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 - 영화로 읽는 직장생활 바이블
오시이 마모루 지음, 박상곤 옮김 / 현암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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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참 기발했다. 센스가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거 직상생활 '바이블'이 될 재목인가 싶어진다. 아니 대체, 한 달 기를 쓰고 회사 다녀서 월급 받고 나면 카드값이며 핸드폰 요금이며 빠져나가기 바쁜 텅 빈 통장을 안고 그래도 또 밥 벌이는 해야지 싶어 아등바등 출퇴근하는 소시민들이- 회사 다니는 것을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다니게 될 수 조차 있냐는 말이다. 말 그대로 주말에 영화나 한 편 보러 나가는 일도 때로는 사치인 마당에. 회사는 그냥 다니는 거고, 영화(映畫)나 영화(榮華)나 뭐가 되었든 보는 일은 회사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로 알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요즘의 기본 상식인 것을.

 

 글을 읽겠다고 모셔운 분을 앞두고 면구하지만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얼마 전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고 예견되며 개봉한 '추억의 마니'도 스크린에서 내리기 전에 보고 오려고 서둘러 다녀왔는데, 어쩌다보니 느낌이 상당히 다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책을 일게 되었다. 감독의 작품은 '공각기동대' 외에는 모르는데 책 속에 '천사의 알'이란 작품에 대한 언급이 있어 수년전에 동명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나서 찾아봤더니 토가시 신 감독의 다른 작품이었다.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이 없어 아쉬웠다. 다만 어찌되었던 책 속에서 꼽아놓은 영화들이 상당히 많고 또 좋은 작품들이어서 그 리스트만은 믿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 일본인 저자가 쓴 영업에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그 책도 저자가 어떻게 골드만삭스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자신자만에 찬 강력한 어조로 되어 있어 읽는 동안 약간 불편한 반발심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이쪽은 영화의 내용을 함께 소개하면서 그것을 실제 사회 생활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더 기울어져 있어 내용이나 의미가 더 풍부했지만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그만큼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고자 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책에 대해 다소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있었다. 하지만 일요일 정오마다 해주는 '출발 비디오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에 대해 읽을 때마다. 또 그 영화가 생소한 작품일수록 직접 찾아서 볼까 말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영화가 지극히 남성적인 취향에 맞춰져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저자의 목록이니까 어쩔 수 없지!

 

 다만 우리가 즐겁게 읽고 끝장을 덮고 난 뒤에 상기해야 할 것은, 이것은 이미 자신을 성공의 길에 올려놓은 다른 사람이 걸어온 길이고 세상은 한 번 뚫린 위로 향하는 길에 뒤따르는 사람을 위한 성공의 자리는 마련해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신만의 길을 걸어 위로 올라간 사람에게만 그 사람이 걸어온 길에 맞는 자리를 내어놓는다. 이미 누가 지나온 길은, 지금 시대나 당신의 상황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의 것이다. 애초에 남을 따르는 사람을 두고 당신조차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그런 위치에 두지 말자. 그저 그의 삶이 이러했다면 난 다르게 살아보자, 나만의 자리를 찾아보자고 여기자. 그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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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묻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30
이영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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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석하게도 큰 감흥이 없었다. 시보다는 책 날개에서 먼저 보았던 그의 부음이 더 오래도록 남는 시집이었다. 이상도하지. 이영유 시인은 이제서야 시집 '나는 나를 묻는다'를 찾아읽게 되면서 알게 된 이름 석자인데, 존재를 깨닫는 동시에 시인의 부재에 대한 확인을 하고 또 그것이 꽤 오랜 시간을 지나 내게 전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어디선가 본듯하다. 까만 활자의 구절로 오래 전 부음이 지금에서야 내게 닿았다는 것을. 언제고 전해지기 위해 하염없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메아리치며 떠들던 부음에 조의를 표한다. 아주 늦었지만 그래도 서둘러.

 

 다만 생각이 닿은 부분은 아래의 시이다.

