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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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은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강남에 산다는 것은 곧 부자라는 공식이 절로 형성되니 말이다. 강남에 있다고 해서 모두 부자라는 것은 물론 아닐 테지만 강남이라는 메타포는 엄청난 부자프리미엄을 뱉어내며 모두 부자로 격상된다. 그러니 강남으로의 입성은 곧 새로운 유산계급에 편입되는 즉각적인 과정이 아니겠는가. 비록 치열하고 던적스러운 과정을 딛고 내달린 결과물이라도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키기에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퍼덕거리며 날아 오른 욕망의 우듬지가 아닐까. 그러므로 강남은 욕망의 집합체이자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욕망의 가면은 부풀린 질퍽한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 욕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므로.




        황석영 작가의 이 책 <강남몽>은 강남의 연대기를 심층적으로 되돌려 곱씹어 보며 이러한 사유를 통해 헛된 욕망의 부질없음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오늘날의 강남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천덕꾸러기에서 욕망의 결정체로 이어지는 그 시대적 배경과 세태를 날카롭고도 고스란히 뒤엉켜 풀어낸다. 황석영 작가는 설정된 인물들의 자화상을 통해 다각적인 삶을 조명하고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쓰러지고 피어나기를 반복하는 연결의 중추를 강남으로 설정했다. 강남의 문화, 정치, 경제, 사회의 매몰된 기억의 단층을 복구하고 연결시킴으로써 오늘날 강남이 쌓아 올린 이미지에 미끄러지듯 이내 닻을 내린다. 강남열풍에 휩쓸리게 만드는 광풍의 정체가 무엇인지 금세 득달같이 그려진다.




        강남의 얼개는 비릿한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뭉개고 짓밟으며 피어난 적자생존의 꽃이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라고 정의했다. 수직적 굴종의 상태를 통해 대타자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라캉의 욕망에 관한 정의는 강남의 실체와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에 이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땅덩어리에 강남신드롬으로 채워지는 그 같은 기현상은 욕망이 빚은 전주곡이다. 저자는 그 무엇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진실의 실체를 까발리며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통해 스산하게 접목시킨다. 그러므로 저자가 연결한 알고리즘의 연결망을 통해 강남은 재탄생되고 새롭게 세워진다. 보이는 강남에 보이지 않던 강남이 욕망을 뚫고 비쳐진다. 강남은 한국사회의 명암을 숙명처럼 끌어안은 거대한 블랙홀에 다름 아니다. 한낱 지명이 부를 상징하는 대체물로 뒤바뀐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설의 시작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기억으로부터의 출발이다. 해방이후 한국 사회는 이념과 주의, 지역감정이 혼재하던 시절이었다. 야합과 쇼비니즘이 난무하던 격동의 시절을 거쳐 산업근대화의 기치 아래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자본주의는 물질을 탐닉했다. 고도성장의 소산이 곧 삼풍백화점이었으며 날림과 부조리가 합작해 만든 치욕의 상징이자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통해 나는 자본주의에 굴욕당한 허망함과 비루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탐욕의 괴물이 무너질 때 파묻혀 버린 소외받은 이들의 아픔을 보아야 했으며 혐오스런 탐욕의 부질없음에 탄식했다. 저자가 망각의 기억으로 밀려 난 삼풍백화점사건을 필두로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소실된 기억의 복원임과 동시에 무너지는 세태를 반영한 장치다. 애 태우고 마음 아파하던 그날의 기억을 통해 전염병처럼 퍼지는 탐욕의 맹수를 길들이고 삶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희망의 독백은 동심원처럼 채워진 저자의 연륜이 소환해 낸 염원인지 모른다.




        이야기는 박선녀의 회상을 통해 김진이 등장하고 다시 이어받고 갈마드는 과정을 통해 일정한 고리를 형성하는 옴니버스형태의 반복이다. 허구와 현실이 한순간 교차하는 상황은 황석영 작가의 특유의 노련미가 돋보이며 문장을 부리는 탁월한 터치와 감각적 재구성을 통해 몰입은 극에 달한다. 상하 수직으로 나뉜 다양한 군상들의 파노라마 같은 풍광을 통해 작가가 탐구한 중심은 바로 권력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적 환경에 따라 권력에 적응하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또한 권력에 침투한 자본권력의 장악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사실적인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경험과 내공에 의해서 불어나오는 감정표현의 힘은 호기심과 옅은 기억의 단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빨려 들어 갈 듯 몰아치는 엄청난 흡입력을 생산해 낸다. 시대극이 주는 존재감을 통해 정치권력세계의 암영, 조직폭력세계의 비열함, 부자들의 특권의식, 소외받은 계층의 고단함을 여과 없이 투영함으로서 우리는 보이는 너머의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눈을 뜨게 만든다.




