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을 다 읽어보겠노라 하며 구입.

 

황정은, 파씨의 입문 : 위와 같음

황정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 위와 같음

브리야 사바랭, 미식예찬 : 예전부터 살까 말까 망설이던 책, 도서정가제 마지막 날 반값에 구입. 프랑스에서 200년 전 저술된 책이라니 놀랍다. 미식의 뿌리깊은 역사!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일드로 재미있게 봤던 같은 작가 원작 <유성의 인연>과 뭔가 착각하고 산 듯. 그래도 마지막 반값이니.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시집이다. 누군가 믿을 만한 이의 추천. 사실 눈팅.

무코다 구니코, 영장류 인간과 동물도감 : 이런 책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런데 딱 내 취향의 유쾌한 에세이집. 시니컬하면서 따뜻하다.

권여선, 처녀치마 : 2004년 출간된 책의 2014년 개정판. 구하고 싶던 권여선 데뷔작을 드디어 만나다

권여선, 토우의 집 : 이번에 나온 장편소설, 따로 리뷰 올렸듯이 정말 재미있고 권여선 책들 중에 가장 대중적인 듯.

잭 리처, 네버 고 백 : 잭 리처 시리즈 신간. 도서정가제가 되고 이제 책을 한 권씩 구입해야겠다 하고, 센트럴시티 반디앤루니스에서 정가에 데려옴.

필립 풀먼, 황금나침반 1 : 산 지 좀 되는데 반값 할 때. 재미있는 환타지라는데 아직 손에 못 듬.

이윤 리, 천년의 기도 : 중국계 미국인 이윤 리-의 존재 또한 친구의 숨겨진 블로그에서 발견함. 의뭉스러우면서 날 것 같은 생생한 감각의 단편집이다.

교고쿠 나쓰히코, 싫은 소설 : 좋아하는 작가인데, 요즘은 읽기를 드문드문 함. 최근 들어 손안의책 출판사에서 책 내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정가제 전 구입.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 줘 : 지난 소설을 찾아 읽어봄. 무려 2010년도 책이네.

페터 회, 콰이어트 걸 : 읽기 까다롭지만 역작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작가 페터 회. 안 팔려서인지 정가제 전 4천원에 팔더라.

마쓰무라 아키라, 절대지식일본고전 : 일본의 고전 명저를 100권 가까이 한눈에 정리했다고 한다. 이런 책을 안 읽어도 집에 꼭 있어야 한다며, 이 책도 반값에.

요네자와 호노부, 멀리 돌아가는 히나 : 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다양한 형식의 추리소설을 시도하는 요네자와 호노부 책들은 늘 흥미롭다. 얼마 전 문학동네 <십이국기> 서평단 참여 선물로 문학동네 책을 마음대로 2권 고르라 해서 이 책과 밑의 책을 고름. 집에 같은 고전부 시리즈인 <빙과>가 있어서 빈 칸 메우기.

요네자와 호노부, 쿠드랴프카의 차례 : 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위와 같음.

 

책을 많이도 사들였다.

이제 도서정가제가 되면 살 책을 안 사지는 않겠지만

오프라인 서점, 온라인 서점 가리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한두 권씩 사게 될 것 같다.

 

매일 밤 조금씩이나마 첵을 펴보고 잠들려고

고군분투 중인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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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9월에 나온 김영하 산문집 <보다>를 11월에 다 읽다.

일상적이고 감성적인 에세이 류가 아니라, 분석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조립하는 스타일의 산문이다.

자신만의 관점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그걸 뛰어넘는 통찰 내지 성찰은 김영하 같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게다가 그는 특히 '플롯의 구조화'에 능한 작가라서 산문임에도 각 편마다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 편들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나쁜 부모 사랑하기 : 아이는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바로 그것 때문에 아이에 대해 힘을 갖게 된다.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 놀라운 일을 글로 쓰면 오히려 믿기지 않으므로 특정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오딧세이아'를 통해 하고 있다.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것 :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의 진짜 삶이다.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 : 대학생 때 점을 보러 간 작가, 그리고 전업작가가 되다. 운명인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지 말고 맞서라.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된다는 것 : 사람의 일상에는 패턴이 있고, 그 일상적 패턴의 93%는 예측 가능하다. 이를 뛰어넘는 엉뚱한 시도들을 해볼 만하다.

