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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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 인근 도시에 자라서인지 나는 고등어에 사족을 못 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 한 손을 바싹하게 구워 내는 날이면 어김없이 밥도둑이 된다. 예전이야 값싼 가격에 영양가도 높은 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표 서민어종이었지만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나는 고등어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고등어를 금하겠다니 당최 무슨 기막힌 소리란 말인지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 풀린다. 오히려 머쓱해지는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고등어에 담긴 생활철학치고는 겸연쩍다 못 해 부끄럽기까지 해 진다. 읽을수록 어디서 이런 건강한 생각이 듬뿍듬뿍 솟아나는지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지은이는 독일에 거주하는 건축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워내고 사회 속에서 굳건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똑순이 아줌마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산다. 환경을 위해 자동차를 포기하고 즐거움을 위해 치열하게 살지도 않는다. 그녀의 시계는 여유로움에 맞춰 느릿느릿 흘러간다. 불어오는 살가운 미풍에도 고마워하며 헐벗고 굶주린 제3세계 아동들을 떠올리며 추위가 살을 에는 밤에도 열주머니 하나에 황홀해 한다. 목욕물이라도 받아 뜨끈한 물에 담그는 날일라치면 세상을 다 가진 마음에 달뜨는 그미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 같으면 하루도 견뎌내기 힘든 불편한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배운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행복은 물질이 먼저가 아님을 온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독일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 방위로 넘나드는 생각의 단상을 품고 있다. 독일사회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으로 가족, 교육, 환경, 역사의식 등 알짜한 이야기로 생각의 층위를 넓혀준다. 그녀의 생각은 유쾌, 상쾌, 통쾌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들에 같이 공감하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녀는 바라 본 대로 말은 건네 온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두의 몫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척같아 보일수도 구차해 보일수도 있건만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소유에 집착한 나머지 매몰된 가치기준에 선동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어 내는 이야기는 당당함 그 자체다. 옳고 그름을 안다는 것은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가 아니다. 삶을 주체적으로 받아 들였느냐는 근본적인 차이가 우선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다. 근면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패전이후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피땀 흘린 과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위 68세대로 불리는 독일의 전후세대는 우리나라의 386세대쯤 되겠다. 그들로부터 촉발된 혁명은 독일을 일류국가로 만든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진통도 많고 붉어진 문제도 많았다. 전범처리문제와 인종차별문제는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보기 좋게 해 냈다. 그 중심에는 국민적 합의와 배려가 오롯이 녹아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과의 문제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독일 국민들이 진심으로 수용하고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협업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은 좋은 귀감이 된다. 일본의 성의 없음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안부할머니의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 볼 필요성을 충분히 떠올리게 된다.

 

        또한 국민들의 교육관 또한 열의나 관심이 높다는 것도 비슷하다. 천연자원이 빈약하다는 자연적 환경이 인재육성으로 집중한 여건도 우리와 같다. 하지만 그들의 교육시스템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경쟁중심주의라면 그들은 인간중심주의다. 하향 평등에 굴하지 않고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실제로 저자가 건축학도를 가르치는 에피소드는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부러움마저 절로 생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강요를 하지 않는다는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이 오늘날 그들을 만들었으리라. 부족한 것은 메우고 넘치는 것은 나누는 자연의 순리를 그들은 알고 있다. 결국 하향평준화는 가진 자의 횡포이자 배타적인 생각이다. 기회의 불평등을 제거하지 않고 경쟁에서 성공하라는 말은 관대함도 없고 아량도 없는 살벌한 사회다. 그녀는 아이들을 더 개성이 넘치는 인재로 키워 냈다. 생각의 틀을 원대하게 세우는 주춧돌만 세웠을 뿐 다른 모든 것은 아이의 자율에 맡겼다. 그런데도 결이 곧고 바르게 컸다. 아이들은 가치기준이 분명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연대의식이 확고부동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지성인의 행동역할에 대해 담론을 펼쳤다. 독일인이 나치를 배출해 내고 비록 몰락해 패전국이 되었지만 다시 꿈틀거리는 인종차별의 망령에 물들고 있다는 위험성이다. 이성이 잠들면 야수가 꿈틀댄다는 그녀의 표현처럼 인간은 지배에 대한 본능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이 아프리카에 범한 만행은 쉽게 잊히고 사라진 이면에는 물리적 거리도 아니고 세계사회의 변방이라는 계급적 차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의 수난과정은 그 당시로서는 너무도 익숙했다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그녀가 독일주재 일본특파원이 독도에 대한 칼럼작업을 포용과 관용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설득해 가는 과정도 모두 지성인의 살아 움직이는 행동이다. 그녀는 지성인은 조약돌과 같아서 물살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을 일탈하지 못하게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인식 있는 지성인의 행동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살뜰하게 아끼고 화통하게 베푸는 그녀의 생활철학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한다. 융통성 없고 패기 없다며 지청구를 해 대는 우직한 독일남편과 자유와 책임을 멋지게 통제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는 그녀는 진정으로 부자다. 고등어 한 마리를 먹기 위해 누군가의 피눈물과 삶의 고통과 바꿀 수 없어서 먹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착한 마음과 멋들어진 왈츠 한 자락에 홀딱 넘어 가는 소녀적 감상을 겸비한 그녀의 삶은 유쾌한 자유가 사는 건강한 터전이다. 불필요한 집착을 삶에서 걷어 낸다면 이렇게 삶이 행복하고 멋져 보일 터인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지 진지한 물음이 필요하다. 그녀와 같은 삶의 동행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살 맛 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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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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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8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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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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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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