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 잠실 월드타워몰에서만 파는 새우버거다. 새우의 식감을 강조했다. 가격은 8900원. 


그동안 파파이스의 새우버거가 최고 였는데 롯데리아의 이 새우버거가 SS급을 달성했다.


파파이스는 패티, 번, 소스, 채소 모든 것이 손색이 없는데 유일한 단점은 매장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롯데리아 SS급 새우버거의 유일한 단점은 전국에서 1곳에서만 판다는 것이다.


씹을 때마다 톡톡 툭툭 터지는 듯한 탱글탱글한 새우살 식감이 갓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새우의 퍼덕이는 힘찬 근육 같다.


100% 새우가 아니라 분명 명태를 같이 넣은 것임에도 새우가 실하고 알차게 차 있어 실팍하다.


바삭한 겉이 아작아작 소리를 내고 탱실한 안이 말랑말랑하여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얗고 빨간 새우살이 패티 가운데 오롯이 박혀있고 부드럽게 으스러지면서도 씹을수록 쫀득함이 살아나


마치


갓 쪄낸 새우 딤섬 속살과도 같이 쫄깃한 탄력과


갓 잡은 생새우와도 같이 신선하고 탱탱한 새우즙이 터져 나오며, 


떡처럼 보드랍고 폭신한 번과 어우러져 풍요로운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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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나는 어제 브뤼셀 프라이를 갔었다. 청주 길가에 있는 랜덤한 가게였다. 러시아어를 하는 다문화 가족이 키오스크 ㅅ용에 애를 먹고 있었고 무슨 메뉴를 시킬지 토론하고 있었다. 줄이 너무 길어지자 매니저가 앞쪽에서 도와준다고 해서 앞서 가서 주문했다. 한국사람의 시스템 활용에서 융통성이 엿보인다. 외국 어느 공항에서 연착된 비행기의 짐들이 섞였는데 직원들이 우왕자왕하자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이 적극 나서서 이름표보고 김사장님 최사모님 하면서 대신 나서서 짐 분배하고 시간 세이브해서 일처리를 했다는 어느 소감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일본인은 이런 상황에서 매뉴얼이 없고 아마 무작정 기다릴 것이다. 외국인들은 음식 앞에서 오랫동안 무엇을 먹을지 토론하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문화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까 이것을 먹고 나는 이것을 좋아하니까 이것을 먹고, 그럼 이렇게 시킬까? 이런 조합은 어때? 너 저번에 이거 먹었잖아. 이게 뭐야? 이 메뉴는 무슨 음식이야? 이건 이거야 아 그럼 이거 먹을래 아냐 저게 나아 잠깐 여기 사이드가 있다는데? 이건 뭐지? 그런데 키오스크를 설치한 매장의 의도는 회전율에 있었을테니 뒷 주문을 먼저 받기 위해 인터셉트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왔을 법한 가족의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어를 다 들어줄 여유가 당장 오늘 매출을 걱정해야하는 한국의 자영업자에게는 없다. 내가 주문을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어의 어려움과 키오스크 구동의 어려움이라는 이중 문제에 고초를 겪고 있던 가족이 어렵사리 주문을 마치었는데 직원이 소스를 선택하셔야한다고 하니 어눌한 한국어로 "꼭 해야 돼요?"라고 답했다. 직원이 "안 하셔도 돼요"라고 하자. "오 네 좋아요 감사해요"하고 답했다. 십 종 이상의 소스의 다양함이 아니면 브뤼셀 프라이라는 브랜드의 매력이 없다. 그냥 프랜차이즈 버거집의 감자튀김을 시키는 것이 더 싸다. 감자튀김 하나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브뤼셀 프라이 가게에 가는 이유는 튀긴 감자 자체의 퀄리티도 있지만 다양한 소스를 고르고 맛보는 미각적 경험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의도한 온전한 소비자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한국인 전체가 코로나 이후 몇 년간에 거쳐 자연스럽게 학습한 키오스크 주문이라는 프로세스에 대한 몰이해 및 미숙함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유럽의 어느 파인다이닝이나 일본의 어느 료칸에서 얻는 경험의 불완전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인이면 당연히 알고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당연히 요구하고 즐길 수 있는 서비스 같은 것들을 현지언어와 현지문화에 대한 경험족으로 인해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스타에 유럽 어느 레스토랑 사진을 올릴 뿐인데, 냉동 레토로트 음식을 댑혀놓은 음식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행복해하는 외국인에게 누구도 아무 말 안하는 것은 굳이 현지인이 일일이 다 알려주고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싶은 것일뿐이다. 


