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가깝다. 밀쳐 내기만 하던 온기가 이젠 정겹다. 몸이 가라앉아서일수도 있겠으나 가을 속 햇살은 까슬까슬한 맛이 난다. 하지만 치대고 부비다보면 금세 보들보들한 양모나 순면으로 짠 스웨터가 주는 밀도감과 촉감이 이내 차오른다. 몸이 으슬어슬할 때나 약간 피부의 숨결이 긴장을 머금을 때, 스웨터는 다정하게 부풀어 오른다. 나는 피부에 와 닿는 감촉, 질감을 사랑한다. 그것은 비단 스웨터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작위를 탈피한 자연적인 사물이나 대상에 관심이 크다.

 

온종일 도시의 역겨움에 들쑤시고 헝클어진 채 돌아 온 저녁 무렵, 에너지를 고갈시킨 마음을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욕조에 라벤다향이 풍부한 입욕제로 풀고 담궈 흘려 버린 후, 밟는 마루의 감촉을 또한 사랑한다. 발 끝으로 퍼지는 맨들맨들한 감각의 전률은 때론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감마저 일깨운다. 또한 무료하게 나른함이 창 사이로 부유하듯 퍼지는 휴일 오후,건조한 공기의 접촉이 좋다.

 

사소한 감촉, 때론 어떤 쾌락보다 더 자극적이고 행복함에 들뜬다. 지금처럼 기가 흐트러진 상태에는 어김없이 피부로 전이되는 자극의 향연에 더 예민해진다. 가르릉거리는 고양이의 턱밑을 하릴없이 쓰다듬어 줄 때의 감각의 상호작용처럼 보다 긴밀하고 살갑게 바뀐다. 그래서 나는 잠시의 여운이나마 경계에서 퍼져 나가는 동심원을 향한 소멸의 애잔함을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마음이 된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마음은 물 위를 걷는다. 잔잔하게 닦은 수면 위를 걷는 유쾌한 상상은 감각의 파라다이스로 이끈다. 그렇게 마음을 놓이고 나면 맑은 에너지가 솟아 나는 기분이 든다. 직감처럼 감각의 모든 말초신경을 정화하고 닦은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내게 사소한 감촉은 행복을 잇는 연결고리다. 스멀스멀 기어 오르는 불쾌한 감촉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유리막과 같다.

 

행복이 거창하다면 좋으련만 현재 나는 지금의 감촉으로부터의 행복이 좋다. 감촉은 사색을 낳고 자판을 톡톡 튀어 다니며 뻗어 나가는 생각의 우듬지를 거머쥐는 해갈의 기쁨 또한 상쾌하다. 이럴 때 쓰는 글은 대개 긍정적인 생각을 유추한다. 매개된 대상이 행복을 연결시키는 단초가 되었기에 인과율상 당연한지 모른다. 별 뜻 없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자 편린의 조각이지만 사소함은 위대함을 품는 모태가 된다.

 

청아한 가을 날, 무얼 먹을까 잠시 고민하고 재탕에 삼탕을 더 해 이미 진득해 진 식용유로 튀겨 낸 돈까스를 먹고 인위적 포만감을 느낀 후 살갗에 닿는 따사로운 햇살과 몸집을 불린 바람의 감촉에 나는 아득한 사색에 잠시 스며든다. 여유는 언제나 예정하고 오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나는 늘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맥없이 붙잡고 허탈해 하고 기진한다. 그래도 나는 사소함으로부터의 시간이 살갑다. 삶이 답답하고 무거울 때는 가볍게 붙든 사소함의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은 더 말랑말랑해지고 경쾌하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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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날의 아름다움이 인생은 살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큰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도,
그 길은 작은 작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을테고,
언덕을 올라가는 길 쉬엄쉬엄 흐르는 개울과 빛나는 햇살이 저를 부추깁니다.

