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의 하드웨이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드웨이>는 잭 리처 시리즈 중에 굉장히 재미있는 편에 속한다. 플롯도 탄탄하고 리처와 악당 포함, 주인공들도 매력이 넘친다. 리처 시리즈는 스릴러이긴 하지만 "정의의 실현"이라는 건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특히 이 책은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하다.

 

 

잭 리처 시리즈의 히어로 Reacher는 퇴역한 군인으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지낸다. 집도 없고 소유물도 없다. 그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러다가 그 지역의 사건에 휘말리고, 해결하고, 떠난다. 이것이 전형적인 리처 시리즈의 플롯이다.

리처는 지역의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적당히 미국적인 음식들(팬케익, 햄버거, 샌드위치)을 먹으며 커피를 청한다.

그리고, 속으로 커피 맛에 대해서 꼭 평가한다. 보통의 미국인들처럼 진하고 양 많은 신선한 커피를 좋아한다.

소유물이 없는 잭 리처에게, 우연히 매일 만나는 한 잔의 아메리카노는 어떤 의미일까.

 

잭 리처는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했다. 스푼과 설탕 없이, 도자기가 아니라 스티로폼컵에 달라고 했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리처는 한 남자의 인생이 영원히 바뀌는 장면을 목격했다. 웨이터가 꾸물거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으며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웠으므로 눈으로 보면서도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 세계 곳곳에서 하루에 수십 억 번 반복되는 장면이었다. 한 남자가 자동차 문을 열고 올라타서 차를 몰고 떠났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에스프레소는 완벽에 가까웠다. 리처가 정확히 2시간 뒤 그 카페에 다시 간 것도 그래서였다. 같은 장소에서 연이틀 밤을 보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훌륭한 커피를 위해서라면 일상의 변화를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중략)

전날 밤과 같은 웨이터가 다가왔고 리처는 같은 것을 주문했다. 스티로폼컵에 담긴 더블 에스프레소. 설탕과 스푼은 필요 없음. 커피가 오자마자 바로 계산을 치르고 잔돈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해두면 원할 때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다. 팁을 주지 않아 웨이터를 모욕하거나 커피값을 떼먹거나 도자기 컵을 훔쳐야 할 입장에 처하지 않아도 된다. 리처는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항상 계산해두고 있었다. 그건 강박적인 습관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몸에 지니지도 않았다. 덩치는 컸으나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며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7~8p

 

패티는 작은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머신을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 향기가 풍겨왔다. 리처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생수 한 병을 모두 마신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커피를 좋아했다. 패티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정도를 그에게 내어줄 모양이었다.

주방에서 패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림도 설탕도 넣지 않는 거죠?"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는 내 직감을 믿어요."

119p

 

 

이번 책 <하드웨이>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취향이 고상하고 차를 좋아할 것 같은 남자.

그 영국인의 자취를 쫓아 뉴욕의 아파트에서부터 영국의 이름 없는 시골 마을까지 날아간 리처.

영국인 무리는 수색이 좁혀져 오는 가운데서도 차를 끓인다. 비록 포트에 티백이지만.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언제나 있지요."

비록 밖은 어둡고 악당들은 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럴 시간은 언제든 있다.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는 최고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이.

 

리처가 먼저 들어갔다.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공기가 무덥고 적막했다. (중략)

20세기 중반 모던스타일의 실내 장식은 차분하고 취향이 고급스러웠으며 남성적이었다. 짙은 색 목재 바닥, 옅은 벽, 두꺼운 울 깔개들, 단풍나무 재목으로 만든 책상, 플로렌스 놀 소파와 마주 보며 임스 안락의자와 오토만이 놓여 있었다, 커피 테이블은 노구치, 의자는 르코르뷔지에 제품이었다. (중략)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알파벳순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CD가 많았고 헤드폰 전용의 고급스러운 오디오 시스템도 있었다. 스피커가 없는 걸 보니 집주인은 사려 깊은 인물이었다. 좋은 이웃일 것이다.

폴링이 말했다.

"아주 우아한데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로군요. 커피가 아니라 차를 마실 겁니다."

331p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전략회의의 개막을 알렸다.

"불을 좀 피웁시다. 여긴 한기가 도네요. 차도 한 잔 마시고."

"그럴 시간이 있어요?" 폴링이 물었다.

"영국 군인들은 그렇습니다." 리처가 말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언제나 있지요."

난로 근처에 불쏘시개가 담긴 버들고리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테일러는 구겨진 신문지 위에 불쏘시개를 한 아름 쌓고 성냥을 켰다. 불이 붙자 굵직한 통나무들을 집어넣었다. 그러는 동안 잭슨은 화덕으로 가서 물을 한 주전자 끓이면서 포트에 티백을 넣었다. 잭슨 역시 크게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차분하고 능숙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를 끓였다.

436p

 

 

 

 

 

 

작가의 명석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구절.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회사에서 쓰는 기획서들을 떠올렸다. ​

일을 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한 데가 있다.

 

리처는 소파에 앉아 쿠션에 편안히 머리를 기대고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모든 것은 역설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으로 조립해 만든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해체하는 게 가능하다. 기본적인 원칙이다. 필요한 것은 공감과 궁리와 상상력뿐이다. 또한 리처는 압박감을 좋아했다. 시한에 쫓기며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305p

 

"우린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이곳은 요새입니다."

"3차원적으로는 이곳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3차원이 아니라 4차원에서 벌어집니다. 길이, 너비, 높이, 그리고 시간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레인 편입니다. 일종의 포위작전인 셈이죠. 식량이 떨어질 테고 우리 넷은 모두 동시에 잠들어버리고 말 겁니다."

4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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