 

[ 品格에 대하여 - 품격, 그리고 한문을 쓴다

 

나, 스스로가 품격의 기준이므로

품격은 나이다

혀에 모터를 달고 끝없이 굴려보라

무슨 소리가 나는지,

 

하여간 품격은

나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하고

내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다

漢文이 또 하나, 나의 국어임을 알게 된다

 

격이 없으므로 격이 있고

격이 있으므로 격이 없다

아직도 혀에 모터가 붙어 있는지?

그렇다면, 모터를 떼든가

혀를 뗄 일이다 ]

 

때때로 나 자신은 무엇으로 보여지는가, 나타내는가, 증명하는가,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곤 한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은 잘 안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존감이나 자존심의 차이를 구분하려 하고 나를 나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면서 나에 대해 정의하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잘 지켜지진 않지만 내가 받고 싶지 않은 대접을 남에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들도 그 일환이다. 그러다보니 좀 더 관계에 있어서 냉담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쨌든 이 '품격에 대하여'란 시를 읽다보니 그 모든 시도가 결국은 나라는 사람의 품격을 높이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은 적을 수록 좋다는 부분에 있어선 정말 가슴깊이 동감하지만, - 지금 이렇게 쉼없이 타자를 쳐내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속에 든 것을 쏟아내지 못해 안달인 성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 한문을 쓰는 일이 곧 품격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나의 국어임을 인지한다는 부분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혹은, 한문을 더 배우고 익힌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나 -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문이 섞인 부분을 읽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도 있고,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가급적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서도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한문이 들어있는지. 비록 나는 달리 쓸 길을 찾지 못해서 이렇게 한자표현을 잔뜩 끌어다 쓰지만 할 수 있다면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연작들인 '나는 암이다' 는 제목 만으로도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었다. '지병의 악화로 영면하였다'는 시인의 지병이 무엇이었는지- 이름 만으로도 끔찍한 병명을 곳곳에서 발견하면서 몸서리쳤다. 마치 일상인양 시집 안에 툭툭 끼워져있는 병의 그림자가 기울 때마다 피해가며 읽었다. 이상하게도 질긴 암세포가 그 안에 엉겨있는 양 제목만 봐도 지긋한 느낌이었다. 대신 눈에 들어온 다른 시 한편은,

 

 [ 光化門에서

 

 모처럼 광화문 네거리를 다녀왔다

참, 오랜만이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철 지난 과거,

거기 광화문이 있다

이제는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 오래된 상처,

열을 맞춰 달리는 차들의 행렬,

순간 모든 게 정지되고,

피 흘리던 역사의 흔적들은

아우성으로만 멀리서 달려온다

갑자기 파란 불이 켜지고,

그만!

 

뒤를 돌아보니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그랬다, 예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없었다

그냥,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것뿐이다

아득한 곳에서 달려오고,

또 아득하게 사라지는 것들,

한 세기의 흔적이,

한 인생의 아우성이,

흩뿌리는 눈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지고, 사라지는 눈 먼 사이사이로

신기루처럼 광화문이 다가선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 ]

 

 시의 전문이다. 나와 세계가 정말 긴밀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믿고 살아가는데 - 사실 내 세계야 어떻든 세상은 태평하리만큼 틀을 잃지 않고 계속된다. 금방 내 세계가 끝난대도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채 무심하게 모든 것들이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하면 그 자체로도 어떠한 절망이 엄습한다. 존재의 무상함을 느끼는 가장 일반적인 때가 아닐까 싶다. 이 '광화문에서'가 그런 순간 또한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내가 그 곳에 존재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던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공간과 시간. 사실 내가 없이는 그 공간과 시간의 존재조차 인지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있게 함'을 만드는 인지의 주체조차 사실은 공간과 시간에 의해 인지되지 않으면 무상하기만 한 것이라는 틈새가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 볼일이 있어 그 앞을 다녀와서 더 그럴지도.

 

 감흥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할 말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확 들어와 꽂히진 않았어도 이래저래 되새겨 떠올릴 시들이 있었던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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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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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구면이네요.