곡우님의 사소한 향연..... 마음이 즐겁습니다.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穀雨(곡우) 2010-10-05 22:14   좋아요 0 | URL
스펜서 존슨이 쓴 비즈니스우화인 <피크 앤 밸리>가 생각나는군요.
마고님이 즐거우셨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비로그인 2010-10-0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아한 가을날에 재탕삼탕한 기름으로 튀겨진 돈까스를 먹고 이런 감상에 젖는 사람....
정말 드물다 못해 희귀하죠~~푸히히~

穀雨(곡우) 2010-10-05 22:14   좋아요 0 | URL
그죠. 저두 희귀종인가봐요...ㅋㅋㅋ

다크아이즈 2010-10-0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한 곡우님. 사소함의 자유가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일상은 언제나 그 자유마저 쉬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깨끗하게 치워진 마루에서 햇살 가득 받으며 글놀이할 때가 제겐 사소함의 자유랍니다. 님, 행복한 가을 맞으시길. 언제나 산뜻한 칼럼 같은 글을 올리시는 곡우님...

穀雨(곡우) 2010-10-05 22:15   좋아요 0 | URL
와우..느와르님이시네요. 계절이 연달아 바뀌는 동안 잘 지냈나요..?
습관이 무서워요. 글도 그런가 그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네요....ㅋㅋ
 

환절기다. 나는 계절이 바뀌면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어김없이 고뿔이 엄습한다. 추석 전 연휴부터 지금껏 폭풍처럼 바쁘게 몰아 치기도 하였거니와 달콤한 휴가 이후 적응이 더디 되었던 것이 컸던 모양이다. 게다가 회사 내 관련 자격증 취득시험이 함께 겹쳐 리뷰도 지지부진했고 포스팅도 겨우 얼핏설핏 게을렀다.

 

아마 지난 한 주가 하반기 들어서 가장 바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토요일 시험 준비를 위해 잠을 설치고 설상가상 옆지기의 고모님이 지병으로 인해 금요일 별세하셨고 아직 노총각으로 지내던 큰 처남이 이번 달 네째주에 결혼식이 있어 주말 또한 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기가 떨어지고 흐름이 악화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싶다.

 

그런데 우연한 이어짐인지는 몰라도 나는 감기를 큰 아이가 걸리면 꼭 따라 한다. 다른 식구들 모두 무탈하게 지내건만 나에게는 거르는 법이 없다. 큰 아이도 자주 아픈 편은 아니지만 아빠를 닮아 민감보이인 셈이다. 옆지기는 그게 너무 재밌기도 하고 우스웠던지 연신 입방아를 찧어 댄다. 저질체력이라나 뭐라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모든 것에 해당된다. 내가 큰 아이의 감기를 고스란히 물려 받고 며칠을 고생을 해도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나는 감기에 걸릴때마다 감(減)기(氣)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글자 그대로 하면 기가 모자라서 몸의 운행의 흐름이 흐트려져 생기는 일종의 몸살로 해석된다. 몸에 살을 맞는다는 순 우리말마따나 감기에 걸리면 온몸이 욱신 욱신거리고 뼈마디에 바람이 든 것처럼 쑤쎠대는 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태를 붙잡는다.

 

감기와 몸살의 음절에 새긴 뜻은 심오하다. 모든 글자가 그렇게 쓰이기로 하는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건만 떠올릴 때마다 새록새록하니 미쁘다는 사실이다.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해 보면 오히려 단어가 가진 외투를 벗고 속내에 감춘 진기한 과거의 시간이 해맑게 열리니 말이다. 그 옛날 누군가에 의해 감기를 정의하고 몸이 이렇게 변했으니, 마치 살을 맞아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운 상태로 풀이하고 단어를 만들어 쓰기로 은연중에 합의한, 그 시간이 스르륵 열린다. 언젠가 유명한 한 역사학자가-누군지는 기억이 없다- 이르기를 지명에도 사연과 교감이 담겼다는 말처럼 말도 그리 생성되고 명을 이어 왔을테다.

