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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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은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강남에 산다는 것은 곧 부자라는 공식이 절로 형성되니 말이다. 강남에 있다고 해서 모두 부자라는 것은 물론 아닐 테지만 강남이라는 메타포는 엄청난 부자프리미엄을 뱉어내며 모두 부자로 격상된다. 그러니 강남으로의 입성은 곧 새로운 유산계급에 편입되는 즉각적인 과정이 아니겠는가. 비록 치열하고 던적스러운 과정을 딛고 내달린 결과물이라도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키기에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퍼덕거리며 날아 오른 욕망의 우듬지가 아닐까. 그러므로 강남은 욕망의 집합체이자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욕망의 가면은 부풀린 질퍽한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 욕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므로.




        황석영 작가의 이 책 <강남몽>은 강남의 연대기를 심층적으로 되돌려 곱씹어 보며 이러한 사유를 통해 헛된 욕망의 부질없음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오늘날의 강남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천덕꾸러기에서 욕망의 결정체로 이어지는 그 시대적 배경과 세태를 날카롭고도 고스란히 뒤엉켜 풀어낸다. 황석영 작가는 설정된 인물들의 자화상을 통해 다각적인 삶을 조명하고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쓰러지고 피어나기를 반복하는 연결의 중추를 강남으로 설정했다. 강남의 문화, 정치, 경제, 사회의 매몰된 기억의 단층을 복구하고 연결시킴으로써 오늘날 강남이 쌓아 올린 이미지에 미끄러지듯 이내 닻을 내린다. 강남열풍에 휩쓸리게 만드는 광풍의 정체가 무엇인지 금세 득달같이 그려진다.




        강남의 얼개는 비릿한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뭉개고 짓밟으며 피어난 적자생존의 꽃이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라고 정의했다. 수직적 굴종의 상태를 통해 대타자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라캉의 욕망에 관한 정의는 강남의 실체와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에 이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 강남신드롬으로 채워지는 그 같은 기현상은 욕망이 빚은 전주곡이다. 저자는 그 무엇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진실의 실체를 까발리며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통해 스산하게 접목시킨다. 그러므로 저자가 연결한 알고리즘의 연결망을 통해 강남은 재탄생되고 새롭게 세워진다. 보이는 강남에 보이지 않던 강남이 욕망을 뚫고 비쳐진다. 강남은 한국사회의 명암을 숙명처럼 끌어안은 거대한 블랙홀에 다름 아니다. 한낱 지명이 부를 상징하는 대체물로 뒤바뀐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설의 시작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기억으로부터의 출발이다. 해방이후 한국 사회는 이념과 주의, 지역감정이 혼재하던 시절이었다. 야합과 쇼비니즘이 난무하던 격동의 시절을 거쳐 산업근대화의 기치 아래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자본주의는 물질을 탐닉했다. 고도성장의 소산이 곧 삼풍백화점이었으며 날림과 부조리가 합작해 만든 치욕의 상징이자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통해 나는 자본주의에 굴욕당한 허망함과 비루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탐욕의 괴물이 무너질 때 파묻혀 버린 소외받은 이들의 아픔을 보아야 했으며 혐오스런 탐욕의 부질없음에 탄식했다. 저자가 망각의 기억으로 밀려 난 삼풍백화점사건을 필두로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소실된 기억의 복원임과 동시에 무너지는 세태를 반영한 장치다. 애 태우고 마음 아파하던 그날의 기억을 통해 전염병처럼 퍼지는 탐욕의 맹수를 길들이고 삶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희망의 독백은 동심원처럼 채워진 저자의 연륜이 소환해 낸 염원인지 모른다.




        이야기는 박선녀의 회상을 통해 김진이 등장하고 다시 이어받고 갈마드는 과정을 통해 일정한 고리를 형성하는 옴니버스형태의 반복이다. 허구와 현실이 한순간 교차하는 상황은 황석영 작가의 특유의 노련미가 돋보이며 문장을 부리는 탁월한 터치와 감각적 재구성을 통해 몰입은 극에 달한다. 상하 수직으로 나뉜 다양한 군상들의 파노라마 같은 풍광을 통해 작가가 탐구한 중심은 바로 권력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적 환경에 따라 권력에 적응하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또한 권력에 침투한 자본권력의 장악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사실적인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경험과 내공에 의해서 불어나오는 감정표현의 힘은 호기심과 옅은 기억의 단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빨려 들어 갈 듯 몰아치는 엄청난 흡입력을 생산해 낸다. 시대극이 주는 존재감을 통해 정치권력세계의 암영, 조직폭력세계의 비열함, 부자들의 특권의식, 소외받은 계층의 고단함을 여과 없이 투영함으로서 우리는 보이는 너머의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눈을 뜨게 만든다.