 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이름은 길고 복잡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다.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에게 지문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다르고, 체향이나, 분위기같은 것이 다 다르게 느껴져서 그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문체가 다 다르게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단이라는 제목과 색다를 것 없어 보이는 표지를 보면서 작가 이름을 살필 생각도 안하고 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저 나오는 내용으로 조금 스릴러 장르이거나 추리 장르이겠거니 생각하고 읽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전에 읽었던 책과 좀 비슷한데 하는 생각이 심히 들어왔다. 무슨 책이었더라, 이렇게 문득 일상에 끼어들어온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인마로 인해 긴장과 초조 속에서 인물이 극한까지 몰려가며 끝으로 끝으로 결말을 향해 독자와 함께 달려가도록 만드는 이 몰입감을 느꼈던 것은 -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도 이와 비슷하지만 아니었다.

 

 그러다 작가 이름을 다시 보고 난 뒤에 생각나는 제목들이 있었다. "눈알사냥꾼" 과 "눈알수집가". 그랬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전작들을 차례로 읽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특유의 분위기를 마치 전에 만났던 사람 특유의 냄새나 분위기 같은 것을 더듬어 재인식하듯이 '알아보게' 되었다. 신기한 점은 작가 본인이 같다는 것도 특유의 분위기가 날 수 밖에 없는 일이긴 하나 한 번 번역이 되어 완성된 책에서도 이 분위기가 똑같이 느껴진다는 거다. 심지어 번역을 한 사람도 다른데.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을 거쳐서 만들어진 다른 책들이 결국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나온 것이라고 이리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만큼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자신만의 색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는, 혹은 확립한 작가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지난 두 권과 이번 새 책을 통해 독자 -나- 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 시켰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새 작품을 가지고 돌아오기란 참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 일테지만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그 이상을 이번 "차단"을 통해 증명해 낸 것 같다. 법의학자인 미하엘 초코스와 함께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부검 과정과 사후 반응 검사들을 설명해내면서 다소 강렬함이 지나쳐서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 부분들 마저도 제대로 보여주었다. 어떤 의의나 흠집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숨가쁘게 몰아쳤던 것에 비하면 헤르츠펠트의 딸인 한나의 완고한 모습은 좀 애매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고, 여러차례 지나치게 과한 과정이 댓가로 주어졌다고 생각하도록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글쎄, 한나의 심리가 제대로 반영이 된 것일까 십대라는 불안점함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말이다.

 

 이처럼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 근간에 대한 당위성이 아닐까. 고립된 장소 안에서 자신의 안위조차 감당할 수 없는 린다가 모든 두려움에서 매번 눈을 돌리지 않고 점점 더 깊은 사건의 중심으로 제발을 옮기는 일이 왜, 단지 한 생명에 대한 인류적 책임에서만 비롯되는지 그 끈도 약하게 느껴졌고 왜, 본보기 혹은 원망의 대상이 헤르츠펠트에게로 이렇게나 가혹하게 집중되어야 했는지, 잉골프는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자신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던 상대의 개인적이면서도 위험한 일에 기꺼이 동행하기로 마음을 먹는지 설명해야 한다면 지금같은 전개나 결말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독자를 몰고가는 몰입도와 긴장감은 상당한 수준으로 이어지면서, 기꺼이 펼친 첫 장을 쉼없이 넘겨 끝내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한 장마저 덮어내도록 만드는 재미는 보장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 내용 이상으로 작성했던 리뷰를 임시로 저장했었는데 잠시 다른 일을 마치고 불러오니 한문단만 남은 채로 사라져버렸었다. 전에 썼던 내용이 생생한 감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마음에 들었었는데 지금은, 지나간 글을 되살려 엉성하게 연결해놓은 느낌이다. 분명 버튼을 눌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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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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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는 것인데.

