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이야기 - 겸손의 미덕으로 미래를 바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8
박근형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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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세는 영웅을 낳고 독재는 투사를 낳는다는 격언이 있다. 영웅은 고난과 역경이라는 숱한 담금질을 통해 벼려지고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래서 영웅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 현실적이고 마음의 울림이 크게 와 닿는다. 그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불평을 긍정으로 바꾸는 공통의 분모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슈퍼맨신드롬에 빠져 사는지 모른다. 현세의 리더나 영웅은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무모한 발상처럼. 따져 보면 심각한 판단오류를 우리는 범한다. 그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 지를 살피기 이전에 그들에게 있는 능력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모양새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소위 강점이라는 요소를 하나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강점은 덮어 두고 영웅의 행위만 닮고자 답습한다. 이것은 시간낭비이자 그릇된 결과를 도출해 내는 잘못된 출발이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를 알고 그들을 아는 것이 급선무다. 따라서 원칙 없는 수용은 목적 없는 삶과 같다. 건전한 사고를 통해 위대한 리더나 영웅의 이야기를 보탠다면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것처럼 금상첨화라 하겠다.

 

        이 책은 명진 출판에서 기획된 청소년역할모델시리즈 8번째로 중국의 국가주석 후진타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후진타오는 제4대 중국주석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알다시피 중국은 공산주의체제를 수호하는 변형된 자본주의국가다. 중국은 지난 4반세기동안 개혁과 혁신을 통해 죽의 장막을 걷어냈다. 그 속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표창하며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뛰어든 태풍의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런 중국의 힘은 광활한 국토와 50개 소수민족이 배출해 내는 뛰어난 인재의 힘에서 비롯된다. 인재는 철저하게 가리고 쓰며 밑바닥부터 다지고 올라서야하는 검증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물론 태자당이라 칭하는 개국공신의 자녀에 대한 우대가 있기는 하나 극히 미약하여 대부분의 인재는 치열한 경쟁이 수반된다. 이와 같이 후진타오는 중국 공산당 역사상 유래가 드문 아래로부터의 성공과정을 밟은 인물이다. 이러한 후진타오의 배경이 현재의 중국을 이끌고 다스리는 원천이다.

 

        책은 후진타오의 출생을 시작으로 해서 현재까지를 갈무리한다. 독자층을 감안하여 평이하게 풀어 쓰고 민감한 사안은 부드럽게 넘겼다.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는 지에 포커스를 맞추어 놓았기에 핵심을 추출해내기가 무엇보다 쉽다. 누구나 읽어도 부담 없이 다가선다. 인물에 대한 해석이 현재의 드러난 사실만을 기점으로 기술되면 수평을 유지하기 힘든 난제를 탁월하게 서술해 냈다. 그래서 저자 박근형의 글쓰기는 후진타오를 더욱 빛나게  발하는 시너지효과를 냈다.  행적에 대한 인과관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도출해 내는 동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추출해 낸 후진타오의 강점은 겸손이다. 겸손은 참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통한 상대방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따라서 겸손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조화롭게 바라보는 최고의 미덕중에 하나다. "그 재능이 칼이라면 겸손은 칼집입니다."는 저자의 통찰처럼 거친 재능도 겸손을 통해 단련된다. 이렇듯 이 책의 테마는 겸손이다.

 