        이처럼 작가가 설정하고 포섭된 인물들의 행동반경은 일정한 고리를 형성한다. 강남의 연대기를 단권에 담아내기 위해 인물들 간의 연결과 반향은 이 책을 보다 사실적으로 탈바꿈하는 포인트다. 김진, 박선녀, 심남수, 홍양태, 임정아 5명의 인물을 하나의 구심점을 지향하며 숨 가쁘게 질주하는 역사의 현장을 동행한다. 김진을 통해 대한민국의 1930년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의 근현대사를 격동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김진은 만주에서 태어나 일본의 정탐꾼으로 해방과 동시에 미국정부요원이 되어 권력의 근저에 위치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삶의 배경과 풍광을 통해 남로당사건, 몽양 여운형 암살사건, 제주 4.3사건 등 굵직굵직한 정변들을 끌어안으며 근대화에 희생당한 민주화의 암울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 김진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강남에 입성하며 부를 거머쥔다.




        반면 박선녀는 비루한 집안에서 태어나 계층을 극복하는 계기로 미모의 힘을 신봉한다. 한 순간 손안에 날아든 기회를 부여잡은 박선녀는 룸 쌀롱을 경영하며 밤의 세계를 서서히 점령해 나가며 부동산투기로 쌓아 올린 부유한 삶을 걷게 되며 김진의 첩이 되어 자본권력에 편승하게 된다. 이렇게 박선녀는 심남수를 만나면서 부는 가속화된다. 말단 세무공무원으로 퇴직한 부동산업자 심남수는 우리 시대 강남의 불패신화를 형성한 소위 말하는 투기꾼이다. 작가는 그를 통해 현대아파트 수서택지지구 고위공무원 분양특혜로 떠들썩하게 했던 그 장본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렇게 부의 지도가 강남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을 자본권력을 중심으로 조밀하게 엮어 나가는 작가의 의도는 어긋남이 없다. 또한 홍양태를 내세워 비열한 거리로 대변되는 주먹세계의 중심에 포섭하며 자본권력을 향한 불잉걸을 피워 올린 것 또한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래서 작가가 빚은 임정아의 설정은 더욱 도탑게 다가온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틈바구니에서 만난 박선녀와 임정아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한바탕 꿈처럼 평행세계를 걸어 온 두 인물의 조우는 의미심장하다. 희망을 꺾지 않고 행복을 위해 살아 온 임정아의 강단함과 비열한 욕망으로 세워 뭉친 박선녀의 나약함이 포개지는 상황은 이 책을 관통하는 모든 이념을 뛰어 넘는 장면이다. 무엇이든 이루어 낼 것만 같은 자본권력의 침몰이다. 침몰은 시멘트 더미에 깔리고 먼지에 산화되어야 하건만 끈질긴 욕망의 덫은 헤어날 길이 없다. 한줌 햇볕도 채 들지 않는 다닥다닥 붙어 솟은 열망을 깔고 앉아 강남으로의 끝없는 집착은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강남불패신화와 교육광풍이 몰아치며 천문학적인 자금의 맥이 꿈틀대는 이곳 강남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보인다. 영욕과 부침의 틈 바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꾼으로 불리 우는 황석영 작가의 이 책 <강남몽>은 불콰하게 달궈진 상태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강남을 욕망의 원형으로 그려내며 슬프고도 억제된 쓸쓸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울러 질곡의 역사와 함께 다층적인 깊이를 드러내는 작가의 넉넉한 잣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작가를 통해 본 강남은 곧 갈급 하는 목마름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도처에 떠도는 속절없는 희망이 떠도는 곳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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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7-31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급하는 목마름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그래서 세종시는 꼭 필요하겠죠?

穀雨(곡우) 2010-08-02 09:03   좋아요 0 | URL
잔뜩 부풀린 풍선처럼 팽창하면 터지기 마련아닐까요. 세종시는 원안대로 수용되어야 합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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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오늘도 안녕하신가?




