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8쪽)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즐기고 사는 일에 서툰 내가 더 나이 들어 몇 안되는 즐거움마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미리하는 걱정이 우습기는 하지만 늦은 밤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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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뫼비우스 그림,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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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국내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친 이 책.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은 아니었다. 특히 사막에서의 환상 체험은 이게 뭔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아마도 제목에서 오는 착각 때문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알고 있던 연금술사와 책 속의 연금술사는 완연히 다른 존재였다.

<연금술사>가 내게 주었던 강한 메시지는 자신의 꿈을 찾아 그 길을 찾아나서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주인공 산티아고는 아버지의 격러 속에 여행을 나섰다. 양치기로 출발하여, 유럽에서 북아프리카로 과감히 건너가고, 이어 사막 여행을 통해 피라미드로까지 고난길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찾고 자신의 꿈(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 개척해 나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 전체를 통해 나는 이런 점에 크게 공감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꿈을 찾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역할까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젊은 날의 내가 읽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이렇게까지 해석하지 않았을테지만 나이 들어 읽으니 이렇게 읽혀지기도 한다. 나이와 경험이 책을 읽는 데 이렇게 영향을 준다. ㅎㅎ

확실한 것은 코엘료는 나랑 잘 안맞는다는 점이다. 그의 책을 4권 정도 읽었는지만 모두 그랬다.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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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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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에서 따온 말로써 이는 책 속에서 학생들의 비밀 써클을 의미한다. 명문대 입시를 위해서 자신의 현재를 모두 내맡긴 채 억압당하던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해방구로 작용하는 이 말은 웰튼 출신의 키팅 선생이 자신의 학창 시절 가담했던 시 낭독 비밀 서클의 이름이기도 하다. 키팅 선생은 자신의 학창 시절 학교 근처의 오래된 인디언 동굴에 친구들과 모여 고전시를 낭독하며 낭만을 키운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찌든 자신의 제자들도 자신이 경험한 낭만을 알게 되길 바란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같은 이름의 비밀 써클을 만들고 함께 동굴에 모여 명시를 읽으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1950년대의 미 엘리트 고등학교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독자인 내게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영화가 나온 1989년과 책이 출간된 2003년과 비교해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다지 변한 게 없음에 두번 놀라게 된다. 물론 교육계를 깊이 파들어가 학교 현장을 조사하면 변한 부분도 많지만 ‘입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변한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입으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들먹이지만 대입만을 바라보는 교육 현실에서 그것은 허황된 꿈일 뿐더러 사치이기도 하다. 이것은 교육 개혁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분들에 대한 모독일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교육 현장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 나조차도 일조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키팅 선생님은 평범한 교사일 수도 있다. 학생의 발전과 성장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참교사들은 대한민국에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입시에 의해 판가름되기 일쑤고 승진이라는 이름 하에 폄하되기도 한다. 교사의 생명인 수업과 학생상담은 이런 현실에서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한국의 이런 교육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여러 개혁도 추진되었지만 늘 좌절되고 그 짐은 학생들이 지고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수 없이 들으며 자라왔다. 나는 속으로 다듬고 정제한 말과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다. 정 맞지 않고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나이 들면서 이런 내가 부끄러워진다. 특히나 키팅 선생님 앞에서는. 입시 부담이 덜한 중학교에 있으면서도, 승진의 욕구를 덜어냈음에도 나는 지난날의 관습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관성적 교육에만 메달려 있는 것이다. 다시금 읽은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했다. 키팅 선생님은 숨막히는 학교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산소와 같은 존재였다. 학생들이 깊이 숨 쉬고 정신이 맑아지려면 산소같은 선생님들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모난 돌이 더 많아지는 학교가,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한 것은 키팅을 무시하던 라틴어 선생님의 변화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셨지만 후배 교사의 독특한 수업과 학생들의 변화를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조금씩 틀을 깨고 변화를 시도하였다. 지금 한국에는 이런 변화들이 많다. 교육부와 교육청이란 교육행정기관보다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이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모든 교사가 모난 선생님이 된다면 어떨지 감히 상상해 본다.