 

 표지의 '엮음'이란 말의 뜻을 깨닫고는 먼저 든 생각이다. 30여년간 매해 10여권의 시집을 내온 '문학과 지성사'의 400호 기념 시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 400호 시집은 301호부터 399호의 시집 들 중 시인 83명의 시를 골라 수록하였다. 사실 100호, 200호, 300호 때도 이랬었다고 하나 - 시집 읽는 일이 영 둔하디 둔한 내가 어찌 알아, 그걸. 때문에 교과서 한번 처음부터 제대로 읽어본 준비없이 요약본을 먼저 본 것 같아 영 찝찝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처럼 시 못 읽어 본 나도 핑계를 댄다. 내가 아직 시선집 모아읽을 레벨이 안되는데 벌써부터 읽어서 아쉽다고. 감상만 잘한다면야 이리 읽든 저리 읽든 뭐 어쩌겠냐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모르면 이렇게 손해다.

 

 그래도 몇 몇 시인들 이름이 눈에 들어와서 그래도 한달에 한 권 정도는 시집'도' 읽자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내가,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낯설지 않게. 다만 시인들의 시집에서 꼽힌 시들이 영 생소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내게 무언가를 남긴 시가 꼭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중 하나로 여기에 꼽혀 올라올 정도면 나도 좀 주의깊게 읽었어야 했는데 대부분 무심결에 지나쳐버린 시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시들도 있었고 또 아직 읽어보지 않는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꼽아볼 수도 있었다.

 

 [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 신대철 "바이칼 키스"

 

모래폭풍이 땅을 뒤집는 순간 황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푸른 하늘, 붉은 흙먼지, 야생의 숨결을 받은 것들을 숨 돌릴 새 없이 몸부림쳤다. 무엇에 쫓겨 가는지 짐승들이 미친듯이 달렸다. 밤새 살아남은 발자국들은 거대한 먼지 굴 속에서 굴러 나와 먼지를 끌고 달렸다. 황야에 들어갈수록 긴 꼬리가 생기고 몸이 팽창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평선은 둥글고 향긋해도

 그 중심은 깊고 황막한 곳

 

다시 황야로 들어간다면 모래폭풍 넘어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

 

 신대철 시인의 "바이칼 키스"라는 시집은 제목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읽었는가 헷갈릴 정도로 또렷하게 제목이 기억난다. 언젠가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서 본문을 사진으로 찍어두기까지 했다.  '달궈진 시간만 소멸하면서 생성되었다. 나는 내가 인간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 말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무수히 태어난다는 것 말고는, 무엇이 소멸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도록. 같은 시공간 안에 무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그 의식은 끊임없는 신호로 보내질 수도, 존재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을 수도, 어느 지점에서 존재하고 부재하는지도 모를 그런 모든 차원을 포함하고 또 넘어선 면을 그려낸 듯 했다. 황야와 사막을 말하는데도 우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점도 좋았다. 꼭 읽어야지.

 

 이 시와 같이 [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 함성호 "키르티무카" ] 시도 같이 적어뒀다. 내 느낌 상으로는 마치 연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대철 시인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함성호 시인이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 중에 [ 어머니 전 혼자에요 / 오늘도 혼자이고 어제도 혼자였어요 / 공중을 혼자 떠도는 비눗방울처럼 / 무섭고 고독해요 / 나는 곧 터져버려 우주 곳곳에 흩어지겠지요 / 아무도 제 소멸을 슬퍼하지 않아요 ... 후략... ] 하는 부분이 있는데 왜 내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지 소멸되면서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존재로 남을 수 있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더불어서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꼽은 시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다음으로 적어둔 [ 책상 -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나온다. [ 책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어요 / 나는 책상에 강물을 올려놓고 그저 펼쳐 볼 뿐이에요 / 내 거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일 뿐 ... 후략... ] 여기서도 내가 존재하는 것이 어떤 확고한 지점에 확실한 존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 어쩌면 순간 혹은 중복되어 산재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다른 두 편의 시와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책상'이란 시가 좋았던 점은 그 외에도 [ 나는 어스름한 빛에 얼룩진 짧은 저녁을 좋아하고 / 책 모서리에 닿는 작은 바스락거림을 사랑하지요 ] 하는 부분의 정경이 애틋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지만.