 

 

작가의 말에서 책과 독서에 대한 산문 <읽다>와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 쓴 글 <말하다>를 석 달 간격으로 펴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굳이 세 권으로 나누어 펴내는 데는 출판사의 기획이 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기대가 되고.

 

예전에도 <굴비낚시>, <랄랄라하우스> 같은 산문집이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시칠리아 여행기)>,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같은 여행기를 통해

간간히 자신의 이야기와 주장을 펼쳐오던 작가인데, 이번에 스타일이 좀 바뀌었다는 생각도 든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감성은 빼고 이성은 늘린.

 


 

겉을 80%만 둘러싼 하얀 표지를 벗기면 이런 느낌이다.

디자인에 아주 공들인 느낌은 아니다.

굳이 이 책만이 아니라도, 책의 표지가 점점 얇아지는 것이 요즘 추세다.

용지의 그람 수를 줄여서라도 책값을 절감해보자 그런 출판사들 내부의 정책이 빤히 보인다.

소장하고 싶은 그런 책을 만들어 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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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작가 중 가장 귀히 여기는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 <토우의 집>이 출간되었다.

 

삼벌레고개 중턱 마을에 사는 금철,은철네 집. 그 집에 세들어 사는 영, 원네 집 이야기.

그 아이들과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일곱살 은철과 원이 스파이 동맹을 맺으며 동네 어른들을 관찰하고 들려주는 이야기.

누군가는 어디에 끌려가면 죽도록 맞고 고문당하고 죽임당하던, 수상한 시절 이야기다.

 

그동안 어른들(주로 지식인)의 세계를 밀도 있게 담았던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이번에는 분위기가 이채롭다.

소설 속 화자의 시점이 어린아이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도 같고

약간은 풍자적인 어조가 스며들어서도 같다.

발칙한 여자아이를 세상에 선보였던 은희경 <새의 선물>을 떠올리게도 하고

풍자적인 화법은 성석제를, 또 70~80년대 달동네 배경이라는 점은 송시우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생각나게 만든다.

 

권여선 소설은 읽는 중간중간 '잘 쓴다'고 감탄하게 만들고, 실제로 문장이 착착 감긴다.

웃다가 울다가 막 그랬고,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고, 마지막 작가의 말도 마음에 남는다.

 

"처음, 나는 그들의 고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것을 어루만져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뭔가를 먹는 것, 이를테면 소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략)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333~334p

 

 

이번 작품은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는데 그동안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여러 곳에서 책이 나왔었다.

자음과모음은 문학동네의 자회사 비슷한 거라고 알고 있어서 뭐 연관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인터넷서점에서 지금 보니, 작가의 2004년 단편집 <처녀치마>를 못 구해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자음과모음에서 복간되었다.

오, 좋은 소식.

 

 

 

 

 

납작한 냄비 두 개가 그들 앞에 놓였다. 냄비에 담긴 국물 한가운데 얇은 흰자막에 싸인 익은 계란이 있었다.
오뎅과 김 가루와 파가 동동 뜬 사이로 반투명한 국수 다발이 보였다. 새댁이 고춧가루를 조금 뿌려줄까 물었지만 원은 고개를 저었다.
새댁은 자기 냄비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딸의 냄비에서 다시마와 푸른 쑥갓을 건져간 대신 자기 냄비에 들어 있던 오뎅을 건져주었다.
원은 계란 노른자가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국수를 저어 먹기 시작했다.
"맛나니?"
"네, 어머니."
잠시 후에 원이 물었다.
"어머니는요?"
"나도 맛나다."
그들 모녀는 묵묵히 먹기만 하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듯 한입 먹고 서로를 힐끔 보고 또 한입 먹고 힐끔 보았다.
"국물이 제법 뜨겁다, 원아. 입천장 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네, 어머니."
"계란이 잘긴 해도 온거다. 안 그러니?"
"네 온거! 온거예요. 흐트러지지 않은 온거예요, 어머니."
-105~106p

