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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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시로군요"

 

 첫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눈이 크게 뜨일 정도의 도발이 들어와 박혔다. 소세키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의 인물을 구성할 때,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도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화 하여 풀어내는 것을 같이 하는 것일까. 새삼 감탄스러웠다. 결국은 바로 이 한마디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이 바로 산시로이니까. 이 수미상관식 구조를 바로 그렇다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약 300쪽에 걸쳐있다.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것을 그 하룻밤으로 전부 풀어내었는데도 나머지 300쪽의 자취를 좇아 증명하여 알고 싶도록 만드는 소세키의 힘에 의해.

 

 

 

 산시로를 읽으며 문득 내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터라 낯선 환경으로 가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간혹 애써 사투리 흔적을 지우며 서울말을 쓰는 학생이 몇 있었다. 그네들은 혹 산시로처럼 고향과 서울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느꼈을까. 우리는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데 너네는 장에 찍어서 먹었구나 서로 그게 뭔 맛이대? 하고 묻거나 서울 오면 가보고 싶었던 데가 있었냐고 묻자 애인 생기면 같이 남산타워 가겠단 포부에 평생 근처도 못가보기 전에 혼자 다녀오라며 열없이 웃었던 기억이 문득문득 난다. 그들도 보란듯한 서울사람이 되어  방학에 고향엘 가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말투가 이상해졌다며 구박받고 오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쩐지 산시로가 바로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고 마치 내 옆에 서있던 것만 같다. 재미있다.  

 

 

 

[ "헬리오트로프"

 

미네코가 조용히 말했다. 산시로는 무심코 얼굴을 뒤로 당겼다. 헬리오트로프의 병. 해 질 녘의 혼고 4가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하늘에는 환한 해가 높다랗게 걸려 있다.

 

"결혼한다면서요?"

 

미네코는 하얀 손수건을 소맷자락에 넣었다.

 

"알고 있었군요."

 

미네코는 이렇게 말하면서 쌍커풀진 눈을 가늘게 뜨고 산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산시로를 멀리에 두고,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눈빛이다. 그러면서도 눈썹만큼은 확실히 차분하다. 산시로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렸다. ]

 

 

 

 미네코와의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일본판 건축학개론처럼 느껴진다. 순서로 따진다면 건축학개론이 한국판 산시로라고 해야 하겠지만. 딱 그 두 작품의 시기가 그렇다. 순수로 성장한 성인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사회는 아니지만 사회와 가까운- 바로 그 앞 지점의 공간에서 성인 대 성인의 만남을 갖는다. 그 안에서의 성장은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서 사회적인 성장으로 -이전까지의 순수성을 잃고 사회로 나가기 위해 적당히 때를 묻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극적임이 얌전함일 수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비겁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개인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탓에 묘한 씁쓸함을 준다. 성장한다고 해얄지 때가 탄다고 해얄지, 성장이 주는 단어의 긍정적인 뉘앙스만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절묘하게 그려내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티가 났다. 그 촌스러운 티라는 것이 악의적인 뜻은 없고, 그저 패션과 같은 의미이다. 흔히들 패션은 유행이 도는 주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년이라고 했던가 혹은 그 이상도 될 법한 흐름을 타고 예전에 유행했던 아이템들이 다시 유행하게 되어 옷장을 뒤져 예전 옷들을 찾아내어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기분이 산시로에서 들었다. 멋지고 질도 좋고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미묘하게 엇나간 포인트가 지금이랑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금봐도 트렌디함이 묻어난다는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대문호의 작품에는 사람의 삶이란 것을 관통하는 한 획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산시로에서는 그런데,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이 변하긴 하였구나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서양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그럴까 생각을 오래 해봐도 속시원히 결론은 나지 않는다. 언제고 시간을 두고서라도 왜 이렇게 느끼는지 정확히 떠올리게 된다면 덧붙여 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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