 

 읽지 않는 것인데 하고 생각한 것치곤 꽤 흥미롭게 읽었다. 문지의 시집을 고집스럽게 읽고 있는데, 고집스러운 것 치곤 더디게 읽지만. 시집 중에서 뭔가 기본을 제시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기초영어 같기도 하고. 아직 안 읽은 100호, 200호, 300호도 곧 읽게 되기를. 이런 준비되지 않은 자세가 아니라 준비된 배경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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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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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모습에 속지 말자. 는 말은 사람이나 책이나 마찬가지로 통한다. 내용에 비해 책의 표지가 지나치게 동화적이다. 그래, 어떤 일면에서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지가 멀쩡히 살아나오는 인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동화같은 이야기이겠고, 그렇게 따지면 동화적인 요소가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살벌한 도박판 얘기를 저런 상큼한 색감에 예쁜 일러스트로 포장해놓으면 처음부터 겉과 속이 너무 다르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름 역시 일명 '선수'들로 불리는 도박꾼들의 포커페이스와 뻥카에 속은 호구-혹은 피시- 독자 양산이라는 걸까. 처음 책을 봤을 땐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좀 더 메르헨적인 이야기를 예상했다. 옷장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로 떨어지게 되는 '나니아 연대기'같은, 혹은 토끼굴에 빠져서 트럼프 여왕을 만나게 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하지만 '야수의 나라'는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밑바닥까지 한 세계를 통틀어보여주면서 그 현실성 앞에서 동화적인 결말을 꿈꾸게 만드는 작품이다.

 

 [ 재휘는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아, 뭐. 그래, 내 확률이 얼마인지 계산한 건 그렇다고 치자. 그건 쉬우니까. 하지만 플러시 확률은 테이블에 있는 하트 카드를 모두 세지 않는 이상 어려워. 그런데 그걸 모두 셈했단 말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지?"

 "음...... 숫자가 보여요. 그게...... 하늘에 둥둥 떠다니거든요. 둥둥."

순간 용팔은 말을 뚝 멈췄다. 그는 설마설마하면서 물었다. "숫자가 공중에 떠다닌다는 말이야?" "네." 그는 입을 딱 벌렸다. 숫자가 떠다닌다고 말한 사람이 예전에 한 명 더 있었다. 재휘의 아버지, 이정연. 용팔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하, 하지만 너 아까 그 양반이 플러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그 아저씨 눈을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눈?"

 "네, 눈동자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거든요. 아저씨도 아시죠? 고양이가 쥐 잡기 전에 동공이 커지는 거." ]

 