        후진타오는 위대한 리더가 그러하듯 소신과 원칙을 분명히 세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재능을 가치 있게 사용할 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런 평소의 습관은 어려웠던 매 순간마다 슬기롭게 극복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화약고나 다름없는 티베트서기로 나아갔을 때에도, 칭화대학을 졸업 후 문화대혁명의 미명아래 노동자의 신분으로 전락했을 때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결정을 즐겼다. 이처럼 후진타오는 주위의 에너지를 긍정에너지로 바꾸었다. 그에게는 난제를 푸는 취미라도 있는 것처럼 편한 길보다는 어려운 길일수록 더욱 강했다. 후진타오의 또 하나의 강점은 긍정이다. 무모한 긍정이 아니라 진심이 충만한 긍정이었다. 그가 믿은 긍정의 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것과 같다. 하지만 한번 믿으면 변절하지 않는 지속력이 다르다. 우직하게 통 크게 믿어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그의 인화술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또한 후진타오는 끊임없이 준비하는 생활을 거듭했다. 기술자의 신분에서 정치가로 거침없는 승리를 거듭할 때에도 그는 미래를 준비했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라도 필요한 능력을 겸비하기 위해 자신을 독촉하고 강화시켰다. 이렇듯 성공한 리더의 유전자DNA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이다. 생물학적 차이가 전혀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이 뛰어난 이유를 타고난 천부적 재능으로 모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월한 유전인자가 영향을 미쳤다할지라도 후진타오와 같은 리더의 8할은 스스로 만들어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우리와 어떻게 다른 지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맞는 모델을 만들어 간다면 더 없이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영웅은 슈퍼맨의 능력도 아닌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다양한 개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 서 간 그들의 생각과 습관을 통해 자신만의 것으로 체화하고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후진타오는 겸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좋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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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비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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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 하드보일드문학을 자주 접하는 편이 아니다.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내용도 그렇거니와 광기에 대한 본능을 자극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이고 거친 내용을 좋아하는 메니아층이 꽤나 두껍다. 대개 추리물이나 판타지물에 압도적으로 자주 결합되어 사용된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심리에 중점을 둔 스타일은 현재의 주류적 문화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놀랍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는 학습에 의한 결과다. 아울러 이러한 문학의 패턴에는 신비주의에 얽힌 내용을 즐겨 쓰는 것도 한 특성이다. 금기시 된 내용이나 보편적 관습에 의해 고착화된 관념의 틈을 파고드는 내용은 독자들에게 쉽게 어필된다. 그래서 미디어물이나 추리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프러파일러식의 사건 전개는 큐브의 풀이처럼 난제를 던져 줌과 동시에 시각적 충격을 함께 도모함으로써 몰입을 상승하는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작가의 특성에 따라 메타포를 통해 인간본질의 문제를 통찰하기도 하며 심도있게 다루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소재가 된 인류사와 고대종교에 얽힌 창세기의 비밀은 현재의 동류의 문학이 보이는 패턴을 충실하게 따른다. 복선과 암시를 통한 양방향 대결구조는 사건을 풀어 가는 얼개다. 인도의 신비의 수학 스도쿠나 마방진처럼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는 것이 매력이다. 이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에서 익히 본 패턴이다. 하지만 엇비슷하게 얽히는 전개방식이라도 이 책의 내용의 특성상 다른 작품들과 달리 두 가지의 커다란 특색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종교적 제의에 대한 도전적 해석이다. 창세기라는 미지의 영역을 다루었다는 것 외에도 진화론을 내세우며 신을 부정하는 암시는 종교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다. 두 번째는 헬파이어라는 무신론자들을 내세워 종교적 권위를 무너트린다는 것에 있다. 문체의 전개방식이나 스타일을 차치하고서라도 소재로 차용된 테마가 인간이 진화의 과정에서 발현한 화학적 작용에 의한 진화의 흔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강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짐작된다.

 

        인간의 시원은 식물에서 분화되어 다종의 군의 영향을 받아 포유류로 안착되었다. 이런 틈바구니에 파충류의 기질적 특성을 일정부분 받아 들였을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이 폭력적이고 악에 취약한 특성을 보이는 경향을 설명한다. 이것이 거듭된 진화를 통해 영장류를 거치며 현재의 인류의 시초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종으로 모아졌다는 것이 기존의 가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 준 터키 남동부의 샤를루우르파의 괴베클리 테페의 새로운 발굴작업에 의해 제시된 가설은 잊힌 인류의 기억을 복구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고 창세기 이전을 설명하지 못하는 난제를 풀어 줄 의미심장한 키워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해석된다.

