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의 보석 · 매혹의 시간
THE ART OF JEWELLERY
2024. 12. 6 FRI - 2025. 3. 16 SUN
1. 잠실역에 있는 롯데 뮤지엄이다. 6층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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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티켓은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후원해주셨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서울 아트 가이드가 있는데 많은 전시회를 다니다보니 뒤쪽의 전시정보 일람 지도와 전시정보를 꼼꼼히 보고 피드백을 몇 번 주었더니 이번에 티켓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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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시 제목이 고혹의 보석이다. 끌린다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이 매혹적이다이고, 그것보다 더 문학적인 표현이 고혹적이다이다. 끌린다 < 매혹적이다 < 고혹적이다
XX의 XX라는 제목을 들으면 일본식 표현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배웠던 세대가 20세기 초에 썼던 신소설에는 이런 일본식 표현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인직의 혈의 누(1906년작). 피 혈에 눈물 누로, 피 눈물이라는 뜻이다. 일본어의 '의'는 の노인데, 영어의 of처럼 여러 번 쓸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의'는 1번만 써야하고 그 의미가 가리키는 바도 영어나 일본어처럼 많지 않다. 그 언어들에서는 of, の가 ~에 대하여, ~와 함께, ~에 있어서, ~에 대해 말하자면, ~에 속해있는, 등 여러 의미값이 있고, 두 번 이상 쓸 수 있다.
한국어의 표현의 풍부함이라고 '의'를 두 번 쓰면 어색한 표현이 된다. 여기서 두 번 등장하는 '의'를 다른 표현으로 적절히 바꿔줘야 자연스럽다. 우리말의 용언을 활용하면 좋다. 한국어에 있는 풍부한 표현이라고 한다든지.
고혹이라는는 한자는 蠱惑이고, 일본어로는 코와쿠こわく, 중국어로는 구훠guhuo라고 읽는다.
혹은 매혹, 미혹하다할 때의 혹이고, 고는 뱃속벌레 고이다. 蠱. 벌레 虫가 세 개가 있고, 아래 피 혈이 있다. 피와 함께 있는 벌레, 즉, 독충으로, 사람을 매혹하거나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독충을 의미한다. 그런 독충이 옛날 사람들의 상상 속에는 어떤 주술적 파워를 가진 매력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대만 중국어는 일본,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래 한자를 쓰지만 대륙 중국어는 간략히 생략된 간체자를 쓰는데, 원래 한자 蠱惑가 蛊惑으로, 벌레가 세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었다는 점이 재밌다.
고혹적이다를 영어로 치면 attractive, seductive, alluring 등이 해당되는데, attract에서 tract(끌다), seduct에서 duct(이끌다)라는 라틴어 유래 표현에 "끌어당기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어서, 누군가를 홀리듯이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뜻을 잘 전달한다.
소장가인 아라카와 카즈미씨가 붙인 전시 제목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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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 소장가 이름이 특별하다. 우측 하단에 흘림체로 쓰여있다. 有川一三 유천 일삼이다. 보통 아라카와씨는 荒川 사나운 시냇물을 쓰는데, 이분은 있을 유를 쓴다. 일본어로 감사하다, 아리가또할 때 있을 유有를 쓴다. 아리가또는 아리가따이에서 유래한 말로, 다들 히라가나로 배우지만, 한자로 바꾸면 有難い이다. 있기 어렵다라는 뜻인데, 있기 어려운 일을 했으니 감사하다는 뜻이다. 우리도 습관적으로 안녕이라는 말을 한글로 쓰지만, 安寧의 한자 의미를 뜯어서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다는 의미를 매번 풀어서 생각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경우 그냥 아리가또를 thank you 고맙습니다로 치환해서 토큰을 전달해, 의미가 통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더 깊게 생각해보면서 단어 안에서 스며나오는 깊은 뉘앙스를 음미해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름은 하나 일, 석 삼. 카즈미라고 읽고 一三라고 쓴다. 이것도 조금 특이하게 쓰는 표현이다. 보통 かずみ는 和美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야후 일본에서 검색해보니 여러 인터뷰가 뜬다.
https://myphilosophy.global/interview/arikawa_k/
https://www.uyedajeweller.com/archive/column/column_13.html
뉴욕타임즈에서도 소장가에 대한 기사가 있다.
https://www.nytimes.com/2020/01/25/fashion/jewelry-kazumi-arikawa-collection-tokyo.html
뉴욕타임즈 2020년 1월 25일 기사인데, 이 기사에서도 소장가가 의도한 바대로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오는 분위기에서 보석을 감상했다. (As Gregorian chants played in the background, he and a small coterie of staff members presented piece after piece, each in its own custom-made box.)
