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앤 허니 - 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
루피 카우르 지음, 황소연 옮김 / 천문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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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발화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너무 초반의 서투르고 변질되거나 오인하기 쉬운 그런 상태인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경멸을 야기하게 될 정도로 이제 막 움이나 터 보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직 너무나 어렵다.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젠더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고 또 그 중 한 갈래가 페미니즘이므로 눈에 띄는 대로 접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관련 도서를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밀크 앤 허니'는 상당히 특별했다.

 

 '밀크 앤 허니'에는 어떤 이론이나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끄적이듯 이란 표현이 어울리도록 쓰여지고 마치 불려지듯이 적혀졌다. 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하다. 아포리즘 식으로 쓰여진 글들의 시대가 막 지나간 뒤라 약간은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도 있다. 흔히 인터넷 소설 감성이라고 하는 그런 면모가 보이는. 하지만 그 전에 읽어보았던 다른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보다 평이하고 짤막한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굉장히 가감없이 적나라한 표현들이 많아서 꽤 강렬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여성에 대해 썼다는 점 외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갖는 다른 이유는 그녀가 '타자'의 삶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여자.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나라의 출신이라는 점 뿐 아니라 성장한 곳이 캐나다였기 때문에 받았어야 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까지.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대한 논란은 꽤 강렬한 체험이 되었다. 여성인 나조차도 드러낸 신체보다 생리혈이 묻어난 사진에 대해 설명만으로도 더욱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여성의 나체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어 왔는지, 혹은 본질이나 자연적인 아름다움으로 해석될 수 있었는지는 받아들이면서 그 일부인 생리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일을 일반화 한 것이다.

 

**카우르는 10대 때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때로는 시, 때로는 사진, 때로는 그림이었다. 꾸준한 발표 덕분에 그녀는 '인스타포엣'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은 그녀가 올린 사진 하나를 삭제하고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인스타그램이 삭제한 사진은 루피 카우르가 생리혈 자국이 분명한 회색 긴 바지와 하얀 상의를 입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카우르는 인스타그램에 항의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우르는 대중에게 이 사건을 밝히고 공론화했다. "너무나 많은 사진들이, 여성이 완전히 성적이고, 물건처럼 취급되고, 심지어 완전히 벌거벗은 사진들도 버젓이 게시되는데 왜 여성의 생리 사진은 삭제되어야만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인스타그램은 1주일 후 그녀의 사진을 다시 게재했으며 사진 삭제가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구석이 많다. 조금만 더 문학적으로 원숙해진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것들을 좀 더 유려하거나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관통하는 글을 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다소 거칠고, 날것에 가까워 필요 이상의 불편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강렬하고 의미있는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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