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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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지 모르겠다. 역사 속의 약한 존재들의 이야기. 높이에서 보면 그들의 움직임은 하찮은 먼지 같겠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미생들의 아픈 일상사다. 다른 작가와는 다른 그의 문체와 역사의식이 크게 와닿는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김훈, <공터에서>, 해냄, 2017, 353쪽(작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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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1disc)
윤종빈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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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상? 혹은 직업상? 나는 새것보다 옛것을 더 좋아한다. 반질반질하고 윤기 나는 신제품보다 먼지 묻고 때가 조금은 껴 있는 헌 문건에 눈길이 잘 간다. 타고난 성격인지 자라면서 자연스레 길러진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 삶이 과거형과 잘 어울린다는 것만 안다. 그래서 (학문이라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역사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내게 팍팍 잘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가고, 그런 이야기를 다룬 책이나 영화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범죄와의 전쟁’은 부산의 8~90년대를 다룬 조폭영화다. 노태우 前대통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시행된 조폭과의 전쟁. 나는 이런 주제에도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ㅎㅎ 여기에 덧붙여 최익현(최민식 분)이 보여준 한국인 특유의 서열 나누기(무슨 파인지, 몇 대 손인지...)는 그런 분위기에 자주 접했던 내게 진한 웃음을 남겨주었다. 여기에 PK출신인 내게 익숙한 사투리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남자들의 의리는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본인에게 충분히 감정적 공감을 자아내게 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위와 같은 주제에다가 무료해질 때면 나오는 자극적 장면은 눈을 스크린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연출력이나 시나리오 탓을 하기도 하지만 나같은 아마추어 관객에게는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영화로 보여진다. 사실 스토리가 단순하기는 하다. 세관 공무원이 먼 친척 건달과 손잡고 불법적으로 이권을 침탈하고 사회 부조리를 양산하다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복잡한 스토리의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무난함 속에서도 분명 훌륭한 영화는 탄생한다.

평이한 영화가 살아나려면 내가 보기엔 캐릭터가 확실해야 한다. 바로 이 영화가 여기에 부합되지 않을까 싶다. 최익현, 최형배, 김판호, 검사, 여사장, 꼴통, 무인 등의 역할이 상당히 조화롭게 잘 버무러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며 여기저기서 본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각 캐릭터의 핵심 요소들이 포스터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사 이치도 그렇지 않은가! 다 자신의 일만 제대로 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영화를 통해 평범의 이치 하나를 깨우친다.

배신이 난무하는 건달들의 세계! 여기에서도 의리 있는 한 꼬봉이 눈에 띈다. 위의 꼴통 박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조연인 그에게 눈길을 준 것은 아마 나뿐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최형배를 배신하는 최익현이 죽음의 위기에서 모면하자 한 마디 한다. “내가 이겼어” 먼 손자뻘 되는 건달 형배를 검찰에게 넘기는 함정을 판 그가 배신을 하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기 싫은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적어도 내겐 이 두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싸우고 찌르는 씬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가 남지 않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2012년 2월 7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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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02-0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년 전에 그일을 아직도 하시는지 쌩뚱맞게 궁금해지네요