브뤼셀 프라이라고 하니 6년 전 교수님 따라 국제 학회 참석차 갔던 암스테르담에서 이 가게에서 프라이를 먹어본적 있다. 2000년부터 유럽을 가고 싶었는데 거의 20년만에 갔다. 특이한 소스를 골랐는데 소스보다는 그걸 먹고 있는 더치들의 키가 채 썬 감자처럼 길었다는 인상이었다. 튀긴 감자는 상타치는 맛이다. 갈릭 디핑 소스를 골랐는데 피자집에서 먹을 것 같은 대량생산된 소스였다. 이 역시 어느정도 균질한 맛을 보장한다. 


오늘 오감자 신메뉴 나왔는데 이름이 브뤼셀 프라이라고 해서 GS25에서 구매했다. 약간의 매콤한 맛이 있다. 먹방에서는 이야 맛있다 이야 매콤하다 정도로 탄성만 지르고 끝나는데, 그 이상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해서 한국어 글쓰기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 목표다. 


오감자의 감자는 프링글스처럼 감자를 반죽해서 만든 과자류와는 달리 감자 자체의 탄성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여러 개를 동시에 먹고 씹으면 입안에서 새로 감자를 반죽하는 것 같다. 찍먹하는 소스로 차별화를 둔 오감자의 이번 신메뉴는 시즈닝의 풍성함과 칼칼함이다. 두툼한 감자와 두터운 시즈닝이 중무장한 보병과도 닮았다.


칠리는 한국적으로 맵다. 칼칼하고 찌르는 듯한 화끈함이다. 중미가 원산지인 칠리를 한국적으로 맵게 만들었다. 한국의 매운맛의 특징은 무엇이냐? ‘확 치솟았다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미각세포에 닿는 순간 칼칼한 불길과 같은 통증이 확 올라왔다가, 깔끔하게 사그라드는 기묘한 리듬이 있다. 어리석은 스테레오타입이지만 소위 말하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처럼, 순간 욱하지만 뒤끝 없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어느 외항사 승무원이 한국인 승객에게 물을 실수로 쏟으면 욱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주고 잘 마무리된다고 했다. 그런 느낌의 욱한 매운 맛이다. 고추장처럼 매우면서도 달달한, 매운데도 묘하게 끌리는 중독성이 있다. 얼큰하다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뜨끈하고 보드라운 사골국물 속에서도 매운맛이 퍼지며, 속을 확 풀어주면서도 한방 맞은 듯한 개운함을 남긴다. 그 매운 맛은 식사 종료 후에는 지속되지 않는다. 스파링 대전 이후에 신사답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선수처럼 한국의 매운 맛은 음식 이후까지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


일본적 매운 맛이라고 한다면 첫 인상에 알 수 없으나, 스며들듯 은근하게 찌르는 얼얼한 향기와 그 후속타라고 하겠다. 와사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공포영화와도 닮았다. 당장 스크린을 볼 때는 안 무서운데 일상생활에서 자꾸 기억이 나서 이불 아래나 침대 밑을 살펴보게 만드는 후속형 음산한 공포다. 그러한 일본식 공포처럼 일본의 매운맛은 겉으로 티를 안 낸다. 향에서부터도 알싸하지 않다. 처음엔 별거 아닌 듯하다가, 코에서 P파로 처럼 훅 올라오며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기습 공격을 가하고, 혀에서는 서서히 S파로 올라오는 얼얼한 파동이 있다. 지진과 후속 쓰나미와도 같다. 마치 일본인 특유의 예의 바른 미소 뒤에서 뒤늦게 느껴지는 차가운 거리감처럼. 외항사 승무원 왈 일본인에게 물을 쏟으면 앞에서는 웃고 일주일 후 본사에 컴플레인 레터를 보낸다고 한다. 쓰나미와 같은 후속공격이 있다. 그러나 그 레터도 정식 접수하고 사과하면 없던 일이 된다. 일본식 매운맛은 설령 후속타가 있을 지언정 끈적이지 않고, 바람처럼 스쳐간다.


