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페니키안 스킴 보고왔다

연출감각이 유일무이한 감독이다


1996년 바틀로켓부터 장편 11개, 넷플 로알드 달 원작의 단편4개 모두 공통분모가 있다


좌우균형의 엄격한 대칭성과 프레임 중앙의 인물

앙상블샷 단체사진구도과 와글와글 오디오

상황은 심각한데 대사는 유머스럽고 전달은 건조

분명 과거 레트로인데 시대성은 불명확

카메라 수평이동과 연극무대처럼 구획된 공간

리듬감 있는 빠른 편집과 잘 쓰인 대사량 많은 시니컬한 각본

파스텔톤 색감에 동화적 분위기


미니어쳐의 경우 판폭이나 개들의섬에서 스톱모션과 함께 쓰이고 안 나오기도 하지만 이번에서는 건설 프로젝트 PT신에서 나왔다


그의 크루 중 오웬 윌슨와 에이드리안 브로디, 에드워드 노튼이 안 나오고 빌 머레이는 나왔다


빌 머레이가 없는 웨스 앤더슨은

키키 기린 없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마이클 케인 없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키키기린은 타계했고(파비안느와 브로커부터 안나옴)

마이클 케인은 은퇴했으니(테넷까지만 나옴)

두 감독의 초중반 커리어, 21세기 초반 느낌의 영화는 안 나오는 것 같다


물론 웨스 앤더슨도 쿠마르 팔라나가 로얄 테넨바움까지 나오고 96세로 타계해서 안 보이고 스윈튼이나 윌렘 대포, 골드브룸같은 배우들은 작품의 캐릭터에 따라 캐스팅이 왔다갔다하니

고레에다감독이나 놀란감독도 잘 맞는 멤버와 사단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범죄도시나 미임파 같은 시리즈물이 천편일률적인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볼멘소리인 이들은 웨스 앤더슨에서 구원을 얻을지도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라는 사진집도 있고

그라운드시소 서울역 센트럴에서 그의 모티브를 딴 사진전도 했었는데

스틸컷 같은 대칭세계는 사람들을 환상으로 끌어당긴다


옛날처럼 몇 천만이 보는 투자수익률 좋은 영화는 줄어든다

개콘처럼 모두가 하나로 대동단결하는 시대를 지나

장르와 작품에 의해 분절된 수많은 동아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찐팬에 의지해 그 작품은 그외엔 만들 수 없는, 자기 세계있는 이들만 남을 것



각본 정말 잘 썼는데 영어로 되어있어서 한국말로 다 변환이 안된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유머나 꽁트는 설명해서 번역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비유하자면

일본애니중 마법전사 쿠루쿠루

한국웹툰중 FFF급 관심용사

같은 영화다


온갖 패러디로 난무하고 대사가 너무 찰진데

다른 언어로 거의 번역이 안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사실상 대칭성만 보고 일부 포인트에서만 웃겠지만


영어 각본 솔직히 너무 잘 썼다

그 이후 투자회사신이나 농구신이나 힐다신이나 교회신에서도 엄청난 패러디가 등장하는데..


트레일러에 나온 것만 봐도

I'm not saying 나 안 말할거야

I'm saying "I'm not saying" "나 안 말한다고" 말하고 있어 (말하고 있는데 안 말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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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보고 왔다. 


이전 시리즈의 좋은 점을 다 가져 온 모둠 세트 같은 영화다. 윌리엄 던로의 재출연도 좋고 귀여운 이누이트 와이프도 재밌다. 다만 왜 이들이 콩고까지 와서 자연스럽게 팀에 합류하는 것 같은지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흠.


추운 베링해에서 흐미를 배경으로 알몸으로도 아쿠아맨처럼 수영할 수 있고 콩고 상공에서 풍압에도 경비행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은 영화적 허용


이보다 인상적인 점은 아프리카 초원을 치타나 영양처럼 우다다 달리는 탑골공원 장기 두는 어르신과 동년배인 톰 할아버지가 난이도 있는 미션을 수행해낸다는 점이 아니라 미션을 설득력있게 소통한다는 점이다.


