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설레고 좀 더 소중하게 - 엄마도 아기도 행복해지는 태교동화
박미진 지음 / 아주좋은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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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속에 있을 태아를 위해 읽어줄 동화가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차분한 색감의 일러스트들과 맨 뒷편에 보너스로 들어가 있는 태교 음악 CD까지. 얼마 전에 아이를 가진 직장 동료가 요샌 3D로 초음파 영상을 볼 수 있다며 한 5cm 정도 자랐을까 싶은 아이의 영상을 보여주었었다. 스마트 폰으로 얼마든지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신기한데, 3D영상은, 너무나 선명하게 태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기함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좀 더 설레고 좀 더 소중하게'의 출간 소식을 보게 되었다. 초음파를 찍는데도 이리 저리 움직이며 제 존재를 뽐내던 뱃속의 아이에게 태교 동화를 들려주면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말 궁금해졌다.

 

 

 

 

 

 동화를 좋아해서 동화집을 모으기도 했는데, 수록된 동화들은 전에는 읽어본 적 없는 내용들이라 신선했다. 각 편마다 다 의미를 담고 있는 탓에 읽어보며 아이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글을 읽어주고 음악을 들려주며 교감을 하는 일들 이겠지 싶었다. 일부러라도 목소리를 들려주고,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따뜻한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선물하려고 생각했는데, 다음 초음파 날에는 책을 가져가서 읽어주며 받아보고 와줬으면 하는 욕심도 생긴다.

 

 

 

 

 

 유아/어린이 관련 일도 접어둔지 오래고,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니어서 자신을 위해 읽은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도착한 책을 뜯어보니, 남을 주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옛말은 긴 시간 안에서도 없어지거나 퇴색되지 않은 채 나를 재우친다. 욕심을 버리자. 더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주자. 마음먹기 쉽지 않았지만, 책에게도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지인에게도 그게 더 좋은 일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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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미술사 - 누드로 엿보는 명화의 비밀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송태욱 옮김, 전한호 감수 / 현암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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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사에서 새로 나온 신간 중 미술에 관련된 신간이 두 권이나 있었다. '잔혹미술사'와 '관능미술사'. 잔혹미술사와 관능미술사 중에 무엇을 볼까 고민해봤지만, 아무래도 좀 더 암시적인 의미를 많이 표현하고 있을 것 같은 관능미술사 쪽을 선택하는 것이 드문 미술관 방문에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실리적인 속셈이 있었다. 미술과 문학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헤아림이 바탕이 되다니. 어쩐지 부조화롭다. 애초에 두 권을 다 읽는다면 되겠지만 워낙에 게으르다보니까.

 

 1월엔 이래저래 미술관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일 때문에 혹은 추위!! 때문에 결국 한 차례 미술관 방문에 그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다녀온 곳은 지난 주말에 찾은 예술의 전당.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이 있었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일행과 공통으로 나눈 감상이 몇몇의 작품들은 마치 '그림같았다'는 것. 절묘한 순간을 경이로운 색감으로 담은 사진을 보고 때로 그림같다며 감탄하고, 정교한 그림을 볼 때면 마치 사진같다며 감탄하는 일이 문득 재미있었다. 그래서 문득 접어두었던 미술사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마치 그림같았던 사진들을 하나씩 지나오면서 이번에는 진짜 그림을 바라보고 싶었졌던 것.

 

 '비너스'부터 시작된 인체의 미학은 노골적인 성애의 장면을 드러낸 작품들 혹은 매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흐름을 보인다. 초반에는 본 적이 있는, 알만한 작품들도 종종 소개되어 반가웠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런 작품들도 있었구나 싶을 생소한 작품들이 나온다. 어떤 부분은 종교적이고 해부학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내밀하거나 그려내기에 부도덕한 느낌을 주는 것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매끄럽게 표현한 색감이나 보기만해도 안타까운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농염한 분위기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아름답다는 감동이 남는다.

 

 사실 관능이라는 혹은 포르노그래피라는 수식을 하기엔 좀 더 예술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로 넘쳐나지만 작품들이 그려진 시대를 떠올리면 꽤나 파격적인 작품들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작품으로 그려질 수 있을 정도로 통용되던 코드를 지금의 눈으로 '과거의 파격'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고. 왜 그려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배경에 대한 설명을 따라읽다보면 납득이 되는 경우도 있고, 소네트와 같은 문학작품의 구절을 보면 노골적인 묘사에 놀랍기도 하다. 사랑과 성애라는 것이 너무나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삶의 일부라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이나 감흥이 곳곳에 묻어있어 감상하며 여러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흥미로운 책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다른 한 권인 잔혹미술사의 내용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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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석 2016-03-0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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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란 것이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쩌면 가장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믿음이 수반되지 않은 관계는 사랑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고, 믿음의 뒤를 따라오는 의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지옥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버린다. 행인을 처음 읽었을 때, 이치로의 어리석음에 동조한 다른 '의심하는 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갈구한 것은 믿음이었으나, 믿음을 갈구하기 위해서 치뤄야만 했던 '의심' 때문에 결국 자신도 관계도 파괴해버린 사람들. 나 역시 의심하는 자였고, 믿을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죽거나 미치거나 종교에 입문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드는 지옥 그 밑바닥을 걸으며 힘겹게 책을 읽었다.