학교를 떠나는 키팅 선생님은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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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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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동아리의 8월의 책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작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였다. 이 책은 당시 시대의 상황을 풍자한 소설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동화로 각색되어 아이들을 위해 출간되고 읽혔다. 국내에서는 주로 책의 1부(작은 사람들의 나라)만 소개되었지만 간혹 2부의 큰 사람들의 나라와 3부의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도 함께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4부 말들의 나라는 신성 모독의 이유로 영국에서조차 삭제됐었고 국내에서도 오랜 기간 원문을 아니면 읽기 어려웠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천공의 성, 라퓨타'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인기(?) 검색 엔진 '야후'에 이름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계였지만 국내의 작가 소개는 영국 출신으로 쓰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당시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이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를 영국인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경우에도 식민지 조선의 손기정이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일본인 선수로 봐야 하느냐와도 직결된다. 잡설이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대중들에게는 1부인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릴리퍼트 기행을 걸리버 여행기의 전체 내용인 것처럼 알려져왔다. 소설의 내용을 모델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 '걸리버 여행기'가 개봉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 배우가 잭 블랙이었던 만큼 영화가 소설의 풍자성보다는 코미디에 치중하였음은 명약관화하다. 국내에서 《걸리버 여행기》는 19세기 말 영어 천재 윤치호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92년 출판사 문학수첩에서 원본 그대로 무삭제 완역판을 처음으로 출간하였다.

이렇게 장황하게 《걸리버 여행기》를 소개한 것은 독자였던 내가 책 자체 크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풍자의 배경이 된 18세기 무렵의 영국에 대해 아는 바도 적고 그런 유의 책들을 즐겨 읽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에게 묘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첫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작가이면서도 신학자(혹은 사제)였다. 그런 그가 말의 나라처럼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상상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18세기 당대에 하늘을 나를 섬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작가의 남다름에 그저 감탄만 나온다.

둘째, 자세히 읽으면 은근히 당대의 사회에 대한 정보들이 실려 나온다. 잘나가던 나라의 국민(영국인)이 유럽의 주변국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당대의 일본은 어떤 나라였는지, 여성은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지, 여행자들을 대하는 태도 등 사소해 보이지만 18세기의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작은 정보들이 잘 녹아 있다. 특히 4부 말들의 나라에는 야후라 불리는 야만인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작고 큰 사람들의 나라에 대한 소개보다 말을 통해 배우는 인간의 위선이 더 잘 눈에 들어온다. 특히 법과 변호사들에 대한. 이는 박지원이 《양반전》을 통해 조선 양반 사회의 위선을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셋째, 이 책은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가 무대가 아니다. 그러면 어딜까? 결국 아시아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비록 상상력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아시아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닌 듯하다. 작거나 큰 사람들 살고, 하늘을 나는 섬이 있고, 쓸모없는 연구만 하는 인간들이 모여 있고, 심지어는 말이 인간을 지배하는 곳이 바로 아시아였다. 이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처럼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즉 아시아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영화 '300'이나 '알렉산더'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아시아 국가들은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선입견을 깔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오리엔탈리즘'처럼 말이다.

고전이 항상 재밌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진 독자라면 몇 배 더 재밌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걸리버 여행기》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나의 부족함을 조금 더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수백 년 읽힌 것을 보면 내공이 대단한 책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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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 1945 ~ 2015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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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쁜 시월을 보내고 있다. 정신 못차릴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게으름을 부를만했다. 핑계 아닌 핑계다. 이 때문에 이 책을 너무 오래 읽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나요? 도발적 질문일 수 있겠다. 강자는 무한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약자는 비인간적 삶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건국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민의 생명이나 알권리보다 권력자의 체면이, 국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중요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나라를 우리는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월호 사태 이후 이 질문에 대한 의구심이 강해졌다. 이런 의문을 가슴에 품고 이 책의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공식화된 혹은 보수세력들이 주장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비판과 재해석을 가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적 제반 문제, 특히 보통의 국민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는지가 비판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어떠한 국제정치적 맥락과 조건에서 한국 현대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지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헤쳤다. 익히 알고 있는 바도 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즉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목도 있다. 그의 삐딱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새롭게 다가온다.

반공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사상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나 사상을 배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나 정당이 일관된 정책이나 노선을 갖지 못한 것이나, 학술.문화가 뒤쳐진 것도 바로 이 반공, 반북주의 때문이다. (중략) 남북한이 군사 정치적으로 대결하고, 그것을 위해 외세를 계속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국가로서의 품격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고, 후발 국가의 좋은 모델이 되거나 21세기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289쪽)

이 글을 읽으며 저자의 논조를 따라가면 그가 무조건적으로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글 구석구석에 당대의 갈등 상황과 문제들을 독점적 권력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풀어버린 데 대해 그의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대안 세력의 부재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이렇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만 그치면 서점에 널린 그저그런 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나름 대안 제시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안내한다. 그는 균등, 화합, 안정, 정의를 제창하였다. 반공을 지양하고 불구의 반국가 상태를 넘어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안정되고 균형잡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이런 주장이 어쩌면 대표적 좌파 지식인이라 불리는 저자 나름의 사회 기여 방법이 아닌가 싶다.

책장을 덮자니 다시 주먹을 불끈쥐고 일어나 광장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든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주장을 따라하자면 ‘짱돌을 들‘고 이 나라의 부조리한 모순들을 부수고 싶다. 다소 과격해지는 날를 느낀다. 내게는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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