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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평점 :
전 세계 문학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록된 댄 브라운이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왔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근저에는 과학과 신비의 양극단에 선 대립구조가 주된 이유겠다. 로버트 랭던. 기호학자이자 모험을 즐기는 쾌도난마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전작의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의 주인공이자 댄 브라운을 일약 스타작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랭던의 신비한 기호학풀이와 미래과학의 절묘한 조합은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원천이다. 하지만 이 책 <로스트 심벌>은 전작들의 입지전적인 성공에 비해 거품이 들러붙은 형국이다. 이미 패턴에 익숙해 버린 독자층의 호기심을 채워 주기에는 2% 부족한 연출이다.
실제 할리우드 어드벤처 스타일에 길들여진 대중들은 패스트푸드처럼 생산해 내는 이야기에 식상해진지 오래다. <인디애나 존스>시리즈로 유명한 영화스타일도 댄 브라운의 이야기와 겹쳐지는 것도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또 도입부분의 엽기적인 장면 설정과 선악의 이중적 대립구조를 따라 흘러가는 구조는, 마치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처럼, 새로울 것도 신비함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댄 브라운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미래공상과학물에나 등장할 법한 노에틱사이언스(Noetic science, 지력과학), 반물질 생성 등의 미래구현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마법처럼 다가선다. 여기에 잊힌 과거의 비밀이 적절하게 버무려지고 얽혀지면 이미 지루해진 이야기도 생기를 띄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래서 댄 브라운이 로버트 랭던을 통해 만들어 가는 상상의 세계는 가히 만화경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댄 브라운이 이전의 작품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밀을 파헤쳤다면 이 책 <로스트 심벌> 또한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언뜻언뜻 전작에서 실체의 비밀을 짙게 엿보였던 프리메이슨의 출현은 당연한 수순을 밟았는지 모른다. 프리메이슨은 미국 건국 역사상 매우 오래된 베일에 싸인 비밀단체다. 18세기 중세 석공(메이슨)의 길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계몽주의를 받아들이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믿음을 신봉하는 단체로 발전하였다. 또 미국 건국에 깊숙이 관여하여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앨버트 아이슈타인, 뉴턴 등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단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워싱턴 시에 미국 건국 유물들과 프리메이슨과의 연관성은 이 책을 따라 가는 재미 중 하나다. 1달러 지폐에 담긴 기호의 신비, 미 의회 도서관, 스미소니언박물관 등 실존하는 역사적 유물의 철저한 고증을 거쳤기에 이 책의 사실성이 더욱 또렷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로버트 랭던의 모험이야기의 백미는 역사 속 유물에 새겨진 기호나 상징을 풀어 가는 추론과정이 압권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암호와 상징들을 해독하고 풀어 가는 일이야말로 독자의 관심을 확실하게 잡아끄는 매력의 고삐겠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분한 <내셔널 트레져>에서 템플기사단의 비밀을 푸는 과정과 흡사하다. 이처럼 신비주의에 기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엇비슷하게 펼쳐지는 이유는 모종의 쾌감과 무한상상이 가져다주는 희열감의 간접경험 아니겠는가. 결국 대중적 문화코드에 부응하는 트렌드의 일종으로 적확하게 들어맞는 퍼즐처럼 현상을 대변한다. 따라서 로버트 랭던을 통한 소위 대리만족은 극한상황을 통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체험하는 극적 카타르시스의 전형이겠다.
반면 댄 브라운이 다른 여타 모험장르문학과 차별을 두는 이유는 인간성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는 것도 주효한 이유겠다. 인간이 쌓아 올린 역사의 업적 속에 담긴 진실과 허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결론의 도출은 관점의 유연화를 담은 작가의 속내다.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여운의 복선의 한 가운데에 댄 브라운은 항상 인간을 내세웠다. 과학과 종교의 불확실성의 거름망을 걸러 추출된 복원된 핵심은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 온 관념적 진실이나 종교적 본질도 결국 인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실 인간의 광기와 이성은 집단적 의식에서 비롯된다. 집단의 이념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기저에는 의식화 작업이 반드시 수행된다는 것도 의미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작업은 종교나 국가의 근본주의로 인해 강하게 고취되는 경향을 보인다. 과학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우월한 시기에 양자 간의 충돌은 상당한 진통을 낳았다. 그래서 과학이나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주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일수 밖에 없다. 만들어진 신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리처드 도킨슨의 주장처럼 우주이전의 세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서 모든 논쟁은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댄 브라운이 이 책을 통해 프리메이슨을 언급하고 고대의 수수께끼를 찾아 풀어가는 기호학과 검증된 과학의 학문적 연계는 대척점에 선 두 관점의 실증적 풀이로 해석된다. 코드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 보면 인간으로 귀결한다는 의미가 전편을 통해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익숙한 스토리라인이지만 장르소설에서 쉽게 찾기 힘든 배려이자 핸디캡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자층의 기억력은 익숙한 환경에 대한 빠른 복원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짜임새 있는 완성도에 비해 댄 브라운식 수순대로 흘러가는 패턴을 통해 파동이 금세 꺾여 버린다는 아쉬움이다. 그렇지만 뻔히 내용이 예측되는 모험이야기라도 마니아층을 폭 넓게 형성하는 이유도 흡입력과 몰입도면에서는 따라올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초적 본성을 자극하는 추론의 공조효과의 극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러한 이유로 추리소설을 오늘도 내일도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