영화 하얼빈은 안동지는 어딨소가 반복되다가 클라이맥스를 황급히 처리해 매력을 잃은 반면 이 영화에서는 에단에게 국가기관이 계속 계획이 뭐냐고 물어보지만 에단은 알려주지 않고 관객들만 아는 서스펜스가 지속되다 완벽한 실현 및 마무리로 그 정점을 찍는다


정교한 국가제도의 운영, 미션에 대한 완벽한 이해 및 전달, 운영기관의 윤리적 책임과 신뢰체계, 탈중심화된 주권외부행위자인 독립스파이집단에 대한 중앙기구의 신뢰와 분업(항공모함과 잠수함을 빌려줌)과 전인류적 의제공유가 사실 불가능한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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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레로 보고 왔다


나름 볼레로의 풀버전 지휘신을 마지막에 보여주었으나 관객의 아쉬움이 남을 거다.


왜냐? 카핑베토벤과 아마데우스의 어딘가에서 밸런스가 아쉽기 때문이다.


카핑 베토벤은 영화용으로 편집된 교향곡 9번 합창 1-4악장을 향해 모든 서사가 달려간다. 귀가 먹은 베토벤을 위해 무대 아래에서 지휘해주어 템포를 맞춰주는 여성 더블의 존재의 의미는 스토리를 다 따라오며 이해가 되고, 장애의 한계를 넘는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장엄한 음악이 더불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장식한다. 지휘자의 표정뿐 아니라 우리가 감정이입해 있는 안나 홀츠(가상의 인물)의 표정과 관객와 성악가 등의 표정을 자주 보여줘서 연주를 보는 맛이 있다. 최종 카운터 펀치로 KO를 시킨 셈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두 인물의 드라마에 초점이 있었고 대단한 음악장면을 남기기보다 신킬러에 해당하는 재밌는 부분을 여럿 남겼다. 말하자면 유효한 잽을 많이 날린 셈


그런데 볼레로는 모리스 라벨의 다른 음악은 기억이 안 나고 기계적 관능성을 위한 볼레로 연주를 향해 가는데 풀버전으로 무대영상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곡 이외에 다른 것이 기억이 안 남는다. 카핑 베토벤의 라스트신은 전술했다시피 여러 인물의 표정을 보여줘서 마치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의 방청객과 심사위원을 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는데 볼레로는 이다와 라벨 이외는 표정을 잡지 않아 무대 몰입감이 떨어진다. 4명의 여인(+2명의 창부)과의 관계가 있음에도 애정 전선이 밋밋한 만큼이나 음악영화의 서사가 무맛인 편. 음악영화로서는 아쉽다.


드라마로서는 나쁘진 않다. 심리적 압박을 위한 연출감각이 좋다. 화면 오른쪽으로 라벨을 밀거나, 촬영연출을 통해 좁은 문을 통과시키면서 그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형상화했다. 다만, 이다에게 줄 스페인풍 발레곡을 써야한다는 압박이 별로 안 느껴진다는 것이 함정. 연출은 좋은데 플롯상으로 살지 않았다. 왜냐. 권력관계로 찍어눌러진 것도 아니고, 이다가 그저 20통의 전보 10통의 편지를 보내어 재촉한다는 정도, 혹은 그녀가 조금 부담스러운 캐릭터라는 정도인데 어차피 모리스는 여러 여성편력이 있어서 딱히 이다가 무게감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에 마르그리트가 이다로 바뀌는 치매장면은 <더파더>에서 잘 따온 것 같다. 평론가에게 복수하는 부분은 글쎄 올시다. 속이 좁다라고 밖에.


자신은 기계공장의 노동자의 리듬을 생각하고(MMCA 올해의 작가상 양정욱?) 작곡한 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이다는 관능적인 곡을 주문했고 중간 브리핑에서도 단선4음계 스페인풍의 관능성이라고 말해놓고 나중에 바빌론의 음녀라고 곡을 망쳐놨다고 딴 소리를 했다. 그러고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박수치고 칭찬하자 태도를 바꾸어 우쭐대는데 그제서야 악평한 평론가에게 소심하게 말대꾸하니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라벨은 엄청 징징댄다. 섬세한 창작자 주변인물은 참 힘들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창작자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유다. 작품으로만 만나야 관계가 깔끔하고 좋다. 개인적 친분이 생기면 사적 관계가 작품 해석을 방해한다


