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수집이라니. 이것은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너무나 멀리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너무나도 긴밀하여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기벽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집안 가득히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들을 미처 버리지 못한 채 기약할 수 없는 쓰임을 예상하며 보관해둔다. 그것 뿐이랴, 언제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과거의 그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에 취득한 물건들을 서랍이나 작은 상자 등 어디에든 보관해둔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때로 갑갑함을 느꼈다. 넣어둔 그것들이 필요해진 언젠가의 순간에 그것을 넣어둔 곳을 잊어 오히려 더 많은 곳을 뒤져가며 찾느라 헤매일 뿐이고 때로는 그것을 보관해두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을텐데도 기어코 얇은 식빵 봉투를 묶어놓은 철사끈을 주방 어딘가에 매어두거나, 하는 일들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릇처럼 쓸 일도 필요한 적도 없었던 그것을 버리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추억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물건에 남아있지 않는다. 때로 물건으로 인해 그 순간이 환기될 수는 있을 지언정 언제고 그것을 손에 쥐고 추억만 하고 앉아있지는 않으니. 그럼에도 모아놓은 영화표나 작은 엽서, 사진들이 서재 구석에서 꽤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옛날부터 수집가였지만, 지금은 내가 다른 수집가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 수집 행태는 시장에서 외쳐대는 대상물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다른 수집가들과 다르다. 나는 말 없고 빈약하고 실용적 가치가 없는 물건들에 반응한다. 이를테면 안쪽에 돌멩이가 박힌 채로 바닷물에 부식된 물통 뚜껑 같은 것 말이다. 비록 도착적이고 모순적일지라도 내 수집이 여전히 수집인 이유는, 수집가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보상의 패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수집은 잃어버린 사랑을 채워 준다. 내 수집은 그 대상물 속에 깃든 다른 신에게 응답한다.'

 

 나는 수집에 대해 떠올리며 필요와 추억을 말했지만, 저자는 상실과 보상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밝힌다. 일견 대수롭지 않은 수집물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저자와 내가 수집을 통해 떠올린 것들의 의미는 꽤나 감성적인 부분에의 충족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자신의 수집이 다른 여타의 수집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가치로 본다면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수집이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는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그러나 매우 집요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수집이 더욱 눈길을 끄는 매혹이 되는 것이다.

 

 '소망컨대, 내가 물려주는 것들 가운데서 내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면 좋겠다. 희망컨대, 내 아이들이 어디선 나름의 기쁨을 찾아내면 좋겠다. 그 기쁨은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있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다시 포장하는 이 책 속에 있을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애들 자신의 컬렉션과 회상 속으로 움직여가는 과정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수집은 내가 내 삶을 붙들고 있는 더 큰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라고 하지만 문득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불러주었을 때 의미가 되었던 것 처럼, 모았을 때 비로소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귀한 가치를 가진 유일무이한 것일 수도 있으나, 흔하디 흔한 공산품일 수도 있다. 그가 시리얼의 상자를 모았던 것 처럼. 중방 한 켠에 매달아 놓은 빵끈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물려져내려온 '언젠가'를 위한 궁상같은 작은 수집벽인 것처럼. 텍스트를 읽어내는 눈길을 건조하였을지라도, 곧 나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떠올리자 여러 상념들이 떠돌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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