 

나는 감기에 담긴 생각의 그릇을 투영하지만 실은 벗어나지는 못하는 우매함을 반복하는지 모른다. 감기의 예고에 늘 만용을 부리고 생활의 리듬을 소월히 하게 된 댓가다. 며칠 아프고 나면 절로 낫는 것이 감기라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감기로 인해 한 템포 쉬어가는 강제감압장치처럼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더욱 견고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속담 중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비 온 뒤 땅은 굳어지고 감기는 밥상머리 위에 내려앉는다는 말처럼 감기로 인해 운행의 호흡을 가다듬고 심신을 보존하라는 자연의 섭리의 속삭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에게 이제 감기는 아들에게 기생하다 싱싱한 어린 것의 단맛을 모두 쏙 골라 먹은 비실비실한 감기바이러스에도 맥을 부리지 못하는 즈질체력이라는 멀쓱함이다. 오늘도 필시 집에 돌아가 골골할 나를 옆지기는 모처럼 만난 안주거리 삼아 씹어 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옆지기의 행동이 얄미워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나의 즈질체력이 한심해서 그런 것이니....자업자득이다...

 

p.s) 과연 몸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잘 아는 분, 미리 감사의 말씀과 아낌없는 조언 부탁한다. 내게 조언해 주는 분은 아마 엄청 잘 생기고 이쁜 사람이 틀림없을 테다. 거기다 성격까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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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언을 1등으로 하면 1등으로 이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얼른 쓰기는 씁니다만, 즈질체력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고로...별로 드릴 말씀이 읍써요~~ㅠㅠ
밥이랑 잠이 보약일거예요.
운동을 싫어해서 잘 안하지만(아예 안할껄요), 삼시 세끼 꼬박 밥 한그릇씩 먹고 충분한 잠을 자고...요건 지키려고 합니다.그래서긍가 감기는 잘 안걸려요~
꿀복근 같은거 키우시게요?
그렇다면 고건 트레이너를 찾아야죠~~푸히히~

穀雨(곡우) 2010-10-04 18:01   좋아요 0 | URL
꿀복근은 언감생심이구요.
단지 튼튼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아, 마기님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 맞습니다...^^

blanca 2010-10-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저는 주말에 완전히 감기에 먹혀 들어가 울고 다녔습니다. 눈물과 콧물--;; 저는 감기를 너무 심하게 앓아요. 딸내미한테 안옮기려고 부단히 애를 썼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곡우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감기라는 명칭에 대하여 예전에 동료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분의 말씀으로는 의지력이 강하면 하루만에 떨어져 나간다고 하더라구요. 기가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그 얘기도 수긍이 좀 가는 게 저는 학창시절부터 시험만 끝나면 감기에 걸리곤 했거든요.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준비할 때에는 안 거리더라구요. 감기에 대해 저도 생각 많이 해요. 안 걸려야 하는데. 새록해록하니 미쁘다....어디에서 이런 예쁜 단어들을 가져오시나요? 무엇보다 감기 빨리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2010-10-04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10-0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언을 3등으로 하면 3등으로 이쁨 받는 사람 되는 건가요?^^
maggie님이 삼시 세끼 밥 한그릇 씩 먹고 충분한 잠을 잔다...이건 믿을 수 없슴~다.결코~!!!

감기는 공기중 감염이 아니라,비말감염이래요~
타액이나 콧물,가래 등에 섞여서만 전염되는 것이니까...
뽀뽀 안 하고,한 그릇 같이 사용 안하고,재채기 할 때 주의하고 하면 괜찮으실 거래요~^^

빨리 쾌차하셔서 가을 밥상만이 아니고,가을 하늘도 만끽하시길~~~!

穀雨(곡우) 2010-10-05 13:06   좋아요 0 | URL
감기의 의학적 원인이 이것이었군요..^^
하루 지나니 콧물은 홍수처럼 터지고 목은 이미 수몰되어 잠겼습니다.
그러니 머리도 지끈지끈....나아지기 위한 몸부림이겠지요...