        PD수첩이 올해로 20년째란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명성이 높다. PD수첩이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난한 역사의 현장과 동행했다. 권력의 치부, 소외된 이들의 아픔, 부조리한 현실, 왜곡된 사회구조적 모순 등 전 방위로 넘나드는 PD수첩의 아이템은 공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가려지고 버려진 것들에 고민하고 자성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PD수첩의 오늘이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은 아픔으로 남는다.




        권력은 언제나 균형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균형이라는 것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아닌 편중된 힘의 집중을 의미한다. 따라서 권력에 도취된 광기는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도적 폭력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제도적 폭력은 어느 정권이고를 가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를 형성하는 수직적 계급사회의 틈을 파고드는 권력을 향한 비열한 생리구조이자 기득권 사회의 엄혹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권력에 맞서고 비위를 파헤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담는다.




        <PD수첩>, 20주년의 발자취를 되돌려 보며 엮은 이 책은 드러난 PD수첩의 만들어진 모습 외에도 숨겨진 속내를 보여준다. PD수첩을 만든 핵심PD9명의 소회를 전문인터뷰어 지승호의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으로 그 뜨거웠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PD수첩은 우리나라 방송사에 획기적인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기억될 재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PD수첩이 있었기에 우리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시선이 어느 정도 교정되고 유연성을 장착할 수 있는 계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하기에 우여곡절 많고 바람 잘 날 없던 PD수첩의 거침없는 질주의 순간을 토해내며 제작자로서의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반추하는 현장을 기억해 두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PD수첩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만해도 전문방송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색했다. 읽어 내리는 말투와 경직된 표정은 생소하기도 하였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한 회 한 회 쌓이면서 그들의 긴장은 금세 소멸하였으며 위험한 순간을 구르고 내던지는 동안 단련되고 무장된 강인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무도 가지 않던, 아니 갈 수 없었던 성역 없는 언론의 본분에 충실했기에 생생한 현장의 열기를 생산하고 전달하기에 분주했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슈가 되었던 문제가 터지며 불거지는 동안 우리는 이 땅의 인권이 자라는 것을 목도했다. 그러므로 PD수첩의 탄생은 희망을 생산해 내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파수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광우병 문제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였으며 황우석 박사의 허위 줄기세포문제에도 부침과 치우침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지금껏 PD수첩의 소신과 명분을 지켜냈다. 솔직히 PD수첩에 출연하고 제작한 PD들의 실명을 오롯이 기억하고 떠올릴 만큼 기억력이 좋지를 못하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와 쇠고기수입문제를 대하면서 최승호PD, 송일준PD, 한학수PD의 이름 석 자는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95%의 적과 제도화된 폭력을 앞세운 서슬 퍼런 공권력 앞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와 진실을 수호하는 언론의 소임을 다 했다는 것은 절대적인 두려움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이 PD수첩의 지난 역사를 통해 자축하는 자리로서의 의미만을 담지는 않는다. PD들의 공통된 생각과 제작되는 순간의 시선들을 통해 신뢰라는 건강한 항체를 수혈 받는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주구 노릇을 자청하는 언론기관의 작금의 행태와는 체급이 다르고 성질이 다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PD저널리즘의 재정립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열망하는 희망을 담는다. <생각의 좌표>를 쓴 홍세화 선생은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이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끊임없는 주문처럼 PD수첩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도리와 위치를 깨우치게 해 주는 분명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의 항체를 자신할 수 없다. 현재처럼 후퇴된 언론자유의 상황에서라면 더 더욱 불온하다. 좌와 우를 나누는 대립의 편제는 이 나라만의 특성이라고 돌려 세우고는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구분하는 권력층의 횡포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래서 PD수첩의 지난 발자취를 회고해 보면 철옹성으로 둘러 쳐진 그들의 베일을 벗기고 또 벗기는 탈피의 과정으로 불러도 좋지 싶다. 치부를 드러내고 까발려지는 부조리의 주인공들을 보며 나는 무너진 사회의 복원을 향한 일말의 전율을 느끼고는 하였으나 이내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언론을 틀어막고 국민의 귀와 눈을 가두는 오늘날 권력의 작태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PD수첩이 좌빨에 물든 긴장의 진원지라고도 한다. 아니면 PD수첩은 이념에 물든 삼류시사프로그램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PD수첩이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으며 세련되고 구미에 맞는 나긋나긋한 외형은 없다고 일축하는 반대론자들도 있으나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진실이 함께 했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정제되지 못한 거친 표현이 생채기를 내는 빌미는 될 수 있으나 실체를 바꾸는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랬다. 백번을 잘 해도 한 번을 잘 못하면 이제까지의 공은 물거품이 된다. 이 책의 PD들도 입을 모아 말하는 사실의 정확성, 보도의 명확성은 언론의 생명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PD수첩의 깎아 내림 현상은 이런 사소한 오류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오류의 정화는 PD수첩의 롱런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이다. 200회 특집 PD수첩 콘서트에서 진중권 교수는 취재과정의 정확성과 균형을 강조했다. 결국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살아남는다는 존재성보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파수꾼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주문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PD수첩을 만들고 제작하는 그들의 프로정신에 희망을 건다. 그들이 바라는 사회처럼 PD수첩이 더 이상 존치할 필요 없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구현된다면 좋으련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제껏 PD수첩이 다루어 왔던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구부러진 현실을 바로 잡는 교정의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PD수첩은 인권, 불평등, 교육, 경제, 소외, 정치, 종교 등의 스펙트럼을 통해 다양한 문제와 부정부패의 현장을 파헤쳐 왔다. 이러한 모든 아이템들은 시청률에 연연해서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긴장과 알력이 유발되는 문제들이기에 보다 더 냉철하고 분명한 눈과 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앞서 일반의 의식이 깨어나고 확고한 자기성찰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며 여유와 관용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PD수첩의 어제와 현재, 내일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의 총체가 반갑고 읽혀져야 할 가치의 도량이라 할 만 하다. PD수첩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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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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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도 도락이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기지가 번뜩이고 시류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매번 알 수 없는 즐거움에 빠진다. 판에 박혔다거나 식상한 이야기가 진부해서 싫다는 것이 아니라 매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바야흐로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시장, 즉 바이 마켓Buy's market시대가 아닌가. 문학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눈에 확 띄지 않으면 변변한 기회도 없이 아웃당하는 게 대세다. 물론 독점자본에 의해 왜곡된 공급현상과 여론몰이에 의해 수요를 창출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문학을 담보하는 주된 동인은 감동과 재미다. 하지만 문학은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문학은 진리와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문학은 자본주의의 논리로 포섭하기 이전에 그 시대의 창을 대변하는 가늠좌다. 그러므로 문학이 인류의 역사에 당당하게 굳건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책이 없다면 곧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문학적 본질의 심오한 패러다임을 떠나서 기존의 관습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면하면 인간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근원적인 의구심에 휩싸이게 한다.  