월남 고아라 친정도 친척도 없는 새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효자 효녀 얘기를 알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은철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 밝혔다는 점이었다. 한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 하고, 가을에 앵두가 먹고 싶다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 식탐이 한도 끝도 없었다.
-138p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276p

먼 동네로 이사 가면 순분은 다시 계원을 모아 계 오야를 하고 집을 빈틈없이 세놓아 먹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모은 돈다발을 찹찹 소리를 내며 셀 생각을 하자 기운이 번쩍 났다. (중략)
이제 먹을 사람도 없으니 장독대에 있는 새댁네 매실주도 한 주전자 퍼다가 남편도 한 잔 주고 자기도 한 잔 얻어먹어야겠다.
사형도 당하지 않고 매일 나가서 꼬박꼬박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이란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 내내 순분은 자꾸 새댁이 아니라 새댁 남편 생각이 났다.
부러웠나. 모르겠다. 사형을 당할 값에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남편이란, 여자로 치면 영원한 새댁이 아닌가.
-323~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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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술사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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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인 <피리술사>는 북스피어에서 2014년 8월에 출간한 작품이다.

흑백의 방에서 무서운 이야기, 괴담을 듣는 아가씨 오치카.

주머니집 상인인 숙부 이헤에가 오치카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 듣기'는 소문이 나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연을 들려주러 찾아온다.

"이 흑백의 방에서는. 화자는 말하고 버리고, 청자는 듣고 버리는 것이 규칙입니다." p389

 

마치 현대의 심리 치료처럼, 그저 들어주고 호응하고 비밀을 지켜줌으로써 사람들을 치유한다.

사실 정신병 치료가 아무리 발전해도 약물 치료와 상담 두 가지 갈래일 텐데

미국 영화를 보면 비싼 돈을 내고도 의사의 역할이 '잘 들어주는 것'뿐일 때가 많다.

 

괴담인지라 다소 으스스한 느낌도 들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싹튼 갖은 나쁜 마음들'이 만들어낸 괴담이고,

단지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또한 그 맺힌 마음들이 결국에는 극적으로 해소되는데, 그 또한 '인간의 따뜻한 본성'에 의해서다.

 

이 책에는 6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다마토리 연못 
기치장치 저택
우는 아기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 모임
피리술사
절기 얼굴

 

그 중 '기치장치 저택'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왠지 가슴 먹먹해지는.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 모임'에는 드물게 4개의 괴담이 실려 있다. 여기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집을 지은 아버지)도 묘하게 마음에 남는다.

 

 

흑백의 방, 괴담 들어주는 아가씨 오치카 시리즈는 총 3권이 나와 있다.

<흑백>, <안주>, <피리술사>.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100가지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단다.

마쓰모토 세이초 옹처럼 부지런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독자로서는 환영이고.


 

북스피어에서 나오는 미야베 미유키 에도물 시리즈다.

일관성 있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이렇게 꽂아두면 참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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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의 하드웨이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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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이>는 잭 리처 시리즈 중에 굉장히 재미있는 편에 속한다. 플롯도 탄탄하고 리처와 악당 포함, 주인공들도 매력이 넘친다. 리처 시리즈는 스릴러이긴 하지만 "정의의 실현"이라는 건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특히 이 책은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하다.

 

 

잭 리처 시리즈의 히어로 Reacher는 퇴역한 군인으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지낸다. 집도 없고 소유물도 없다. 그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러다가 그 지역의 사건에 휘말리고, 해결하고, 떠난다. 이것이 전형적인 리처 시리즈의 플롯이다.

리처는 지역의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적당히 미국적인 음식들(팬케익, 햄버거, 샌드위치)을 먹으며 커피를 청한다.

그리고, 속으로 커피 맛에 대해서 꼭 평가한다. 보통의 미국인들처럼 진하고 양 많은 신선한 커피를 좋아한다.

소유물이 없는 잭 리처에게, 우연히 매일 만나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는 어떤 의미일까.