유난히 오늘의 가을 하늘, 청아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0-10-05 16:40   좋아요 0 | URL
아니~~내가 삼시 세끼 잘먹고 충분히 잠을 자는 것에 대해 양철댁이 이의가 있으신 것 같군요~~응?
난 그렇게하고 있다구요.흥~

감기가 저런 경로로 전염되는 것이야 뭐 이해가 가지만...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하에 있다고 다 걸리는 것은 아니므로, 난 잘먹고 잘자는 방법으로 몸의 저항력과 자생력을 키워야한다고 굳게굳게 믿씨미다!!!

마녀고양이 2010-10-05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減)기(氣), 아 딱 와닿는군요.
저도 환절기마다 달고 다닙니다. 아마 기가 약해지면, 알아서 착 붙는듯한 느낌입니다.

곡우님두 그러시군요. ^^
저는 이쁘지두 않고 성격도 지랄맞아서 몸짱 되는 비결은 알려드리지 못 하지만
감기 빨리 나으시라는 기원은 드릴 수 있겠네요!

穀雨(곡우) 2010-10-05 22:17   좋아요 0 | URL
퇴근길에 병원에 들러 왕주사 한대맞고 지금은 한결 나아졌어요...^^
감기란 녀석이 그렇잖아요. 끊어 오르다 금세 식어 버리는 주전자처럼....
아마도 마고님 기원이 단방약이었나 봅니다. 감사...^^
 
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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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확실, 그것은 규명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경계는 비현상계의 미지의 존재로 각인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닿은 적 없는 곳, 그곳은 존재에 대한 현상을 묻고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상상한다. 시간 너머의 세계,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해서. 평행한 시공간의 틈 어디에서, 보이는 현상계와 흡사하게 닮은, 다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의외로 강고하다. 그곳을 연결해 줄 커넥터로 기능할 무엇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 인간의 마음 속 한 구석을 견고하게 채우고 있는 믿음인 "외계의 생명체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당위처럼 같은 맥락의 차원이다. 어쩌면 확증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단단한 이유 또한 인간이 가진 의식 중 직관에서 동인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직관의 힘을 광대한 에너지라 믿는다. 직관은 때론 둥글둥글한 호기심으로 때론 예리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문제를 푸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또한 직관에 대한 의식은 모든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이라고 본다. 직관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이 열리고 진실에 보다 밀접해진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세상을 직관이 만든 패러럴 월드의 구현이라 정의하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모든 의식의 흐름을 정제하고 통제하여 걸러 낸 정수가 바로 이 책에 담겼다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조해 낸 세상은 인간의 의식의 기저 어딘가에 가 닿아 상호작용하고 공감하게 하는 방편이 되는 재료가 되는 것을 보면 우연을 넘은 정확성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가 빚은 생각의 총체가 탄생하기까지는 다채로운 직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테고 행운의 바퀴처럼 우연성을 가장해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닐 테다.  기실 하루키에 대한 직관이 빚은 영향력은 의식이 퇴적되고 쌓이고 다져진 조각들의 조합의 과정이다.  그 속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성을 드라마틱하게 구축한다.

 

