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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본다. 나고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사랑은 때로는 열병처럼 때로는 아련한 사랑에 빠져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랑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의 범주에는 인류가 진화하고 축적한 세월만큼의 시간에 비례한다는 생각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했기에 인류도 존재의미를 더욱 가능케 한다. 그런데 어느 심리연구에 의하면 사랑의 유효기간을 대개 1년 8개월 정도로 본단다. 그 기간이 지나면 시들시들해 져 이내 무심해진다는 다소 서글픈 연구내용이지만 무시하고 넘길 조사는 아니다.
사랑에 눈멀고 마음 아파하고 애 태우는 시간이 영겁처럼 채워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에 목말라 한다. 그렇다. 사랑은 인간을 추동하고 움직이는 존재가치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 유효기간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공식을 실제에 대입해 보면 사랑에 눈멀고 변함없이 지속 가능한 상태를 평생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쉽고도 어려운 행위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 뒤에 사랑을 획득하였다할지라도 충만한 기쁨의 상태로 여생을 함께 순항해 간다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사랑이 타성에 젖어 건성으로 흉내 내는 것과 같아서 마치 물구나무로 서서 외줄을 걷는 것처럼 매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 허술한 진심이 드러날 것이며 유효기간 내에 태워 없애 버린 말라버린 감정의 빈약함에 사랑의 밑천은 금세 바닥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정의를 분류 가능한 상태로 묶어 내기 이전에 사라지지 않는 상태, 즉 불멸의 사랑은 존재할까? 영원토록 변치 않는 감정으로 인해 상대방의 모든 것에 애틋한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체성을 발견하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로 인해 서로의 존재다움을 증명하고 삶을 경건하게 만든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사랑은 인간의 삶에 언제고 존재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대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영원처럼 순결한 사랑을 노래하는 이야기에 우리는 감동받고 삶의 희열감에 벅차올라 오염된 영혼을 정화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모두들 사랑의 시작은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다른 것에- 애증으로 산다든지 - 기대 사는 경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 <순수 박물관>에서 발견한 사랑의 언어는 개념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이전의 우리가 경험한 사랑이 평면적인 상태였다면 오르한 파묵이 추출한 사랑은 입체적이다. 각자의 안목으로 사랑을 재단하더라도 이 보다 치밀하고 농도 짙을 수는 없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책 뒤표지 중에서)
책 전편을 감싸오는 사랑의 대서사는 순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멈춘다. 오르한 파묵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다듬고 닦아 낸 집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경험한 일처럼 영혼으로부터 불러내 썼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주인공 케말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는 대 파노라마는 삶의 완경을 조밀하게 더듬는다. 아울러 터키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격변하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상류층 사회의 가식적인 모습을 샅샅이 보여 주는 파묵의 복원력은 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뛰어나게 이끄는 견인차다. 그러므로 케말의 사랑은 상류사회에서 벌어지는 위선과 허위와는 견줄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논하여야 할 경지에 다다른 것인지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을 딛고 자기희생을 전제로 자란다. 그러나 그 대상이 마주보기를 위한 것이 아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기만을 위한 행위는 강박관념의 일환으로 치부되거나 미성숙한 심리가 표출된 행동으로 스토킹으로 조롱당할 수 있다. 그러나 케말의 사랑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관계를 아우르며 통찰한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약혼녀 시벨을 포기하고 불꽃처럼 찰나에 만나 영겁의 탑을 쌓아 올린 퓌순과의 진정한 합일은 얼핏 불온하고 위험하다. 그렇지만 순수함은 진흙 속 진주처럼 퇴색되는 법이 없다.
오르한 파묵의 이 작품은 순수의 의미를 되새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몰입하게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힘이 강력하다. 오랜 세월동안 퓌순을 향한 사랑의 시간을 분절하고 다시 포개는 행위를 통해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더 이상 나눌 수 없음을 파묵은 케말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케말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퓌순을 기억하는 상징적 존재들을 끌어 모으고 훗날 그녀만을 위한 박물관에 전시하며 그가 걸어 온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듬는 과정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또한 케말은 퓌순의 상징물들을 통해 비워 진 영혼의 충만함을 채우고 환희와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이처럼 오르한 파묵은 층위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의 깊이를 다층적으로 창조해 냈다. 감미롭고 로맨틱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순수박물관>은 관념도 환상도 거부한다. 오로지 사랑에 심취한 한 남자의 삶을 다층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 인간을 바라보는 세밀한 시선은 우리에게 순수의 진정한 의미를 각인하는 신선한 이야기다. 아마 이 책은 오래도록 읽혀질 젊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나는 예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