나 끝이야! 죽음이야! 하고 징징대는 라벨에게 마르그리트가 bien sûr 어이없어하는 대사를 "행여나"라고 잘 번역했다

이다가 라벨에게 vilain flâneur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빌런+도시산책자 즉 한량, 말썽꾸러기 철부지다. 칭찬쟁이 나쁜 남자라고 번역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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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시네마 광교 경기인디시네마관에 다녀왔다. SNS에서 누가 계속 홍보를 하길래 근처 수원박물관, 경기대박물관과 광교아트스페이스와 함께 동선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경기도에서 지원받아서 티켓이 5천원이라고! 하지만 신분당선 지하철비가 3500원이니 근처 사는 사람만 이득이고 일부러 찾아가기엔 곤란하겠다


예술영화하는 곳은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 건대 시네마테크 명동 시네라이브러리 연희 라이카시네마 이수 아트나인 강릉 신영극장 정도 가본 것 같다. 경기인디시네마는 롯데시네마 극장 1관을 쓰고 있다


달팽이의 회고록을 봤다. 팀 버튼 작화에 아동시점 자전성장기를 겹쳤다. 전반부에 어렸을 때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어린아이 관찰자 시선을 취하다가 후반부에는 빌둥스로만형으로 바뀐다. 초년을 다루는 전반부는 아이성우 캐스팅에 문법과 어휘도 초등저학년 레벨이다. Never seem to be so happy같이. 후반부 성년일 때는 recluse 은둔 effervescent 혈기왕성한 등 어휘레벨이 칼리지레벨로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상승한다. 대학진학은 안 했으나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 읽는 책도 곡예사 아빠는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는 of mice and men를 읽고 길버트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파리대왕,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비현실적 낭만을 추구하는 그레이시는 게이샤의 회고록을 읽다가 결말에 이르러 길버트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고 그레이시는 길버트의 책을 읽는다


잘 생각해보면 윤리적으로 극단적인 설정인데 휘리릭 아이의 보이스로 내레이션이 지나가서 그 파괴성을 실감못한다. 예컨대 스와핑(영어대사에서는 swinging) 성관계를 즐기는 양부모, 핑키가 할머니일 때 누드스트립쇼에서 공연한 것이나 손가락이 선풍기에 잘리는 장면, 사이비종교에 경도된 가족에게 입양되어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길버트 등등


달팽이에 대한 은유는 달팽이 껍질과 달팽이 이동 두 가지로 나온다. 초반에는 힘든 고난과 소외감과 친구들의 폭언 등에 달팽이 껍질로 자기를 감싼다. 달팽이 껍질은 자기방어기제의 상징이다. 이후 살쪘다가 빼면서(아마 이것도 달팽이의 무언가를 상징할 수도) 깨달음과 보호를 거쳐 껍질을 버리고 성장한다. 핑키의 편지에서 달팽이는 뒤로 안간다 직선으로 간다 흔적을 남긴다라고 하며 달팽이의 이동에 대한 메시지를 새로이 도출한다


복선의 처리도 좋다. 비스켓 깡통 둔 곳을 잊을 정도로 깜빡깜빡하는 성격이라고 설명한 다음 클라이맥스를 지나 감자(밭)!에서 회수한다. 초반의 성냥불장난에서 화재 이후 영화학교 재회신에서 복선를 현명하게 거두면서 끝날 법한 결말을 다시 소생시키고 탱탱한 스토리탄력성을 만든다. 꼬마일 때 도와준 노숙자를 나중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그렇다.


호주식 발음에 고환얼굴, 골덴주름 같은 발칙한 개그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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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 노부히로(諏訪敦彦)의 오늘 밤 사자는 잠든다(Le lion est mort ce soir, 2017) 보고 왔다


c'était un rêve. J'ai cru t'avoir vraiment vue 꿈이었구나 정말 널 봤다고 생각했는데


구로사와 기요시나 츠카모토 신야와 비슷한 세대 감독인데 덜 알려졌으나 영화가 훌륭하다. DVD소장하고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찾아가서 봐야하는 것이 흠. 흠.. 아직 스와 노부히로 필모를 다 보지 못해서 나는 아쉽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생각나는 액자구조를 취하면서 동양적 느낌을 풍긴다.


