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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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면서 참 정교하다고 느꼈다. 그 정교함의 방식이란 참 달콤한데, 전에 여러 조각을 모아놓은 하나의 케익을 베이커리에서 파는 일을 본 적이 있다. 각자 다른 시트와 필링을 넣은 제각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있는데도 서로의 균형을 맞춰 각각을 조화롭게 즐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그런 조각들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낸 작가가 마련해놓은 한 권의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큰 삶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잘 벼려진 한 단면을 뽑아내어 옮겼다. 읽을수록 그들이 세밀하게 얽혀있는 삶을 살면서도 결국 각자의 시선을 가진 개인이라는 거리감도 느껴졌다.

 

 이야기는 크게 세가지 내용으로 흘러간다. 대학을 막 졸업한 게이타로는 하숙집에서 만난 모리모토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어딘지 덜 된 느낌을 주는 미덥지 못한 인물인 그는, 게이타로가 꿈꾸고 있으나 미처 뛰어들 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본 것처럼 보인다. 게이타로는 그를 통해서 그가 지나온 세계를 관찰해보고 싶어한다. 그런 게이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리모토는 몇 달치의 밀린 하숙비를 남긴 채 거짓 출장을 핑계로 하숙집에서 도망을 나가버리고, 게이타로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이유로 하숙집 주인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관찰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무기력하고, 불필요한 호기심에 공상적인 취미를 가진 젊은이란 느낌이다. 그런데 소세키의 작품들 안에는 게이타로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안온하고 어딘지 모르게 태평해보이는 인물들이 종종 나오는 것 같아 '퇴영적'이라는 표현이 본문 안에서 크게 눈에 띄였다. 주인 앞에서 모리모토를 깎아내려가면서 까지 자신의 결백함을 알리려 애썼던 게이타로가 그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내색하지 않은 채, 내심 그를 감싸주고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여 단순하게도 바뀌는 그의 마음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뱀이 새겨진 지팡이가 뭐라고.

 

 게이타로의 독특한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인 스나가를 찾은 게이타로는 다구치란 인물을 소개 받게 된다. 다구치는 게이타로에게 어떤 남자의 행적을 쫓는 미행을 부탁하였는데, 그는 호기심에 일을 받아들인다. 모리모토가 남겨준 지팡이를 가지고 전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을 미행한 게이타로는 자신이 그저 '바라본' 미행 대상에 대한 관찰 내용을 다구치에게 보고 하면서 "요령부득인 결과뿐이라 저도 심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물으시는 그런 세세한 일은 저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그 정도의 시간에 알아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잔꾀를 부려 뒤를 밟는 것보다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은 걸 솔직히 물어보는 편이 수고스럽지도 않고 또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고 미행을 청한 상대방에게 답하는 특유의 순진한 솔직함을 드러내 보인다. 저런 태도에서 게이타로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인 역시 잔꾀를 부려 일자리를 청탁할 바에야 직접 알아보면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게이타로에게 다구치를 소개한 친구 스나가와 지요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데 사실 미묘한 남녀관계의 감정이라던가, 그렇다 해도 이 부분만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각자의 사정이 들어간 내용들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지나가고 난 뒤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던 게이타로라는 존재가 이 중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부의 타인으로 남겨져 버린다는 사실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자상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문구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삶은 자기 자신으로 채우지 않는 한, 그저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통속적으로 하는 말 중에 "제목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이나, 영화의 제목 같은 것을 두고서 가수나 배우의 행보가 제목처럼 되어갈 때 종종 그런 말을 쓰는 경우를 봤다. '춘분 지나고까지'를 읽으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뻔 했기 때문에 여간 당황스럽지 않다. 이제와서 책을 읽은 감상을 적으려니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감이 든다. 하마터면 나 역시도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춘분 지날 무렵에나 쓸 뻔 하였으니,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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