그래서 그런지 롯데뮤지엄 전시에서도 짜임새있는 화성이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온다. 이 그레고리안 성가는 무신론자마저 마음이 숭고해지는 누미노오제의 경험을 조성하는 데 특화된 음악인데, 특히 도리안 C♯(Protus Authenticus)기준으로 C♯, B, A♯, G♯으로 떨어질 때, 그리고 그 다음 D♯에서 C♯으로 떨어질 때 피에타의 마리아가 느낄 법한 애처롭고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음이 떨어질 때 샾이 붙어있어서 반음만 떨어지는데 거기서 영혼 저 깊은 어느 곳에 숨겨져있는 잃어버린 어떤 숭고함, 인류 전체에 대한 희생에 대한 고양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성가 덕분에 소장가가 의도한 대로 그대로 보석들을 그 자체로 느끼는 순간이 빚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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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마저 전시 일부로 만드는 작품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것이다. 수미쌍관으로 전시장 입구에 백색 배경으로 하나, 끝날 즈음에 흑색 배경으로 하나 두 번 전시되어있다. 존재하지 않는 검은 그림자 선을 차경으로 빌려와 추상마저 구상으로 만들었다. 유럽의 종교와 왕정이라는 두 추상적인 제도 권력이 실제하지 않으나 보이는 그림자로 구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림자선이 원래 구조물보다 더 큰 범위를 거느리듯, 소수의 중심부가 거대한 영역을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로 지배하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보석, 혹은 원래 구조물이다. 보석이 갖는 장신구적 아름다움이 빛으로 인해 퍼지듯, 권력 또한 중앙제도에서부터 널리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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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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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앞에 있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뒷 부분 두 문장만 뜯어보자.
1) 천연 보석 속에 함유된 내포물은 인간의 지문처럼 제각각 달라 보석을 구별하는 척도가 된다.
Imperfections in a gemstone, called inclusions, are unique like human fingerprints and help with identification.
- 이 문장은 한국어 영어 둘 다 잘 쓰였다. 한국어와 영어의 순서가 달라 먼저 들어오는 정보가 다르다.
영어의 경우, 보석의 불완전함은 두 내포물이라고 불리는데, 인간의 지문처럼 특별해(달라).. 이렇게 쓰여져있다.
불완전성imperfection이 먼저 들어오지만 한국어는 그런 느낌의 말이 없다. 두 관객의 특성을 이해하고 쓴 것이다.
우리 말로 "함유, 제각각 달라, 척도가 된다"같은 표현도 적절하고, 영어에서 쓰인 바도 적절하다.
이런 표현들이 각자 언어의 맛을 잘 살린 글쓰기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억지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두 언어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각기 다른 글쓰기를 해야한다.
2)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천연 보석의 레드, 블루, 그린, 핑크 빛깔은 그 자체로 아주 매혹적이다.
The natural hues of red, blue, green, and pink in untreated stones are indeed mesmerizing in themselves.
빛깔은 hues,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천연 보석은, 손 대지 않은 돌(untreated stones)로 적절한 표현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와' '예쁘다' '대박' '야바이' '스고이' 정도만 말할 수 있다면 그만큼 나의 세계가 좁다는 것을 말한다. 예쁘다의 동의어를 아주 많이 알고 있어야한다. 매혹적이다라는 표현도 attractive, seductive, alluring, 여기서는 mesmerizing. 영어권 화자들은 같은 표현을 중복해서 쓰지 않고 동의어를 활용해서 다채롭게 표현한다. 예쁘다는 한 번 탄성으로 족하다. 다음 번에는 다르게 표현해보아야한다. dazzling gems도 좋은 표현이다. 눈부신 보석들
6. 눈 부신 보석들을 2억 화소로 찍었다. 그래도 다 그 아름다움이 온전히 화면에 담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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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의 특별함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각적으로 입체적이다. 시야를 보석에 고정하고 앞에서 움직이면 빛이 다른 각도로 반사되어 번쩍번쩍하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준다. 이 황금의 보석 앞에서 여느 아이돌 콘서트 레이저 빔 못지 않게 휘황찬란한 빛이 번쩍번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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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아주 자세하게 볼수록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주 미세하게 관찰해야 보석의 다른 절각, 세공기법, 표현방식, 장식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설치예술 같은 거대한 작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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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나 피자나 아이스크림처럼 이미 하방이 낮고 이미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까하는 고민이
주얼리 세공사들의 고민했던 결과 같다. 단 것을 입에 넣고 악 맛없어 하고 뱉는 사람은 없듯이, 보석을 보고 뭐야 이 추한 것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예쁜 것을 어떻게 한 차원 더 예쁘게 만들까하는 고민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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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다. 예컨대 철을 이정도로 가공하려면 천도 이상의 온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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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으로는 다 보이지 않아 30배 이상 클로즈업을 했다. 미시경제학처럼, 미생물학처럼, 가격변동 하나, 세포 하나 까지 보는 미시적 시각으로 보아야 주얼리의 가치가 다 보인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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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다시 공부한다. 물질을 기준으로 역사를 재구성해서 공부하는 것도 창의적인 접근방식이다. 영어 공부하기에도 좋은 표현들이 많다.