 

        또한 이 책에서 드러난 창세기의 비밀은 만들어진 신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다. 에덴동산이 실제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종의 충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진위여부의 옳고 그름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이처럼 기자 출신인 작가 톰 녹스는 경험을 근거한 가설을 토대로 상상의 집을 물샐틈없이 지었다. 스타카토처럼 ‘간결하고 빠르게’를 시종일관 구사하며 독자를 지배한다. 작가의 심리적 우위는 예측을 불허하고 수수께끼를 더욱 미궁으로 내모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래서 알레고리에 의한 밀접한 연결 관계는 작중인물을 연대하게 만들고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케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책에서 포레스트 형사와 로브가 공통적으로 딸아이를 잃었거나 위험지경에 빠지는 설정은 모종의 매개체를 이끌어내는 토대가 되며 책의 사실성을 높이는 부수적 장치로 훌륭하게 작용한다.

 

        종교는 인간의 불안을 치유하고 삶의 방향성을 설정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중심에 신을 얹고 인간의 참회를 통해 구원을 제시한다. 또, 종교적 삶은 높은 윤리적 의무와 인고의 시간을 요구받는다. 누구에게나 문호를 열었으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속성을 더욱 경외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든 신에 의해 문이 열렸든 종교의 본질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에 대한 저항과 종교의 정체성에 대한 외경심을 높이고자 고대 종교의 대부분이 인간의 희생을 대상으로 삼는다. 인신공희와 같은 참혹한 살육이 자행되고 인륜을 져 버리는 행위를 용인하고 종교적 배경으로 대체하는 이유는 인간의 통합을 희망한다. 이러한 사상이 종교를 거부하는 대상이라고 못질하기에는 성급한 일인지 모르나 이 책에서 드러난 종교적 희생의 장면들은 계층을 지배하는 권력집중현상과 인종차별에 그 선을 긋는다. 사이코 패스 같은 살인자를 뒤쫓다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창세기의 비밀. 그것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냐는 자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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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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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식은 실체적 표식을 따라 밟은 관념작업의 일종이다. 쓰이는 자에 따라 치우침과 부침이 공존하는 극단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알고 있던 사실과 실제가 다를 수도 있으며 공간, 시간, 상황 등의 조건적 제약에 따라 관점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식을 보는 관점의 일종이지만 실제 역사의 기술방법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문학계의 팩션작업 또한 같은 맥락이다. 기록된 상황의 무미건조한 외피를 박피하듯 들춰내며 상상력의 정서적 이완작업을 병행하는 과정이 팩션소설의 핵심이다. 팩션은 어디까지나 실제를 바탕으로 하나 서술자의 관점을 탈피해 대상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미 역사의 시간에 압착된 기록의 범주를 벗어나서도 흩트려 놓아서도 안 되는 정교하고 치밀함을 요하는 발굴작업과 같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등장인물인 소현세자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은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있었음은 짐작으로나마 가능하다. 철저한 고증작업과 연대기 표를 통한 인물간의 상호관계, 지리적 배경, 정치적 이슈 등 사소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까지 샅샅이 훑고 엮어야 한다는 것에 더해 가공의 인물의 창조는 굳어 버린 의식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과 같음이다. 더욱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시비비가 불거지는 경우에는 편향된 의도로 재단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름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저자 김인숙은 말과 말 속, 행간의 잠든 템포를 통해 심상의 변화를 보기 좋게 잡아냈다. 상황적 설명은 심리적 시선을 따라 밀렸났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러운 변주를 통해 실제와의 거리감을 단축한다. 그것은 절제를 통한 미학이다. 닿을 듯 말 듯 전해지는 소현의 마음을 절절히 드러낸 완숙의 절경이다. 한 숨에 달려 시공을 뛰어넘고 소현의 아픔이 곧 읽는 자의 아픔이 되는 감정이입의 숨 막히는 전율이다.

