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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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은 제목에 많이 끌렸다. 기괴하고 괴상하다는 뜻을 지닌 ‘queer‘란 단어가 주는 의미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역사에서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동성애를 다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얼른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선의 퀴어>는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하며 당대의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은 나오지 않는다. 헉! 하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정상적(?)이 지 못한 것들을 다루다 보니 정부 자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니 거기에 기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신문, 잡지가 최선의 자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괴하고 괴상한 것들을 주제로 한 책이다 보니 일반 인문, 사회과학 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들이 나온다. 가령 ‘에로 그로(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경성‘, 변태성욕, 남색 풍속, 성전환수술, 생식기성 신경쇠약, 사다이즘, 정사(情死,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함) 등이 우선 눈에 띈다. 물론 민속학 등에서 이미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에 일반 대중에 알려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시작했을 저자의 시도는 분명 칭찬받을만하다.

책을 읽기 전에 우선 퀴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최근 퀴어라는 단어는 동성애로 많이 읽힌다. 이런 선입견을 버리고 정상(?)과 다른 존재들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 그들은 근대의 물결과 함께 서양의 성과학 지식이 국내로 소개되어 들어오면서 차츰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왔을 법한 무덤을 파서 시신의 뇌수를 꺼내는 행위나 남장 여성의 등장으로 인한 소동, 키스 절취 사건 등은 읽는 내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남색은 이성애 외에 남성 간 동성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분명 아내가 있음에도 남자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 책은 호기심 덩어리였다.

한편 이 책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사회정책도 조금 읽힌다. 가령 영화 <감각의 제국>의 실제 사건으로 유명한 1936년의 ‘아베 사다‘사건을 보자. 이는 31세의 아베 사다라는 여성이 사도마조히즘 성행위 중 애인이 사망하자 애인의 성기를 잘라 현장에서 도망친 사건이다. 일본에서의 정보에 목말라 있던 조선에서는 본국의 각종 사건 사고를 국내 신문에 바로 실었다. 하지만 이 아베 사다 사건은 전해지지 못했다. 이는 식민지 당국의 검열 때문으로 이해된다. 일본은 미성숙한 조선을 일본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성병 관리 및 위생박람회 정책에서도 본국은 민간이 담당했지만 조선에서는 경무국이 담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경찰은 가두에서 키쓰하는 것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연인들을 구속시켰다. 따라서 당대에 자유연애란 실현하기 힘든 이상에 가까웠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단점도 눈에 띈다. 첫째는 젊은 학자여서 그런지 전문 용어의 사용이 많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쉬 진도 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문장까지 어렵게 만들어 가독성이 떨어지게 만든다. 둘째, 퀴어들을 다루지만 남성보다 여성을 압도적이 많이 언급하고 있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에 이상한(?) 여성을 다루는 기사들이 더 많기도 했겠지만 책 전체로 보면 남성 문제는 소략하다. 셋째, 페미니즘적 시각이 다분한 저자의 글이어서 그런지 책 전반적으로 1920~30년대를 그런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고 있다. 즉 현대인의 눈으로 과거 사회를 평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호기심을 넘어 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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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8-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원래 논문 형식으로 나왔고, 저자가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을 처음 쓴 거라서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눈에 많이 띄였을 것입니다.

knulp 2019-08-08 20:5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저자가 그렇지 못한 독자을 위한 배려가 조금 적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읽어볼만 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