반면 중국적 매운 맛은 시각적 선명성, 진동하는 마비감과 지속되는 뜨거움이 특징이다. 강렬한 채도의 빨간색이 시각적으로 일단 맵다고 화려하게 광고, 아니 통보한다. 일본의 푸르른 벌판을 닮은 와사비는 매운지 아닌지 색채 상징으로는 알 수 없다. 한국의 다대기는 돼지국밥 국물에 섞어 파스텔톤이 되고, 일단 단맛이 함께 있는 맵단이다. 중국적 매운 맛은 아주 선명하고 확실하다. 중국의 선이 굵은 매운맛은 혀에 꽂히는 순간, 진동수가 느껴진다. 마라(麻辣)라는 단어 그대로, 혀를 찌릿찌릿 울리면서 미각을 무디게만든다. 단순히 혀가 불타는 게 아니라, 입 안 전체가 알싸한 전류에 감전된 듯한 마비감에 휩싸인다. 향이나 열이 아니라 전기와 같은 찌릿한 매운 맛이다. 불덩이가 입 안을 떠돌며 계속 재점화하는 느낌을 준다. 한 번 매운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몰려오는 매움의 고문이다. 그 맵기 고문의 끝에 한국적 매운 맛은 단맛으로 혀를 다독여준다면, 중국적 매운 맛은 기름기로 혀를 다독여준다. 그러나 그 기름은 또한 매운맛을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게 만들며 오래도록 남게 하는 역할도 하여, 제국적 주권의 힘을 보여준다. 중국음식 특유의 강렬하고 묵직하고 선명한 느낌은 몽골의 사막에서 직선으로 세차게 달려오는 유목민 보병과도 같다. 질주하는 보병을 성에서 육안으로 관찰했다면 일단 퇴로는 없다. 그 기병대는 달려온다고 모래바람으로 광고하고, 자신의 존재목적에 따라 단일한 방향성으로 쉬지 않고 달려오고, 방어군은 이미 대피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30분간의 시간 동안 공격대도 방어군도 임박한 종말과 파괴에 대해 알고 있다. 바울의 종말론적 수행성처럼, 다가오는 멸망의 날을 알고 있음에도 남은 날을 살고 있는 그런 감각과도 같다. 시뻘건 중국 음식점에서 새빨간 메뉴를 골라 기다리는 순간이 바로 그렇다. 미각세포에 고통이 임박하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30분은 그 고통의 도래를 알고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불닭볶음면은 주목할 만하다. 나에게는 너무 매워서 수 년 전 한 번만 먹어보았다. 그 안에는 어떤 직선적인 강렬함이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근왕군을 기다리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9회말 2아웃의 역전을 기다리는, 짧고 강한 한 방의 구원 같은 것이다. 돌직구처럼 직선적인 불닭 소스는 강렬한 타격이 먼저 오고, 끝은 심플하다. 중국의 매운 맛처럼 계속 빙빙 돌며 타격하지 않는다. 펑하고 터지는 매운 맛은 포탄과도 같아 원하던 소원이 해결된 이후에는 여운이 길게 남거나 리듬감이 있지는 않는다. 씹을 때마다 베스킨라빈스 슈팅스타처럼 톡톡하고 터지지만 자체로 깊게 스며들지는 않는 할라피뇨와는 달리, 불닭 바베큐 소스 속의 달달한 맛과 함께 어울려서, 지금 이 순간 현세에는 맵지만 내세는 금방 잊히는 스타일이다. 강한 임팩트는 있지만 오래 곱씹게 되지는 않는, 냄비근성의 장점, 뒤끝없는 여운을 제거한 매운맛이다.


