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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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이런 연설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이 척박한 토양에서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이 몇 명이고 포춘지 5백 대 기업들의 이익이 얼마인지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살아가는 웨이트리스가 일자리 잃을 걱정을 하지 않고도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 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제를 만들려 한다."

-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중에서.
- 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폴리테이아, 2012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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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시대를 읽다 - 문화투쟁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백승종 지음 / 산처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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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며 잠시 웃었다. 작가 조정래는 참 독한 시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ㅋㅋㅋ

소설 <태백산맥>은 "원고지 분량으로 치면 200자로 1만 6,500장을 썼답니다. 이것은 여담인데, (전남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에 가면 그 원고가 두 벌이나 있어요. 누런 원고지는 작가가 직접 쓴 것, 하얀 원고지는 그의 며느리가 정서한 것이랍니다. 작가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는 그가 장가를 가게 되자 예비 며느리에게 이 작가가 이랬답니다. "우리 집안에 시집오려면 <태백산맥>을 필사해야 한다. "참 지독한 시아버지죠. 며느리는 그 말에 따라 무려 3년 반 동안 원고지 1만 6,500장을 그대로 베껴 썼다고 합니다. 이렇듯 작가와 그 가족의 정열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 바로 소설 <태백산맥>이죠."
백승종, <금서, 시대를 읽다>, 산처럼, 2012, 258쪽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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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7-03-04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독자중에서 이를 전부 베껴 써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그런 원고가 생기면 그것 또한 조정래 문학관에 같이 보관될거라고 하더군요.

knulp 2017-03-04 03:13   좋아요 1 | URL
허걱! 그런가요? 역쉬 대단한 성격의 작가네요. 손글씨를 힘들어하는 저로서는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네요. ㅎㅎ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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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처유상수라는 부제처럼 세상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서원직(서서)이나 제갈량같은 이들도 당시에는 재야에 뭍혀 있던 그런 전문가들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들도 꼼꼼이 따지고 보면 전문가인 분들도 많다. 그들이 반드시 대학교수이거나 연구원이 아니어도 그렇게 느끼게 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느껴짐은 나만의 착각일까?

각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라는 제목이 신간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뜨자 나의 손과 뇌는 부르르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청년기 나의 손과 발을 흔들어 자꾸만 움직이게 했던 그 책이 6권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으니 나 같은 이들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책의 좋고 나쁨을 넘어 그간 잘 모르고 있던, 깊은 눈길 한 번 못줘서 미안하던, 애정을 주고픈데 어떻게 줄지 몰라 고민하던 나를 문화유산의 세계와 답사의 길로 안내해준 길라잡이기에 어찌 흥분이 쉬 가라앉을 수 있겠는가.

책을 읽자니 유홍준의 문화재청장 시절 경험담이 참 많이 나온다. 나는 이 점이 눈에 거슬린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것 같아. 더 눈에 고까운 것은 유영구 전 KBO 총재의 이름이다. 그는 잘 알다시피 명지대와 관동대 재단이사장으로써 얼마나 많은 돈을 유용해 말아 먹었던 놈 아니던가. 유홍준의 진의는 아니겠지만 저자의 글에서 자꾸 그런 것들이 눈에 먼저 들어와 짜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

내게 이 책이 이전의 책들과 달리 이채롭게 다가오는 것은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일 듯 싶다. 그 첫번째 예로 나무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관심이다. 문화유산이 혼자 그렇게 덩그러니 서 있는게 아니고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그 맛을 더해내고 있다면 그 주위를 깊이 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위에 널린 그 많은 나무들을 어떻게 그냥 휙~ 지나쳐버리고 말 수 없다. 나무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고 공부하여야 그 아래에 있는 문화재의 깊은 참맛을 알 수 있다. 유홍준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이점은 승주 선암사 부분을 읽으면 실감할 것이다.

