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오늘도 안녕하신가?




        PD수첩이 올해로 20년째란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명성이 높다. PD수첩이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난한 역사의 현장과 동행했다. 권력의 치부, 소외된 이들의 아픔, 부조리한 현실, 왜곡된 사회구조적 모순 등 전 방위로 넘나드는 PD수첩의 아이템은 공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가려지고 버려진 것들에 고민하고 자성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PD수첩의 오늘이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은 아픔으로 남는다.




        권력은 언제나 균형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균형이라는 것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아닌 편중된 힘의 집중을 의미한다. 따라서 권력에 도취된 광기는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도적 폭력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제도적 폭력은 어느 정권이고를 가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를 형성하는 수직적 계급사회의 틈을 파고드는 권력을 향한 비열한 생리구조이자 기득권 사회의 엄혹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권력에 맞서고 비위를 파헤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담는다.




        <PD수첩>, 20주년의 발자취를 되돌려 보며 엮은 이 책은 드러난 PD수첩의 만들어진 모습 외에도 숨겨진 속내를 보여준다. PD수첩을 만든 핵심PD9명의 소회를 전문인터뷰어 지승호의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으로 그 뜨거웠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PD수첩은 우리나라 방송사에 획기적인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기억될 재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PD수첩이 있었기에 우리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시선이 어느 정도 교정되고 유연성을 장착할 수 있는 계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하기에 우여곡절 많고 바람 잘 날 없던 PD수첩의 거침없는 질주의 순간을 토해내며 제작자로서의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반추하는 현장을 기억해 두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PD수첩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만해도 전문방송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색했다. 읽어 내리는 말투와 경직된 표정은 생소하기도 하였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한 회 한 회 쌓이면서 그들의 긴장은 금세 소멸하였으며 위험한 순간을 구르고 내던지는 동안 단련되고 무장된 강인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아무도 가지 않던, 아니 갈 수 없었던 성역 없는 언론의 본분에 충실했기에 생생한 현장의 열기를 생산하고 전달하기에 분주했다. 그 열기는 고스란히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슈가 되었던 문제가 터지며 불거지는 동안 우리는 이 땅의 인권이 자라는 것을 목도했다. 그러므로 PD수첩의 탄생은 희망을 생산해 내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파수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광우병 문제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였으며 황우석 박사의 허위 줄기세포문제에도 부침과 치우침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지금껏 PD수첩의 소신과 명분을 지켜냈다. 솔직히 PD수첩에 출연하고 제작한 PD들의 실명을 오롯이 기억하고 떠올릴 만큼 기억력이 좋지를 못하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와 쇠고기수입문제를 대하면서 최승호PD, 송일준PD, 한학수PD의 이름 석 자는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95%의 적과 제도화된 폭력을 앞세운 서슬 퍼런 공권력 앞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와 진실을 수호하는 언론의 소임을 다 했다는 것은 절대적인 두려움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이 PD수첩의 지난 역사를 통해 자축하는 자리로서의 의미만을 담지는 않는다. PD들의 공통된 생각과 제작되는 순간의 시선들을 통해 신뢰라는 건강한 항체를 수혈 받는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주구 노릇을 자청하는 언론기관의 작금의 행태와는 체급이 다르고 성질이 다르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PD저널리즘의 재정립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열망하는 희망을 담는다. <생각의 좌표>를 쓴 홍세화 선생은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이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끊임없는 주문처럼 PD수첩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도리와 위치를 깨우치게 해 주는 분명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의 항체를 자신할 수 없다. 현재처럼 후퇴된 언론자유의 상황에서라면 더 더욱 불온하다. 좌와 우를 나누는 대립의 편제는 이 나라만의 특성이라고 돌려 세우고는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구분하는 권력층의 횡포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래서 PD수첩의 지난 발자취를 회고해 보면 철옹성으로 둘러 쳐진 그들의 베일을 벗기고 또 벗기는 탈피의 과정으로 불러도 좋지 싶다. 치부를 드러내고 까발려지는 부조리의 주인공들을 보며 나는 무너진 사회의 복원을 향한 일말의 전율을 느끼고는 하였으나 이내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언론을 틀어막고 국민의 귀와 눈을 가두는 오늘날 권력의 작태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PD수첩이 좌빨에 물든 긴장의 진원지라고도 한다. 아니면 PD수첩은 이념에 물든 삼류시사프로그램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PD수첩이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으며 세련되고 구미에 맞는 나긋나긋한 외형은 없다고 일축하는 반대론자들도 있으나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진실이 함께 했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정제되지 못한 거친 표현이 생채기를 내는 빌미는 될 수 있으나 실체를 바꾸는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랬다. 백번을 잘 해도 한 번을 잘 못하면 이제까지의 공은 물거품이 된다. 이 책의 PD들도 입을 모아 말하는 사실의 정확성, 보도의 명확성은 언론의 생명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PD수첩의 깎아 내림 현상은 이런 사소한 오류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오류의 정화는 PD수첩의 롱런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이다. 200회 특집 PD수첩 콘서트에서 진중권 교수는 취재과정의 정확성과 균형을 강조했다. 결국 탐사보도프로그램으로 살아남는다는 존재성보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파수꾼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주문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PD수첩을 만들고 제작하는 그들의 프로정신에 희망을 건다. 그들이 바라는 사회처럼 PD수첩이 더 이상 존치할 필요 없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구현된다면 좋으련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제껏 PD수첩이 다루어 왔던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구부러진 현실을 바로 잡는 교정의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 PD수첩은 인권, 불평등, 교육, 경제, 소외, 정치, 종교 등의 스펙트럼을 통해 다양한 문제와 부정부패의 현장을 파헤쳐 왔다. 이러한 모든 아이템들은 시청률에 연연해서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긴장과 알력이 유발되는 문제들이기에 보다 더 냉철하고 분명한 눈과 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앞서 일반의 의식이 깨어나고 확고한 자기성찰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며 여유와 관용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PD수첩의 어제와 현재, 내일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의 총체가 반갑고 읽혀져야 할 가치의 도량이라 할 만 하다. PD수첩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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