오감자의 두터운 시즈닝과 함께 있는 소스의 매운 맛은 한국적 매운 맛을 잘 살렸다. 강한 임팩트, 여운없는 뒷맛은 깔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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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판매를 거쳐 오늘 맘스터치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다음은 제품을 소개한 신문기사 예시다. 검색해서 아무 기사나 가져왔다.


신제품은 크리스피하면서 육즙 가득한 패티에 베이컨 잼, 딜 피클과 고소한 치즈 소스의 조화로운 감칠 맛이 자아내는 압도적 풍미가 특징이다.

매일경제 2025-02-18


이번에 선보이는 '에드워드 리 버거'는 맘스터치의 대표 제품인 싸이버거와 비프버거에 에드워드 리 셰프가 개발한 특제 베이컨 잼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비욘드 포스트 2025-02-18


신제품 2종은 크리스피하면서 육즙 가득한 패티에 ‘단짠의 정석인’ 베이컨 잼, 딜 피클과 고소한 치즈 소스의 조화로운 감칠 맛이 자아내는 압도적 풍미가 특징이다.

천지일보 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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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기사에서는 정석적이고 형식적인 표현을 한다.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기자로서는 가장 평범하고 대중적인 표현으로 기사의 메시지를 전달해야한다. 


내가 여기에 쓰고 싶은 푸드 칼럼의 목표는 조금 더 감각적인 묘사이다. 따라서 "압도적 풍미", "특제" "고소한" "크리스피하면서" 이런 일반적인 표현은 지양하고 조금 더 새로운 묘사를 시도할 것이다. 한국어 혹은 영어로 미각 표현을 어느정도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개인적 글쓰기 실험이다.


가격이나 영양요소나 프로모션이나 제품 확대 사진이나 다른 블로그에 얼마든지 있다. 나보다 더 전문가들이 많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고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바는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풍부함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에 있다. 먹고 쓰기는 먹은 것에 대한 인상을 쓰는 글쓰기 표현이 중심이다.


3. 한식의 세계화로서 에드워드 리 버거


이 버거의 매력은 에드워드리가 개발한 베이컨 잼과 싸이버거의 치킨 패티와 생양파의 삼자대면에 있다. 이 삼자대면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되어 온전한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졌다. 만약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해서 한쪽만 승리했다면 다른 프로모션버거처럼 어느 순간 고객의 뇌리에 흩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롯데리아의 소스는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패티를 넘어 빵까지 달려가되 뒷심이 흐느적 거리는 편인데 반해

에드워드리 버거의 베이컨잼 소스는 투포환 선수처럼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며 먼 거리까지 전분의 점성을 머금은채 점잖게 있다가 저격수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맛의 포를 쏜다. 소스가 무례하게 패티의 영역까지 쉬이 침범하지 않는다.


수제버거의 캐러멀래이징된 기름지고 무거운 양파가 파도를 헤치는 거대한 범선처럼 육중하게 이동한다면

맘스터치 에드워드리버거의 생양파는 아삭하니 전체 균형을 맞춘다. 베이컨잼을 킬링 포인트로 가장 크게 홍보하지만 사실 메인 멜로디 위에서 보완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신디사이저나 일렉의 사운드와 같은 양파의 역할이 홍일점이다.


버거 속의 양파는 마치 건조하고 쨍쨍한 날씨의 미국 어느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뇌맑은 아이들처럼 가볍게 스치고 펜싱선수처럼 표푝 하고 속사포로 찔러 들어온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을 들여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고자 모처럼 온 가족을 데리고 크루즈 여행을 가는 자의 무거운 어깨와는 달리

별 생각 없이 집에서 입던 티를 입고 보드 하나만 들고 나와

산책보다는 지루하지 않게 달리기보다는 덜 숨차게 구기 스포츠보다는 풍경의 다양함을 탐닉하면서

정상에 다다르겠다는 확고한 목표 없이 뇌맑게 하루를 보내는 스케이트 타는 청소년들의 하루와 같다.