 

        소현세자는 조선의 왕이 못된 세자들 중 단연코 비운의 명을 타고 난 인물이다. 아버지 인조의 끝없는 의심과 경계로 일족이 몰살당하는 치욕과 아픔을 겪은 부침으로 점철된 세자다. 소현세자는 청나라가 득세하여 명나라의 국운이 쓰러질 때 심양으로 아버지 인조를 위해 불모의 신분으로 8년이라는 고난의 세월을 심양에서 보내었다. 결국 청나라가 중화를 점령하고 환국이 결정되고 나서도 인조와의 첨예한 대립에 의한 불화 내지는 내각실료들의 간교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후문이 실록의 여러 곳에 기록된 조선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분명 실록의 명암(明暗)은 과정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실제 소현세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하였는지는 단편의 기록이 전부일 것이며 인조와의 관계와 처한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추측이나 짐작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겪었을 아픔에 대해 반드시 인식하고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념과 소신을 바로세우기 위한 확립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역사의식의 통속적인 해석을 넘어 팩션을 통한 변화과정의 함의는 독자들에게 관점의 다양화를 제공하는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팩션소설은 여타 장르에 비해 파급력이 강하고 전이되는 속도가 빠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팩션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대상인물을 돕는 가공의 장치와 실존의 장치들과의 관계이다. 이 책에서는 신 내림을 받은 막금이, 신분의 틈을 비루하게 품은 만상, 물과 불의 기운을 품은 흔은 철저하게 가공된 인물이다. 반면 소현세자의 곁을 묵묵히 지킨 효종 봉림세자, 질자(세자의 수행원)의 몸으로 넘지 못할 사랑에 희생된 심석경, 청나라 팔조대왕 중 도르곤의 존재는 사실에 기반을 두나 섬세한 터치로 인해 되살아난 인물이다. 이처럼 두 가지 장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소현세자의 완벽한 복원은 실제로 그러하였으리라는 짐작을 뛰어 넘어 가능으로 바꾸는 완벽한 호흡을 뿜어낸다. 고저장단에 맞춰 호흡의 길이를 조절하는 숙련된 작업은 김인숙 작가의 역량이다. 언어를 조련하고 다듬질한 절제의 과정 속에 탄생된 복식호흡이리라. 책 속에 그린 소현세자의 마음이 그와 같음을 절실히 공감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겠다.

 

정복자의 세상, 정복자의 세월이었다. 세자가 문득 어금니를 물고 생각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p.316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일컫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우리는 다양한 생각의 표상을 통찰한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지침이 된다. 무엇을 볼 것인가는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달리 변하지만 역사에 새긴 결과 올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이해관계에 따라 묻히고 지워지기는 하겠으나 그 속성이 발현되고 드러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종국에는 빛을 보게 된다. 최근 들어 팩션의 열풍이 번지는 현상 또한 무관하지 않다. 환멸과 번민의 과정을 감내한 그들을 통해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회고의 작업은 다가오는 미래를 예행해 보는 이치와 같다. 모든 것이 다르고 변하였다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고 추동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외줄타기를 반복하는 불변의 운명을 타고났음이다. 과거를 이해하고 흔적을 발굴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잘 만든 팩션소설은 매몰된 역사의 인식을 복원시켜 주는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하기에 김인숙 작가의 글을 만난 것은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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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4-13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댓글을 다는 것 같네요. 곡우님의 리뷰 잘 읽고 있답니다. 다듬고 닦아낸 흔적이 서평에 대한 긴장감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아 참 좋아요. 한국사전에서 강비를 다룬 것을 보고 참 인상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서 강비는 어떻게 얘기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훈의 역사소설의 그 냉철하고 건조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김인숙씨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라도 이 책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穀雨(곡우) 2010-04-14 08: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부족한 글에 좋은 평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쉽게도 김인숙 작가의 이 책에서는 강비가 다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머문 8년의
세월을 성토하는 내용이며 저 또한 김훈선생의 스타일에 놀랍기도 했답니다. 문장을 다스리는 필력이
흉내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능력처럼 보이더군요. 해서 강비를 기대하지는 마시고 다른 리뷰어님들
처럼 말과 말 사이의 깊이를 통해 소현의 아픔을 공감하는 정도로 만족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순오기 2010-04-2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보고 싶게 만드는 멋진 리뷰네요.

