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업무 방식 - 구글 애플 페이스북 어떻게 자유로운 업무 스타일로 운영하는가
아마노 마사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 이지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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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을 다니다 보면 3.6.9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은 3년 6년 9년에 한번씩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지만 요즘은 이직율이 전에 비해 높아지다 보니 3개월 6개월 9개월에 한번씩 찾아오는 위기를 369가 왔다고 칭한다. 그만큼 사회초년생들에게 새 직장에서의 첫 1년 동안의 적응기가 험난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전에 비해 직업과 직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직업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난 뒤로 지금까지 약 2번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이를테면 '아버지세대'를 기점으로 살짝 위였던 지금은 거의 퇴직 후인 세대겠다. 한 직장에 몸담고 정년이 될 때까지 그 직장에 충성하는 직장인들이 있었던 시기, 그리고 '아버지세대'.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사회에서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중장년의 나이로 퇴직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세대. 우리는 보통 어린 시절 한 직장에서 20년이고 30년이고 근속하는 직업군을 바라보고 '아, 일이라는 것은 저렇구나.'하고 자라왔다가 청소년기 즈음 그 개념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성장하여 청년이 되어 자신이 일을 찾을 즈음에는 장기 근속이라는 것의 의미를 잃고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리저리 분주히 이동하는 것이 미덕이 된 직장 유목민 세대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에는 년수로 찾아오던 퇴사/이직 욕구가 이제는 개월 단위로 찾아오는 것이리라. 이 책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 참 어려워진 한국 사회를 등지고 더 넓은 세계를 바라봐보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읽어낸 책이 직업과 업무 방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시작이 이리 장황했다. 물론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일'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했나 떠올리기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이건 우리와 맞지 않아'하는 부정이 많았다. 무려 "세계 1위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업무 방식"에 대한 내용이니 나같은 평사원은 그저 읽으면서 '걔네는 그렇구나. 이런 부분이 다르구나.' 하는 정도지 '그래, 이걸 내 직업의식에 적용해봐야겠어!'하는 긍정적인 적용이나 공감은 그닥 되지 않는다. 물론 많이 나오는 고정적인 멘트가 [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환경이 마음 편하죠. 그래서 자신을 바꾸고 싶어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첫걸음을 떼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돼요.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했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어요. -p.33] 같은 말이긴 하지만, 여긴 한국 사회입니다. 라는 말로 모든 것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이 책이 어떤 긍정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직급이 어느 정도 있는 선에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게는 한 사무실의 업무 방식을 바꿔보자고 제안할 수 있는 정도의 직급, 많게는 직접 자신의 회사 인재를 오로지 능력 중심으로 뽑고 횡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될만한 직급.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바꿀 시도를 할만한 깨어있는 생각도 가지고 직급도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점도 있다.

 