knulp 2017-02-07 22:24   좋아요 0 | URL
당연히 하고 있죠^^ 직업도 그런 일인 걸요. 저는 옛 것이 좋답니다. ㅎㅎ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 - 서해역사문고 1
이임하 지음 / 서해문집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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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독특함에 끌려 산 책이다. ‘계집‘이라 차별받던 이들이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 인정받는 ‘여성‘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쉬운 용어와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법적, 경제적, 인격적으로 대우받기까지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지 이 짧은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인터뷰 하나. 오래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사회자가 한 참가자에게 물었다.
˝00번 참가자의 꿈은 무엇인가요?˝
˝네, 제 꿈은 현모양처입니다.˝
이 현모양처의 꿈은 그 여성 스스로 꾼 것일까, 사회가 그녀에게 주입한 것일까?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개항 이후 근대화의 물결이 휩쓴 대한제국기, 일제시대, 50~70년대까지도 여성 교육의 목표는 신사임당과 같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현장에서도 그렇게 교육되었고 사회는 그런 여성들을 찬양하였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 위의 미스코리아 참가자도 자신의 꿈이 ‘현모양처‘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반면 이 현모양처의 대열에서 벗어난 이들은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개인적 수모를 감내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여성들이 신여성(모던걸), 양공주,(유엔마담, 양갈보), 식모, 공순이, 파출부들이었다. 이들은 남성적 편견과 오랜 전통의 유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억척스레 개척해 왔지만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야만 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는 공론화 되어 있지만 아직도 미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문제는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몸은 희생되었고, 국가는 미군의 불법을 나몰라라 했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에 걸친 민주화 노력과 여성들의 부단한 투쟁으로 여성 인권과 여성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성가족부의 존재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제대로 대우받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렇게 여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역사적으로 풀어 설명해 준다.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니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몇 가지 나온다. 가령 신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부당한 시선을 설명하며 ‘당시 사회의 폐쇄성과 후진성‘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후대의 역사학자가 성급하게 과거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는 1980년대를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사례는 1958년도의 것들을 들고 있어 저자가 실수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한 권을 또 읽어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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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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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넘어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소로우! 그의 삶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개인 소로우는 매우 조용하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지만, 시민 소로우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늘 당당했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100년 전의 미국와 지금의 한국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정부의 말도 안되는 압력은. 경찰과 검찰은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성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시민불복종>, 이레, 1999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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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nulp 2017-02-01 09: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권력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매번 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잖아요. 안타까운 우리네 현실입니다. 불현듯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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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 동안 김훈의 글에 도전했다. 그의 글은 그랬다. 얕은 이해력을 가진 나로서는 그의 글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소설도 수필도 그렇게 쉬 읽혀지지 않았다. 가끔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했다. 그의 글은 건조한 듯하면서도 꽉 차 있고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내게는.

다행히 이번 글은 사적 이야기가 담긴 글이 많아 어렵지 않게 읽혔다. 물론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눈과 글이 쉽게 글을 풀어줄리는 없지만, 기어이 그의 글을 읽어내리라는 도전의식이 강했던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박완서의 글을 술술 읽히는 반면 김훈의 글은 무거워 책장의 무게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게는.

제목부터 독특했다. ‘바다의 기별‘이라. 기별은 생명체가 전하는 것인데 바다가 어찌 전한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 책에는 아버지, 어머니, 딸, 박경리, 임꺽정, 소방수가 등장한다. 서울, 일산, 안성 그리고 칠장사라는 지역도 나온다. 책의 두께에 비해 내용은 다소 가벼워진 셈이다. 그렇다고 장영희의 글처럼 일상을 쉬운 필치로 그리지 않는다. 김훈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북촌을 제 3자의 시각으로 그리는가 하면 현재 살고 있는 일산을 연구자처럼 파헤친다. 이 지점에서 살짝 놀랬다. 나 역시도 현재 살고 있는 도시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10여 년을 사니 당연히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그는 나의 대선배인 셈이다.

그의 글은 어디엔가 발표한 듯한 글인 ‘회상‘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회의 언어 자체가 소통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할 터인데, 소통되지 않은 언어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습니까‘

언어는 불완전하지만 대화를 통해 소통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런데 의견과 사실이 혼돈되고 뒤죽박죽이 된 현재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이런 현상을 통해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냐며 그는 일갈한다. 이어 그는 ‘주류 언론과 담론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니 언어가 인간의 의사소통에 기여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문학가로서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김훈은 자신의 글쓰기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영미문학을 전공한 그이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장 이순신의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글쓰기였다. 27년의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소설가로 나섰을 때 이런 그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결국 <칼의 노래>였다. 그가 <난중일기>를 내면화하여 삭히고삭힌 글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김훈의 소설만 좋아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수필까지 읽을 필요를 느꼈다. 그의 글쓰기와 사유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다.

이 책의 단점은 순수한 수필집이라 보기 힘든 데 있다. 즉 기 발표한 책의 서문과 수상소감문을 수록한데다 다른 매체를 통해 기고한 글들이 제법 실렸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을 출간한 ‘생각의나무‘ 출판사도 사라져서 오직 중고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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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식 2017-01-31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칠면서 섬세한 작가같아요^^

knulp 2017-01-31 10:52   좋아요 1 | URL
네 그래보여요. 평범치 않은.

캐모마일 2017-02-0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첨엔 김훈 작가님 문체가 어려웠어요. 때로는 간결해서 그리는거 같고 때로는 의인화(맞는 표현일지..)로 인해서 읽다가 걸리기도 했네요. 생각의 나무에서 작숨 여럿 나왓는데 출판사 사라지니 저도 아쉬웠어요...ㅜㅜ

knulp 2017-02-05 09: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헌책으로 김훈의 책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ㅎㅎ 그의 글에 어려움을 겪은 이가 저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