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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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너무 힘겨운 여정을 마친 기분이 드는 <핀처 마틴>입니다. 물속에서 오래 숨 참기를 하고 올라온 것처럼 숨이 막히고.. 턱까지 찬 숨을 헐떡이는 느낌이랄까요.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특히나 윌리엄 골딩의 책은 만나본 적도 없는 상태라 더 그렇게 느껴졌나 봅니다.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순순히 그 문을 향해 걸어갈 이가 몇이나 될까요? 갑자기 어딘가 아플 때마다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삶에 연연한다기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음에, 죽을 용기는 없으니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골딩이 그린 <핀처 마틴> 속 죽음의 그림자에 맞서 대적하는 마틴은 그 공포가 얼마나 더 컸을까요.

"살려 줘! 살려 주세요!"

"난 살아남을 거야!"

한 남자가 처절하게 외칩니다. 살려 달라고.. 하지만 그 외침은 허망하게 사라지죠. 암흑 속에서 눈을 뜬 그는 대서양 한복판, 조난당한 상태로 구명대 하나 의지하며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소리쳐 외쳐보지만 듣는 이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그는 암석 위로 올라가 말미잘과 삿갓조개를 모아 요기도 하고, 미역 줄기를 모아 구조 신호도 보내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그는 재킷 안에서 다 젖은 소책자와 사진, 신분증을 발견하며 자신이 영국 해군 임대위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마틴은 하나 둘.. 과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극단, 대학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틴은 얼마간 대서양에서 조난당한 상태로 있었던 걸까 의아해집니다. 꽤 오랜 시간 혼자 생사를 오가며 사투를 벌이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정말 제정신인 사람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의지할 누군가라도 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까요? 외로움이 사무치고 차츰차츰 잠식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광기로 나타나는 마틴입니다.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끝내는 살기 위한, 살고 싶다는 집착도 생기며 광기에 휘말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겠지요. 마틴을 그렇게 죽음의 한복판에 몰아넣은 것은 과연 무슨 이유였을까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오락가락하며 떠올린 죽어서 가는 천국, 결국 무(無)인 상태에서 가는 천국에 대한 대화가 온갖 삶의 무게를 견디는 우리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합니다. 

혼란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던 <핀처 마틴>에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이게 뭐지?' 싶은 대혼란을 선물하는 윌리엄 골딩입니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는 <핀처 마틴>은 또 색다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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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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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 이상하게도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 사건이 바로 '성폭력'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향한 손가락질이 그들을 세상에서 꽁꽁 숨어버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더 숨겨야 하고, 나를 더 꽁꽁 가둬버리는..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길래..라는 질타와 눈빛 속에서 피해자들은 숨쉬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도가니'를 읽으면서 너무 화가 많이 났던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참 많이 고민했어요. 분명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나아지는 건 하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읽기로 결심한 건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심정이 크게 작동해서 일 겁니다.

변호사 판옌중의 부인 우신핑이 사라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쑹뤼와 함께 우신핑이 일하는 학원에 갔다 한 달에 한 번 꼭 휴가를 낸다는 사실을, 돌아가시고 없다는 엄마가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휴가를 냈던 부인이 연락도 되지 않고 사라져버린 후 우신핑을 찾으러 다니며 그녀를 둘러싼 충격적인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해 이혼했다는 오명이 붙은 판옌중에게 조용하고 자신의 일상을 남들에게 털어놓지 않는 우신핑은 좋은 반려자였을 겁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쑹뤼도 잘 돌봐주고 가정적이었던 우신핑이 사라진 후, 주변인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판옌중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친구 오드리는 절친한 사이였음을 사진으로 증명하고 우신핑의 고향 사람들과 다른 증언을 하는데요.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우신핑의 주변인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판옌중입니다.

우신핑의 학원으로 찾아왔다는 그녀의 친모를 만나는 장면, 동네 사람들이 기억하는 우신핑의 모습 등 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말하는 그날의 사건은 모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더 생각하고 위하는 모습이었어요. 사건의 전말이 어떠했든 피해를 당한 이는 온데간데없고 피해자를 가해한 이가 더 안 되고, 뭔가 당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답답하고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베일에 싸인 듯한 우신핑이 사라지자 흥미가 발동하는 직장동료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성격이었어요. 

사라진 부인을 찾는 판옌중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또 하나의 화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화자는 우신핑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후반부에 가면서 궁금증은 해결이 되네요.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성으로서 험한 일을 겪었던 이들이지만 사회적으로, 또 가정에서도 따뜻한 위로는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잣대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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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드링크 서점
서동원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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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드링크 서점』