다만 그 교포 청소년은 한국계에 대한 유산은 잃지 않고 할머니가 해준 불고기를 기억하고 있다.

불고기의 핵심이 설탕을 넣어 달고 간장을 넣어 짠 단짠 불고기에 있다면 베이컨잼은 고기를 삼겹살로 설탕을 잼으로 바꾸어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어내었다고 본다. 마치 같은 재료인 돼지 발로 족발을 만드느냐 슈바인학센을 만드느냐 (최근 리메이크된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도경수는 이거 족발 아니야 슈바인학센이야 하는 대사도 있었다), 이베리코 돼지나 삼겹살이냐 야키니쿠냐 고기 구워먹는 것이냐 하는 정도의 이야기다. 물론 디테일에 민감하다면 둘은 전혀 다른 카테코리겠으나 표의적으로만 말하자면 그렇다.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한국 폐쇄적인 전통과 서양의 확장성이 융합할 수 있을까? 몰려들어오는 서양상선에 두려워하던 20세기 말 조선이 쇄국정책을 펼친 후 120년이 넘어 이제는 우리가 문화로 제국주의 중상주의 정책을 펼치려 하는데. 불고기 버거로 전세계의 미식 시장을 개방할 수 있을까? 한 포지션 차지할 수 있을까? 군림할 수 있을까? 현지문화와 융화할 수 있을까?


불고기 버거는 키메라가 아니다. 단순한 패스트푸드 하이브리드 그 이상이다. 원래 버거란 만병통치약(panacea)같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실패할 수 없는 버거다. 홍어는 향부터 접근불가능한 오오라를 풍기고, 냉면이나 순대이나 고수는 먹는 순간 우웩과 우와로 호불호 두 진영이 나뉜다. 버거를 입에 깨문 자가 아이 맛 없어! 하고 뱉는 일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탄수화물과 지방의 화학적 신호를 거부하는 미후각 세포는 유전자 조작된 좀비가 아니고서는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다. 버거는 실패하지 않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으니 상품이 되고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맛있다. 이제 문제는, 맛있는 것을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 것인가에 있다. 90점 받은 학생이 어떻게 하면 1점을 더 올릴까, 입단한 선수가 어떻게 스코어를 더 올릴까, 좋은 평가를 받은 제품군을 가진 기업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기술적 완벽도를 구현할 수 있을까 상품성을 더 확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에 가깝다. 새로운 커스터머를 공략해야하는, 앞서 말한 홍어나 냉면 혹은 새로운 형태의 맛을 모르던 시장에 알려야하는 불닭볶음면과는 다른 종류의 고민이다.


한식+버거의 가장 완벽한 형태 중 하나는 불고기 버거라고 본다. 스페인식+버거, 일본식+버거, 태국식+버거처럼 각 지역의 대표적 음식을 활용해 버거로 만들 수 있겠지만 글로벌하게 나가기에는 여러 도전이 있을 것이다. 홍콩 피자헛의 뱀피자처럼 거부감있는 시도도 있을 수 있고, 재료의 수급문제도 있다. 불고기 버거는 여러 점에서 한식이라는 새로운 이국적 스타일을 홍보할 수 있으면서, 재료의 수급도 용이하고, 보편적이고 익숙한 맛인데다가, K-드라마 등의 홍보도 가능하다. 요컨대 글로벌하면서 로컬적인 글로컬 식제품이다.


오랜 한국 전통의 소고기 양념을 독일에서 유래했고 미국에서 프랜차이즈화한 버거에 버무려 독특한 풍미의 감각으로 재탄생, 리패키징할 수 있는 것이다.