실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채로운 영향의 흔적을 책 전편에  흩뿌려 놓는다. 그것은 외따로이 혹은 뭉쳐져 가상된 세계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은폐하며 정교하게 짜인 세계를 창조하는 자양분이 된다. 따지고 보면 하루키는 대단한 관찰력과 창의력의 소유자라는 놀라움에 이른다. 전편을 장악하는 신포니에타의 협주곡을 위시하여 체호프, 프루스트의 편린들이 적절하게 배합되고 두개의 달과 공기번데기, 고양이마을, 리틀피플이 어우러져 혼합되는 변주를 매혹적이게 경청하게 된다. 여기에 하루키는 그의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체로 감정의 속도를  빠르게 변속하며 몰입의 속도를 높인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은 붙드는 순간 세계는 멈추고 그 속에 침투하는 몰입의 늪에 중독된다. 아울러 그는 방대한 분량의 서사 구조에서 오는 위압감을 경쾌한 흐름과 드라이브로 쾌속질주를 유도하는 힘은 가히 압권이다. 이러한 그의 문장력과 기교가 더해지고 합체되면 막강한 화력으로 엄청난 감정의 폭발력을 불러일으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통해 통찰하고 부여잡은 의식의 흐름과 세계에 대해 구현한다.  의식의 흐름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연결고리를 통해 설정인물들의 심리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통해 타자의 심리적 변화요소에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섬세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심리의 이면에 숨은 감각의 고리를 정교한 메스로 해부하듯 드려다 보고 절개해 생생한 이미지를 숨 막힐 듯 잡아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하루키에게 시간을 설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며 설계된 세계가 구동하는 장면은 한편의 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완경을 감상하듯 바라보게 되는 영겁의 순간으로 상승하게 만든다. 이것은 대가의 혼이 담긴 필력의 완성이라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1Q84의 세계는 카오스다. 질서를 무력화시키는 혼돈의 세상이다. 질서와 혼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출구를 통해 1Q84의 세계로 진입하였듯 질서는 정연하게 각자의 역할대로 움직이며 수평의 세계를 지향한다.  무방비 상태의 의표를 찌르는 일격, 카오스는 혼돈 속의 질서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에서 직관에 이끌려 결합하게 되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결국 예정된 질서는 마방진의 수처럼 적확한 수치다. 이렇듯 균열한 틈바구니를 밀고 나오는 미세한 시간의 흐름은 하루키가 지향한 1Q84의 세상에서 재창조된다.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1Q84의 10월에서 12월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과도 같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제거하고 공기번데기를 통해 반대편 세상의 후카에리의 몸을 빌려 덴고의 아이를 품는 과정은 결합의 산물인 생명의 잉태와 또 다른 세상의 출현을 맺어주는 의미로 부각된다.

 

또한 하루키는  아오마메와 덴고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로 우시카와를 전면에 배치한다. 우시카와는 선구의 아웃사이더 해결사로 타락한 변호사이며 동물적인 감각과 기괴한 모습이 야누스의 형상처럼 대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1Q84의 세상이 1Q85의 또 다른 통로가 열려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며 하루키의 다음 행보를 내비친다.  리틀피플이 날뛰고 경계가 허물어지며 또 다른 문이 열리는 혼돈의 과정을 하루키는 우시카와를 통해 암시하고 보여준다. 여기서 하루키는 대칭적 구조에 대한 강한 조화를 맞추며 이중적 나선구조를 이어주는 끈을 조화롭게 설정한다. 선구의 핵심일원인 포니테일과 스킨헤드, 타이거오일의 왼쪽과 오른쪽, 리틀피플과 빅브라더,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흑과 백의 부조화 속의 대칭구조를 통해 현상계와 비현상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하루키는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1Q84의 세계에서 살아 숨 쉬게 하였다. 덴고의 아버지가 현상계의 껍데기를 벗어 나 NHK수금원으로 아오마메와 덴고, 우시카와를 차례로 방문하여 수금독촉을 하는 난해한 장면은 데자뷰에서 오는 기시감처럼 생경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아마도 하루키는 의식의 중추가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어디에선가 재생되고 스며들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동시대를 사는 세상 저 편의 낯선 공간에 나와 같은 인간이 살아 움직인다는 상상, 섬뜩함이 몰고 오는 서늘한 상상이다. 풀리지 않는 미제와 같은 하루키가 던진 난제는 이야기가 계속 뻗어 나갈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렇듯 무라카미 하루키, 그에 대한 열광은 이제 전설이다. 세상을 온통 1Q84의 세계에 홀리게 만든 그의 이야기에 마비되었다. 플롯 곳곳에 깃든 완벽한 장치들을 통해 실제 두 개의 달이 뜨고 공기번데기가 생산되는 세상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  그가 설정한 모든 장치들을 풀어 나열하면 일정한 알고리즘의 틀 속에 모이는 이유 또한 하루키의 아우라가 유발한 엄청난 에너지다. 아오마메의 푸름에서 이끼 긴 푸른 달이 연결되고 존재감을 상실한 달에서 덴고의 강인함을 유추케 하는 음양의 완벽한 대칭적 조화. 하루키의 이 소설은 완전한 세상의 경계에 머무는 불완전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 속에서 나는 구부러진 시간을 마주한다. 1Q84의 생소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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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0-0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굉장히 좋은데요....