우연이 운명이 되는 곳 <달 드링크 서점>을 만났어요. 추운 겨울,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읽기 좋은 판타지라 술술술~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 주점 같기도 하고 책방 같기도 한 이곳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한 곳입니다. 이곳을 운영하는 바텐더 '문'과 토끼 귀를 달고 있는 '달 토끼'가 일하는 곳이에요. 이곳을 찾은 손님은 책 제목의 메뉴를 주문하면 '문'이 전하는 특이하고 영롱한 빛깔의 칵테일을 받게 되는데 마시는 순간, 각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많이 보는 소년, 우주 요정, 첫사랑의 키스 등 이름만 들어선 어떤 칵테일일지 감이 오지 않지만 그 맛은 엄청 쓰기도 했다 달기도 했다 아주 오묘한 맛을 내는 것 같네요. 그런데 칵테일을 통해 읽게 되는 자신의 이야기들, 너무 신기하고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생업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대일,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작가, 회장 선거에 출마한 소녀, 아내를 잃은 노인, 별 지킴이 '보름이'와 도서관 관리인 '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애절한 사연도 있었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찾는 이 등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보며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좀 힘들어하는데 책 속에 등장했던 마시면 차분해지는 탄산수가 있다면 마셔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추석맞이 한정 메뉴로 나왔던 그 메뉴도 체험할 수 있다면 아빠를 만나 지금껏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달 드링크 서점>을 읽으면서 나의 책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을지 참 궁금하네요.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분명 기분 좋게 반짝였던 순간들이 잘 기록되어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후회했던 순간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분명 있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럴 때 만나면 좋을 <달 드링크 서점>입니다. 남은 인생이라도 후회 없이 즐겁게 살아봐야겠어요.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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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
윤성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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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일기를 쓰거나, 서평을 쓰거나.. 처음을 여는 글은 언제나 나에겐 힘든 일로 느껴집니다. 어떻게 시작을 할까 하는 고민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살아왔던 내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만약 내가 쓴다면 나는 처음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첫 문장> 속 주인공은 딸을 위한 문장을 생각합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소중한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말이죠.

어린 시절,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한 남자가 있습니다. 두 번은 자살 기도라 오해를 받았고, 한 번은 '행운의 소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는데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투신자살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자식 3명이 있는 새아버지와 재혼을 했죠. 

두 번이나 죽을 뻔 하자 아버지는 박영무라는 새 이름을 지어 줍니다. 비싼 이름이니 이름값하며 살아야 한다면서 말이죠. 이미 3남매를 둔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 그들 속에 제대로 속하지 못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받은 아버지 성의 이름..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네요. 

임신중독증으로 고생했던 아내는 딸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처형의 집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누나의 초대를 받아 간 조카 결혼식 이후 터미널을 떠돌며 여행을 시작합니다. 큰 조카의 쌍둥이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구입한 핑크색 다이어리와 함께 말이죠. 터미널을 이리저리 떠돌며 그는 딸을 생각합니다. 열일곱 살의 딸은 어떤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까 생각하면서요. 직장 생활을 하며 회장의 신년사, 주례사, 거기다 자서전까지 쓴 남자지만 딸아이를 위한 첫 문장은 쉽게 쓸 수가 없네요.

부모를 잃으면 땅에 묻고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생.. 겪지 않았으면 하는 고통이기에.. 죽음이 네 번이나 비껴갔던 남자 박영무는 가까이에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눈치채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알 수 없게 조용히 찾아왔을 테니까요. 그렇게 딸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아파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아내와 다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은 <첫 문장>이었습니다.

도서관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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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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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가져다줍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내가 마주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은 떠나기 전까지 두근두근 기대감을 갖게 하죠. 하지만 그런 여행지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추억이 아닌 일어나선 안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요?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우린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에선 참 난감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죠. 

대학 친구인 에밀리와 크리스틴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절친한 사이입니다. 칠레로 떠난 여행 마지막 날 크리스틴은 한 남자를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이 먼저 호텔 방으로 돌아갔던 그날 크리스틴은 거칠게 몰아붙이는 남자를 살해합니다. 그 순간 1년 전 그들이 함께했던 캄보디아 여행에서의 불운한 사건이 떠오르지요. 두 번의 비슷한 일로 인한 살인, 과연 우발적인 것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시체를 처리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죠.

아마도 한 번이었으면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노력했을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살인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예전같이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밀리가 겪었던 캄보디아에서의 일은 크리스틴이 수습해 줬죠. 불안해하는 그녀를 다독인 사람 역시 크리스틴이었고요. 그래서 이번에 일어난 일은 에밀리가 처리하려고 했을 겁니다. 친구를 위해서... 그 일이 있은 후 에밀리는 다시금 떠오른 그날의 악몽으로 심리적인 불안을 느끼는 반면 크리스틴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엇!! 그런데 그동안 에밀리가 보아왔던 크리스틴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있죠? 둘 사이지만 크리스틴이 좀 더 우위에 있었고 소심한 에밀리를 이끌었던 인물이에요. 첫 번째 사건 이후 크리스틴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했을 에밀리는 두 번째 사건을 겪고 미세하게 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다 점점 크리스틴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에밀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초반에 이미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 에밀리와 크리스틴의 심리적 묘사들이 더욱 긴장감을 느끼게 했던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는 어그러지는 두 사람의 우정, 에밀리의 내면의 변화를 통해 바짝 조여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진짜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가 맞을까 의문스러웠던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의 넷플릭스 영상도 기대가 됩니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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