 좋은 환경이나, 빠른 업무 처리, 명확한 표현으로 확실히 선을 그어두는 의사결정, 긴밀한 시장과 기업의 상호 반응, 국가를 초월한 다민족 글로벌 사회의 형성, 효율적인 인턴제도 -무급으로 업무 숙달을 위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최근 열정페이라는 말로 비꼬아지는 일을 실리콘밸리의 신입 채용 효율화라는 장점으로 보는 부분은 어떤 특수성이 더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 능력제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수 있는 횡적 사회, 전문성에 따른 분업화,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기꺼이 서로의 멘토가 되어 주는 열린 구조 등등은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매력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개인 평가가 냉정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위계가 분명하고 관료적이지만 그만큼의 책임을 위에서 분담하려는 성향이 있는 한국 사회의 업무 분위기에서, 개인의 발전이 없다면 도태 외의 길은 없어 보이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국 스타일과의 차이를 느껴보면 각각의 장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막연히 그렇게 되면 좋겠다.. 하고 회사생활 하다보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부담과 압박이 그만큼 개인에게 주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 실패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을 때 하자, p.52] 라고 말하는 평범한 근로자들이 그곳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도전하지 않았다면 남들과 다름없이 평범히 일하고 살았을 것이라 한다. 실패도 있지만 도전하다보면 그 안에서 성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너무나 일리있는 말이다. 마치, '당신은 어린 시절에 한번 크게 아팠던 적이 있지?' 하고 묻는 말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떠올려볼 말이 있습니다. [ 승자 한 명당 패자는 열 명인데 솔직히 너는 후자일 것 같다. ]는 모 인터넷 사이트의 현실적인 명언이 있지 않은가. 물론 실패를 감수하고 도전한 자만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그 실패로 감수해야 할 리스크들이 모두에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열 명 쪽에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한 명이 될 것이야, 하는 믿음을 감수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 한 명 들의 이야기만 있다. 한 명들은 그 나름의 준비와 운도 있었을테니까 혹시나 이 책을 읽고 감명받아 이런 자유로운 업무 방식과 높은 급여를 동경하며 도전할 것이라면 그늘 쪽의 이야기도 찾아보고 중심을 잡아보시길. 이 책에 나와있는 실감 나는 사례들은 하나같이 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리스크는 있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비자에 관한 참고 내용 등등도 일본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소개하고 있으니 이 책이 당신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은 접자. 약간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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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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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그래 얼마나 재미있게 잘 쓰셨는지 감상해보겠습니다. 하는 마음가짐 - 곱게 말하면 기대를 안고 읽는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교과서가 아님에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저자들의 책이 있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의 저자 장석주가 그러하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저자 정혜윤이 그러하고 또,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방송하는 '밤은 책이다'의 저자 이동진이 그러하다. 다독을 하며 그것이 깊은 사유와 통섭의 경계로까지 이어지는 소양을 지닌 저자들이라는 것이 그 공통이다. 때문에 저자 장석주의 신간 소식을 현암사로부터 들었을때 기대가 많이 됐다. 더불어 걱정도 됐다. 배우면서 읽는 시간들이 얼마나 더디게 지나는지 예상이 되니까.

 

 신간은 총 네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사계절. 계절마다 부제가 달려있는데, 각기 [ 봄 : 고갈된 사색의 능력이 살아나다 - 여름 : 책 읽기는 독충이나 돌발사고도 없고 그리고 비행기 편으로 부친 수화물도 분실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여행이다 - 가을 : 가슴이 뛰는 이유는 책상 위에 쌓인 책들로 인해 내 지고한 쾌락이 더 감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 겨울 : 정신적 침잠 속에서 사소한 기억들을 모아 잇고 철학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으로 되어 있다. 봄의 부제를 보는 순간부터 저릿하고 달려오는 환기에, 저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질 못한 채로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을 돌이켜봤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여가라 여겼던 독서나 영화감상 등에서 멀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고 읽어도 지겹지 않던 것들을 지속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던 시간.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려해도 집중도 되지 않고 그저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지하여 핸드폰만 만지작대던 시간이 떠올랐다.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는데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내려놓고 사색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지나치게 광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제들이 삶과 사유를 한단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과정을 한 해 살이로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계를 다 거치고 나면 끝나서 텅 빈 것이 아니라 자신을 리프레쉬하기 위해 다져진 한 해를 완성하게 되는 것 같이.

 