1Q84를 읽고 리뷰를 쓰면서, 얼마나 정리가 안 된채 헤매었던지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긁어다 올리고 끝냈답니다.
그만큼 제게 난해한 작품이었고, 그만큼 제게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곡우님의 리뷰를 읽으니, 머리 속의 혼돈 상태가 훨씬 가라앉고 있습니다. 기억을 다듬으면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리뷰입니다.

穀雨(곡우) 2010-10-05 22:19   좋아요 0 | URL
쓰고 지우기를 숱해 반복했어요. 하루키를 단박에 정의한다는 게 쉽지 않더군요.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고님의 공감의 표시, 위로가 됩니다...^^
 
빈집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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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과 울분은 화병의 근원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에 담긴 소재 중 한恨에 대한 집착은 병적일 만큼 삶을 무섭도록 지배한다. 상실과 결핍에서 오는 아픔,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기능적 아픔. 그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하나의 구심점, 한으로 이어진다. 한에 대한 모습을 형상화한다면 채울 수 없는 비움이 떠오른다. 상호작용이 단절된 일방적 형태의 껍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가뭇없다. 이러한 현상의 주효한 원인으로 나는 봉건적 구조와 계층적 갈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한이 쌓이고 또 쌓여 중첩된 아픔이 되는 이유의 외형적 원인은 사뭇 그러하다. 하지만 한의 내면적 갈등은 해갈할 수없는 욕망에서부터다. 욕망의 다채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교류의 단절은 한을 유발하는 시초가 된다.

 

그래서 한을 형성하는 원인을 찾는 것은 때로는 다면적인 상황의 이해와 면밀한 접근으로 결속되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추적의 과정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뒤엉키고 꼬여 든 문제라도 실마리는 있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티끌 같은 실마리의 단초는 관계의 부조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연결된 일차적인 친밀집단 즉, 가족이다. 가족의 해체는 기능적 갈등요소들을 한으로 응집하고 끌어 모으는 원인제공의 요소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시스템 내에서 가족문제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의 문제로 치부되어 보듬어 안고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매듭을 묶은 당사자의 손으로 풀어야한다는 결자해지의 영역인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주영 작가의 <빈집>을 조망해 본다면 상당 부분 그로테스크한 상황의 연출이 지속됨을 알 수 있다. 부자연스럽게 흐르는 인물들 간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조합은 상황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모이고 퍼지는 파동처럼 각 각의 한이 얽히고설키고 포개지지만 결국 채울 수없는 비움의 기형적 출현으로 공감하기 힘든 현실을 껴안는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적 상황으로 내모는 내러티브는 단단함에서 비롯된다. 의도하고 설정된 조합이 조밀하게 계획된 대로 치밀하게 구동하는 힘, 김주영 작가의 역량이다. 진부한 소재도 조탁되고 주무르면 세제되어 정화될 것 같은 필력이다. 나는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소개해 준 지인의 선물이 없었다면 깊이 있는 그의 글을 놓칠 뻔 했다. 흔하디흔한 가난과 상처를 소재로 이렇게도 한 많은 인간 군상들을 정렬시켜 놓는 그의 필력에 흠뻑 젖었다.

 

소설 속 주인공 어진과 한량의 피를 이어받은 근본 없는 도박꾼 아버지와 억척같이 살길을 도모하는 어머니의 기묘한 줄다리기를 통해 삶의 끈이 어디로 이어지고 나아가는지 드려다 보는 장면은 잿빛 여운처럼 진득하게 퍼진다. 이 작품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소재는 바다와 은행나무의 은유적 감성이다. 채울 수없는 마음의 위안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고독한 행위의 분투가 애틋하다. 어진은 아름드리 오동나무에 메어 놓은 하늘침대를 통해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위무하며 그에 반해 배 다른 언니 수진의 해체된 가족의 아픔은 바다로 이끌어 상호대비 시켜주는 구조는 작가의 한에 대한 통찰이 깃든 메타포다.