穀雨(곡우) 2010-04-26 09:10   좋아요 0 | URL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재미나게 읽었답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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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 인근 도시에 자라서인지 나는 고등어에 사족을 못 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 한 손을 바싹하게 구워 내는 날이면 어김없이 밥도둑이 된다. 예전이야 값싼 가격에 영양가도 높은 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표 서민어종이었지만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나는 고등어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고등어를 금하겠다니 당최 무슨 기막힌 소리란 말인지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 풀린다. 오히려 머쓱해지는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고등어에 담긴 생활철학치고는 겸연쩍다 못 해 부끄럽기까지 해 진다. 읽을수록 어디서 이런 건강한 생각이 듬뿍듬뿍 솟아나는지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지은이는 독일에 거주하는 건축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내고 사회 속에서 굳건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똑순이 아줌마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산다. 환경을 위해 자동차를 포기하고 즐거움을 위해 치열하게 살지도 않는다. 그녀의 시계는 여유로움에 맞춰 느릿느릿 흘러간다. 불어오는 살가운 미풍에도 고마워하며 헐벗고 굶주린 제3세계 아동들을 떠올리며 추위가 살을 에는 밤에도 열주머니 하나에 황홀해 한다. 목욕물이라도 받아 뜨끈한 물에 담그는 날일라치면 세상을 다 가진 마음에 달뜨는 그미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 같으면 하루도 견뎌내기 힘든 불편한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배운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행복은 물질이 먼저가 아님을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독일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 방위로 넘나드는 생각의 단상을 품고 있다. 독일사회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으로 가족, 교육, 환경, 역사의식 등 알짜한 이야기로 생각의 층위를 넓혀준다. 그녀의 생각은 유쾌, 상쾌, 통쾌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들에 같이 공감하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녀는 바라 본 대로 말은 건네 온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두의 몫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척같아 보일수도 구차해 보일수도 있건만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소유에 집착한 나머지 매몰된 가치기준에 선동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어 내는 이야기는 당당함 그 자체다. 옳고 그름을 안다는 것은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가 아니다. 삶을 주체적으로 받아 들였느냐는 근본적인 차이가 우선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다. 근면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패전이후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피땀 흘린 과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위 68세대로 불리는 독일의 전후세대는 우리나라의 386세대쯤 되겠다. 그들로부터 촉발된 혁명은 독일을 일류국가로 만든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진통도 많고 붉어진 문제도 많았다. 전범처리문제와 인종차별문제는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보기 좋게 해 냈다. 그 중심에는 국민적 합의와 배려가 오롯이 녹아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과의 문제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독일 국민들이 진심으로 수용하고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협업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은 좋은 귀감이 된다. 일본의 성의 없음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안부할머니의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 볼 필요성을 충분히 떠올리게 된다.

