘의 문화가 유치하고 촌스러워보일 것이다.


최근 세계정치의 흐름에 촉각을 세우고 이슈를 찬찬히 따라가고 있는 교양인들이라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블록화, 미국의 보호무역, NATO와 EU의 분열, 유럽 재무장, UN의 무능, 아랍이스라엘갈등, 미중갈등, 러시아부상 , AI와 양자컴퓨터, 데이터센터, 전력망의 기술지정학, 우주시대과 같은 테마에 익숙할 것이다. 이런 여러 복잡한 실타래 속에 한국 문화는 어느정도까지 포지셔닝할 수 있을까? 국내의 지배적인 헤게모니는 어떻게 변할까? 70-80년대 유럽문화, 90-00년대 미국문화였는데, 또 다른 해외문화가 한 자리 차지하게 될까? 혹은 신토불이 문화가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구기동 서울미술관의 흥망성쇠와 문화의 전파


🖼️ 서울미술관 아카이브 전시 (3.7-5.2)
📍김달진자료박물관에서 폐관된 서울미술관을 다룬 전시가 진행 중.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오늘(3/31) 소개 📰

🎨 선진 유럽 문화의 창구였던 서울미술관
과거 구기동 서울미술관은 유럽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폐관.

🍔 90년대 후반, 미국 문화의 급부상
같은 날(3/31) 코리아타임즈에서는 미국인 밀러가 90년대 한국에서 미국 F&B브랜드가 어떻게 정착했는지 회고. TGI Friday’s에서 밥이 없잖아! 하고 충격받던 반응이 흥미롭다.

📈 문화 전파의 흐름 = 주가 그래프 📉📈
80년대 유럽 문화 → 90년대 후반 미국 문화

🛤️ 한국 문화의 확산, 이제 시작?
언어 장벽이 높은 한국어 문화는 확산이 더뎠지만, 음악(K-pop) → 영상(드라마·영화) → 문학, 미술, 음식으로 확산되는 중. 한국 문화도 글로벌 무대에서 자리 잡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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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젯밤 페로탕 인스타에 안영일이라는 모르는 화가 전시를 LA에서 한다길래 궁금해서 


YTN, LA뉴스, LACMA, Harpers 갤러리, 현대화랑 등 유투브와 이런저런 사이트 나와있는 정보는 대략 다 리서치했다


1934년 개성에서 1세대 서양화가 안승각의 아들로 태어나 도쿄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1958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서울예고, 사대부고에서 교편을 잡으며 국전 추천작가로 선정되는 등 국내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다가

196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1967년 Zachary Waller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어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이혼, 경제적 곤란, 우울증으로 슬럼프에 빠졌다

1983년부터 시작한 물 연작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고

계속 현지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인간관계가 없는 은둔형 화가지만 부인 안소라야의 마당발 인맥과 양녀 세레나킴의 영어에 도움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처음 개인전을 열었고

LACMA 한국관에 영구소장되었으며

2020년에 타계했다


2.

단색화란 무엇이며 그것을 서양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수용사를 추적, 연구 중이다.

한국미술사에 대한 좋은 영문 서적을 쓰기 위해


한국단색화 시대정신

캘리포니아의 태양과 바다

수행적 모습(수도승적)







YTN(2015.2.15)

https://www.youtube.com/watch?v=5eQUg6EyNxc

한국인이 개인전을 연 것은 처음


현대화랑(2017년 전시)

https://hyundaihwarang.com/?c=exhibition&s=1&mode=past&op=&past=&year=&gbn=view&gp=1&ix=459


la18primenews: LACMA(LA카운티뮤지엄) 한국관에 영구전시 

https://www.youtube.com/watch?v=YBCV9InOfys


UNEXPECTED LIGHT YOUNG IL AHN

https://www.youtube.com/watch?v=fxTN_R3kacY


https://www.youtube.com/watch?v=W1ZgL0nPgBk

ARTIST - YOUNG IL AHN PROFILE

LA THIS WEEK


Young-Il Ahn: Water, Space, California | HARPER's

https://www.youtube.com/watch?v=B8ofF8-mLzA


YOUNG IL AHN : NEW AQUISITION AT LACMA

https://www.youtube.com/watch?v=wkmdz7rPGMA


https://www.youtube.com/watch?v=1CgB_w4qGRE

YOUNG IL AHN


https://www.youtube.com/watch?v=1CgB_w4qGRE

ERIC MINH SWENSON ART FILMS



https://www.perrotin.com/fr/artists/young-il_ahn/1563#images



Young-Il Ahn was born in Gaeseong, a city now geographically located in North Korea. As a young boy, Ahn moved with his family to Horikiri, northeast of Tokyo; in 1943, the Ahn family left Japan and returned to Korea when his father, artist Seung-gak Ahn, accepted a position as an art instructor at Cheongju Teachers College. 


A child prodigy, Ahn was awarded numerous prizes as a student, winning national art contests in both 1949 and 1954. After graduating from the highly competitive College of Fine Art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erving in the military, Ahn eventually made his way to the United States, settling in Los Angeles in 1966.


During the five-plus decades Ahn lived in Los Angeles, the landscape, light, and atmosphere of California played a prominent role in his artwork. An avid fisherman, his painting practice was deeply affected when, in 1983, a motorboat he was operating became engulfed by fog off the Santa Monica coast. Unable to get his bearings, Ahn drifted on the Pacific Ocean; as he later recalled, “I lost all sense of direction. I cut the engine and let the currents take me.” When the fog finally cleared, Ahn’s experience of sunlight rippling on the waves was an epiphany: “I became profoundly aware of the surface of the sea being reborn in each and every moment.  What I witnessed was engraved deep in my heart. From that day on, the sea lived inside me and I became part of the sea.” Ahn’s Water series, his paintings of the fragmented colors of water in motion, would be an ongoing concern for the rest of his career, even as he painted other subjects and motifs.


In 2017–18, with the exhibition Unexpected Light: Works by Young-Il Ahn, Ahn had the distinction of being the first-ever Korean-American artist to be featured in a solo exhibition at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bringing overnight acclaim to his Water paintings. Ahn’s work was also the subject of two solo shows at the Long Beach Museum of Art, A Memoir of Water: Works by Young-Il Ahn in 2014, and Young-Il Ahn: When Sky Meets Water in 2017–18. Upon his death in 2020, ArtNews paid tribute to Ahn as a “trailblazing painter of radiant abstractions.”



https://www.koreadaily.com/article/8925638


https://www.koreadaily.com/article/8925638


2020.12.14

미주 중앙일보 김상진 기사의 부고 기사

미술평론가 패트리시아 살레는 안 화백을 화가보다 '명상가'로 칭하며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찾아지지 않는데 일단 미술 평론가 patricia로 못 찾겠고, 안영일 + meditator로 찾아도 안 찾아진다 (물론 영어로)


이렇게 우리나라 소스에만 있고 원문이 없는 글이 발언의 진위를 의심케한다. 각주 교육을 엄격히 받아야한다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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