        배명훈 작가는 괜한 엄살을 부리지만 떠오르는 플레이메이커 감이다. 이야기의 소재를 끄집어내는 능력도 그렇고 펼쳐 보이는 재주 또한 절묘하다. 생활인의 채취를 풍기다가도 이내 우주로 날아가고 신을 영접하는 극단을 오고가는 서커스단처럼 현란하다. 그는 상상력이라 추켜세우는 신형철 평론가의 극찬은 괜한 공치사가 아니다. 그를 퍼뜩 알아채지 못한 한국문단을 나무라고 신소리를 뱉어도 이제라도 배명훈 작가를 발굴해 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할 일이겠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문학 동네 젊은 작가상 모음에서다. 이 책의 타이틀인 <안녕, 인공존재!>로 접했더랬다. 그때 기록한 리뷰를 발췌하여 인용한다.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는 외계에서 기록되었다는 신경숙 작가의 표현은 적확하다. 실존하는 물질에 대한 관념을 가볍게 드라이브하며 부드럽게 존재를 녹여 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기지가 번득이며 아이디어가 빛난다. 데카르트가 규명한 존재의 근원을 조약이라는 돌멩이에 얹어 이렇게 잘 빚어 낼 수 있다니 그의 상상력이 부럽다. 난해한 소재를 이끈다는 것은 작가의 변辯처럼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한다. 작가는 더듬을 수 없는 위치를 감정의 혼합물을 통해 적절하게 배합하고 첨가하여 순도의 완성체로 만들어 낸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추출해 낸 결과물이다. 존재의 대폭발처럼 몰입은 한 템포 빠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내가 배명훈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 또한 몰입의 완급이 주는 현상에 노출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배명훈 작가의 이 글은 괴물의 탄생을 알리는 전조가 아닐까?




