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 연휴 동안 김훈의 글에 도전했다. 그의 글은 그랬다. 얕은 이해력을 가진 나로서는 그의 글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소설도 수필도 그렇게 쉬 읽혀지지 않았다. 가끔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했다. 그의 글은 건조한 듯하면서도 꽉 차 있고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내게는.

다행히 이번 글은 사적 이야기가 담긴 글이 많아 어렵지 않게 읽혔다. 물론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눈과 글이 쉽게 글을 풀어줄리는 없지만, 기어이 그의 글을 읽어내리라는 도전의식이 강했던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박완서의 글을 술술 읽히는 반면 김훈의 글은 무거워 책장의 무게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게는.

제목부터 독특했다. ‘바다의 기별‘이라. 기별은 생명체가 전하는 것인데 바다가 어찌 전한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 책에는 아버지, 어머니, 딸, 박경리, 임꺽정, 소방수가 등장한다. 서울, 일산, 안성 그리고 칠장사라는 지역도 나온다. 책의 두께에 비해 내용은 다소 가벼워진 셈이다. 그렇다고 장영희의 글처럼 일상을 쉬운 필치로 그리지 않는다. 김훈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북촌을 제 3자의 시각으로 그리는가 하면 현재 살고 있는 일산을 연구자처럼 파헤친다. 이 지점에서 살짝 놀랬다. 나 역시도 현재 살고 있는 도시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10여 년을 사니 당연히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그는 나의 대선배인 셈이다.

그의 글은 어디엔가 발표한 듯한 글인 ‘회상‘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회의 언어 자체가 소통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할 터인데, 소통되지 않은 언어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습니까‘

언어는 불완전하지만 대화를 통해 소통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런데 의견과 사실이 혼돈되고 뒤죽박죽이 된 현재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이런 현상을 통해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민주정치를 하겠냐며 그는 일갈한다. 이어 그는 ‘주류 언론과 담론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니 언어가 인간의 의사소통에 기여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문학가로서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김훈은 자신의 글쓰기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영미문학을 전공한 그이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장 이순신의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글쓰기였다. 27년의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소설가로 나섰을 때 이런 그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결국 <칼의 노래>였다. 그가 <난중일기>를 내면화하여 삭히고삭힌 글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김훈의 소설만 좋아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수필까지 읽을 필요를 느꼈다. 그의 글쓰기와 사유 방식을 배우고 싶어서다.

이 책의 단점은 순수한 수필집이라 보기 힘든 데 있다. 즉 기 발표한 책의 서문과 수상소감문을 수록한데다 다른 매체를 통해 기고한 글들이 제법 실렸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을 출간한 ‘생각의나무‘ 출판사도 사라져서 오직 중고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린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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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식 2017-01-31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칠면서 섬세한 작가같아요^^

knulp 2017-01-31 10:52   좋아요 1 | URL
네 그래보여요. 평범치 않은.

캐모마일 2017-02-0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첨엔 김훈 작가님 문체가 어려웠어요. 때로는 간결해서 그리는거 같고 때로는 의인화(맞는 표현일지..)로 인해서 읽다가 걸리기도 했네요. 생각의 나무에서 작숨 여럿 나왓는데 출판사 사라지니 저도 아쉬웠어요...ㅜㅜ

knulp 2017-02-05 09: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헌책으로 김훈의 책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ㅎㅎ 그의 글에 어려움을 겪은 이가 저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