 

 소세키의 작품에는 언제나 가족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잦은 빈도로 눈에 띄는 것이 형과 형수라는 관계이다. 때로는 나의 결혼문제로, 때로는 빈한한 내가 형편이 나은 형에게 찾아가 손을 벌리려는 때의 중재자로 형수와 마주하여 대화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번 책에서는 마치 지금까지 나왔던 관계들이 결국 이 종장에 이르러 터져나오기 위한 요소였던 것처럼 보여진다. '행인'에는 형 이치로와 동생 지로 그리고 형의 아내 나오 세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세밀하게 그려져있다. 동생인 지로에게 자신의 아내인 나오의 마음을 떠보길 종용하는 이치로의 모습은 그의 예민한 성격- 신경쇠약으로 이미 의심이 극에 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치로는 자신이 의심이 그저 헛된 의심었다는 확인을 원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것이 사실이어서 인정해버리고 더이상 의심하지 않고 싶다는 소망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 형의 태도가 지로의 마음에도 불편한 걸림돌이 되어 늘 따라다닌다. 그리고 둘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를 바라보면서 독자의 입장 역시 조금 불편해진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알거나 가질 수 있을리는 없다. 사랑을 하면서 타인의 모든 것을 손에 쥐어 확신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느껴보았을 안타까움일지도 모르지만, 객관으로 바라본다면 확인할 수 없다하여 아내의 마음을 의심하고, 의심하다 못해 시험해보려는 남편의 태도는 불편을 넘어 경멸스럽기까지 하다. 의심이 시작되면 마음속에 귀신이 생긴다는 성어가 떠오른다. 이치로의 마음에 생긴 의심암귀는 와카야마로 떠났던 지로와 나오 두 사람이 의도치 않은 악천후로 하루를 지체하여 돌아오게 되자 점점 더 그 몸집을 부풀려 그 어떤 해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단단한 확신으로 자리잡는다. 소통은 불가하고 어느 길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없어 결국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을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게 된 이치로의 편지가 안타까움을 대신한다.

 

 '행인'을 읽으면서 많이 떠올렸던 것이 '리어왕'이었다. 늙은 왕은 자신의 딸들에게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나누어주려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기에 불안했던 왕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고 부양할 딸에게 더 큰 재산을 주려한다. 세 딸 중 두 딸은 아비에게 자신들의 애정을 맹세하였으나 막내 코델리아만은 침묵한다. 화가 난 왕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고 내쫓았으나, 오직 입으로만 애정을 맹세한 두 딸들에게 배신당하여 광야를 헤매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결국에 모든 이가 목숨을 잃는 비극만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피를 이은 가족끼리도 사랑과 믿음을 확신하지 못하는데,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남자의 마음이야 어쩔 수 없는 것 같이 여겨져 이치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의심'이란 것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의 공간을 이해하고 믿고 놓아주어야 한다. 애초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모든 일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인과 나 사이의 겹쳐진 부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닿지 않은 여백이 항상 궁금한 것이 사랑이겠지만, 그 공간을 만족하고 놓아두는 것이 사랑을 대신할 오직 한 가지 믿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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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5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이연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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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키 선생님 2차분의 발간이 있었다.

1차분을 워낙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2차분의 발간도 손을 꼽아 기다렸고 5권부터 8권까지의 총 4권의 내용을 거의 단숨에 읽어버렸다. 내용 자체도 전에 비해서 훨씬 히스테릭하고 살벌한 각을 달리고 있었고!

 

주된 내용은 5권의 중반 여름 축제 편부터 6 -7 권 스즈키 재판 8권 초판까지 이어지는 다루코 선생까지 연계되어 전반적인 흐름을 끌어가는 스즈키 선생의 결혼에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초점이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어 각각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여자친구의 임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퍼져나간 에피소드들이라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누가 스트레스를 받고, 폭발하고, 이해하고, 정리하게 되는지 기승전결이 있는 느낌으로 읽혀진다.