        당시의 감동처럼 배명훈 작가의 다른 글에서도 유사한 맥락을 더듬었다. <크레인, 크레인>에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존재의 출현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맛보았다. 크레인이 당최 신이라니 누가 할 수 있을까. 가벼움 속에 천착한 심오한 물음은 돌발적이다. <누군가를 만났어>는 판타지장르를 보는 긴장감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찰한다. 고고심령학회라는 비현실적인 연구와 공룡발굴단, 폭발물제거반의 기형적인 만남을 적절하게 배합해고 어울리게 만드는 것은 배명훈 작가의 알싸한 필력이리라. 이러한 신묘한 이야기는 <매뉴얼>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의 눈에만 펼쳐지는 휴대폰설명서에 기록된 비서秘書같은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부정케 의심케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다. 두 작품에서 배명훈 작가는 규명되지 못한 이전의 세상을 보았는지 모른다.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은 과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우리의 생존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아마 배명훈 작가의 모든 글은 이에 부합하며 일맥상통한 의미를 갖는다. <엄마의 설명력>이나 <안녕, 인공존재!>는 천문학과 과학의 프리즘을 통해 펼쳐진 화려한 영상을 들여다보는 심정이다. 지동설과 천동설의 대립, 존재에 대한 물질현상 등은 날카로운 지식이 자양분이 되었다는 반증이겠다. 논리 정연하고 개념이 반듯한 배명훈 작가의 이야기가 쉬운 구어체를 기폭제로 날아오른데 장애는 없다. 가볍게 날아 오른 이야기는 어느새 나의 감정과 뒤엉키고 고스란히 내려앉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믿기 힘든 것이든 밝혀지지 않은 것이든 허무맹랑하든 상관없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는 명제처럼 그 속에서는 모두 가능하지 않겠는가.




<얼굴이 커졌다>는 킬러의 불협화음 같은 현실의 에피소드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이야기다. 반대로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은 뉴질랜드 작가 버나드 베켓의 <2058 제너시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에 대해서는 묻는 두 책의 공통점은 뉴웨이브하며 철학적이다. 리바이어던은 철학자인 괴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다. 또한 제너시스에도 그리스철학을 빗대어 진화를 이해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것은 상당부분 닮았다. 또한 대화체로 이어가는 기교마저 비슷하다.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과 이해하는 폭도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살린 실험적인 이야기다. 52만 명의 조종사가 로봇을 움직이고 합체하지만 실제 299명의 주조종사만 지배한다는 가상의 현실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지 싶다. 299명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를 의미한다는 사실.




이 밖에도 <마리오의 침대>는 우화를 통한 사랑의 해석을 엿 볼 수 있다. 사랑을 위해서는 불편도 감수하며 아내의 코골이를 참기 위해 침대를 넓히고 우주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지만 참신한 이야기는 상식을 허무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동전의 앞과 뒤처럼 보편적인 생각을 뒤집다보면 전혀 뜻밖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논리다. 요즘 시류가 그런 것도 이유가 되겠으나, 배명훈 작가의 글은 올레, 생각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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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책을 즐겨 읽는 터라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거라 가볍게 생각했던 게 화근이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와 궁합이 맞는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편식의 달콤함이 몸에 배어 버린 것처럼 그런 지 모르겠다. 그러니 억지로 구겨 넣은 책이 소화가 됐을리가 없다.  책은 느려지고 덮쳐 오는 이야기는 살처럼 박혀와 콕콕 쑤셔댔다. 그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고 왜 이런 짓을 자초했는지 나 자신이 책망스럽고 그랬다.  