8.
소장자가 일본 사람이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세공품도 전시해두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을 시기의 문화이다. 일본이 자포니즘으로 곳곳에 등장한다.
일본의 국립서양미술관 창립자 마츠카타 코지로는 모네와 함께 찍은 사진마저 있다.
이제 우리도 BTS가 스웨덴 공주에게 준 보석, 이런 식으로 22세기 콜렉션에 등장할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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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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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이 아카데믹하고 세련되었다.
한국어로도 번역투가 느껴지지 않게 신경써서 잘 번역했다.
After the upheavals of the French Revolution 프랑스 혁명 이후
Europeans saw Rome as the pinnacle of civilization 당시 유럽은 고대 로마를 문명의 이상향으로 동경했고
a burgeoning middle class 중산층의 성장
맨 처음 문장은 본 문장의 주어 동사가 19세기는 ~시대였다, 라고 고정된 상황에서
뒤에 with N Ving를 추가 문장으로 부연설명하면서 문장을 합친 문장이다. 라틴어의 ablative absolute에서 유래되었고 문장 두 개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The Korea Times같은 영자신문에 자주보인다. 접속사 없이 두 문장을 붙여서 사용하고, ~해서, ~하되, ~하지만 등 다양하게 해석한다. 여기서는 두 문장을 끊었다.
The 19th century was a time when various jewellery styles coexisted, with Neoclassicism emerging as a dominant trend in the early years.
19세기는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초반에 두드러진 사조는 과거의 영광을 되돌아보는 신고전주의였다.
with Neoclassicism에서 with은 빼고, 신고전주의가 주어고
emerging은 그냥 술어로 해석한다.
신고전주의가 (19세기) 초반에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다.
다시 영어 원문에서 번역하면
19세기는 다양한 스타일의 주얼리가 공존하는 시대였고, 신고전주의가 초반에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다.
한국어는 뒷 표현을 조금 더 다듬어서 의역했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초반에 두드러진 사조는 과거의 영광을 되돌아보는 신고전주의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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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다. 이정도까지 클로즈업을 해야 보인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까 - 금, 은, 에메랄드, 사파이어, 황수정 등등 각기 다른 물성에 대한 이해
어떻게 표현할까, 구부릴까, 음각할까, 팔까, 동그랗게 만들까 - 세공법에 대한 이해
무엇을 표현할까 - 신화, 문학, 문화적 이해
누구에게 주는 것이고 용도는 무엇일까 - 권력제도에 대한 이해
가격은 얼마일까 - 시장과 경제논리(희소성)에 대한 이해
장인은 그저 단순하 생산직이 아니라 인문학과 재료공학을 결합한 크리에이터였고, 그들의 고민에는 사회 다방면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묻어난다.
장인들은 유럽왕가의 인적 재산이고 그들이 만든 물품은 국가적 자산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이오, 반도체, 철강, 조선, 전력통신망 같은 핵심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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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중세의 보석은 오늘날의 반도체 집적기술과 같다. 반도체에 스택하듯이, 보석 위에도 레이어를 올려 입체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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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를 보는 두상이 전형적인 상황에서 오른쪽 위를 보는 각도가 특별해보인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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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단순히 보석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늘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반짝이는 원석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따라 유럽 고대 로마를 지나 중세를 거쳐 아르누보 시대까지 발걸음을 옮기듯 훑으며, 시대별로 보석이 지닌 사회적 기능과 세공 기법의 변천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저 장신구에 그치지 않고, 보석을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한 역사적 흐름이 오롯이 담겨 있다.
펜던트, 반지, 티아라까지 가지각색의 고혹적 보석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눈앞을 수놓는다. 비단 별이 아니라 별들이 흐르는 흔적인 은하수와도 닮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석들은 찰랑찰랑 빛을 머금고, 눈부신 세공품은 마치 속삭이는 별빛처럼 창조자 세공사의 손길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아련하고 성스러운 울림 속에서 나를 둘러싼 시간의 결이 아득해지고, 인간을 넘어선 거대한 뜻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어느새 전시장 안은 보석의 눈부신 향연을 넘어, 거룩한 파도 물결에 휩싸인듯한 황홀함이 온몸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