 

        또한 국민들의 교육관 또한 열의나 관심이 높다는 것도 비슷하다. 천연자원이 빈약하다는 자연적 환경이 인재육성으로 집중한 여건도 우리와 같다. 하지만 그들의 교육시스템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경쟁중심주의라면 그들은 인간중심주의다. 하향 평등에 굴하지 않고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실제로 저자가 건축학도를 가르치는 에피소드는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부러움마저 절로 생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강요를 하지 않는다는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이 오늘날 그들을 만들었으리라. 부족한 것은 메우고 넘치는 것은 나누는 자연의 순리를 그들은 알고 있다. 결국 하향평준화는 가진 자의 횡포이자 배타적인 생각이다. 기회의 불평등을 제거하지 않고 경쟁에서 성공하라는 말은 관대함도 없고 아량도 없는 살벌한 사회다. 그녀는 아이들을 더 개성이 넘치는 인재로 키워 냈다. 생각의 틀을 원대하게 세우는 주춧돌만 세웠을 뿐 다른 모든 것은 아이의 자율에 맡겼다. 그런데도 결이 곧고 바르게 컸다. 아이들은 가치기준이 분명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연대의식이 확고부동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지성인의 행동역할에 대해 담론을 펼쳤다. 독일인이 나치를 배출해 내고 비록 몰락해 패전국이 되었지만 다시 꿈틀거리는 인종차별의 망령에 물들고 있다는 위험성이다. 이성이 잠들면 야수가 꿈틀댄다는 그녀의 표현처럼 인간은 지배에 대한 본능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이 아프리카에 범한 만행은 쉽게 잊히고 사라진 이면에는 물리적 거리도 아니고 세계사회의 변방이라는 계급적 차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의 수난과정은 그 당시로서는 너무도 익숙했다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그녀가 독일주재 일본특파원이 독도에 대한 칼럼작업을 포용과 관용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설득해 가는 과정도 모두 지성인의 살아 움직이는 행동이다. 그녀는 지성인은 조약돌과 같아서 물살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을 일탈하지 못하게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인식 있는 지성인의 행동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살뜰하게 아끼고 화통하게 베푸는 그녀의 생활철학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한다. 융통성 없고 패기 없다며 지청구를 해 대는 우직한 독일남편과 자유와 책임을 멋지게 통제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는 그녀는 진정으로 부자다. 고등어 한 마리를 먹기 위해 누군가의 피눈물과 삶의 고통과 바꿀 수 없어서 먹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착한 마음과 멋들어진 왈츠 한 자락에 홀딱 넘어 가는 소녀적 감상을 겸비한 그녀의 삶은 유쾌한 자유가 사는 건강한 터전이다. 불필요한 집착을 삶에서 걷어 낸다면 이렇게 삶이 행복하고 멋져 보일 터인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진지한 물음이 필요하다. 그녀와 같은 삶의 동행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살 맛 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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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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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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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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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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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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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문학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록된 댄 브라운이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왔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근저에는 과학과 신비의 양극단에 선 대립구조가 주된 이유겠다. 로버트 랭던. 기호학자이자 모험을 즐기는 쾌도난마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전작의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의 주인공이자 댄 브라운을 일약 스타작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랭던의 신비한 기호학풀이와 미래과학의 절묘한 조합은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원천이다. 하지만 이 책 <로스트 심벌>은 전작들의 입지전적인 성공에 비해 거품이 들러붙은 형국이다. 이미 패턴에 익숙해 버린 독자층의 호기심을 채워 주기에는 2% 부족한 연출이다.

 