삶이란 게 그런가 보다. 어떤 일이든 폭풍처럼 몰아치고 지나가면 그제사 해답이 눈에 보인다. 미련해도 이럴 수는 없다. 의무든 책임이든 지켰어야 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공으로 받는 것에 안 그래도 모자란 판단력이 흐려 졌었나 보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데,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긴장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물론 제 때에 맞춤맞게 글을 올리고 생각을 정리했으면 더 좋았게지만 말이다. 그래도 귀가 가려운 건 사실이다. (아마 알라딘지기님의 원망이 하늘에 닿았을 수도.^^) 

돌이켜 보건데, 내가 무모한 짓을 획책한 경위는 아무래도 명분없는 위기감이 컸던 모양이다. 더 다양한 생각거리와 이야기를 접해야 한다는 개념없는 위기감 말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분투했다는 것에는 위안을 삼는다. 앞서 말했듯 내게 맞지 않는 편견의 높은 벽으로 인해 책 한페이지가 마치 콘크리트더미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것들을 집어 삼키기는 했으니 말이다. 아직 젊음으로 소화는 잘 한다. 때로 고장도 나고 게워 내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쌩쌩하다. 그러므로 집어 삼킨 이 모든 생각의 집합들이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변화를 거듭해 아주 미진하나마 변신을 하지 않겠는가. 

잡설이 길었다. 남은 숙제라도 깨끗하게 마무리 해야지 면이라도 살지 싶다.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개인적으로 <소현>과 <별궁의 노래>가 좋았다.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를 주제로 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내외의 이야기를 다층적인 시각에서 버물렸다는 것이 눈에 쏙쏙 비쳤다. 김인숙 작가의 <소현>은 단어와 문장의 조련이 기가 막혔으며, 김용상 작가의 <별궁의 노래>는 서정적인 가운데 스며드는 아련함이 사뭇쳤다. 무딘 역사의식에 대해 시종일관 의문을 던졌고 고착화되고 경직된 가치관에 신선한 공기를 채운 기분이다. 알게 모르게 지배했던 경쟁의 역사, 미화된 역사에 현기증이 났었던 것도 타성에 길들여진 허약함이 원인이었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몰랐던 진실이 햇빛을 받으면 고스란히 들어나는 것처럼 역사는 균형감이 생명임을 절감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불변의 진리처럼 말이다.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베스트를 뽑는 것만큼 작위적인 행위는 없지 싶다. 호불호에 따라 갈리는 것도 다양성이나 관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알량한 주장을 모태로 삼아 태클을 걸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므로 그냥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베스트를 좌에서 우로 나열한다. 선정의 변은 생략..^^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정복자의 세상, 정복자의 세월이었다. 세자가 문득 어금니를 물고 생각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 p.316 소현 중에서 ]
 

끝으로 미흡한 나에게 커다란(?) 중책을 맡겨 주신 알라딘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건강까지 상해 가며 고생하신 그분, 문학담담지기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으나 단단히 무장하고 나서야 되겠다. 그 힘든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이렇게 다시 기웃거리는 이유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하다.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분, 읽고 쓰는 것에 자신 있는 분 언제든 도전해 보라. 스펙타클한 긴장이 그대를 유혹하리라.(아..뻘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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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7-0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평가단 잘 마치신 것 축하드려요...기웃대긴 했었는데 저는 책을 막상 읽어야 한다고 앞에 딱 쌓아 놓으면 부담감이 막^^ 곡우님이 추천해 주신 책들을 보니 꼭 소현을 읽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문학담당자님이 건강까지 상하셨군요. 안타까워요. 책과 관련된 분들은 다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곡우님!

穀雨(곡우) 2010-07-09 16:17   좋아요 0 | URL
민망합니다. 게으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제가 책을 너무 느리게 읽는 것도 있지만 그 기간동안 우째 일이 자꾸 생기던지. 모임도 갑자기 수시로 생기고...ㅋㅋㅋ
블랑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알라딘신간평가단 2010-07-1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너무 민망해 마십시오. 실은 저도 자신 없는 일, 그저, 건강 걱정해주신 저희 평가단 분들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흑.

고생 많으셨습니다. 리뷰만큼이나 맛깔난 변(?) 잘 읽었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요.

穀雨(곡우) 2010-07-12 10:15   좋아요 0 | URL
알라딘신간평가단님, 이렇게 직접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혹 다음에 또 도전하더라도 내치시지는
말아 주시기를....^^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본다. 나고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사랑은 때로는 열병처럼 때로는 아련한 사랑에 빠져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랑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의 범주에는 인류가 진화하고 축적한 세월만큼의 시간에 비례한다는 생각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했기에 인류도 존재의미를 더욱 가능케 한다. 그런데 어느 심리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유효기간을 대개 1년 8개월 정도로 본단다. 그 기간이 지나면 시들시들해 져 이내 무심해진다는 다소 서글픈 연구내용이지만 무시하고 넘길 조사는 아니다.




