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뮌헨이라는 도시가 있다

독일어로는 München 뮌셴에 가까운 발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Munich라 쓰고 각각 뮤닠, 뮈닠에 가까운 발음이다

스페인어로는 띨데를 붙여 Múnich라 쓰고 무니치라고 읽는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아

유럽 각국 사투리라고 이해하자


와 이탈리아어로 모나코 디 바비에라라고 쓴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마상에


물론 중국어처럼 慕尼黑로 쓰고 mùníhēi 무니헤이라고 읽는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

한자는 한국어로 모니흑이라 읽지만 60년대까지는

서반아(씨반야), 불란서(파란스)처럼 한자독음을 읽었지만

한자교육이 죽어서 이제는 서양원어대로 읽는게 대중화 되었다


물론 그래야 국제호환도 되고

한글의 훌륭한 모음 표기를 다 사용할 수 있다

Argentina를 영어식으로 아르젠티나 읽으면 틀린거고 아르헨티나가 맞아서 현지인에게 칭찬받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우리가 그리스어 원음에 가깝게 읽고 플레이토, 애뤼스토틀 같은 영어식 발음이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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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모델이 한국에 있었는데

글로벌 스케일업에서 실패한 사례들이 문득 생각난다

한국에도 씨앗이 있었어

외국에서 흐드러지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한국에 민박이 있었다 에이어비엔비는 현지인처럼 경험할 수 있는 공유숙박 모델을 전세계로 확장

싸이월드가 있었어 페이스북은 더 크게 했지

버디버디는 스마트폰 전환을 못했고 왓챕,위챗이 모바일메신저의 대표격

지식인이 있었는데 쿠오라가 글로벌 스탠다드

멜론이나 벅스는 전국구 음원스트리밍서비스, 세계급은 스포티파이와 애플

넷플릭스스트리밍은 2007년, 왓챠는 2011년

물론 우리가 늦지만 어쩌며 넷플이 됐었을 수도

한국초기모델은 로컬에서 폭발했지만

글로벌확장은 실패하거나 늦었고

(우리를 참조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미국기업이 비슷한 모델을

글로벌로 스케일업해서 대박을 쳤다

어떤 씨앗은 왜 그렇게 자라지 못한걸까?

한국어라는 장벽일까, 한국적정서때문일까

기업문화 때문일까, 글로벌시야가 부족해서일까

투자가 부족해서일까, 제도와 규제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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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뮌헨이라는 도시가 있다

독일어로는 München 뮨혠에 가까운 발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Munich라 쓰고 각각 뮤닠, 뮈닠에 가까운 발음이다

스페인어로는 띨데를 붙여 Múnich라 쓰고 무니치라고 읽는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아

유럽 각국 사투리라고 이해하자

와 이탈리아어로 모나코 디 바비에라라고 쓴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마상에

물론 중국어처럼 慕尼黑로 쓰고 mùníhēi 무니헤이라고 읽는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

한자는 한국어로 모니흑이라 읽지만 60년대까지는

서반아(씨반야), 불란서(파란스)처럼 한자독음을 읽었지만

한자교육이 죽어서 이제는 서양원어대로 읽는게 대중화 되었다

물론 그래야 국제호환도 되고

한글의 훌륭한 모음 표기를 다 사용할 수 있다

Argentina를 영어식으로 아르젠티나 읽으면 틀린거고 아르헨티나가 맞아서 현지인에게 칭찬받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우리가 그리스어 원음에 가깝게 읽고 플레이토, 애뤼스토틀 같은 영어식 발음이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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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이 만든 작업물은 유리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는데

작품과 나는 별개의 존재다

작품에 대한 찬사가 자신에 대한 칭찬은 아니고

작품내용이 자서전도 아니며

주인공이나 대상이 반드시 만든 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정교분리를 해야하듯

제작자도 작품-자아 분리를 해야한다


감상자 역시 작품에 감정이입하면 곤란하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배우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우려가 있다

선역이면 그나마 낫지만 악역일 경우엔

시골에서 할마씨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게 될 공산이 있다

"너 그렇게 사는거 아냐!"


깃발이 펄럭인다

펄럭이는 사건은 펄럭이고난 다음 어디로 간 걸까?

펄럭이는 순간은 깃발의 것인가?

배우는 얼굴근육 운용전문가이자 감정의 테크니션으로서

연기를 펼친다

연기를 펼친 순간은 그 다음 어디로 간걸까?

카메라로 녹화하지 않으면 근육의 움직임, 미묘한 표정변화는 사라진다

그 연기의 순간은 배우의 것인가?

배우가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연기와 배우가 유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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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도는 끝없는 간토평야지대에 건설되어 시선의 끝에 산이 잘 걸리지 않는다. 광활한 빌딩숲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느껴진다. 


한국의 수도는 북한산, 남산, 관악산 등 산능선과 함께 지어져서 시선의 끝에 산이 걸린다. 사진은 성북동 전경



한국은 경사가 높은 언덕에도 집을 짓는다. 부자동네건 가난한동네건 상관없다. 평창성북 옛 부자동네도, 논현 신흥 부자동네도 급경사가 있다.


평야냐 산악지대냐하는 도시자연공간의 특성이 건축구조도 영향을 주는데 해당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의 구조에도 일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물론 일본도 산악지대가 있고, 한국에도 잠실이나 판교와 같은 평야도 있는 등 얼마든지 반례는 있다. 대략적인 경향과 패턴이 보인다는 뜻이다


일본집은 전면부 폭이 좁고 뒤로 길다. 앞에서 다 알 수 없고 뒤로 더 들어가야 숨기고 있는 혼네가 보인다. 도시는 전체 시스템화되어 있고 균일한 건축처럼 삶은 균질하다

한국은 집도 도시도 올라가는 등반의 구조다. 앞에서 보여주는 게 전부라서 상대적으로 내심이 잘 드러나지만 보이는 것 그대로다.


내진 설계 때문에 목조 건축이 위주인 일본은 3층 이상 짓기 힘들다. 지하도 잘 없다. 일반집은 대부분 2층 구조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지은 번화가 근처 빌딩이나 대단지 아파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한국은 좁은 면적에 지은 집도 콘크리트로 지어 3-4층이다.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인은 틈만 나면 산을 등반하고, 집에서도 올라간다. 자꾸 계층간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심성과 닮아있다. 무엇이 무엇에 영향을 주었을지는 닭이냐 달걀이냐 논쟁같아 끝이 없다. 논팔고 소를 팔아 공부시켜 자식세대는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려는 상승에 대한 욕구, 이미 돈, 명예, 학벌이 있음에도 투자, 자격증, 감투, 유학 등으로 더 올라가고 싶어하는 상승에 대한 욕구와, 언덕 위의 집을 등반해서 올라가서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는 구조와 상호영향이 있다. 심지어 학교도 등반해야한다 서울대 상명대 국민대 홍대 모두 급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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