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본과 대만은 집 전면 폭이 좁고 뒤로 길다. 도시 구조가 그런 건축을 유도한다. 대로변의 몇 백억짜리 기업건물과 뒷 골목의 자잘한 개인주택이 공존한다. 도시 공간과 사람의 생각은 유기적이다. 부동산 부자 대기업에 부착되어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삶. 앞에서는 잘 알 수 없고 한 걸음 들어가야 이해가 가능한 삶의 형태
한국 가게는 폭이 돕고 전면으로 개방되어 있다. 창고나 스태프용 공간이 따로 없고 유리창 밖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다. 획일적 아파트는 정답이 있는 획일적 삶을 강조한다.
회사생활에 지쳐 귀농하거나 지방에 이주해 아기자기한 까페나 공방을 차린 사람들이 있다. 금전적보상보다 소박한 행복을 원한 것이다. 사실 돈보다 다르다를 틀리다와 섞어쓰는 어른들이 낙향을 실패로 비주류를 부적응으로 낙인찍는 것이 힘들다.
한국에서는 대치동학원쇼핑하는 건물주와 스카이졸 대기업 임원의 삶만 옳다고 여긴다.
2. 일본도 수도로 집중이 많이 되지만 중간 이하의 삶의 형태는 훨씬 다양하다. 노드가 많아 조합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은 서울의 프랜차이즈를 들여와 구색을 맞추기 바쁘다. 강남따라하기다. 강남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이 서울은 못 되더라도 다른 체급의 이웃 도시에 비해선 서울과 더 비슷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노드 하나에 걸려있는 조합은 하나다. 소도시끼리의 연결조합이 적다. 요소가 하나면 연결은 하나. 두 개면 두 개지만 세 개면 여섯 개 열 개면 90개다. 10P2. 경주와 일산의 교류가 있는가? 강릉과 청주의 연결은? 목포와 영암은?
일본이나 유럽은 지방적 삶이 가능하다. 집중도와 상관없다. 도쿄는 1400만 도쿄도는 4100만으로 전국의 10-30퍼다. 그러나 도쿄 외 다른 지방거점간의 연결도 활발하다. 파리는 1120만으로 전국의 19퍼지만 유명세에 비해 적고 온 유럽이 연결돼있다. 베를린이 대표적이지만 인구는 380만 명으로 전국의 4.5퍼라 현저히 낮다.
물론 촘촘히 연결된 교통인프라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겠지만 그 인프라를 만드는 것도사람이다
3. 처음 일본에 가면 로손 패밀리 세븐밖에 안 보이지만 점점 이온몰 키노쿠니아 등 다양한 마트가 보인다.
물품도 처음에는 다 비슷해보이지만 지역별로 들여오는 상품이 미묘하게 다르다. 기차역의 벤또나 골목거리의 작은가게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평생 다른 걸 먹어도 다 맛보지 못할만큼 물질문화가 발달돼있다.
아사쿠사와 텐진이 정답이 아닌데 한국인밖에 없는 이유는 SNS에 정답처럼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럼 진정한 여행을 하지 못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샤넬 루이비통을 들고 다니고 벤츠E클래스를 탄다. 브랜드에 정답이 있다. 계급을 상징한다.
그러나 브랜드는 다양해서 취향과 품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차분하게 조사하면 라인업이 수만가지다. 내가 누군지를 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검토하고 선택하는 것과 이게 정답이니까 좋다니까 남들 다 하니까 선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적 만족에도 브랜드 성장에도 성숙한 소비문화발달에도 이롭지 않다
4. 하버드출신 저명한 한국학자 와그너의 논의를 이어 박현모는 이성계의 리더십모먼트를 논의한 글에서
북한은 고구려의 강성대국 외교정책과
남한은 신라의 강대국동맹 외교정책의
계보를 이엇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포기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강한 국가가 되어 자존심을 지키고 제국의 위협에 청야전술로 모두 굶주리며 끝까지 성에서 버티는 전략이 고난의 행군을 닮았다. 고구려는 기마병이고 북한은 핵으로 맞선다.
반면 당과 신라 송과 고려 명과 조선 미국과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안보는 제국에 맡기고 경제를 우선시하는 흐름도 있다. 평화시기에 번영하지만 단점은 제국 교체기에는 혼란과 내분이 생긴다.
10년 전에 처음 읽은 이 글에서는 백제의 해상네트워크 모델을 강조했다. 산동 일본까지 진출하고 무력지배나 순응이 아닌 문화의 힘으로 교류하는
옛 백제의 직계인 잠실+강남과
방계인 일본에서는 그런 물질문화의 힘이 느껴진다.
수난과 구원을 강조하는 개신교는 20세기의 우리에게 필요했다. 이제 불교다.
무아를 강조하는 불교도 있으나 화려한 고려불교도 있다. 유교조선의 성리학에 억압돼 산으로 간 불교가 아니라 소셜 컴플렉스의 주역이었던 고려 불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