 

실제 이 작품의 얼개는 다양한 가족 내 갈등의 원인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잇따른 부재와 쫓김으로부터 발생한 불안의 극복과 해소를 위해 어머니는 어진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대한다. 애정결핍은 이렇듯 지근거리에 있으며 인물마다 각기 처해 있는 상황의 변주가 다르며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름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일그러져 구부러진 관계는 때로는 극단의 모습으로 때로는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그래서 한동 설한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어진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험한 길을 휘적휘적 걷고 낯선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만용을 부리며 기이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댈 곳 없는 마음의 유기된 행동의 연장선이다. 정해진 것 없이 찾고 숨는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 자행하며 기필코 찾아내고 마는 괴상한 행동은 불안한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시켜 놓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삶에 대해 결여된 아픔을 갖는다. 어진의 눈을 통해 아픔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모습은 관계의 모순과 결핍의 순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고독의 섬에 갇히게 된 어진의 방황하는 마음과 삶에 배신당한 상처는 모두 구조적 모순에서부터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한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해체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선다. 수진이 남편의 바람과 폭식으로 인해 우울의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과 어진이 시댁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정한 어머니와 무능력한 아버지로부터 애정이 결핍된 과정 또한 닮은꼴로 변한다. 결국 이야기의 절정은 비움의 채움에 대한 욕망의 분출로 이어지는 것을 예정할 수 있다.  외롭게 홀로 선 섬처럼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는 아픔의 배출하지 못하는 허무한 생산이다. 수진이 바다를 사막의 신기루마냥 내딛고 유영하는 모습과 어진의 냉혹한 삶의 모습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렇듯 어진의 성장의 파노라마를 통해 작가는 선예도가 높은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무시로 흡입한다. 그 속에서 거머쥔 아픔, 한을 끌어안은 여인의 애환은 시리도록 아픔이 퍼진다. 변화무쌍한 시간의 속도에 현기증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자근자근 타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아무도 머물지 않는 빈집에 대한 정체성을 통해 상념의 시간을 선사한다. 비움의 마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대한 진중한 물음, 탐욕과 욕망의 고삐를 어떻게 쥐고 나갈 것인지를 되묻는다. 아울러 인간은 관계와 관계의 촘촘한 망에 얽혀 산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섬을 느낀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비움과 채움의 끊임없는 반복 작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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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09-2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움과 채움도 멋진 대구,멋진 제목인걸요~

제목도 좋지만,리뷰도 좋아요.
전 요즘 자꾸 비워내는 쪽으로 생각해요.

穀雨(곡우) 2010-09-30 09:22   좋아요 0 | URL
비움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잘 안되네요...^^
제가 욕심이 많나봐요...ㅎㅎ
 

 


 

[제주 남원큰엉 해안경승지, F9 ISO 100 50㎜ GX-10]

  
  

풍랑과 풍랑의 사이에 파도는 인다.  

파도는 쪼개지고 분절되지만 합일은 곧 이뤄진다.  

파도는 포말의 흔적을 대기중에 퍼트린다.  

파도는 바람을 안는다.  

바람에게 내맡긴 파도는 심해의 기억을 상실한다.  

바람이 일으켜 만든 파도는 공기 중에 가벼이 부유한다.  

입자는 펴지고 희미한 소금기만 오롯이 머금는다.  

파도가 남긴 흔적, 포말은 새로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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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위에 걸터앉은 싸이렌이 떠올라요, 난.^^

穀雨(곡우) 2010-09-28 23:01   좋아요 0 | URL
마기님의 상상력은 멋집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샘솟는지...^^
싸이렌, 제가 접수합니다. 오늘부로...ㅋㅋ

2010-09-29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