 

잭 리처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했다. 스푼과 설탕 없이, 도자기가 아니라 스티로폼컵에 달라고 했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리처는 한 남자의 인생이 영원히 바뀌는 장면을 목격했다. 웨이터가 꾸물거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으며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웠으므로 눈으로 보면서도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 세계 곳곳에서 하루에 수십 억 번 반복되는 장면이었다. 한 남자가 자동차 문을 열고 올라타서 차를 몰고 떠났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에스프레소는 완벽에 가까웠다. 리처가 정확히 2시간 뒤 그 카페에 다시 간 것도 그래서였다. 같은 장소에서 연이틀 밤을 보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훌륭한 커피를 위해서라면 일상의 변화를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중략)

전날 밤과 같은 웨이터가 다가왔고 리처는 같은 것을 주문했다. 스티로폼컵에 담긴 더블 에스프레소. 설탕과 스푼은 필요 없음. 커피가 오자마자 바로 계산을 치르고 잔돈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해두면 원할 때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다. 팁을 주지 않아 웨이터를 모욕하거나 커피값을 떼먹거나 도자기 컵을 훔쳐야 할 입장에 처하지 않아도 된다. 리처는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항상 계산해두고 있었다. 그건 강박적인 습관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몸에 지니지도 않았다. 덩치는 컸으나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며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7~8p

 

패티는 작은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머신을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향기가 풍겨왔다. 리처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생수 한 병을 모두 마신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커피를 좋아했다. 패티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정도를 그에게 내어줄 모양이었다.

주방에서 패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림도 설탕도 넣지 않는 거죠?"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는 내 직감을 믿어요."

119p

 

 

이번 책 <하드웨이>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취향이 고상하고 차를 좋아할 것 같은 남자.

그 영국인의 자취를 쫓아 뉴욕의 아파트에서부터 영국의 이름 없는 시골 마을까지 날아간 리처.

영국인 무리는 수색이 좁혀져 오는 가운데서도 차를 끓인다. 비록 포트에 티백이지만.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언제나 있지요."

비록 밖은 어둡고 악당들은 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럴 시간은 언제든 있다.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는 최고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이.

 

리처가 먼저 들어갔다.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공기가 무덥고 적막했다. (중략)

20세기 중반 모던스타일의 실내 장식은 차분하고 취향이 고급스러웠으며 남성적이었다. 짙은 색 목재 바닥, 옅은 벽, 두꺼운 울 깔개들, 단풍나무 재목으로 만든 책상, 플로렌스 놀 소파와 마주 보며 임스 안락의자와 오토만이 놓여 있었다, 커피 테이블은 노구치, 의자는 르코르뷔지에 제품이었다. (중략)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알파벳순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CD가 많았고 헤드폰 전용의 고급스러운 오디오 시스템도 있었다. 스피커가 없는 걸 보니 집주인은 사려 깊은 인물이었다. 좋은 이웃일 것이다.

폴링이 말했다.

"아주 우아한데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로군요. 커피가 아니라 차를 마실 겁니다."

331p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전략회의의 개막을 알렸다.

"불을 좀 피웁시다. 여긴 한기가 도네요. 차도 한 잔 마시고."

"그럴 시간이 있어요?" 폴링이 물었다.

"영국 군인들은 그렇습니다." 리처가 말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언제나 있지요."

난로 근처에 불쏘시개가 담긴 버들고리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테일러는 구겨진 신문지 위에 불쏘시개를 한 아름 쌓고 성냥을 켰다. 불이 붙자 굵직한 통나무들을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잭슨은 화덕으로 가서 물을 한 주전자 끓이면서 포트에 티백을 넣었다. 잭슨 역시 크게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차분하고 능숙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를 끓였다.

436p

 

 

 

 

 

 

작가의 명석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구절.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기획서들을 떠올렸다. ​

일을 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한 데가 있다.

 

리처는 소파에 앉아 쿠션에 편안히 머리를 기대고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모든 것은 역설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으로 조립해 만든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해체하는 게 가능하다. 기본적인 원칙이다. 필요한 것은 공감과 궁리와 상상력뿐이다. 또한 리처는 압박감을 좋아했다. 시한에 쫓기며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305p

 

"우린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이곳은 요새입니다."

"3차원적으로는 이곳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3차원이 아니라 4차원에서 벌어집니다. 길이, 너비, 높이, 그리고 시간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레인 편입니다. 일종의 포위작전인 셈이죠. 식량이 떨어질 테고 우리 넷은 모두 동시에 잠들어버리고 말 겁니다."

4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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