        사랑에 눈멀고 마음 아파하고 애 태우는 시간이 영겁처럼 채워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에 목말라 한다. 그렇다. 사랑은 인간을 추동하고 움직이는 존재가치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 유효기간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공식을 실제에 대입해 보면 사랑에 눈멀고 변함없이 지속 가능한 상태를 평생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쉽고도 어려운 행위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 뒤에 사랑을 획득하였다할지라도 충만한 기쁨의 상태로 여생을 함께 순항해 간다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사랑이 타성에 젖어 건성으로 흉내 내는 것과 같아서 마치 물구나무로 서서 외줄을 걷는 것처럼 매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 허술한 진심이 드러날 것이며 유효기간 내에 태워 없애 버린 말라버린 감정의 빈약함에 사랑의 밑천은 금세 바닥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정의를 분류 가능한 상태로 묶어 내기 이전에 사라지지 않는 상태, 즉 불멸의 사랑은 존재할까? 영원토록 변치 않는 감정으로 인해 상대방의 모든 것에 애틋한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체성을 발견하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로 인해 서로의 존재다움을 증명하고 삶을 경건하게 만든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사랑은 인간의 삶에 언제고 존재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대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영원처럼 순결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야기에 우리는 감동받고 삶의 희열감에 벅차올라 오염된 영혼을 정화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모두들 사랑의 시작은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다른 것에- 애증으로 산다든지 - 기대 사는 경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 <순수 박물관>에서 발견한 사랑의 언어는 개념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이전의 우리가 경험한 사랑이 평면적인 상태였다면 오르한 파묵이 추출한 사랑은 입체적이다. 각자의 안목으로 사랑을 재단하더라도 이 보다 치밀하고 농도 짙을 수는 없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책 뒤표지 중에서)




        책 전편을 감싸오는 사랑의 대서사는 순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멈춘다. 오르한 파묵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고 닦아 낸 집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경험한 일처럼 영혼으로부터 불러내 썼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주인공 케말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는 대 파노라마는 삶의 완경을 조밀하게 더듬는다. 아울러 터키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격변하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상류층 사회의 가식적인 모습을 샅샅이 보여 주는 파묵의 복원력은 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뛰어나게 이끄는 견인차다. 그러므로 케말의 사랑은 상류사회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허위와는 견줄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논하여야 할 경지에 다다른 것인지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을 딛고 자기희생을 전제로 자란다. 그러나 그 대상이 마주보기를 위한 것이 아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기만을 위한 행위는 강박관념의 일환으로 치부되거나 미성숙한 심리가 표출된 행동으로 스토킹으로 조롱당할 수 있다. 그러나 케말의 사랑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관계를 아우르며 통찰한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약혼녀 시벨을 포기하고 불꽃처럼 찰나에 만나 영겁의 탑을 쌓아 올린 퓌순과의 진정한 합일은 얼핏 불온하고 위험하다. 그렇지만 순수함은 진흙 속 진주처럼 퇴색되는 법이 없다.




        오르한 파묵의 이 작품은 순수의 의미를 되새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몰입하게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힘이 강력하다. 오랜 세월동안 퓌순을 향한 사랑의 시간을 분절하고 다시 포개는 행위를 통해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더 이상 나눌 수 없음을 파묵은 케말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케말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퓌순을 기억하는 상징적 존재들을 끌어 모으고 훗날 그녀만을 위한 박물관에 전시하며 그가 걸어 온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듬는 과정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또한 케말은 퓌순의 상징물들을 통해 비워 진 영혼의 충만함을 채우고 환희와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이처럼 오르한 파묵은 층위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의 깊이를 다층적으로  창조해 냈다. 감미롭고 로맨틱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순수박물관>은 관념도 환상도 거부한다. 오로지 사랑에 심취한 한 남자의 삶을 다층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 인간을 바라보는 세밀한 시선은 우리에게 순수의 진정한 의미를 각인하는 신선한 이야기다. 아마 이 책은 오래도록 읽혀질 젊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나는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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