 대부분 배우면서 읽었는데, -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읽는 버릇만 없었다면 밑줄이라도 치고 필기도 할 요량으로- 그 중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도서관에 대한 언급이 되어 있는 단락이었다. [도서관은 가슴을 뛰게 하는 공간 중의 하나다. 도서관이 각별한 것은 젊은 시절 한때 절망과 불안을 억누르며 하염없이 소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어떤 사람에게는 '비밀스러운 낭만의 공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꿈을 잉태하고 키우는 모태 공간이기도 하다. ...중략... 왜 도서관들은 접근이 쉬운 도심 한가운데 있지 않고 변방의 녹지나 공원 귀퉁이에 있는 것일까? 첫째, 도서관들이 도시 중심부에 상업 업무 시설이 다 들어찬 다음에 지어졌기 때문이고, 둘째,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공공건물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무슨 수로 도심 한가운데의 높은 지가를 감당할 수 있으랴! 도서관이 소음이 덜한 도심 외곽에 있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더 다양한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인데, 이사오기 전 살던 지역이 작은 규모로 집중적으로 발달한 곳이라 중심부와 도서관이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 가능하고 역사와 연계된 대여 서비스도 잘 운영하고 있어 정말 감사히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즐겁게 사용했던 발달된 도서대여 시스템에 멀리서도 찬양과 감탄을 보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눈에 많이 밟히는 내용이었다. 도서와 독서를 위해 마련된 도서관이 이윤 창출이 없는 건물이라는 이유로 외따른.. 곳에 지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가치라는 것이 이윤으로 상응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또 하나는 '미국이라는 타자'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장이었는데, 개봉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졸렬한 내용에 모두가 실망을 감추지 못했던 '인터뷰'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나 '식코'같은 영화들도 떠올랐다. 어떤 내용이 인상깊게 여겨지거나 더 주의깊게 보게 되는 계기가 내가 가진 바탕에 따라 좌우하기 마련이니, 감상과 생각은 자신이 체득한 만큼의 경험과 배경에서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 장을 읽어보라 추천해줄 것을 말한다면 '이 여름은 전대미문의 여름이다'를 꼽을 것 같다. [ 태어남과 죽음은 우주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나방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듯 나도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존재의 일의성 앞에서 겸허하게 나의 태어남을 우주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나는 정직한 방식으로 세계의 다채로운 삶에 참여하고 있다. ...중략... 나는 '영원성'에 대한 상념을 멈추지는 않지만, 오늘 여기에서의 하루가 결코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영원성'에 견줘 하찮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다시 황옥같은 해가 뜨고, 그 해가 내일의 삶을 비추리라. 이 여름이 내 생에게 단 한 번 나타나는 전대미문의 여름임을, 해가 뜨고 지는 이 평범한 하루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금보다 더 값진 하루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 일상적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가 글 안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듯한 흐름이 영상을 읽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준다. 더불어 '8월에는 휴업 중이니, 글쓰기도 사양합니다'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결에 떠올려봤는데, 물론 다 실행하기 정말 힘들겠지만 각 장마다 나온 책들 중 한권 정도를 선택해 사계절에 맞춰 읽으며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12권에서 13권 정도 되니까 계절마다 3개월 일주일에 한 권의 책 정도면 된다는 계산이 얼핏 나온다. 이런 생각을 꿈같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진다. 이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뜬구름이 진짜 계획이 되어 산처럼 내려지는 아득함?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1개월치의 괴로움은 될 것이다. 벤야민의 책은 '일방통행로'가 되겠다, 아마도.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궁금하지만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하고.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세번째부터는 롤랑 바르트의 책을 선택할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로 정하고 빼먹을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런저런 궁리를 책 덮기도 전에 시작하고 수많은 책들 중 읽은 것은 손에 꼽기도 어렵게 적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한다. 사실 언급된 책들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단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장에서 이미 그 생각은 접게 되었으니,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심히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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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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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적인 일러스트로 가득한 책은 특이하다. 이런 책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저자인 플로랑 샤부에의 시선이 도발적인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타국의 생활이면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솔직한 부분이 더 많았다. 일본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일러스트를 보면서 각자의 헤어스타일과 그런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주된 특성을 써놓았는데 코멘트가 솔직하다 못해 웃기도록 예리하다. 스맙의 멤버들을 그려놓으면서 감히, 기무라 타쿠야에게 여장남자 같다는 말을 하거나 초난강이 한 드라마 캐릭터가 좀 모자란 사람 역이었는데 잘 어울렸다는 둥의 말을 써놓은 것도 배짱이 있네 싶었다.

 

 일본에 대해 그래도 옆나라이니 많이 안다 싶었는데 확실히 직접 몇달이고 다녀온 사람의 시선으로 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싶었다.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도 그렇고, 과일 가격이 망고 하나에 이천엔이라면 한화로는... 살인적인 물가구나 싶었다. 망고가격이야 우리나라도 비싸긴 하지만. 별별 것들을 다 그리고 적어놓은 실용적이면서 편집증적인 책이다. 기억해두기 위한 기록용 수첩을 그대로 공개한 느낌이라 작은 코멘트 하나도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보다보면 일본에 대한 여행욕구보다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다. 시각도 좀 색다른 것 같고 그가 그려낸 일러스트 들이 사실적이면서 예쁜 색감을 보일 때가 있어서 좋았다.