        이처럼 작가가 설정하고 포섭된 인물들의 행동반경은 일정한 고리를 형성한다. 강남의 연대기를 단권에 담아내기 위해 인물들 간의 연결과 반향은 이 책을 보다 사실적으로 탈바꿈하는 포인트다. 김진, 박선녀, 심남수, 홍양태, 임정아 5명의 인물을 하나의 구심점을 지향하며 숨 가쁘게 질주하는 역사의 현장을 동행한다. 김진을 통해 대한민국의 1930년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의 근현대사를 격동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김진은 만주에서 태어나 일본의 정탐꾼으로 해방과 동시에 미국정부요원이 되어 권력의 근저에 위치했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삶의 배경과 풍광을 통해 남로당사건, 몽양 여운형 암살사건, 제주 4.3사건 등 굵직굵직한 정변들을 끌어안으며 근대화에 희생당한 민주화의 암울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 김진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강남에 입성하며 부를 거머쥔다.




        반면 박선녀는 비루한 집안에서 태어나 계층을 극복하는 계기로 미모의 힘을 신봉한다. 한 순간 손안에 날아든 기회를 부여잡은 박선녀는 룸 쌀롱을 경영하며 밤의 세계를 서서히 점령해 나가며 부동산투기로 쌓아 올린 부유한 삶을 걷게 되며 김진의 첩이 되어 자본권력에 편승하게 된다. 이렇게 박선녀는 심남수를 만나면서 부는 가속화된다. 말단 세무공무원으로 퇴직한 부동산업자 심남수는 우리 시대 강남의 불패신화를 형성한 소위 말하는 투기꾼이다. 작가는 그를 통해 현대아파트 수서택지지구 고위공무원 분양특혜로 떠들썩하게 했던 그 장본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렇게 부의 지도가 강남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을 자본권력을 중심으로 조밀하게 엮어 나가는 작가의 의도는 어긋남이 없다. 또한 홍양태를 내세워 비열한 거리로 대변되는 주먹세계의 중심에 포섭하며 자본권력을 향한 불잉걸을 피워 올린 것 또한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래서 작가가 빚은 임정아의 설정은 더욱 도탑게 다가온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틈바구니에서 만난 박선녀와 임정아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한바탕 꿈처럼 평행세계를 걸어 온 두 인물의 조우는 의미심장하다. 희망을 꺾지 않고 행복을 위해 살아 온 임정아의 강단함과 비열한 욕망으로 세워 뭉친 박선녀의 나약함이 포개지는 상황은 이 책을 관통하는 모든 이념을 뛰어 넘는 장면이다. 무엇이든 이루어 낼 것만 같은 자본권력의 침몰이다. 침몰은 시멘트 더미에 깔리고 먼지에 산화되어야 하건만 끈질긴 욕망의 덫은 헤어날 길이 없다. 한줌 햇볕도 채 들지 않는 다닥다닥 붙어 솟은 열망을 깔고 앉아 강남으로의 끝없는 집착은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강남불패신화와 교육광풍이 몰아치며 천문학적인 자금의 맥이 꿈틀대는 이곳 강남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 보인다. 영욕과 부침의 틈 바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꾼으로 불리 우는 황석영 작가의 이 책 <강남몽>은 불콰하게 달궈진 상태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강남을 욕망의 원형으로 그려내며 슬프고도 억제된 쓸쓸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울러 질곡의 역사와 함께 다층적인 깊이를 드러내는 작가의 넉넉한 잣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작가를 통해 본 강남은 곧 갈급 하는 목마름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도처에 떠도는 속절없는 희망이 떠도는 곳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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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7-31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급하는 목마름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그래서 세종시는 꼭 필요하겠죠?

穀雨(곡우) 2010-08-02 09:03   좋아요 0 | URL
잔뜩 부풀린 풍선처럼 팽창하면 터지기 마련아닐까요. 세종시는 원안대로 수용되어야 합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