액자구조는 2개다. 촬영현장에서도 죽는 연기를 하고 별장에서도 영화키즈들과 함께 죽는 연기를 한다


수미쌍관이기도 하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모두 원경에 높은 산이 차경으로 잡히는 베이지색 유럽별장 루프탑에서 선베드에 누워 죽는 연기를 하는 장(누벨바그의 대표적 배우 장 피에르 레오 분)이 화면에 들어오는데


처음에도 꿈이었네(c’était un rêve)로 대사를 열고 마지막에도 꿈이었네라고 대사를 친다. 다만 마지막에는 정말 널(여자 너) 봤다고 생각했는데(Ah, c’était un rêve. J’ai cru t’avoir vraiment vue)가 추가된다. (t에 vu+e가 들어갔으니 여자다. 아부아르 뻬뻬에 직접대명사 전치일 경우만 분사에 성수일치)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70대 노배우 장은 죽는 연기를 할 수 없다. 감독 뱅상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Je ne suis pas du tout d’accord avec cette idée de la mort) 숱한 연기에서 죽어왔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 그는 이제 죽음을 어떻게 연기할 줄 모르겠다(J’ai un problème, je sais pas comment jouer la mort) 감독은 평화롭고 부드럽게 잠드는 연기를 하라고 하지만 장은 죽음이 만남이라고 생각한다(La mort, c’est la rencontre). 그래서 이틀사흘정도 쉬기로 하고 어렸을 때 사랑했던 줄리엣을 찾으러 간다.


줄리엣은 죽었다. 친구에게 스스로 죽었냐고 물어보고 사고라고 답한다. 그녀의 묘비명에 1949-1972라고 써있으니 23세에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영화찍는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우르르 등장하고 어쩌다보니 그 아이들의 요청을 받아 영화를 찍게된다. 장난감총으로 죽는 플롯의, 아이들 기준에서는 공포인 영화다. 영화를 다 찍고 조금의 깨달음을 얻고 다시 촬영현장으로 복귀한다.


설정은 물론이거니와 히로인 이름부터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는데 죽은 연인 줄리엣을 만난다는 설정이 서양문학의 느낌을 준다.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가문을 뛰어넘는 동년배의 사랑은 아니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이에 더해 저편에서 깨달음 혹은 죽음을 이해하고 돌아온다는 구조가 오뒷세이아의 키아스무스구조를 닮았다


이폴리트 지라르도와 함께 합작한 프랑스-일본 영화 유키와 니나(2009)에서 나왔던 10대 초반의 혼혈소녀 유키가 성장한 아가씨가 되어 잠깐 까메오로 등장한다. 유키(노에 상피)의 왓차피디아 필모에는 없지만 분명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러니 너무 DB나 인터넷 자료 믿지 말고 자기 스스로 작품을 봐야한다. 그리고 힘을 내어 끝까지 봐야한다.


노인과 바다도 다이제스트나 설명문으로만 읽으면 한계가 있다. 대충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직접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직접 소설을 읽으면 중간에 양키에 대한 가십도 있고 출발할 때 적막이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모두 직접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AI시대에 가상공간에 업로드되지 않은 지식, 현장에 가야 알 수 있는 노하우, 관련없는 여러 지식을 연결하는 커넥팅닷의 능력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피지컬 AI가 나온다고 해도 인간 스스로 가서 배우고 익히고 느끼는 경험적 지식이 중요하다. 그 경험은 대체불가능한 나의 것이다.


연출감각이 좋다. 유키가 3-4층 집에서 할머니를 부르고 카메라 틸트다운해서 밑에 있는 얼굴을 잡는다든지 거울에 반사된 면을 사용해서 피사체를 잡는다는지 하는 부분이 인상깊다.


사자는 두 컷 등장한다. 7살 때 아빠가 사고로 죽어 19시까지 통금을 강요하는 과잉보호 편부모 엄마 밑에서 자라는 남아의 앞이다. 이 아이가 그 무리 중에 가장 성숙한 편. 사자가 등장하는 한 장면은 호숫가 나무 사이에 쉬고 있는 장면이고 다른 한 장면은 도심사이를 걸어가는 장면이다(아마 CG). 사자는 노배우 자신을 상징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 제목은 노래제목이기도 하다. 두 번 정도 같이 부른다. 


자막이 없었다. 다행히도 오래 불어를 해서 반 이상은 알아들은 것 같다. 번역 자체도 힘들었을 것 같다. 아이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를 일일히 다 잡아내 번역할 수 없었을 거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화면 안에서 연기하도록 하는 테크닉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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