소고기 양념은 지역적 차이는 있으나 공장화할 수 있는 핵심재료는 간장, 마늘, 참기름, 과일 퓌레, 설탕이다. 이 양념 덕에 옛 조선 궁중 한식이 진화되어 마리네이드 소고기에 깊고 짙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한 입 한 입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감칠맛과 캐러멜화된 단맛의 균형을 유지하는 이 한식 양념은 소고기의 태생을 가리지 않고 태국 소고기에도 미국 소고기에도 유럽 소고기에도 같은 한국식 콩과 마늘의 풍미를 입힐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탄성이 있는 번과 소고기 혹은 치킨 패티, 양파, 양상추는 버거 파티의 핵심 전력이다. 다른 배리에이션에서는 치즈김치, 볶음김치, 짜장계란 프라이가 참전하여 버거의 복잡성과 식감을 높일 수도 있겠다. 다양한 창의적 조합이 가능한 것도 불고기 버거의 범용성을 강화한다. 요컨대 불고기 버거를 디폴트로 두고 여러 실험적 시도 (때론 파격적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비슷하면서 살짝 열화된 버전으로는 구운 토스트에 특제소스라는 기본 세팅에, 감자, 햄 등을 올려주는 이삭토스트 가 있고, 세계의 다른 레퍼런스로는 케밥, 타코가 있겠다. 다만 불고기 버거의 특이한 점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버거라는 글로벌 플랫폼 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점은 마치 K-pop이 팝이라는 미국발 전세계 시장위에 올라타는 것처럼, 한국 영상제작자들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위에 올라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요컨대, 케밥이나 타코는 아예 플랫폼부터 새로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해야하는데, 불고기 버거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복수의 글로벌 버거 체인점 위에 한 메뉴로서 등장하되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흑백 요리사로 한국에서 바이럴된 에드워드 리를 선택한 것은 맘스터치의 아주 적절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세계화를 목표로 한다면 한국계 교포이자 미국 백악관, 아이언 셰프 등을 통해 네임밸류가 있는 에드워드 리만큼 상품성 있는 모델도 없다. 흑백요리사는 마지막 패를 얹었을 뿐, 이미 완성되어 있던 공인이었다.


물론 불고기 버거가 유명세를 탄 것은 1980년대 한국의 패스트푸드 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와 같은 체인점들이 현지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는 일환으로 등장했다. 비슷한 메뉴로는 비빔라이스버거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한국의 단색화 전통운동의 고민처럼 한국적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너무 침잠해있었기도 했고 아직 세계를 잘 모르기도 했고 양념공장의 인프라도, 한식의 세계화라는 아젠다의 대중 인식도 발전하지 못했다. K드라마의 힘을 입어 김밥이 미국의 소도시에도 전진하는 오늘날에는 타이밍이 좋다. 시기가 적절하다.


초기 불고기 버거의 홍보 포인트는 고향의 한 입이라는 데 있었다.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한국적인 맛을 거의 처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향수와 참신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프랑스 유수의 레스토랑에 고추장 버터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창의적 실험의 결정체 누군가에게는 괴식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화도 단계가 있다면, 이제 초기 세계화는 지나가고 무르익은 세계화가 등장한다. 식문화는 사람의 미각을 길들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주 먹어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과즙처럼 느껴질 정도의 단맛이 풍부하고 마늘의 알싸함이 기름의 나태함에 채찍을 가하는 맛으로 국경을 초월하고 세계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간다.