        실제 할리우드 어드벤처 스타일에 길들여진 대중들은 패스트푸드처럼 생산해 내는 이야기에 식상해진지 오래다. <인디애나 존스>시리즈로 유명한 영화스타일도 댄 브라운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것도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또 도입부분의 엽기적인 장면 설정과 선악의 이중적 대립구조를 따라 흘러가는 구조는, 마치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처럼, 새로울 것도 신비함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댄 브라운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미래공상과학물에나 등장할 법한 노에틱사이언스(Noetic science, 지력과학), 반물질 생성 등의 미래구현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마법처럼 다가선다. 여기에 잊힌 과거의 비밀이 적절하게 버무려지고 얽혀지면 이미 지루해진 이야기도 생기를 띄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래서 댄 브라운이 로버트 랭던을 통해 만들어 가는 상상의 세계는 가히 만화경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댄 브라운이 이전의 작품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밀을 파헤쳤다면 이 책 <로스트 심벌> 또한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언뜻언뜻 전작에서 실체의 비밀을 짙게 엿보였던 프리메이슨의 출현은 당연한 수순을 밟았는지 모른다. 프리메이슨은 미국 건국 역사상 매우 오래된 베일에 싸인 비밀단체다. 18세기 중세 석공(메이슨)의 길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계몽주의를 받아들이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믿음을 신봉하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또 미국 건국에 깊숙이 관여하여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앨버트 아이슈타인, 뉴턴 등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단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워싱턴 시에 미국 건국 유물들과 프리메이슨과의 연관성은 이 책을 따라 가는 재미 중 하나다. 1달러 지폐에 담긴 기호의 신비, 미 의회 도서관, 스미소니언박물관 등 실존하는 역사적 유물의 철저한 고증을 거쳤기에 이 책의 사실성이 더욱 또렷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로버트 랭던의 모험이야기의 백미는 역사 속 유물에 새겨진 기호나 상징을 풀어 가는 추론과정이 압권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암호와 상징들을 해독하고 풀어 가는 일이야말로 독자의 관심을 확실하게 잡아끄는 매력의 고삐겠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분한 <내셔널 트레져>에서 템플기사단의 비밀을 푸는 과정과 흡사하다. 이처럼 신비주의에 기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엇비슷하게 펼쳐지는 이유는 모종의 쾌감과 무한상상이 가져다주는 희열감의 간접경험 아니겠는가. 결국 대중적 문화코드에 부응하는 트렌드의 일종으로 적확하게 들어맞는 퍼즐처럼 현상을 대변한다. 따라서 로버트 랭던을 통한 소위 대리만족은 극한상황을 통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체험하는 극적 카타르시스의 전형이겠다.

 

        반면 댄 브라운이 다른 여타 모험장르문학과 차별을 두는 이유는 인간성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는 것도 주효한 이유겠다. 인간이 쌓아 올린 역사의 업적 속에 담긴 진실과 허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결론의 도출은 관점의 유연화를 담은 작가의 속내다.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여운의 복선의 한 가운데에 댄 브라운은 항상 인간을 내세웠다. 과학과 종교의 불확실성의 거름망을 걸러 추출된 복원된 핵심은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 온 관념적 진실이나 종교적 본질도 결국 인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실 인간의 광기와 이성은 집단적 의식에서 비롯된다. 집단의 이념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기저에는 의식화 작업이 반드시 수행된다는 것도 의미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작업은 종교나 국가의 근본주의로 인해 강하게 고취되는 경향을 보인다. 과학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우월한 시기에 양자 간의 충돌은 상당한 진통을 낳았다. 그래서 과학이나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주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일수 밖에 없다. 만들어진 신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리처드 도킨슨의 주장처럼 우주이전의 세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서 모든 논쟁은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댄 브라운이 이 책을 통해 프리메이슨을 언급하고 고대의 수수께끼를 찾아 풀어가는 기호학과 검증된 과학의 학문적 연계는 대척점에 선 두 관점의 실증적 풀이로 해석된다. 코드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 보면 인간으로 귀결한다는 의미가 전편을 통해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익숙한 스토리라인이지만 장르소설에서 쉽게 찾기 힘든 배려이자 핸디캡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자층의 기억력은 익숙한 환경에 대한 빠른 복원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짜임새 있는 완성도에 비해 댄 브라운식 수순대로 흘러가는 패턴을 통해 파동이 금세 꺾여 버린다는 아쉬움이다. 그렇지만 뻔히 내용이 예측되는 모험이야기라도 마니아층을 폭 넓게 형성하는 이유도 흡입력과 몰입도면에서는 따라올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초적 본성을 자극하는 추론의 공조효과의 극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러한 이유로 추리소설을 오늘도 내일도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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