 

 한번쯤은 유럽에 다녀오라는 계시인가. 요즘들어 프랑스라는 아이콘이 자주 눈에 밟힌다. 얼마 전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했다. 작년 말에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프랑스 사람과 잠깐 개인교습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금방 대만으로 떠나는 바람에 잠깐에 그쳤는데 그때 프랑스 말을 두마디 배웠다. 그 중 하나가 '올랄라'였던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놀랄만한 사건에 대해 얘기할때 '올랄라'하고 나온 그 감탄사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해서 한참 웃었다. 개인적인 얘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이 '도쿄 산보' 역시 나더러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계시 중 하나로 생각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애기였다. 일본에 관한 책이지만,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니까. 나보고 프랑스에 다녀오라는 얘기이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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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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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시로군요"

 

 첫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눈이 크게 뜨일 정도의 도발이 들어와 박혔다. 소세키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의 인물을 구성할 때,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도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화 하여 풀어내는 것을 같이 하는 것일까. 새삼 감탄스러웠다. 결국은 바로 이 한마디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이 바로 산시로이니까. 이 수미상관식 구조를 바로 그렇다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약 300쪽에 걸쳐있다.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그 하룻밤으로 전부 풀어내었는데도 나머지 300쪽의 자취를 좇아 증명하여 알고 싶도록 만드는 소세키의 힘에 의해.

 

 

 

 산시로를 읽으며 문득 내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터라 낯선 환경으로 가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간혹 애써 사투리 흔적을 지우며 서울말을 쓰는 학생이 몇 있었다. 그네들은 혹 산시로처럼 고향과 서울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느꼈을까. 우리는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데 너네는 장에 찍어서 먹었구나 서로 그게 뭔 맛이대? 하고 묻거나 서울 오면 가보고 싶었던 데가 있었냐고 묻자 애인 생기면 같이 남산타워 가겠단 포부에 평생 근처도 못가보기 전에 혼자 다녀오라며 열없이 웃었던 기억이 문득문득 난다. 그들도 보란듯한 서울사람이 되어  방학에 고향엘 가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말투가 이상해졌다며 구박받고 오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쩐지 산시로가 바로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고 마치 내 옆에 서있던 것만 같다. 재미있다.  

 

 

 

[ "헬리오트로프"

 

미네코가 조용히 말했다. 산시로는 무심코 얼굴을 뒤로 당겼다. 헬리오트로프의 병. 해 질 녘의 혼고 4가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하늘에는 환한 해가 높다랗게 걸려 있다.

 

"결혼한다면서요?"

 

미네코는 하얀 손수건을 소맷자락에 넣었다.

 

"알고 있었군요."

 

미네코는 이렇게 말하면서 쌍커풀진 눈을 가늘게 뜨고 산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산시로를 멀리에 두고,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눈빛이다. 그러면서도 눈썹만큼은 확실히 차분하다. 산시로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렸다. ]

 

 

 