둘째, 나의 시선을 확 끈 작은 주제는 돌담길이다. 내가 태어나 살던 곳은 경상남도의 작은 시골이다. 이곳의 담들은 흙과 짚을 섞은 다음 돌 위에 발라가며 세운 것들이다. 돌로만 지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운치 있고 정겨운 것들이다. 고향집 마을에도 적잖은 돌담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제 정 없고 매력 없는 시멘트 담벼락으로 변해 있다. 그래서 일까? 담에 눈길을 주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내 주위의 작은 것도 문화재가 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셋째, 저자가 답사를 다니며 만나게 되는 사람과 지역 문화에 대한 소개는 다음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만 하다. 그가 소개해주는 종가집 어머니들, 식당 주인, 지역 식당 등은 여행을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으로 가게 해준다. 여행이 눈만 즐거우면 무슨 재민가. 몸도 마음도 함께여야 그 여행이 진정 추억에 깊에 남을 것 아닌가.

이렇게 책에서 찾은 작은 것에 대한 관심 외에도 이 책이 가진 장점들이 많다. 그것은 전작에도 나오듯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다. 물론 책이 100% 완벽하지 못해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 있겠으나 이것만 가지고는 이 책이 가지는 흥미와 의의를 퇴색시키진 못할 것 같다. 해당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세세하고 친절하다. 전문 답사가로서 아마추어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어느 책보다 설명이 우수하다. 한 두 번 다녀본 곳에 대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 수 십년 간 다닌 곳들에 대한 글이기에 그의 애정과 진실함이 책 속에 잘 녹아 있다.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 이 책은 답사에 대한 일종의 성전과 같다. 자신의 대한 자랑과 변명 등에서 눈꼴 시린 내용도 찾을 수 있겠으나 이보다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클 듯하다. 법정 스님이 그랬다. 좋은 책은 책장을 넘기기 아쉬워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지나간다 했는데, 아무래도 답사기는 내게 그런 책을 듯 싶다.
(2011.06.27.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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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배반 - 선비의 그늘에 감춰진 조선 정치의 진실
박성순 지음 / 고즈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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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조선시대 선비에 대한 비판 서적이다. 기존의 통설이나 교과서적 지식을 비판하고,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역사의 사실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선비들은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들은 진정 왕을 보좌하고 학문을 탐구하여 백성들을 보살핀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물론 그리한 선비들도 많았음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개별적인 선비들이 아니라 전체의 선비들이 그런 의식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 갈수록 회의적이다. 이런 연유에는 조선시대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내 눈에 자리잡고 있다.

<선비의 배반>은 <心經>이란 책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의 선비, 특히 사람파들이 정권을 쟁취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심경>의 핵심 내용은 ‘경(敬)‘인데, 욕심을 없애고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아 군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경계의 문구들이 담겨져 있다. 남송대 주자학자인 진덕수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조선 시대 들어와, 특히 사림파들에 의해 애독되었고 그들은 왕의 경연 때 강독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대체 왜 그랬을까?

사림파들은 <심경>을 경연 과목으로 지정함으로써 겉으로는 군주의 성학을 돕겠다고 표방하였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심성을 최고 덕목으로 하는 도학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사림파들은 군주에게 <심경>을 권유하는 차원을 넘어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사림파들이 진정으로 <심경>을 통해 도덕적 이상사회의 건설을 꾀했는냐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문제는 없었을까? 저자가 제목을 ‘선비의 배반‘으로 지은 것도 바로 이 기대치에 못미치는, 그리하여 배반에까지 이르렀다고 강변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해 선비의 배반이라기보다 사림파의 배반이라 해야 옳겠다.

