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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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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식은 실체적 표식을 따라 밟은 관념작업의 일종이다. 쓰이는 자에 따라 치우침과 부침이 공존하는 극단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알고 있던 사실과 실제가 다를 수도 있으며 공간, 시간, 상황 등의 조건적 제약에 따라 관점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식을 보는 관점의 일종이지만 실제 역사의 기술방법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문학계의 팩션작업 또한 같은 맥락이다. 기록된 상황의 무미건조한 외피를 박피하듯 들춰내며 상상력의 정서적 이완작업을 병행하는 과정이 팩션소설의 핵심이다. 팩션은 어디까지나 실제를 바탕으로 하나 서술자의 관점을 탈피해 대상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미 역사의 시간에 압착된 기록의 범주를 벗어나서도 흩트려 놓아서도 안 되는 정교하고 치밀함을 요하는 발굴작업과 같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등장인물인 소현세자에 대한 작가의 재해석은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있었음은 짐작으로나마 가능하다. 철저한 고증작업과 연대기 표를 통한 인물간의 상호관계, 지리적 배경, 정치적 이슈 등 사소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까지 샅샅이 훑고 엮어야 한다는 것에 더해 가공의 인물의 창조는 굳어 버린 의식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과 같음이다. 더욱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시비비가 불거지는 경우에는 편향된 의도로 재단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름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저자 김인숙은 말과 말 속, 행간의 잠든 템포를 통해 심상의 변화를 보기 좋게 잡아냈다. 상황적 설명은 심리적 시선을 따라 밀렸났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러운 변주를 통해 실제와의 거리감을 단축한다. 그것은 절제를 통한 미학이다. 닿을 듯 말 듯 전해지는 소현의 마음을 절절히 드러낸 완숙의 절경이다. 한 숨에 달려 시공을 뛰어넘고 소현의 아픔이 곧 읽는 자의 아픔이 되는 감정이입의 숨 막히는 전율이다.

 

        소현세자는 조선의 왕이 못된 세자들 중 단연코 비운의 명을 타고 난 인물이다. 아버지 인조의 끝없는 의심과 경계로 일족이 몰살당하는 치욕과 아픔을 겪은 부침으로 점철된 세자다. 소현세자는 청나라가 득세하여 명나라의 국운이 쓰러질 때 심양으로 아버지 인조를 위해 불모의 신분으로 8년이라는 고난의 세월을 심양에서 보내었다. 결국 청나라가 중화를 점령하고 환국이 결정되고 나서도 인조와의 첨예한 대립에 의한 불화 내지는 내각실료들의 간교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후문이 실록의 여러 곳에 기록된 조선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분명 실록의 명암(明暗)은 과정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실제 소현세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하였는지는 단편의 기록이 전부일 것이며 인조와의 관계와 처한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추측이나 짐작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겪었을 아픔에 대해 반드시 인식하고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념과 소신을 바로세우기 위한 확립된 역사의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역사의식의 통속적인 해석을 넘어 팩션을 통한 변화과정의 함의는 독자들에게 관점의 다양화를 제공하는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팩션소설은 여타 장르에 비해 파급력이 강하고 전이되는 속도가 빠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팩션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대상인물을 돕는 가공의 장치와 실존의 장치들과의 관계이다. 이 책에서는 신 내림을 받은 막금이, 신분의 틈을 비루하게 품은 만상, 물과 불의 기운을 품은 흔은 철저하게 가공된 인물이다. 반면 소현세자의 곁을 묵묵히 지킨 효종 봉림세자, 질자(세자의 수행원)의 몸으로 넘지 못할 사랑에 희생된 심석경, 청나라 팔조대왕 중 도르곤의 존재는 사실에 기반을 두나 섬세한 터치로 인해 되살아난 인물이다. 이처럼 두 가지 장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소현세자의 완벽한 복원은 실제로 그러하였으리라는 짐작을 뛰어 넘어 가능으로 바꾸는 완벽한 호흡을 뿜어낸다. 고저장단에 맞춰 호흡의 길이를 조절하는 숙련된 작업은 김인숙 작가의 역량이다. 언어를 조련하고 다듬질한 절제의 과정 속에 탄생된 복식호흡이리라. 책 속에 그린 소현세자의 마음이 그와 같음을 절실히 공감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겠다.

 

정복자의 세상, 정복자의 세월이었다. 세자가 문득 어금니를 물고 생각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p.316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일컫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우리는 다양한 생각의 표상을 통찰한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을 이해하는 지침이 된다. 무엇을 볼 것인가는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달리 변하지만 역사에 새긴 결과 올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이해관계에 따라 묻히고 지워지기는 하겠으나 그 속성이 발현되고 드러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종국에는 빛을 보게 된다. 최근 들어 팩션의 열풍이 번지는 현상 또한 무관하지 않다. 환멸과 번민의 과정을 감내한 그들을 통해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회고의 작업은 다가오는 미래를 예행해 보는 이치와 같다. 모든 것이 다르고 변하였다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고 추동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외줄타기를 반복하는 불변의 운명을 타고났음이다. 과거를 이해하고 흔적을 발굴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잘 만든 팩션소설은 매몰된 역사의 인식을 복원시켜 주는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하기에 김인숙 작가의 글을 만난 것은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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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4-13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댓글을 다는 것 같네요. 곡우님의 리뷰 잘 읽고 있답니다. 다듬고 닦아낸 흔적이 서평에 대한 긴장감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아 참 좋아요. 한국사전에서 강비를 다룬 것을 보고 참 인상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서 강비는 어떻게 얘기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김훈의 역사소설의 그 냉철하고 건조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김인숙씨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라도 이 책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穀雨(곡우) 2010-04-14 08: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부족한 글에 좋은 평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쉽게도 김인숙 작가의 이 책에서는 강비가 다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머문 8년의
세월을 성토하는 내용이며 저 또한 김훈선생의 스타일에 놀랍기도 했답니다. 문장을 다스리는 필력이
흉내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능력처럼 보이더군요. 해서 강비를 기대하지는 마시고 다른 리뷰어님들
처럼 말과 말 사이의 깊이를 통해 소현의 아픔을 공감하는 정도로 만족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순오기 2010-04-2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보고 싶게 만드는 멋진 리뷰네요.

穀雨(곡우) 2010-04-26 09:10   좋아요 0 | URL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재미나게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