4. 맘스터치에 대한 소고


한국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컬트에 가까운 위상을 얻은 버거가 있다면 바로 맘스터치의 싸이버거다. 이미 버거 시장은 포화되었고 치킨 시장도 강자가 많던 시절, 카카오나 엔비디아처럼 혜성처럼 등장해 이제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 버거로서 온전하면서 육중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맘스터치의 주력인 싸이버거의 핵심은 BBQ의 황올처럼 바삭한 크러스트 속 남방 샤오롱바오처럼 터지는 육즙이 풍부한 치킨 허벅지살 커틀릿이다. 신촌에서 내가 처음 먹었던 맘스터치에 대한 인상은 직원들의 앞치마에 흰색 가루가 묻어있었다는 것인데 그말인 즉슨 공장에서 가공된 패티라고 할지라도 튀김 자체는 주문 제작 방식을 채택하여 주문마다 튀겨준다는 것이다. 그점이 파파이스와는 다르다. 파파이스의 메뉴는 소스, 패티, 버거 모두 트집 잡을 점이 없으나 오직 매장이 별로 없어서 접근성이 없다는 것과, 미리 만들어져 신선한 바삭함이 없어 맛이 반감된다는 점에 있다. 레디 투 메이드가 아니라 메이드 투 오더라는 점에서 모스버거를 닮되 모스버거보다는 제작이 빠르고(성질급한 한국인들은 일본인만큼 기다려줄 수가 없다) 가격이 저렴하여 가성비 있다는 데 맘스터치의 시장성이 있었다. 대량 생산 옵션이라는 레드 오션에 대한 전략으로 부분적인 수작업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프랜차이즈업계의 베네룩스3국, 즉 강소국 자리매김했다.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치킨패티, 신선하게 조리한 식품이라는 브랜드 철학이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아 싸이버거가 대표 메뉴로 자리 잡으면서 맘스터치는 국내 전역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이후 프라이드 치킨의 전 세계적 인기와 한류 확산의 물결을 타고 대만, 싱가포르, 미국에 지점을 여는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자 그럼 이제 후발국이 강소국은 되었는데, 중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싸이버거는 한 입 한 입, 또 한 입이 절뚝거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기름지지도 않고 신선하고 바삭하되 세 번째 식감도 물리 지않고 괜찮다. 육향 가득하고 쫄깃한 치킨 패티와, 바삭한 양상추, 은은한 마늘과 후추 향이 가미된 소스와 크리미한 마요네즈,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부드럽고 달콤한 번의 어셈블리는 간단하면서 화려하고 되직하되 가벼운 맛이 있다. 다른 화려한 경쟁 제품과 달리 싸이버거는 샐러드 전문점에 구사하는 트렌디한 토핑보법이나 손쉬운 양념검법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과도한 향신료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 결과 치킨 패티라는 본질에 충실하면서 맛의 질감 대비와 균형 잡힌 맛이 가능하게 되었다. 


5. 에드워드리와 싸이패티의 콜라보


아이유와 박효신의 듀엣무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유재하와 트렌디한 팝보컬-예를 들어 악뮤의 김수현-의 AI커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싸이버거의 패티와 에드워드리 특제 베이컨잼과 비프의 콜라보는 쌓인 낙엽의 토끼 같은 느낌이다. 혹은 90년대 소년만화에서와 같이 서양기술로 만들어진 거대한 로봇에 어린아이가 탑승하는 것과 같은 인상이다. 하나는 거대하고 고졸(古拙)하며, 하나는 세련되고 날렵하다. 무엇이 육중하고 무엇이 경쾌한가?


싸이버거의 패티는 ENFP와 같이 가벼운 탄성과 질감이 있다. 고든 램지 버거나 브루클린 버거처럼 육즙과 버터를 머금고 <대부>의 배경에서 보이는 20년대 초 미국인들처럼,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을 영화화한 <남아 있는 나날>의 영국 건축물처럼 모든 부분이 늠름하고 확실하고 듬직하고 되직한 버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에드워드리버거는 싸이패티에 더해 카레와 같은 베이컨잼의 질감이 되직하여 뒷심을 잡는다. 싸이버거 치킨 패티의 의지를 덮어버리지 않고 베이턴잼이 고기향을 버무려 독립적이되 이기적이지 않은 조합을 낳았다. 저항하되 수용하고 크리미하되 바삭하여 중용의 도를 잘 살렸다. 버거팅의 풀드 와퍼나 화이트 페타는 최종적으로 어떤 하나의 감각, 어떤 하나의 재료가 승리한 상황이다.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에드워드리 버거는 치킨의 푸드덕 바사삭거림과 오밀조밀한 카레질감의 베이컨잼이 적절히 콜라보를 하고 있는 조합인데 최종적으로 서로 독립적인 보법을 구사하고 단독으로 씹히고 맛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느 한 음색이 다른 음색이 묻히지 않은 조합이라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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