책의 저자는 <심경>을 강조한 사림파를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임진왜란의 실상, 광해군의 민생정치 실패, 정인홍과 소현세자의 죽음, 서인정권의 위선, 송시열의 활동 등에서는 매서운 어조로 사림파들을 비난한다. 현실을 도외시한 공리공담으로 문약해 빠진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체 <심경>의 강요를 통해 사람파들이 얻고자 한 것을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권의 쟁취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생이 어찌 되던 외적의 침입 앞에서도 단합하지 못하고, 아니 그 외적이 물러간 이후에도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인 저들을 어찌 시대의 지도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쓴 속내를 밝히고 있다. 사림파의 집권의 시대는 개발독재 시대와 많은 면에서 겹치고 있다. (책이 출간될 당시) 새로 집권하게 될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이 다시 역사의 오류를 범하지 않게 이 책을 참고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충정이라 했다. 믿어야지......^^

나는 조금 다르게 읽었다. 성리학 이외의 것을 사문난적이라 배척하던 그때를 읽으며 왜 서양의 중세가 떠올랐을까? 그리고 문약했던 중국의 송나라가 연상되었을까? 송은 몽골족에서 넘어갔고 조선은 일본에게 넘어간 사실이 묘하게 연결되었다. 다행히 서양 중세는 새로운 세상을 꽃피웠지만 송과 조선은 나라를 통째로 잃지 않았던가.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인용이 많아 보이는 데 출처를 달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을 붙이긴 했으나 그래도 부족해 보인다. 또한 수 백년간 명맥을 이어간 조선을 <심경>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사림파의 복잡한 관계와 활동도 <심경>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역사를 보는 눈을 하나 제공했다. 작은 주제 하나로 보는 시대사가 그렇다. 배움과 지식이 부족한 내가, 나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방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다 읽고나니 조선사와 사림파에 대한 시각이 풍부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너무 복잡해서 갈피를 잡기 힘들다해야겠다. 나름의 주관을 가져야 할 때인데 저자들의 사관에 내 역사관이 덩달아 흔들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어떤게 진실인지 모르겠다. 결국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생각뿐. 그래서 재밌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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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nulp 2017-03-04 08:23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아무튼 선비들의 당당치 못함에 화가 좀 낳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종교 살림지식총서 383
유흥태 지음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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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문고본. 술술 익히는 느낌이 좋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길지도 않아 편하다. ㅎㅎ 하지만 좋은 문고본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 만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그만큼 문고본의 특성상 내용이 소략하고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페르시아의 종교>는 내가 거의 무지한 분야의 책이라 실망감보다 기대가 컸다. 역사를 가르치며 교과서 내용만을 떠벌인다는 것에 많은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껴왔는 데, 이 책을 통해 페르시아의 종교,특히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에 대해 약간이나마 설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조로아스터(혹은 짜라투스트라)에 의해 시작된 조로아스터교,태양신을 믿지만 조로아스터교와 관계가 깊은 미트라교,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만든 마즈닥교, 조로아스터교.기독교.불교가 융합된 마니교. 페르시아라는 국가가 지금의 이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 종교들은 지금의 우리와 깊은 관계가 없다. 그러다보니 연구도 연구자도 드문 실정이다(저자 유흥태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독특한 이력의 존재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이 과거 페르시아의 후예란 점을 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페르시아는 아리안족(인도와 페르시아의 선조)의 후예로, 1935년 팔레비 왕조는 수천 년간 사용하던 페르시아라는 국호를 이란으로 바꾼다. 이란은 아리안족의 후예라는 뜻이다. 이 이란에게서 대한민국은 약 10% 가까운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은 시아파의 핵심 국가로 이슬람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을 깊이 알기 위해 그들의 원류이자 바탕인 페르시아의 종교에 대한 기초 상식을 쌓는 일도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종교를 일일이 축약해 쓰자니 얇은 문고본을 너무 길게 소개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그 작업을 생략했다. 혹 읽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배려이자 쓸데 없는 오해를 삼가기 위해서 말이다. 페르시아의 종교를 단순히 소개하는 책이기에 깊은 감동이나 울림은 없다. 다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갈증은 해소되리라 본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인도인들만큼이나 이란인들도 종교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이야 이슬람교를 거의 대부분 믿고 있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신들을 섬겼고 그 신앙심이 지금에도 이어져오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차오른다. 그러자니 의사가 독서량을 줄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힘든 일이다. ㅎㅎㅎ

TIP - 영어 mania의 어원이 마니교의 mani란다. 첨 알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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