 아주 보편적이고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교육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자세하고 섬세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일본스러움을 가득 풍기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저럴까 싶기도 하고, 교육현실을 떠올려봤을때 과연 이런 내용의 흐름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이런 장시간의 학급회의 같은 것보다 인터넷 학교 게시판이 속칭 터지도록 글이 올라오거나, 소셜로 리트윗되면서 사건화가 되거나, 각자 개인 학습을 하기에 바빠서 교사의 혼전임신 같은것을 굳이 부도덕하다고 받아들여서 문제삼지도 않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학교 축제에 선생님 여자친구가 방문객을 가장해 살짝 관람하러 온다거나 그녀의 임신사실을 목격한다고 해도 아마, 그냥 그런가보다 또는 와! 나 선생님 여자친구분 봤는데 외모가 이러저러하더라, 둘이 이러저러하더라. 이런 단순 가십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아무리 예민한 시기의 중학생 여자아이들이라 해도 저런 불같은 반응이라... 싶었다. 피임에 대한 성교육을 했던 부분도 있어서 모순된 발언과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둘이 결혼한다는데 뭐, 교사도 사람이구나' 싶었을거다. 어른이 된 지금 읽어서가 아니라 청소년 중 대부분은 아마도 저런 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민감한 나이의 청소년들이 저런식으로 반응할 것이다 라는 프레임을 도리어 씌워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거기다 교사이면서 성인인 다루코가 학생들을 상대로 파업을 선언하거나 또 교내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은 일반의 범주에서 저럴 수 있을까 좀 애매하기도 했다. 저런식이라면 기왕 들어간 학교의 교사라는 직장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고, 일련의 사건들이 다루코에게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갈만할까 하는 성인의 계산이 적용됐다. 그렇지 못한 인물이라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컨트롤을 놓치고 말았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에피소드를 위해 과장되어 튀어나오게 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자극적이라 보는 내가 다 민망해서 웃긴 인물이었다.

 

 2차분의 주된 내용은 스즈키 본인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어른이, 교사가 그들이 교육하고 교류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 영향에 대해 어떤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담겨있었다. 대체로 재미있다기 보다는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이 위주였는데 일명 '스즈키 재판'이라 불리는 내용이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해서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편이었다. 만화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여자친구가 생령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도...? 다음 9권부터 11권 까지의 3차분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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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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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면서 참 정교하다고 느꼈다. 그 정교함의 방식이란 참 달콤한데, 전에 여러 조각을 모아놓은 하나의 케익을 베이커리에서 파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각자 다른 시트와 필링을 넣은 제각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있는데도 서로의 균형을 맞춰 각각을 조화롭게 즐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그런 조각들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낸 작가가 마련해놓은 한 권의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큰 삶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잘 벼려진 한 단면을 뽑아내어 옮겼다. 읽을수록 그들이 세밀하게 얽혀있는 삶을 살면서도 결국 각자의 시선을 가진 개인이라는 거리감도 느껴졌다.

 

 이야기는 크게 세가지 내용으로 흘러간다. 대학을 막 졸업한 게이타로는 하숙집에서 만난 모리모토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딘지 덜 된 느낌을 주는 미덥지 못한 인물인 그는, 게이타로가 꿈꾸고 있으나 미처 뛰어들 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본 것처럼 보인다. 게이타로는 그를 통해서 그가 지나온 세계를 관찰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게이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리모토는 몇 달치의 밀린 하숙비를 남긴 채 거짓 출장을 핑계로 하숙집에서 도망을 나가버리고, 게이타로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이유로 하숙집 주인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관찰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무기력하고, 불필요한 호기심에 공상적인 취미를 가진 젊은이란 느낌이다. 그런데 소세키의 작품들 안에는 게이타로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안온하고 어딘지 모르게 태평해보이는 인물들이 종종 나오는 것 같아 '퇴영적'이라는 표현이 본문 안에서 크게 눈에 띄였다. 주인 앞에서 모리모토를 깎아내려가면서 까지 자신의 결백함을 알리려 애썼던 게이타로가 그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내색하지 않은 채, 내심 그를 감싸주고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 단순하게도 바뀌는 그의 마음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뱀이 새겨진 지팡이가 뭐라고.

 

 게이타로의 독특한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인 스나가를 찾은 게이타로는 다구치란 인물을 소개 받게 된다. 다구치는 게이타로에게 어떤 남자의 행적을 쫓는 미행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호기심에 일을 받아들인다. 모리모토가 남겨준 지팡이를 가지고 전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을 미행한 게이타로는 자신이 그저 '바라본' 미행 대상에 대한 관찰 내용을 다구치에게 보고 하면서 "요령부득인 결과뿐이라 저도 심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물으시는 그런 세세한 일은 저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그 정도의 시간에 알아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잔꾀를 부려 뒤를 밟는 것보다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은 걸 솔직히 물어보는 편이 수고스럽지도 않고 또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고 미행을 청한 상대방에게 답하는 특유의 순진한 솔직함을 드러내 보인다. 저런 태도에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인 역시 잔꾀를 부려 일자리를 청탁할 바에야 직접 알아보면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게이타로에게 다구치를 소개한 친구 스나가와 지요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사실 미묘한 남녀관계의 감정이라던가, 그렇다 해도 이 부분만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각자의 사정이 들어간 내용들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지나가고 난 뒤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게이타로라는 존재가 이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부의 타인으로 남겨져 버린다는 사실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자상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문구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삶은 자기 자신으로 채우지 않는 한, 그저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통속적으로 하는 말 중에 "제목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이나, 영화의 제목 같은 것을 두고서 가수나 배우의 행보가 제목처럼 되어갈 때 종종 그런 말을 쓰는 경우를 봤다.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뻔 했기 때문에 여간 당황스럽지 않다. 이제와서 책을 읽은 감상을 적으려니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감이 든다. 하마터면 나 역시도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춘분 지날 무렵에나 쓸 뻔 하였으니,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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