 처음엔 좀 식상했다. 선영의 아빠가 도박에 빠지게 되는 모습이 전개가 좀 빠른 듯 해서 딸까지 도박판 담보로 팔아버릴 정도로 광기어렸던가 의구심도 들었고, 천재 도박사의 아들이 그대로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카운팅 재능을 보이는 부분도 작위적이라고 여겨졌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주워삼기는 아들이라니. 하우스를 만들어놓고 선수들을 기용해 판을 벌리기만 할 뿐 자신은 직접 플레이를 하지 않는 강회장이란 인물 설정은 영화 '신의 한 수'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이범수가 분한 '살수'라는 역이 딱 이 책의 강회장과 같았다. 그러고보니 여러모로 영화 '신의 한 수'와 비슷하다. 천재적 도박사인 재휘는 나중에 강회장 밑에 들어가서 선수로 뛰는 것까지 이시영이 맡은 '배꼽' 역과 비슷했고, 살수에게 원한을 가지고 복수를 꿈꾸면서도 '배꼽'의 안전까지 생각해야 하는 정우성 분의 '태석' 역은 전쟁의 여신 선영과 비슷했다. 딱히 멀리 바둑 영화까지 가지 않아도 '타짜 2'의 인물 구조에서도 비슷한 점은 보인다. '대길'이 자신의 삼촌과 같이 다녔던 '고광렬'과 함께 소규모 하우스 등을 돌며 판을 벌이는 내용도 재휘와 용팔의 관계랑 비슷하고 책에 나오는 '나비'라는 선수는 이하늬가 분했던 '우사장' 캐릭터와 비슷했다. 그렇게보면 일정 이상의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전형성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감이 붙는다. 벌어져야 할 사건은 다 벌어졌고 강회장에게 복수를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인물들뿐 아니라 독자도 느끼게 되는 시점이 온다. 거기에서 한 번 더 좌절을 겪게 되고 마치 정해진 수순인 것 처럼 과거의 모든 열쇠까지 판 위에 올라섰을때 선영은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가 되어 자신의 복수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다시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도박판 위에 뛰어든다. 실제로 레이스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고군분투 속에 안전하게 빅게임을 관전하게 된다. 그게 바로 야수의 나라에 빠져드는 이유가 된다. 엄두내기도 어려운 빅게임을 지켜보고 그 승리감과 패배감을 내것처럼 느낄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승자도 패자도- 선한 자도 악한 자도 없는 결국은 모두가 돈의 노예인 도박꾼에 다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인물들이 자신의 전형성에서 얼핏 느껴지는 이중적인 면모도 함께 드러내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을 잃고 원흉인 강 회장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강단있는 인물로 선영이 등장한다. 가장 의지가 강력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관철해나가려는 그녀의 행보를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며 읽게 된다. 누군가는 강 회장을 꺾어야 하니까. 그런데, 천천히 반추해보면 여기서 선영이란 인물이 가장 탐욕스럽다고 여겨진다. 어쩌면, 강 회장 만큼이나. 그녀가 결국은 용팔과 재휘의 삶마저도 불안정하게 망가뜨리면서도 자신의 복수심을 이기지 못해 해선 안 될 선택을 했던 일과 그 와중에도 다시 도박판을 찾아들어 위험한 내기에 몸 담그는 행보는 그녀의 아버지라는 인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이 여겨졌다. 그래서 주인공임에도 무조건 좋아하게 되지도 않고, 오히려 떨어져서 관찰하며 바라보게 되는 그런 인물이었다.

 

 [ "승부는 단 한 번. 저는 10억을 걸겠습니다."

 그 말에 모두 입을 딱 벌렸다. 한 판에 10억이라니. 이건 카운팅이고 뭐고, 순수 운에 맡기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돈 가지고 와." 수하는 강 회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방에서 지폐무더기가 든 가방을 여러 개 들고 왔다. 오 사장은 예상치도 못했던 10억의 생생한 출현에 머리가 멍해졌다. "대신 오 사장님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돈 1억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그에게 10억에 준하는 뭔가가 있을 리가. 순간 선영은 섬뜩한 강 회장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기겁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 안 돼요!" ] 

 

 반면 강회장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꼼꼼하지 못하거나 적당주의자인가 싶기도 할 만큼 사람을 잘 놓쳤다. 어린 선영이 필사적으로 도망친 탓도 있지만, 방금 공사쳐서 제 손에 떨어진 사람 목숨을 제대로 간수 못해서 번번이 놓치는 일도 많고 선영에게 공사를 쳐서 재휘를 손에 넣었다는 것으로 홍루나 종루를 놓아주었다는 것도 의외다. 너무나 잔인하다고 일컬어지면서도 추마담이 가진 총에 와해되는 수하들을 부리고, 수십억이 오가는 판을 벌이면서 총 한자루없이 칼만 들고 다닌다는 것을 보면... 그보다 더 잔악하고 인정사정 없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이 스크린 위에서 등장했다 파멸했는지 떠올려보면 강회장은 생각보다 관대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약속을 얼마나 칼같이 지키는 사람인지! 살리에리의 편에 선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조금 비틀어보면 유일하게 행복한 번 제대로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배금주의의 노예였다- 결국은 몰락해버린 가장 불운한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장 큰 장점은 재미였다.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가서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 정도의 몰입력과. 상당히 빠른 전개 때문에 다소 거친 부분도 있고, 용팔이 선영과 재휘를 엮어주려고 하는 시도는 좀 촌스럽게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시대적인 배경이 언제인지 좀 애매하게 여겨졌는데, 요즘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런대로 거칠어서 재밌고 또 좀 촌스러워서 재밌게 느껴질만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타짜', '신의 한 수', '21' 등의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의 즐거움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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