 미네코와의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일본판 건축학개론처럼 느껴진다. 순서로 따진다면 건축학개론이 한국판 산시로라고 해야 하겠지만. 딱 그 두 작품의 시기가 그렇다. 순수로 성장한 성인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사회는 아니지만 사회와 가까운- 바로 그 앞 지점의 공간에서 성인 대 성인의 만남을 갖는다. 그 안에서의 성장은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서 사회적인 성장으로 -이전까지의 순수성을 잃고 사회로 나가기 위해 적당히 때를 묻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극적임이 얌전함일 수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비겁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개인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탓에 묘한 씁쓸함을 준다. 성장한다고 해얄지 때가 탄다고 해얄지, 성장이 주는 단어의 긍정적인 뉘앙스만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절묘하게 그려내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티가 났다. 그 촌스러운 티라는 것이 악의적인 뜻은 없고, 그저 패션과 같은 의미이다. 흔히들 패션은 유행이 도는 주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년이라고 했던가 혹은 그 이상도 될 법한 흐름을 타고 예전에 유행했던 아이템들이 다시 유행하게 되어 옷장을 뒤져 예전 옷들을 찾아내어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기분이 산시로에서 들었다. 멋지고 질도 좋고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미묘하게 엇나간 포인트가 지금이랑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는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대문호의 작품에는 사람의 삶이란 것을 관통하는 한 획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산시로에서는 그런데,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이 변하긴 하였구나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서양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그럴까 생각을 오래 해봐도 속시원히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언제고 시간을 두고서라도 왜 이렇게 느끼는지 정확히 떠올리게 된다면 덧붙여 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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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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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아홉개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 책은, SF라고 불러도 될지 의아했다. 워낙 현실성을 바탕으로 둔 탓에 뭔가 좀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설명해보라면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장르소설이라고 묶어두기엔 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 어쩌면 뭐 그런 것을 구분짓겠다고 하는 것 자체도 의미없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곳에 끼워넣기 애매하단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보니 SF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가보다. 뭔가 더 우주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스케일에 대한 고정관념같은 것. 물론 소설집 '라면의 황제' 역시 그런 면모가 있다. 조금 소소하긴 하지만 충분히 기발하고 미래적인 상상력의 산물들이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나, 우주전쟁 그리고 유에프오에 대한 이야기들. 근데도 묘하게 집요한 이 소설의 현실성 때문에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몇 시간씩이나 떠들어대는 허풍선이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듯이 읽게 되는 책이었다.

 

 인상적인 단편들도 있고, 어쩐지 진도가 안나간다고 여겨지는 단편들도 있었다. 첫 단편에서는 어쩐지 김중혁 작가의 '미스터 모노레일'이란 책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인데 생각해보니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도 같다. 거기서도 '볼스 무브먼트'같은 읽으면서도 난감한데 어딘지 묘하게 설득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등장하니까. 한국과 이란 친선 외교의 상징인 페르시안 카펫의 존재가 마치 기정사실인양 여겨지도록 말이다. 좋아하는 책과 비슷한 분위기니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나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표제작 '라면의 황제'도 좋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거진 달리는 지하철 위나 12시간 넘은 야심밤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라면을 먹으며 '라면의 황제'를 읽을 수는 없었다.  '한 겨울에도 라면 한그릇이면 거뜬하다'는 말에 현혹되어 표지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라면 한그릇을 끓이는 대신 부셔서 먹었다. 다행이도 덕분에 책은 라면 받침이 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원래 안 쓴다. 진짜.

 

 시쳇말로 '약을 빨'고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후안 곤잘레스와 전 시청 공무원 김씨의 만남이 주는 위화감도 그렇고, 어디서 갑자기 한국 속담으로 '아프니까 청춘'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김범식 군의 심신미약 상태를 증명하는 동시에 지적능력에 대한 판단도 가능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노트의 제목, '개들의 死生活'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덕분에 다 읽고 나면 '와, 재밌네요, 각 단편마다 하나같이 재기가 넘칩니다.'하고 말문을 열 것 같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워낙 주거니 받거니 읽어가던 책이라서인지 책한테 읽은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 당연하게도. 문체에도 유행하는 방식이랄까 하는 것이 있는지 요즘 좀 읽힌다 싶은 책들은 이런 느낌이 든다.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서 말장난하듯이 슬쩍, 진지하게 눙을 치는 듯한 문체다. 계속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꽉 진 오른손을 바라보라고 해서 보고 있었는데 막상 기다리던 구슬은 오른손 주변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던 왼손 소맷자락에서 굴러나온, 그런 마술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지한 어조에 저도 모르게 귀도 기울이고 시선을 꼭 붙들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또 그런 게 재미있다. 엉뚱하고 발랄하여 그래서? 하고 그 다음으로 자꾸 마음을 빼앗기게 만드는 문체로 독자에게 인사한다. 당신이 아는 세상을 비틀고 꼬아내어 만든 이 새로운 세계로 헤라트 카펫 자락을 따라 온 당신을 환영한다고, 라면 먹고 가실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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